‘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가?
2020-04-10
월드뷰 04 APRIL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7 |
글/ 김정섭(한국기독교학교연합회 사무총장)
자율형 사립학교(이하 자사고라 한다)는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자립형 사립고’로 시작되어 2009년도부터 시행된 ‘고등학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확대되어 현재 전국구 모집 10개교와 광역시도 모집 32개교를 합하여 42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그 가운데 8개교가 기독교 학교이다. 자사고 설립의 법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61조(학교 및 교육 과정 운영의 특례) 제1항에 학교 교육 제도를 포함한 교육 제도의 개선과 발전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일반 고등학교에 적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를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학교 또는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1974년부터 시행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말미암아 경직된 고등학교 체제를 개선하여 국민들의 다양한 교육 욕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헌법 제31조)’는 횡적으로 다양한 능력과 종적으로 능력 수준의 차이에 상응한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획일적 평준화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자사고의 설치 근거를 삭제한다
자사고 제도는 시작될 때부터 찬반 논의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폐지 시도는 문재인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 비롯된 후 좌파 교육감들이 가세하여 뜨거운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진보 진영은 교육 불평등과 고교 서열화를 이유로 폐지를 주장하고, 보수 진영은 학교 선택권과 수월성 교육을 폐지 반대 이유로 주장한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사고 폐지를 시도하였다. 특히 2012년의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다수 선출됨에 따라 자사고 폐지 시도가 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서울 지역에 있는 자사고는 2014년도까지는 중학교 내신 성적 50% 이내 학생만 지원할 수 있던 것을 2015학년도부터는 성적 제한을 철폐하여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2019학년도부터는 자사고의 학생 선발 시기를 일반 고등학교와 같이 후기로 변경하였다. 학생 선발 시기 변경과 함께 제안한 자사고와 일반고 이중 지원 금지는 위헌 판정으로 폐기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이와 같은 일련의 정책은 자사고를 고사시키려는 저의로 의심받을 수 있는 시도들이었다.
2019년에는 자사고 재지정을 위한 평가를 둘러싸고 교육 당국과 학교 간에 마찰이 일어났다. 자사고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지정 후 5년마다 교육성과를 평가하여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있다. 2019년도에 24개 평가 대상 학교 중 13개교는 재지정 되었고 11개교는 탈락했다. 특히 서울시 평가 대상 13개 자사고 중 8개교가 재지정에서 탈락했다.
재지정에서 탈락한 11개교는 평가 기준이 타당하지 않고 평가 방법이 공정하지 못하다면서 소송을 제기하여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고 본안 소송은 1심 법원에 계류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이하 “자사고 등”이라 한다)의 설치에 관련되는 법령을 개정하여 자사고 등을 한꺼번에 모두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9년 11월 27일에 자사고 등 설치・운영에 관련되는 법 조항을 삭제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과 ‘동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2020년 1월 6일에 의견 접수를 마감하고 개정령(안) 공포만 남겨 놓고 있다. 자사고 등 교장연합회는 동개정령(안)이 공포되면 헌법 소원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사고 등의 일괄 폐지 시도의 근본 원인
정부와 국민 간에 왜 이렇게 갈등이 생기고 있는가?
첫째로는 진보주의 정권들이 평등 이데올로기를 국정 운영의 이념으로 삼고 그것을 교육 분야에 적용하려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원리 적용으로 빈부 양극화가 심화되어 대다수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므로 소유와 기회가 평등한 사회주의 정책 시행을 통해 국리민복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하므로 이미 경제・사회 분야에서 여러 가지 폐단이 생기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자사고 등이 교육 분야에서 양극화를 부추긴다며 그 설치 근거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개성이 존중되고 다양성의 조화가 개인과 사회 발전의 원리인 것을 외면하고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획일성을 강화하여 발전에 역행하고 있다.
교육학에서 교육 과정 편성과 교육 방법 구사에 있어서 집단보다 개인, 획일화보다 차별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증명된 교육 원리이다. 그런데도 평준화, 평등화를 강화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2019년 12월에 발표된 ‘사학혁신추진방안’에는 사학 혁신을 명목으로 사학 운영의 자율성을 옥죄는 여러 가지 규정이 제시되어 있다. 사립학교는 육영 독지가들이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특성 있는 교육으로 나라 교육을 보완하고 있으므로 국가가 지원・육성하는 것이 마땅하다. 동 문건에는 5개 영역에 걸쳐서 26가지 조항으로 사립학교의 자율적 운영을 제한하고 학교 법인의 주체성을 침해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것 또한 교육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화하는 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는 교육 정책 집행에 민의를 외면하고 강제로 시행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 원전’ 정책과 ‘소득주도성장’ 정책 수행에서 보았다시피 양식 있는 국민의 비판과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 강행으로 인한 피해와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강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막무가내로 추진되고 있다. 민의를 무시하고 강제로 추진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독재이다. 자사고 등을 일괄 폐지하는 정책 시행도 마찬가지로 피해 당사자와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행사의 하나로 자사고 등에 진학하는 행위를 시행령으로 금지하는 것은 교육 법정주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이다. 현재 고등학교 제도에서는 이미 감성적 능력에 따른 예능계 고교, 운동・기능 능력에 따른 특성화 고교, 마이스터 고교 등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왜 유독 지성적 능력에 따른 자사고 등은 폐지되어야 하는가? 흔히 고교 서열화, 사교육 증가 등으로 비판하지만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교육 발전 역행을 막는 과제
마지막으로 자사고 등의 폐지로 인한 피해와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국・공립학교를 막론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기반이 되는 행위이다. 이것을 금지・제한하는 것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특히 자사고 등이 대부분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학교를 선택하는 것과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사립학교의 자율적 운영의 기본 요건이다. 1970년대에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어 폐쇄되었던 학교 선택이 자사고 등의 설치로 허용되고 동시에 전국의 49개 일반고에 전국 단위 학생 모집이 허용된 것은 수적으로는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뜻있고 희망적인 조치였다. 특히 비평준화 지역의 43개 고교에 지원 입학할 수 있는 해당 지역 학생・학부모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2019년 11월에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에 의하면 2025학년도부터 전국 단위 모집이 폐지된다. 이런 조치는 해당 지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 아니라 교육 발전을 후퇴시키는 처사이다. 이런 획일화, 평준화 조치는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양성하는 것을 방해하여 결과적으로 국가, 사회에 막대한 인적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물적 자원이 빈곤한 우리나라에서 인력 자원, 특히 우수 인력 자원 개발은 필수적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이 요청되는 시기에 그 싹을 자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2022학년도부터 고교 무상 교육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면 자사고 등은 경영의 위기감이 가중될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자사고 등의 수요가 유지되려면 자사고 등의 운영 주체들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종립 학교를 비롯한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에서는 성숙한 인격을 갖춘 교사진을 중심으로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교육 과정 운영으로 교육 수요자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개선이 필요하다. 아울러 교육 당국도 교육 정책을 강제로 시행하려고 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교육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립학교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만 하지 말고 특성 있는 설립 목적을 존중하고 지원・육성하여 국민의 다양한 교육 욕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acsk52@hanmail.net>
글 | 김정섭
연세대학교 및 동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대광고등학교 교사, 영락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한국카운슬러협회 부회장, 동작이수사회복지관 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기독교학교연합회 사무총장으로 17년째 재직 중이다. 6.25한국전쟁 참전 상이군인으로서 국가 유공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