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의 재도약은 가능한가?

한국무역의 재도약은 가능한가?

2020-02-10 0 By worldview

월드뷰 02 FEBRUARY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글/ 이홍구(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수출 부진과 투자 저하로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2019년 2.0%까지 떨어졌다가 2020년 2.3%로 소폭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3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6%대, 2000년대 4%대, 2010년대 2%대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증가율은 1990년대 13%대, 2000년대 11%대, 2010년대 2%대로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10년간은 급속하게 하락하고 있다.1) OECD는 한국경제의 성장률과 수출증가율이 OECD 평균(2%대)으로 수렴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무역증가율 감소의 원인


우리나라의 수출증가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09년, 2014~2016년, 2019년에는 전년 대비 수출총액이 감소하기까지 했다.) [그림 1]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의 수출(수입)증가율 감소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OECD 국가가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림 1: 수출입 추이 (자료: 통계청)

수출증가율 감소에는 순환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순환적 요인으로는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는 세계적인 경기침체 위험과 통상마찰을 유발하는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을 들 수 있다.2) 경기침체 위험과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투자가 위축되고 고용과 소득이 감소한다. 세계 경제 성장세가 하락하면 상품의 수요뿐만 아니라 최종재 생산에 투입되는 원부자재에 대한 수요가 함께 감소한다. 이에 따라 원부자재 수출국의 경기가 둔화되어 세계적 수요는 더욱 감소된다. 수요 감소는 수출단가의 하락을 유발한다. 수출단가 하락은 물량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출총액이 줄어들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와 석유화학제품의 수출단가 하락이 최근 수출 부진을 주도하고 있다.

구조적 요인으로는 우리나라 무역구조의 특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중간재 수출 비중이 크고 중국의존도가 높다.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값싼 노동집약적 재화를 수입하고 자본 집약적 중간재 생산에 특화하여 이를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이 높아지면서3)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중간재 수출과 총수출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중국이 한국의 중간재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들게 되면 중국을 대체할 만한 큰 시장이 없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나 다른 개도국 시장을 개척하더라도 한국의 수출은 심각한 감소를 겪게 될 것이다.


교역환경과 구조변화


많은 사람이 수출 부진을 우려한다. 여기에는 수출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역할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수출은 그동안 부가가치와 고용 창출을 통해 성장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효과와 고용 유발효과는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다. 수출증가율과 성장률이 OECD 평균으로 회귀하는 현상은 불가피한지도 모른다. 더 이상 수출을 통해 높은 성장률을 회복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수출증가율의 전반적 하락은 반전될 수 있는가? 독일과 일본의 대조적인 경험은 우리나라의 수출 부진 대응전략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4) 독일은 경기에 민감한 수출 감소요인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으나, 구조개선을 통해 수출성장의 탄성을 잃지 않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은 외부적으로는 유로(euro)貨의 안정적 약세에 힘입어 수출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경영환경을 개선하며,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여 독일기업이 해외생산기지를 본국으로 재이전(再移轉)하도록 유인하였다. 또한 독일은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여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활성화했고 개방적 이민정책을 통하여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상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독일의 수출품목이 소비재 중심, 선진국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독일은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엔화강세로 인해 수출가격경쟁력이 약화되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생산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농산물시장 개방에 대한 부담 때문에 FTA를 통한 수출시장 확보에 소극적으로 임하였고, 노동시장 개혁에 열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노동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이민정책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다가 최근에서야 적극적인 정책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수출증가율의 침체를 겪고, 세계시장 점유율의 하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제조업 기반의 수출구조를 유지하는 점과 수출의 수입요소 의존도가 높은 점에서는 독일과 공통점이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독일보다는 일본과 더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수출 성장의 정체와 부진을 탈피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우리나라가 처한 외부 교역환경과 내부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해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첫째, 무역과 생산구조의 변화이다. 상품무역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경제활동에서 비교역재의 비중이 증가하는 가운데 서비스 무역과 투자,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s)의 중요성이 강화되었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가치사슬 속에서 소재와 부품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하고 고급 소비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선진국에 대한 수출을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서 우리나라의 비교우위가 변화함에 따르는 특화구조의 전환도 불가피하다. 한편으로는 최첨단산업 부문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 분야와 문화콘텐츠 분야에 특화해야 될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지속적 기술진보와 생산성 향상의 결과로 고용 없는 성장과 분배의 양극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수출의 취업 유발효과도 정체되고 있다. 수출의 취업 유발효과가 낮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비교우위가 이미 자본 집약적 생산에 정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낮다는 것은 글로벌 가치사슬체계에 편입된 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5) 세계화와 기술진보는 일자리 감축과 고용 불안정을 유발한다. 향후 제조업에서는 대규모 고용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중간층 일자리 창출도 저조하게 될 것이다.

