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부동산 정책인가?
2020-02-09
월드뷰 02 FEBRUAR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7 |
글/ 최승노(자유기업원 원장)
부동산에 대한 규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벌써 네 번째 대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현 정권은 기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투기’로 보고 대응하고 있다. ‘투기지역’이니 ‘투기과열지역’이니 하는 용어를 쓰며 마치 자신들이 투기꾼들과 맞서 서민들을 위해 집값을 반드시 내려줄 영웅인 양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말 계속되는 규제에도 좀처럼 집값이 내리지 않는 이유가 투기꾼들에게 있을까?
탐욕이 특히 강한 일부 사람들만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좋은 집을 원하기 마련이다. 정부가 그간 ‘투기’라고 규정했던 행위들은,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이용해 집들을 공급해왔던 것 때문이다. 부동산 매매의 본질을 오인한 정부 때문에 국민들도 부동산 매매라는 행위를 투기로 오해하게 되었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행위가 국민들에게는 탐욕에 이끌린 악행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 정부의 투기규제 대책들은 의도와 반대로 부동산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에 미움과 질시를 유도했다. 서울의 집값은 ‘낮아져야만 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더욱 싸야 할’ 집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좋은 것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악독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서울에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제 재산권을 위협받게 되었다. 정부의 대책에 의해서도 그렇고, 서울에 집이 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여론에 의해서도 그렇다.
재산권은 시장경제의 작동에 있어서 핵심이다.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시장의 작동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정책은 각종 세금과 규제책을 통해 재산권을 직접 위협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여 여론도 재산권을 위협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이런 정부의 정책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방향을 잃은 부동산 정책
부동산 매매의 본질을 오인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방향을 잃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이야기와 같다. 하지만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라는 수사법에 현혹되어 정작 달성해야 할 근본적인 목표인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놓치게 되었다. 그저 가격을 내리기 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요와 공급을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무르며 부동산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집값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서로를 향해 자연적으로 수렴해갈 때 비로소 안정적 균형에 도달할 수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진정 원했던 선택들이 모여서 나온 결과야말로, 항변할 수 없는 만족스러운 결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수요와 공급이 정해진 수준에서 억지로 일치하게 하여 불안정적인 균형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참여자들이 원하지 않았던 선택을 불가피하게 되고, 시장의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부동산 대책은 수많은 풍선효과와 추가적인 가격 상승 랠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부동산 가격의 변동 폭을 줄이고 집값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정부의 목표는 질 좋은 부동산이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타 지역 곳곳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여 국민들의 전체적인 주거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인 수요를 강제로 억누르는 대책이 아니라, 그런 수요에 상응하는 공급을 적기에 해주는 즉, 수급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가격 상한제, 추가적 징세, 대출 규제 등으로 수요를 억제하는 방법과 수도권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을 함께 쓰고 있다. 얼핏 보면 수요를 줄이고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계속되는 대책 이후에도 집값은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못된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투기꾼들을 문제로 보고 높은 집값을 잡으려 했을 경우 공급대책은, 투기꾼들이 원했던 것과 동등한 성격의 재화를 더 공급해주는 것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수도권 주택공급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대책인가? 그렇지 않다.
