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사태로 보는 북한-이란의 대미전략 공조체계
2020-02-17
월드뷰 02 FEBRUAR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4 |
글/ 정교진(북한학 박사)
들어가는 말
현 이란 사태의 발화점인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1957-2020)가 북한 노동신문(당 기관지)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9년 9월 14일 자 기사에서다. 이스라엘 군이 시리아 영내에 있는 이란 기지들을 공습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 군 고위 관계자는 이란 군이 이스라엘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폭발물을 탑재한 무인기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선제공격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그 배후에 ‘이란이슬람교혁명근위대 꾸드스군’(북한식 표기) 사령관이 있다고 공개했다. 이 사령관이 올해 1월 3일, 미군의 공격에 의해 사망한 솔레이마니이다. 미 트럼프 대통령도 솔레이마니가 이라크 미 대사관을 비롯한 중동에 있는 미 대사관들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선제 타격에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신문은 솔레이마니 사망 소식을 1월 6일 자에 보도했는데, 이때 중국의 외교부장과 러시아 외무상이 전화 대화에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규탄했다는 내용도 함께 실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솔레이마니가 사망한 지 사흘이 지나서야 보도되었고 그 후 이란 사태에 대해서 노동신문은 1월 8일 자(이라크 국회,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요청 법안 채택), 1월 12일 자(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 기지 공격 및 미국의 새로운 대 이란 제재 발표)에 한 번씩만 다루었다. 노동신문이 이란 문제를 다루었던 이전 보도 행태와는 사뭇 다른 감이 있다.
노동신문은 2018년 초부터 2019년 연말까지 지난 2년 동안 이란과 미국의 갈등 양상 및 충돌, (군사적) 대치 국면을 순차적으로 아주 상세하게 보도해왔었다. 검토해보니, 기사 제목으로 ‘이란’이 적시된 기사만 무려 210여 편이나 되었다. ‘미국’이 제목으로 기재된 기사는 2018년 1월에만 14여 편이나 되었다. 기사 제목에 올라가지 않았지만 이란 문제를 언급한 기사 및 사설까지 합치면 1년에 300회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북한이 이란 문제를 얼마나 주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왜 북한은 이란 문제에 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북한과 이란은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었고, 동시에 미국의 제재와 압박을 받으면서 양국 간의 등가성이 강력하게 작동되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대 이란 전략에 대해 이란의 대응 방식이 북한에게 있어서 하나의 지표가 된다는 점이다. 핵 관련해서는 특히 그렇다. 이는 지난 2년간 노동신문의 이란 관련 보도 패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패턴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1) 미국의 대 이란 압력 수단 및 그 방식 2) 미국 조치에 대한 이란의 대응 방식 3) 첨단 무기들을 통한 이란의 군사적 시위 4) 이란과 북한의 긴밀한 공조 체계 등이다. 이 네 가지 방식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양국의 대치 국면을 다루었기에 허위, 날조로 볼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물론, 모든 내용들이 미국을 적대시하며 이란 편에서 기사화된 것은 맞다. 아래의 내용은 대부분 노동신문 기사들을 발췌한 것이다.
2018년, 미국-이란의 대치 국면: 이란 핵 합의 파기 전후
미국과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갈등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이 ‘이란 핵 합의’(2015.7) 체결 이후, 경제적 발전을 토대로 탄도 미사일 개발을 계속 증강 시켜왔다고 주장하면서 핵 시설 사찰뿐만 아니라, 미사일 기지를 포함한 군사 기지들도 사찰 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란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미국은 2018년 1월 말, 유엔 주재 미 대사가 유엔 안보리에 이란이 예멘에 제공하였다는 미사일 부품들을 보여주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다시 가동하였다. 이란은 자체 개발한 첨단 무기들(순항 미사일, 단거리 미사일, 정밀 유도 폭탄을 탑재한 무인기)을 사용하면서 군사적 시위로 맞섰다. 동시에 자국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미국을 규탄하였다. 이때 미국은 이란 핵 합의 탈퇴 카드를 꺼내 들다가, 결국 5월 8일에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였다. 이유는 이란의 계속되는 테러 단체 지원 및 핵무기 개발이었다. 미국은 핵 합의 파기 후, 이란에게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 탄도 미사일 및 핵탄두 장착용 미사일 개발을 일체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 모든 핵 시설들에 대한 접근 허용 및 반 이스라엘 위협 행위를 중지할 것,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 등 12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란은 미국의 12가지 조건을 이란에 대한 군사적 무력화 및 중동지역에서의 고립 전략, 미국의 심각한 내정 간섭으로 치부하며 모든 조건을 배격하였다. 오히려 자주권과 영토 완정(完整)을 내세우며 국방력 강화 특히, 미사일 능력을 대폭 증강 시킬 것이라고 맞섰다.
