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구원을 위한 크리스천 청년의 정치의식
2019-11-24영혼 구원을 위한 크리스천 청년의 정치의식
월드뷰 11 NOVEM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 VIEW 1 |
글/ 유중원(한동대 트루스포럼 회원)
한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지난 9월 22일 주일 저녁 6시, 서울 망원역 인근에 자리한 뉴웨이(New Way)교회의 성전이전 감사 예배에 참석해 은혜의 시간을 가졌다. 뉴웨이 교회는 3년 전 홍대 입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 교회의 개척은 이전 세대의 신앙을 유업으로 이어받아 현세대와 다가오는 세대를 품고 나아가 열방을 품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뤄졌다. 감사 예배에 축사를 위해 참석하신 여러 귀한 선교사님과 목사님들께서 말씀 선포를 하시는 내내, 성전을 메운 교회 성도님과 내빈들은 가장 큰 소리로 “아멘” 하며 믿음을 고백했고 마지막으로 조승현 담임 목사님의 감사 인사 및 축도를 받고 돌아왔다. 무엇보다 이날의 깊은 찬양 속 성령님의 임재와 선포되는 말씀들 가운데, 일관되게 주님을 향한 큰 감격과 함께 개인적 회개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찔림’으로 다가왔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스스로의 예배와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질문을 드렸다. “하나님,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날 저녁 목사님들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고백하건대 그것은 ‘잃어버린 한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사실 주변의 이웃뿐 아니라 또 다른 관점에서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은 《탕부 하나님》이란 책에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모두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틀렸으나 모든 사람이 사랑받는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불러 그 사실을 인식하게 해서 변화시킨다. (중략) 예수님은 ‘겸손한 사람들이 실세이고 교만한 사람들은 퇴물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별로 선하지 못하거나 마음이 넓지 못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쪽으로 간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자신에게 은혜가 필요함을 아는 게 선결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이대로 괜찮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가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중략) 겸손한 자들을 돌보시며 교만한 자들을 멀리하신다.”
앞서 나눈 뉴웨이 교회 이야기와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 기독교의 구원은 무엇일까? 지난날 주를 멀리 떠났다 돌아온 둘째 아들의 (회심의) ‘경험’만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는 첫째 아들의 ‘도덕’ 또는 ‘도덕주의’로도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결국 두 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나 또한 ‘두 아들’의 상태로부터 늘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랑의 친교를 누리면서도 반드시 그분께 ‘의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비록 두 아들이 모두 틀렸지만 ‘모두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으로’ 저 천국,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곳에 가길 다시금 소망한다.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루스포럼>의 개인적 의미
앞서 언급한 영혼 구원의 관점에서 나에게는 ‘기독교 보수주의’와 <트루스포럼>이 필요하다. 이 둘이 내가 진리로 믿는 기독교의 구원 구성 요건(elements)은 아니다. 다만, 영혼 구원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한 도구들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기독교 보수주의’란 무엇일까? 우선 기독교(Christianity)는 ‘진리(The Truth)’이고 보수주의(Conservatism)는 ‘태도(Attitude)’이다. 여기서 태도란, 자격 없는 자가 누리는 구원의 약속과 그렇게 건짐 받은 삶에 대한 ‘감사(Gratitude)’이다. 따라서 ‘기독교 보수주의’를 다시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기독교는 진리이고 보수주의는 태도이며 그것은 곧 감사이다.’ 본질적으로 같은 얘기를 역으로 표현하면 기독교 보수주의자에게 감사의 핵심은 ‘구원’이다. 따라서 구원의 반응은 감사이고 감사의 표현은 찬송이 된다. 그리고 찬송과 예배는 개인의 기도와 노래뿐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보수주의 청년 단체 <트루스포럼>에 동참하면서 진리를 ‘보전(Conserve)’함과 동시에 교회와 나라의 무너진 곳을 ‘보수(Restore)’하는 일꾼이 되고 싶다.