서울의 집값을 높게 올려왔던 사람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역세권에 좋은 학군과 학원가가 있는 분위기 좋은 동네, 소위 ‘일하러 가기 좋고 애 키우기 좋은’ 위치에 있는 전망 좋은 집이다. 그런 집들이 특히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수도권 주택공급은 그런 수요를 만족시켜주기 어렵다. 역세권에 학교 좋고 학원가 발달 되어있고 동네 분위기 좋은 곳에 있는 전망 좋은 집은 서울이 아니면, 서울 안에서도 특정 지역이 아니고서는, 사실상 존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집값 상승의 원인에는 다른 지역이 아닌 그 위치만이 갖는 이점이라는 특수성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수도권 주택공급은 실제로 수요가 덜 한 서울 외곽 수도권의 주택공급을 일부러 늘려, 수도권 집값을 떨어뜨리거나 정체시키기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은 ‘투기꾼이 집값을 올린다’라고 수립된 정책과 ‘일반적인 주거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높다’라고 수립된 정책이 같이 추진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투기꾼이 집값을 올린다고 생각했다면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한편 서울 일부 지역에 몰린 투기적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정책이 이뤄졌어야 한다. 일반적인 주거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높다고 생각했다면 수도권보다는 집값이 높은 서울 일부 지역의 주거공급을 늘렸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가격을 잡겠다는 일념 아래 있어야 할 수요는 억제하고 없어도 될 공급은 더 늘리면서 부동산 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이제 서울에 괜찮은 집을 구하기는 로또 당첨처럼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정부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원인을 모두 고려하고 정책을 폈다. 결과적으로 수도권의 부동산 수요가 서울로 옮겨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서울의 집값이 오히려 더 오른 것이다. 이는 부동산이 본질적으로 주거공간이면서 자산이라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발생한 역효과다. 부동산은 어느 정도 고정된 수요가 보장되면서 공급 역시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고정적인 자산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실질 가치를 보장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주거의 목적 외에 자산관리의 목적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기도 한데, 바로 이 자산관리의 목적에 따른 수요가 지방과 수도권에서 서울로 이동한 것이다. 수도권 주택공급의 확대는 수도권 집값의 하락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기수요 억제를 위해 일정 수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을 시 징벌적 수준의 과세를 하는 억제책이 함께 작용하면서, 수도권 부동산의 공급은 더욱 증가했고, 그 몫이 서울의 부동산 수요가 되었다.
시장원리에서 벗어난 정책이 혼란 야기
잘못된 정책을 계속 강화하고 있었으니 기대하는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네 차례의 대책 발표 이후에도 집값을 근본적으로 잡는 일은 여전히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투기라는 단어를 통해 양질의 주거를 추구했을 뿐인 평범한 사람들을 탐욕에 찌든 악인처럼 묘사해왔다. 그러면서 서울에 집을 구하려는 그 익명의 사람들에 대한 오해는 부풀어 갔고, 정부의 정책도 그와 함께 방향을 잃어갔다. 방향을 잃은 정책이 서울과 지방 사이의 집값 격차를 더더욱 벌려갈수록 서울에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는 점점 커져 왔다.
대한민국은 서울이라는 메가시티를 중심으로 수도권에만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나라다. 많은 일자리와 공공, 민간 인프라가 서울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가치를 갖고 있는 땅에 과연 ‘단일한 적정 가격’을 제시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투기 과열로 서울의 집값이 부풀었다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진정 이번 정부가 서울 지역의 집값을 내려 보지는 못해도 상승을 억제하고는 싶었다면, 이런 현실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부동산 정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적 태만과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서울이라는 뛰어난 입지의 땅에 살고자 했을 뿐인 사람들을 투기꾼으로 몰아갔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부동산 시장을 원한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들을 철회하고 시장원리에 입각한 부동산 정책을 펴야 한다. 정말 가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땅에 좋은 부동산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여 수급을 안정시켜야 한다. 부동산 정책이 이런 방향으로 시행될 때, 부동산 시장은 진정 우리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부의 판단과는 달리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정말 살기 좋은 집들이 살기 좋은 위치에 많이 공급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 투기꾼들을 완벽히 통제하기만 한다면 집값은 안정화될 수 있다는 실험주의와 계획주의의 환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올바르지 않은 진단을 기반으로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설정된 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낼 리가 없다. 서울에 집 사는 일을 악마화하며 국민을 핍박하고, 그 결과 도리어 서울의 집값을 올리게 되는, 그래서 국민들이 서로 시기심에 갈등하게 만드는 그런 정책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좋은 질의 부동산이 시장에 공급될 때 비로소 사람들의 삶에 안정과 풍요가 찾아올 수 있다. 자신의 주거를 항상 걱정해야 하는 삶이 편하고 행복한 삶은 결코 아닐 것이다. 부동산 정책은 질적으로 개선된 부동산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도록 하여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choi3639@gmail.com>
글 | 최승노
선택권과 재산권을 존중해야 개인이 잘살고 나라가 발전한다고 믿는 시장론자이며,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다. 자유주의를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더 많은 이가 시장경제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강연과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자유기업원 원장,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