미국은 8월 7일, 그 제재 수위를 한층 높여 제1단계 ‘세컨더리 보이콧’ 즉,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실제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 기뢰를 이용하여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적이 있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용납할 수 없는 ‘붉은 선’(마지노선)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표했다. 미국은 이 수역에서 이미 해협 봉쇄 해제를 위한 가상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란도 페르시아 만 수역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고 전 무력이 동원되었다.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는 대치 국면이었다.
미국은 더욱 강수를 두었다. 1955년에 체결했던 미국과 이란과의 <우호조약>까지 서면 각서를 보냄으로 파기(10월 3일) 하였다. 이 조약은 양국의 우호, 경제 관계 및 영사 권리에 관한 협약이다. 이란이 7월에 이 조약을 내세우며 대 이란 제재 조치들이 위반이라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기 때문이다.1) 곧이어 미국은 11월 5일, 이란에 대한 제2단계 제재 조치에 들어갔다. 이 조치의 핵심 카드는 이란의 원유 수출에 대한 최대 압박이었다. 당시 이란의 원유 수출액은 전체 수출 총액의 80%를 차지했다. 이란은 ‘자급자족’이라는 구호 아래, 대규모 군사 훈련으로 대응했다. 근해인 페르시아 만 수역에는 미 항공모함 전대가 진입해 있어서 군사적 긴장이 팽배했었다.
2019년 북한-이란, 대 미국 공조 체계: 등가성 원리 강력 작동
미국은 2019년 1월 13일, 자국 내에서 이란의 방송 여기자를 체포하였다. 이란은 인권 침해 행위로 간주하며 강력 규탄하였다. 이에 앞서 수개월 전에 이란은 미 해병대 출신인 미국인을 체포하여 계속 억류 중이었다. 미 국무장관은 이란을 암적 존재로 묘사했고 중동을 방문, 동맹국들의 협조를 구했다. 이에 이란은 인도, 중국, 소련과의 담합을 시도하였으며, 군사적 시위 강도를 더욱 높였다.
이란은 1월 15일,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파얌>을 실은 <바시르> 로켓을 발사했다(1,2단계 성공, 궤도 진입 실패). 당시까지 이란 핵 합의를 유지해오던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은 UN 안보리 결의안 제2231조에 저촉된다며 우려를 나타냈고 이란은 평화적 목적의 위성 발사라고 강변하였다. 안보리 결의 제2231조는 이란 핵 합의 시 핵 합의 효력 및 이행을 UN이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이었다.
한편, 북한은 2월 11일에 김영남(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이름으로 축전(이란 혁명 40주년 축하)을 보냈는데, 그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슬람교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강력한 이란을 건설하기 위한 귀국 정부와 인민의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 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축전 내용을 볼 때, 이란의 로켓 발사에 대한 지지 의사 표명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병상련이기도 하지만, 양국이 서로 주고받는 등가성 원리의 작동으로 보인다. 당시 이란의 로켓 발사에 대해서는 이전까지 이란과 정치적 담합을 꾀했던 중국과 러시아도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북한만이 이란 편에 선 것이다. 양국은 1년 전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2018-2021 양해문>을 조인(1월 24일) 하면서 전반적인 분야에서 양국이 상호 협조하기로 협의한 바가 있다.
