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영화 평론: 기독교인의 정치적 각성
2019-11-27‘매트릭스’ 영화 평론: 기독교인의 정치적 각성
월드뷰 11 NOVEM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3 |
글/ 김철홍(장로회신학대 교수)
1. 매트릭스는 현재를 바라보는 세계관에 관한 영화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는 20세기 마지막 해(1999년)에 개봉되었다. 그 후 2003년에 2편 ‘매트릭스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와 3편 ‘매트릭스 레볼루션’(The Matrix Revolutions)이 연달아 나왔고, 2편 개봉 전에 나온 애니메이션(만화영화)인 ‘애니매트릭스’(The Animatrix)까지 포함하면 총 4편의 연작이 발표된 시리즈 영화다. 1편에서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가 슬로 모션으로 총알을 피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오락 영화가 아니다. 매트릭스는 세계관에 관한 영화다. 겉으로 보기엔 인류의 ‘미래’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관한 영화다.
매트릭스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이 영화와 기독교 복음 사이의 관련에 대해 상당히 많은 토론이 있었다. 그 이유를 보면, 주인공의 가명(假名) ‘네오’(Neo)가 스펠링을 바꾸면 ‘원’(One)이 되는데, 이에 정관사를 붙이면 ‘더 원’(The One)이 되어 ‘구원자’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접근하여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조연 ‘모피어스’가 선지자(prophet)와 같은 인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 출연자의 이름이 ‘트리니티’(Trinity, 三位一体)이며, 또 주인공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모티브가 영화에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매트릭스에 상당히 강한 종교적 뉘앙스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는 특별히 ‘종교적 개종’(religious conversion)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도 볼 수 있다. 또한 매트릭스는 더 나아가서 ‘정치적 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볼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내용을 기독교인의 정치적 각성과 연결하여 해석해보고자 한다.
2. 기계가 만든 가상 현실을 진실로 믿고 살아가는 인간
때는 2199년,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탑재한 컴퓨터와 기계 로봇이 지구를 지배한다. 인간이 만든 기계 로봇과 인간 사이에 전쟁이 오래전에 일어났고,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인간은 태양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계를 무력화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지구의 대기를 오염시킨다. 태양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기계들은 그 대신 인간에게서 나오는 생체 에너지를 자신의 에너지원(原)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인간을 배양하는 인큐베이터를 대량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매트릭스’(子宮) 속에 갇혀 기계를 위한 건전지가 되어 전기를 생산하며 살다 죽는다.
그런데도 매트릭스 속의 인간은 이런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왜냐하면, 인공 지능이 인간의 두뇌에 입력해 놓은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인간에게 끊임없이 가상의 현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가상 현실(fake reality) 속의 시간은 1999년이다. 모든 인간이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며 산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출근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밥을 먹고, 집에 와서 잠을 자는 모든 일과는 다 가짜 현실이다. 심지어 소고기 스테이크를 잘라먹을 때 혀로 느끼는 고기 맛조차 컴퓨터가 입력해 놓은 정보를 따라 느껴지는 환상일 뿐이다. 인간은 기계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정보만을 받으면서, 기계가 창조한 허상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가상의 현실 뒤에 있는 실제의 현실은 무서운 세상이고, 무서운 현실이다.