둘째, 경제의 노쇠화와 경직성이다. 고령화와 인구구성의 변화로 주력 제조업과 교역재 생산의 양상이 바뀔 전망이다. 예를 들어 시니어 산업이 新성장 산업으로 부상하면 종전의 주요 제조업이 생산 활동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감소할 것이다. 생산자 서비스업과 소비자 서비스업이 확장되면 생산 활동에 있어서 비교역재의 중요성과 비중이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 경제의 경직성은 정부 주도의 경제 운용 방식과 과도한 규제에서 비롯된다. 경직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가 민간부문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민간부문이 효율적으로 담당할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규제 완화와 시장 왜곡을 유발하는 정책간섭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역할이 작아지지는 않는다. 대외통상환경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역할과 사회 인프라 구축에서 감당할 역할은 줄어들지 않는다.

셋째, 수출전략의 변화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중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으로 남아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해외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중국의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 중국이 중간재 자급률을 높이고, 자국의 소비재 공급을 높이기 위해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경제구조를 조정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경기순환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부침(浮沈)이 있기는 하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그림 2] 해외생산은 수출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총수출에 영향을 미친다. 주력 수출품목의 해외생산이 증가할 때 국내에서 생산된 부품과 소재의 수출을 확대하는 기업 내 무역이 함께 증가하지 않는다면 수출의 양적 확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림 2: 해외직접투자 추이 (자료: 통계청)

미래 新산업이 등장하면 기존제품의 수출은 감소(예: LCD 단가하락과 물량감소 동시에 경험)할 수밖에 없다. 新산업 제품의 수출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대체효과에 따르는 일시적 수출 부진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新산업 혁신에 뒤처져 새로운 수출품목을 개발하지 못하면 장기적인 수출증대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정부의 역할


정부는 먼저 대외부문의 난관을 극복하는 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외부쇼크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수출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무역 증가율은 1997년 IMF 구제금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큰 폭으로 감소하였고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정부의 통상갈등과 보호주의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미·중 통상갈등과 같은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따르는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면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은 제고되기 마련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통상외교가 필요한 이유이다. F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수출 신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다자간 WTO 체제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서 FTA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쳐야 하는 부담이 크다.

수출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고용 창출은 여전히 유효한 성장전략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구조적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출의 취업 유발효과와 부가가치 유발효과를 (실제로도 불가능하겠지만) 억지로 증가시키는 정책을 취한다면 자원 배분은 심하게 왜곡될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수반된 중간재 무역과 기업 내 무역은 증가세를 멈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 가치사슬 속에서 생존을 유지하고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은 결국 우리 경제의 인적 자원, 물적 자원, 국가 및 사회의 인프라에 의하여 결정된다. 우리나라가 고부가가치 산업에 비교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인적 자원을 확충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월성을 확보하는 교육 시스템을 확립하고 사회 인프라 투자를 늘려야 할 것이다.

수출증가율의 전반적 하락과 수출의 성장에 대한 기여도 하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수출과 시장개방은 여전히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하고 산업구조 고도화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통로이다. 수출성장의 정체와 부진을 탈피하려면 소재 및 부품 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필요하고, 고급 소비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선진국에 대한 수출을 확대하는 통로로 삼아야 한다. 또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완화하여 우리나라 경제의 경직성을 탈피하고 대외경제 환경의 난관을 극복하는 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honglee@konkuk.ac.kr>


1) OECD (2019, November), Economic Outlook
2) 경기침체의 위험은 세계적 수요하락에서 비롯된다. OECD에 의하면 미국은 2.5-3.0%에서 2%대로, 유로지역은 2%에서 1%대로, 일본은 2%에서 1%미만으로 성장률 하락이 예측된다. 무역증가율 하락의 주요한 원인은 무역과 관련된 투자하락과 무역집약도(=(수출+수입)/GDP)가 높은 유로 지역의 경기침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책 불확실성은 무역마찰, 지역적 분쟁, 중국경제의 구조변화, 기후변화 등에 대한 각국의 대응방식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3) 중간재 자급은 노동집약적 중간재에서 자본집약적 중간재로 이행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따라 중국의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4) 국제무역연구원 (2016), ‘일본과 독일의 사례로 본 우리 수출의 시사점’ Trade Brief vol. 9 (2016.04.04.)
5) 한국의 수출에서 국내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69.6%로 독일(79.7%), 중국(83.3%), 일본(88.6%), 미국(91.0%)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출의 수입요소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상태이다.


글 | 이홍구

현재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기독교경제학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4대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