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2019-12-17 0 By worldview

월드뷰 12 DECEMBER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5


글/ 안창호(전 헌법재판관)


조국 전 법무장관은 사퇴했지만 검찰개혁을 둘러싼 진영 싸움은 가파르다. 여권은 수사권과 공소권을 가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찰·경찰 수사권조정 관련 법률안의 국회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가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집권화(集權化) 경향을 띠고, 집권화는 절대주의 속성을 가지며, 절대권력은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하게 된다. 국가권력은 멈추지 않고 개혁되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검찰권도 마땅히 개혁되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행사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국민은 검찰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중립적으로 수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공정하고 엄정하게 수사하여, 불법적인 특권이나 불공정을 해소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과거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추상같다가도, 살아 있는 권력에는 춘풍같이 하는 일부 수사에 대해 실망한 국민은 지금 검찰개혁을 요구한다.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명령은 검찰로 하여금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청렴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다.

공수처는 선진 민주국가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는 공수처가 설치된다면, 그것이 권력의 시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집권 여당이 제출한 법률안(백혜련 안)에는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위원은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 집권 여당 및 야당 추천 각 2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추천위원회에서 2명의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은 그중 1명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대검찰청 전경.


추천위원회 위원은 야당 추천 2명을 제외하고는 직·간접으로 대통령의 영향을 받고 있고,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2명 중 적어도 1명은 여권성향의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통령은 추천된 후보 중 1명을 낙점한다. 또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지시나 말 한마디가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정책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헌법재판관, 대법관, 법원·법무부의 주요 보직이 특정 이념성향의 법조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는,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를 둔다고 하더라도, 결국 대통령이 원하는 공수처장이 임명되고, 공수처의 주요간부는 민변 출신이나 여권성향의 사람들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닐 것이다. 공수처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대통령의 맹견(猛犬)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사가 편향된 시각과 정파적 이익에 편승하여 공정성과 투명성이 훼손되고, 대통령의 암묵적 지시나 집권당의 영향을 받는다면 독립성과 중립성은 지켜질 수 없다.

설령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더라도, 직업공무원인 검사의 경력 없는 사람을 임명하는 방안(권은희 안)은 공수처장을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정당 간 야합에 의해 특정 이념성향의 사람으로 충원되게 할 수 있다. 이 또한 엽관제를 지양하고 불공정과 부패의 폐해를 방지하려는 직업공무원제(헌법 제7조 제2항)의 취지를 무시하고, 공수처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공수처는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의 경찰공무원 등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수사한다.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 않는 공수처는 판검사를 압박하여 법원 재판과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고,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을 형해화(形骸化)할 수 있다. 이런 공수처가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 예컨대 전 조국 장관 가족사건 같은 것을 이첩(移牒)받아 수사한다면, 권력자의 사적 이익이나 집권 여당의 당파적 이익에 따라 증거가 조작되고 사실이 은폐되는 자의적인 수사가 이루어질 위험성이 없다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상태에선 공수처와 검찰이 서로 경쟁하면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봉사하기보다는 대통령이나 권력에 충성 경쟁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 역대 정권은 검찰 하나만 가지고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이제 검찰과 공수처를 양손에 들고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가권력은 집권화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어, 민주주의의 이념과 정의의 가치는 훼손될 위험성이 배가된다.

헌법에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임명하는 수사기관의 장은 검찰총장만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수사기관을 헌법에 근거도 없이 만드는 것은 위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수사권과 공소권을 가진 검찰과 공수처를 함께 두는 것은 국가기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국민의 혈세를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검찰이 수사권과 공소권을 독점하여 그 권한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의 수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다.

경찰은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 조직이다. 정보·경비·수사·교통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한다. 약 14만 5천 명(의무경찰 약 2만 명 포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찰의 법률상·사실상 권한은 1만여 명으로 구성된 검찰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무엇보다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경찰이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받는 행정경찰의 지휘를 받고 있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경찰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검사보다 부당한 상부의 명령에 취약하다. 또 경찰의 주요 보직은 상당 부분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에 의해 장악되어 있어, 경찰권은 그들의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사될 위험성이 배태(胚胎)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를 약화하는 것은 자칫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하고,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보장에도 역행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통제가 불가능한 중앙집권적 거대 공룡조직이 탄생하는 길을 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또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는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하여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한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검찰과 경찰이 모두 중앙정부에 소속된 경우에는 통일되고 일관된 수사권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미국, 일본 등 국가에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없는 경우는, 자치경찰제 시행과 분권 등으로 경찰권이 비대하게 될 수 없는 구조이고, 검찰과 경찰의 귀속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수사에서 경찰 권한의 강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치경찰제가 시행되거나, 적어도 사법경찰은 행정경찰로부터 독립하여 그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수처의 설치와 검찰·경찰의 수사권 조정 방안은 수사에서의 독립성, 중립성, 공정성, 어느 것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의 인권 수호에 역행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올바른 검찰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국가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권력은 형성에 있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해야 하고, 그 행사에 있어서도 감시되고 견제되어야 한다. 검찰권도 마찬가지다. 검찰권은 국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국회 또는 국민에 의한 통제가 필요하다. 검찰총장 임명 시 인사청문회를 거칠 뿐만 아니라,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또는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여, 헌법상 ‘직업공무원제도’의 취지에 따라, 검사가 정치 권력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소명에 충실하도록 함으로써, 검찰수사의 독립성·중립성·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은 주요 정치인 사건 등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의 경우 미국의 기소대배심제(Grand Jury)와 같이 국민에 의해 직접적인 통제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 일선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에 대한 기소와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는 상대적으로 인사에서 자유로운 고등검찰청의 고참(예컨대, 검사경력 20년 이상) 검사가 담당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국가 재원의 효율적 활용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 내부의 비리와 같이 수사의 공정성이 특별히 요구되는 경우에는, 2014년 6월 19일 제정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적극 활용하여 특별검사를 임용함으로써 공정성 시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 또 필요하다면, 지금과 같이 개별 사건 등과 관련해서 특별검사법을 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수처의 설치와 검찰·경찰의 수사권 조정 방안은 검찰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등 국가권력의 집권화를 강화할 수 있다. 성경은 국가권력의 집중화를 경계하고 있다. 기원전 11세기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이 세워지면 왕이 백성을 압제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사무엘상 8장 11절 – 18절). 대통령의 국정 전반에 걸친 절대적 영향력과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는 하향식 의사결정 문화로 인해, 국가권력의 집권화는 구체적 정의를 실현할 수 없고 국민의 인권신장에 방해가 된다. 검찰개혁은 국가권력의 집권화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국가권력의 통제를 통해 국민의 인권신장에 기여해야 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구체적 정의를 구현함과 동시에 인권보장의 보루(堡壘)가 되어야 한다. 검사는 실체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자유, 안전과 재산을 수호해야 한다. 검찰 스스로 인권침해를 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고 경찰 수사의 감시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검찰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성찰을 통해 국민적·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검찰권은 일신 또 일신하여 인권을 존중하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를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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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2019년 10월 30일자 중앙일보 안창호 퍼스펙티브에 기고한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완한 것이다.


글 | 안창호

198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시작하여 2012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27년 7개월 이상을 검사로 근무한 다음, 2012년부터 6년간 헌법재판관으로 봉직하였다. 공직생활 동안 책상 위에는 항상 성경을 펴놓고 읽으면서 이를 참조하고자 했다. 분당 임마누엘 교회 장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