3. 현실이 가짜 정보로 이루어진 것을 깨닫고, 기계 시스템과 대결하는 인간
이런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기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인공 지능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시온(Zion)’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시온은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지하로 들어가 만든 도시다. 시온에는 기계의 부속품이 되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아가며 인공 지능 기계 시스템과 전쟁을 벌이는 전사(戰士)들이 있다. 그들 중에 지도자인 모피어스(Morpheus)는 인공 지능이 만든 매트릭스의 세계로 침투해 들어와 주인공인 키아누 리브스를 만난다. 주인공은 ‘네오’라는 이름으로 컴퓨터의 가상 공간에서 활동하다가 모피어스와 접촉하게 된다. 그는 주인공에게 그의 일상이 모두 다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주인공에게 파란색 약과 빨간색 약을 보여주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파란 약은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서 가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빨간 약은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와 진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주인공은 빨간 약을 먹는다. 그것을 먹자 매트릭스에 갇혀 건전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연결된 전기선을 몸에서 빼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안 감시 로봇의 공격이 시작된다. 감시 로봇의 본거지는 ‘제로원’(Zero One)이다. 제로원은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지능 로봇들이 만든 도시다. 제로원(Zero One)은 0과 1의 이진법을 암시하며, 이진법은 컴퓨터가 사용하는 수학적 원리다. 제로원은 0과 1을 사용하여 가상의 세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인간을 컴퓨터 바이러스로 여기고 인간을 제거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온다. 이 싸움은 ‘제로원’과 ‘시온’ 사이의 전쟁이며, 기계 대(對) 인간의 싸움이고, 전체 시스템 대(對) 전체 시스템에 매몰되기를 거부하는 개인 사이의 싸움이다. 시스템을 지키려는 자와, 시스템을 거부하고 무너뜨리려는 자들 사이의 한판 대결이다.
이 싸움에서 주인공 네오는 오라클(Oracle, 신탁/계시)이라는 선지자와 모피어스가 찾고 있던 바로 ‘그 한 사람’(the One), 즉 구원자임이 밝혀진다. 그는 시스템을 수호하려는 ‘스미스’와 한 판 승부를 하다가 죽게 되지만, 다시 살아난다. 부활한 네오는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고 스미스와의 대결에서 이기고, 시온을 지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오는 매트릭스의 가상 공간으로 침투하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영화 앞부분에서 모피어스가 했던 똑같은 말을 한다. 이제 그는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되어 모피어스처럼 가상 현실 속에 갇혀 건전지가 되어 살아가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는 것으로 1편 영화는 끝난다.
4. 가상 현실이 지배하는 현재 대한민국
영화 매트릭스는 가장 강력한 현실 고발 영화다. 이보다 더 강력한 고발은 없다. 이 영화는 우리를 향해 말한다. “너희들은 속고 있어. 너희들이 지금 보고 듣는 모든 정보는 다 가짜야. 그것들은 이 전체 시스템, 즉 이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짜 현실이야. 너희는 지금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환상이야. 너는 전체 시스템 속에서 더 이상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야. 너는 인격도 없는 소모품에 불과해. 만약 너희가 그 환상에서 깨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시스템은 너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걸. 너를 죽이려고 달려들어 너는 결국 죽게 될 거야. 그래도 너는 이 빨간 약을 먹을 용기가 있을까?”
2019년 대한민국도 가상 현실이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진영이 있다. 예를 들어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진영과 그를 수호하는 진영이 있었다. 마치 시온 대(對) 제로원의 대결과 같다. 서로 다른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이 가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고, 어느 쪽이 현실을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양쪽의 세계관이 다 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참이다.