1) 하나님을 배우는 곳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균형을 잃은 채, 인간의 한계와 세상에 늘 존재하는 죄와 각종 결핍을 잘못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면 교만하여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늘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분별의 지혜와 회개의 영이 필요하다. 한 번은 동성애 이슈에 대해 <트루스포럼>의 한 청년 회원께서 “난 기독교인으로서 퀴어 축제를 반대하긴 하지만 동성애라는 이슈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죄를 돌아보게 하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스스로의 영적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감사했던 이유는 이곳이 단순히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모임만이 아니라 나의 신앙과 태도를 수시로 점검해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목사이자 복음 전하는 음악가인 트래비스 그린(Travis Green) 목사님은 미국의 리버티 대학교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먼저 자유롭게 하신 것은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설교를 통해 나는 복음적인 크리스천이라면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해서도 응당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복음 전도를 세상에서 바르게 실천하기 위해 진리의 가치(무게), 국가의 정체(政體), 종교의 자유의 중요성 등을 학습하고 토론하는 <트루스포럼>은 내가 꼭 속하고 싶은 준거 집단 중 하나가 되었다.
2)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
<트루스포럼>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들을 내가 이해하는 대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1)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선배 세대에게 감사함; (2) 단순한 군사 동맹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 및 기독교 전통 등의 가치 동맹으로써 굳건한 한·미동맹을 지지; (3)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통일의 결과로 북한 주민의 해방을 추구(촉구); (4) 법치주의(적법 절차)의 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의 부당성을 인식; (5) 개인의 종교는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대-기독교적 가치관을 존중.
<트루스포럼>은 진리를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하나의 플랫폼(Platform)이다. 대학생, 대학원생 및 직업인 등으로 이루어진 이곳 청년 구성원들의 배경, 관심사, 은사와 재능, 또 소명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특성상 이곳은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한다. 즉, 모여서는 여러 지식을 배우고,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며, 또 흩어져서는 각자의 영역 안에서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 회원들은 기본적으로 <트루스포럼>의 5대 가치에 동의하면서도 서로 다른 관심사나 신념 등에 따른 개인의 의사를 철저히 존중한다. 이렇게 진리 안에서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트루스포럼>은 인물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적’ 모임을 지향하며 그렇게 동행하고 있다.
3) 다음 세대를 섬기며 준비시킬 청년 모임
<트루스포럼>은 진실에 기반한 학습과 건강한 토론을 지향하는 젊은 보수주의 싱크-탱크(Think-tank)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트루스포럼>은 이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올바른 가치관을 분별하고 세워나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는 사회 전 영역에서 국가와 교회 해체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세력이 있다. 이런 사람과 조직은 앞으로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구조적인 현실적 위협임에 틀림 없다. 심지어 이러한 위협은 ‘복음주의’의 이름으로 본 모습을 감춘 채 교회 안팎에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속이며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지금 준비되고 있는 기독 청소년 및 청년 세대가 있다. 일례로 지난 8월에 하와이에서 <트루스포럼> 리더십 트레이닝이 있었는데, 2030세대가 주로 참석한 이 리더십 콘퍼런스에서 청년 참가자들은 “기독교 보수주의자로서 기존의 가치를 재공유하고 새로운 지식과 행동 전략 등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본 지(월드뷰) 8월 호에 실린 ‘복음한국’ 운동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 전수 사역 및 교육의 새 희망을 볼 수 있었고, 9월 호에는 2030세대에 대한 다양한 전문가의 견해와 목회 현장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교회 학교가 위기라고 하지만 <예수전도단> (YWAM)의 ‘워드 바이 하트(Word by Heart)’ 세미나, <KAM선교회>의 ‘다니엘 키즈 캠프(Daniel Kids Camp)’, 및 <에스더기도운동>의 청소년 ‘지저스 아미 캠프(Jesus Army Camp)’ 등 교회와 선교 단체 등을 통한 말씀과 예배 중심의 신앙 전수 운동은 지난 7, 8월에도 뜨거웠다.