미-북 정상 하노이 합의가 결렬된(2월 28일) 후, 4월에 이란의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축전(국무위원장 재추대 축하문)을 보냈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두 나라 지도부의 정치적 의지 그리고 현재의 잠재력에 의하여 쌍무 관계가 모든 분야에 걸쳐 확대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양국 간 교감 및 긴밀한 공조 체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쌍무 관계, 즉 주고받기식 등가성 원리는 핵과 탄도 미사일의 기술 이전으로 작용되었다. 과거 양국은 핵 프로그램 개발 기술(이란이 전수) 및 핵연료 농축 기술(북한이 전수)을 쌍방 간에 주고받았다. 이란이 핵합의 이행 중단의 제3단계 조치로, 9월 7일에 우라늄 농축을 위해 원심 분리기를 가동했는데, 이것에 북한의 기술이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이란 사태로 밝혀진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이 이란에게 단거리 미사일뿐만 아니라,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의 기술도 지원했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이란이 연내(2019년)에 로켓(위성/탄도 미사일) 세 대를 발사할 계획이라고 3월에 발표했다고 했는데, 앞서 기술한 대로 이란은 1월에 이어 2월과 8월에도 로켓을 발사했고 모두 실패했다. 이것에도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전수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부터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이 있는 가운데, 4월에 이란의 최고 지도자가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를 다시금 주장했다. 미국은 곧바로 ‘이슬람 혁명 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는데, 이 군 조직은 정규군과 별도로 이란의 핵, 미사일 계획을 추진하고 운용하는 최고 지도자의 직속 부대이다. 원유 수출 관련 사업권도 갖고 있어 미국은 혁명 수비대를 제재의 중심에 놓고 있었다. 이란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전면 대결전의 가능성도 내비쳤다. 미국도 이라크 전쟁과 유사한 대 이란 군사 계획(유사시 대규모 미 군 병력 중동 지역 파병)을 검토하고 있었다. 전운이 다시 감돌았다.
9월 14일에 발발한 사우디 내 원유 시설 두 곳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양국을 심각한 불신의 늪에 빠지게 하였다. 예멘의 반정부 무장 세력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위성사진을 제시하며 이란의 최고 지도자 직속 부대인 혁명 수비대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반발하며 미국을 강력히 규탄하였다. 이란 대통령도 9월 25일, 유엔 총회에 나가서 미국의 제재 아래에서는 어떤 협상도 거부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란은 10월 9일에 군사 훈련을 실전 연습으로 개시하였고 15일에는 대통령이 미국 제재를 규탄하면서 완전한 ‘자급자족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천명했다. 격화일로로 치닫던 양국은 3개월 후 솔레이마니의 사망으로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 국면이다.
나오는 말
작년 2월, 미·북 정상의 하노이 협상이 결렬된 후, 북한은 이란과 같은 정치, 군사적 행보를 보였다. 지속적인 무력시위와 더불어, 탄도 미사일 성능을 증강시켜 왔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에는 ‘자급자족’, ‘자력자강’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돌파구를 물색했다. 그리고 작년 연말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2020년을 ‘정면 돌파의 해’로 선언했다. 더 이상 핵을 포기할 것 같은 뉘앙스를 취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요리조리 간도 보지 않겠다는 결의다. 김정은은 이 중대 발표를 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충격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온통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해부터 이란 사태가 제대로 터진 것이다. 지금도 미국이나 국제 사회가 북한에 눈 돌릴 여력이 없을 만큼 중동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중이다. 이란 이슈에 밀려난 김정은은 맥이 풀린 듯싶다. 작년만 해도, 미국을 비판하며 이란 편을 줄기차게 들던 노동신문도 1월 들어, 이란 관련해서 딱 3차례만 기사를 올렸을 뿐이다. 쌤통이지만 안심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위기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란 사태를 빌미로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대놓고 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이란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라크의 처지와 우리나라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북한이 핵 포기를 안 하면, 남한은 핵 인질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이란의 강공 대미 전략을 지표로 삼는 김정은이 올해는 왠지 더 위험천만해 보인다.
<ezekiel21@snu.ac.kr>
1) 2016년에도 이란은 1983년에 발생한 레바논 주둔 미 해병대에 대한 폭탄 테러 공격의 배후(지원)라는 명목으로 미국이 동결시킨 20억불의 자산을 되찾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약은 효력이 상실되었다고 강변하며 대 이란 제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일축해버렸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란 측의 손을 들어주었고 미국은 우호조약을 장애물로 여기며 파기해 버린 것이다.
글 | 정교진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B.A.)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북한 선교(탈북자 사역)를 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선교회 북한선교부장을 역임했으며,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북한학과(Th.M. 및 Ph.D.)를 졸업했다.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사랑깊은교회(침례교)에서 청소년부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역사 위에 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