지난 2019년 10월 3일과 9일에 모여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 구속,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한 사람들은 빨간 약을 먹은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언론의 가짜 뉴스가 만들어낸 거짓 현실이 실제 현실인 줄로 알고 탄핵에 찬성하고,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을 찍었던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은 네오와 같이 이제 더 이상 거짓에 속지 않고, 이제 적극적으로 시스템과 맞서 싸운다. 이런 현상은 조국 수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상 현실 속에서 사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서 싸우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면서 우리에게 가상의 현실을 제공하고 스스로 파란 약을 선택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매트릭스는 무엇일까? 언론 기관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가짜 뉴스를 남발하게 하고, 그 거짓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게 하고, 끝내 전체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우리 시대의 매트릭스는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매트릭스는 바로 전체주의 이념이다. 그것이 계속해서 두뇌를 세뇌하고, 거짓을 보여주어도 사람들이 거짓을 거짓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영화에서 시스템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를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매트릭스란 영화는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전지전능하다. 전체주의 국가는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처’(공수처) 같은 기관을 비롯하여 각종 정보기관을 총동원해서 국가 전체를 감시하고 모든 정보를 독점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국가는 국민의 의식주를 비롯하여 국민의 삶 전체를 책임진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점점 더 취업이 힘들어지는 이 세상에서 미래는 갈수록 더 불투명하고 불안정하고, 불안하다. 그러나 이 팍팍하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 속에서 국가는 구원자가 되어 나를 책임지고 구원한다. 2017년 7월에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 목표 중 3번이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였다. 너무나 매력적인 국정 목표다.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좌파 전체주의를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사회주의가 나에게 미래에 대한 염려가 없는 삶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심지어 나의 자유조차 포기하고, 국가가 절대적 권력을 갖는 대신, 국가가 나에게 내 생존과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제공해준다면, 사회주의도 매력적인 옵션이 된다. 국가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준다. 여행 가다가 사고가 나서 죽어도 국가가 책임져주고, 다 보상해준다. 그런 점에서 국가는 만능이어야 하고, 국가의 권력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국가는 나의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당연히 나의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나에게 더 이상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마 6:34)”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주의 이념이 제공하는 장밋빛 환상에 취해 가상 현실에 빠져든다.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 전체 시스템을 지탱해주는 한 개의 건전지가 되어 사는 것도 괜찮다고 판단하고, 기꺼이 파란 약을 먹는다. 문재인 지지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도 이제 설명이 된다. 문재인이라는 대통령은 단순한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국가는 매트릭스의 나라다.
5. 교회는 시온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 기독교의 개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중 시스템에 반대하는 자유인들의 기지가 시온이라는 점은 우리의 주목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모임인 교회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좌파 전체주의에 맞서는 시온성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아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파란 약을 먹은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 이유는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6:13의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서 재물은 헬라어로 읽으면 ‘맘모나스’다. 여기에서 ‘맘모니즘’(Mommonism)이란 말이 유래한다. 맘모니즘을 ‘배금주의’(拜金主義)라고 번역하고 많은 사람들이 배금주의는 곧 자본주의라고 가르쳤다.
이 해석이 맞는 것일까? 틀렸다. 자본주의보다 더 심각한 배금주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다. 사회주의는 국가가 매일, 매주, 매달,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무조건 나를 100% 취직시켜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살 집을 내가 장만하지 않아도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이 갖고 있는 ‘배금주의’를 자극하는 것이 있을까? 국가가 나에게 주는 돈을 받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회주의야말로 진정한 맘모니즘이다. 자본주의는 내 인생에 필요한 것을 내가 일해서 벌어서,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배금주의라면, 사회주의는 몇 배 이상 더 강력한 배금주의다. 돈의 노예로 만들고도 ‘너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며 파란 약을 먹인다. 그러나 반대로 자본주의는 ‘인생은 원래 힘든 거야. 그래도 너는 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야 해’라며 빨간 약을 먹인다.
더 나아가 국가가 나를 구원하는 구원자(Savior)가 되므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우상 숭배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왜 최고 지도자가 우상화되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 밥을 주므로 ‘나의 아버지’가 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는 개다. 그런데도 배금주의는 자본주의이고, ‘사회주의가 답’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우상 숭배는 자본주의가 아니고, 국가를 구원자로 숭배하는 좌파 전체주의 이념인 사회주의다.
2019년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은 깨어나고 있다. 파란 약을 거부하고 빨간 약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피어스처럼 또 다른 네오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상의 현실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알려주고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문재인의 국정 목표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네오처럼 거짓에 대해서는 죽고, 진실에 대해 다시 살아난 전사(戰士)들이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잘못된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제대로 된 기독교적 세계관을 모두가 갖게 될 때까지, 영화 마지막의 네오의 모습처럼 ‘선지자’가 되어 또 한 사람을 정치적으로 개종시켜야 한다.
<paulstudy@naver.com>
글 | 김철홍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대학원(M.Div.)과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New York)에서 S.T.M. in Ecumenics을, 미국 퓰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현재 장로회신대학교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