물론 이러한 조직이나 사람들을 교회나 사회 내 다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깨어나고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와 이 세대 안의 변화들이 엄연한 영적 세계의 진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나는 <트루스포럼>에서 배우고 준비하는 일들을 토대로 다가오는 이 거룩하고 위대한 세대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섬기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
4) 다시 찾은 소명(Vocation)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트루스포럼>을 통해 새로운 직업적 소명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먼저, ‘기독교 교육’의 영역이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보다 나의 교회학교 ‘교사 됨’을 기뻐했다면, 앞으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다음 세대를 섬기고 ‘길러내는 일’을 준비하고 싶다. 받은 신앙을 전수하는 이 일은 기독교인으로서 피해 갈 수 없는 사명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로 하늘색 ‘한반도 기’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영적 근심 때문에 잠시 포기했던 ‘북한 선교’의 영역이다. 나는 한때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면서 ‘한반도 기’를 높이 들었다. 그러나 비록 순수한 의도였다 해도 나의 지적 무지와 영적 게으름이 낳은 행동이 실제 북한 주민의 억압된 삶을 오히려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맹목적 통일’이나 정치적 용어(Political Jargon)로 오·남용되기 쉬운 ‘평화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정베드로 목사님의 표현대로 북한 주민을 위한 ‘복음적 인권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가올 ‘북한해방’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민족주의적 개념의 ‘감상적 통일론’의 영향 아래 있다. 특히 일부 감상적 통일론자들의 끊임없는 억지 주장과 각종 언론을 통한 세뇌는 선량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이것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는 이 감상적 통일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국제 사회가 인정한 인륜에 반하는 전체주의(2014 UN COI 보고서) 세습 독재 체제가 한 국가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기형적 사고에 기반한 ‘연방제 통일’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해방에 대해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더욱 차갑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특히 청년이라면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할 때 방법론에 대한 여러 주도권 다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특별히 <그안에진리교회> 이태희 목사님의 말씀처럼 진정한 복음 통일은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체제, 즉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정치 체제’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음을 알고,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그것이 이뤄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기도하건대, 19세기 영국의 노예 해방 운동에 공헌한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와 같은 청년들이 이 세대 안에 대한민국에서 분연히 일어날 것을 기도한다. 한 명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지만 북한 주민의 해방을 위해 헌신할 수많은 대한민국의 윌버포스들이 보편적 인권과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인과 연대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 일이 이뤄지길 믿음으로 기도한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월 1일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 홀에서 열린 <트루스포럼> 주최의 ‘리멤버 NK’(큐리오스 인터내셔널 후원) 행사는 지금도 억압받고 있는 북한의 주민에 해방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5) 기독교 보수주의와 세속적 보수주의의 구분, 예수 그리스도
마지막으로 유념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 보수주의’에서 항상 그 무게의 중심은 보수주의가 아닌 ‘기독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경계선이 존재한다. 이 경계를 가르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과연 세속적 보수주의자가 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가, 아니면 영혼 구원의 목적을 위해 보수주의를 도구 삼고 있는가?’ 그런 면에서,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 목사님이 《기독교인 선언(Christian Manifesto)》에서 “세속적 보수주의는 세속적 인본주의보다도 나은 것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 항상 우리를 따라다녀야 한다. 즉, 그것이 우리를 늘 긴장 시켜야 한다.
앞으로 정기 포럼 및 UN 북한 인권 보고서(2014년 COI 보고서) 스터디를 포함하여 <트루스포럼>의 5대 가치에 입각한 다방면의 학습 활동 및 행사 참여를 통해 더 배우며 준비하고 싶다. 글을 마치며, 나에게 먼저 부어져야 할 회개의 영, 하나님의 권위를 세상 속에서 지키려는 용기, 지난 10월 3일 시청 앞 집회에서 트루스포럼 김은구 대표가 촉구한 한국 교회의 도를 넘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성과 회개, 북한 주민의 해방, 그리고 특별히 현재 가장 시급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재건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joongwonyu@gmail.com>
글 | 유중원
경희대학교 호텔경영학과에서 학부를 마친 후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는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한동대 트루스포럼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