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본 이슬람
2019-08-22기독교에서 본 이슬람
월드뷰 08 AUGUST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9 |
글/ 이만석(한국이란인교회 목사, 무슬림선교훈련원장)
들어가는 말
세계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이슬람 문제는 이제 기독교인의 관점으로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그 찬란한 문명과 과학과 경제와 인권과 복지와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갖추고 살던 유럽이 이슬람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실을 보아왔다. 이를 통해 기독교인들이 이제라도 이슬람의 실체를 정확히 분별하고 대처해야 하겠다는 절박성과 당위성을 가지고 이 글을 시작한다.
세계는 이제 자신의 문화만을 고집하던 옛 고정 관념을 버리고,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인종과 국적과 종교와 언어와 피부색과 사상과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다문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개한 사람들에 대한 깨인 사람들의 의무요,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풍요한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서방 세계에서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서방 세계가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추진하던 다문화 정책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소위 유럽의 강대국에서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문화 정책의 목표나 철학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보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 등 유럽의 강대국 지도자들 조차도 ‘이슬람’이라는 특수한 문화의 부작용이 다문화 정책 실패의 원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우선은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슬람과 무슬림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다. 이는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에는 ‘타끼야(Taqiya)’라는 특수한 교리가 있다. 이는 위험할 때는 거짓말이 허용되는 교리다. 이 교리가 발전되어 이슬람, 꾸란, 무함마드, 알라를 위해서 또는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위해서 필요할 때는 거짓말이 허용되는 쪽으로 활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슬람에 유익이 된다면 교수가 학생들을 속이기도 하며, 방송에 나와서 시청자들을 속이기도 하며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미화 시켜 거짓으로 번역하여 이슬람을 따르는 신자들을 속이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슬람은 종교라기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교육, 군사, 외교, 법률 등을 망라한 총체적인 시스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혹자는 이슬람(Islam)을 쌀람(Salam), 즉 평화라는 단어에 뿌리를 가지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복종이라는 뜻으로 평화와는 무관하며 이는 전형적인 타끼야 중의 하나이다.
이슬람은 묻지도 말고, 의심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며 무슬림이란 그렇게 복종하는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정체는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무슬림들은 그런 시스템에 속고 있는 불쌍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미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 자신들이 속고 있음을 알려 줘서 그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일깨워줘야 할 것이다.
이슬람의 신(神) 알라
어떤 무슬림 학자들은 알라는 신(神)이라는 보통명사로서 알라신이라는 말은, 신이라는 단어를 중복 사용하고 있으므로 마치 해변가, 혹은 초가집 등과 같이 잘못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전형적인 타끼야다. 알라는 아랍인들이 섬기던 신의 고유명사이다. 이는 이슬람의 신앙 고백에서 확실하게 구분된다.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으며…” 라는 말은 아랍어로 La(없다) Ilah(신) Ila(외에는) Allah(알라) 즉 알라 외에는 일라(신)가 없다는 말이다. 즉 알라(Allah)는 이슬람의 신의 고유명사이고 일라(Ilah)는 신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여호와 외에는 신이 없다고 한다. 여호와나 알라는 신들의 고유명사이며 이를 혼동하는 것은 제1계명을 어기는 범죄 행위라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
이슬람에서는 기독교, 유대인들의 성경은 원본을 분실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변질되어 신뢰할 수 없는 경전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하늘에 있는 원본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무함마드가 아랍어로 계시 받은 것이며 이는 일점일획도 변질됨이 없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유일한 경전이기 때문에 변질을 막기 위해서 번역이 금지된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꾸란이야말로 원본이 없는 책이다. 지금 지구상에 현존하는 아랍어 꾸란이 20 종류가 넘으며 아랍어 꾸란의 고대 사본들, 즉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사본, 터키 이스탄불의 톱카프 사본, 예멘의 사나 사본, 이집트의 후세이니 사본 등은 서로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접근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슬람 교리의 기본 정신
이슬람 교리의 기본 정신은 알왈라 왈바라(Al Wala Wal Bara)라는 것으로 구글에서 이를 검색해 보면 수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책들을 쓴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알와라’라는 것은 무슬림들끼리는 인종, 국적, 언어, 문화 등을 초월하여 서로 돕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며 ‘왈바라’는 비 무슬림들은 절대로 돕지도 말고 보호하거나 사랑하지도 말고 철저히 증오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슬람 율법(샤리아)의 기본이다. 무슨 종교가 증오를 가르치느냐고 하겠지만 그 책들 중 하나를 읽어 보니 “알라는 불신자를 증오하시니까(꾸란 60:1-4) 신실한 무슬림들은 비 무슬림들을 증오함으로 알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이슬람의 기본 정신 때문에 타 문화권에서 무슬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슬람의 세계관
이슬람의 세계관은 세상을 이슬람을 따르는 평화의 집(Dar es Salam)과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전쟁의 집(Dar al Harb)으로 나눈다. 그러므로 이슬람 외의 종교를 따르거나 아무 종교가 없는 자들과는 항상 전쟁 상태라는 것을 가르친다. 전쟁에서 적군을 속이는 것은 작전의 일환이며 적군을 죽이는 것은 칭찬받을 행동이며 많은 적을 죽일수록 훌륭한 장군으로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이슬람권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범이 존경받는 것이다.
영을 분별하라
이슬람에는 앞에서 언급한 타끼야(Taqiya)라는 편리한 교리가 있어서 수시로 말을 바꾸며 이슬람을 미화시켜 속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슬람의 영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영이다. 이것을 같은 신이라고 하는 것은 타끼야(Taqiya)이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 이는 성경과 꾸란을 비교해보면 자명해진다.
첫째,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할 수 없다(고전 12:3)”는 성경 말씀과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는 저주받을 불신자(꾸란 5:17)”라는 꾸란의 내용은 같은 신의 계시로 볼 수 없으며 정반대의 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가 성령이라면 다른 하나는 악령으로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성경의 하나님은 예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인류의 죄를 씻어주시고 이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꾸란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은 유대인이 만든 거짓말이라(꾸란 4:157)”고 하니 이는 인류 구원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악한 영의 역사임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 아들이 있다는 자들에게는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갈라지고 산들이 무너지는 재앙이 임한다고 하니(꾸란 19:88-91)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요일 2:22)라고 하는 성경 말씀을 볼 때 이슬람의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맺는 말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이 더 많은데 왜 극단적인 무슬림들을 기준으로 이슬람을 악평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꾸란은 평화를 가르치지 않으며 생명과 재산을 바쳐 비 무슬림들과 싸우는 자들만이 진정한 무슬림이라(꾸란 49:15)고 정의하고 있다. 비 무슬림들과의 전쟁은 무슬림들의 의무이고(꾸란 2:216 –한글 꾸란은 ‘의무’를 ‘허락되었다’라고 의도적 오역을 하고 있다), 싸우기 싫어하는 자는 위선자이며(꾸란 3:167), 이런 자들은 지옥의 형벌로 경고하고 있다(꾸란 4:145).
그러므로 우리가 이슬람의 영의 정체를 밝혀주고 분별해야 하겠지만 그 영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요 사랑의 대상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그것이 진리라고 배웠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배운 것을 충실히 함으로 비 무슬림들을 증오하고 공격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절대로 미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야 한다. 성경적 사랑과 섬김과 말씀과 기도로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고 눈에 비늘을 벗겨 주어 그들도 회개하고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이 되어 함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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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만석
서울 장신대학교, 장로회 신학대학원 졸업 후 미국 그레이스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 4월부터, 2005년 12월 말까지 예장(통합) 세계선교부 소속 이란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였다. 귀국 후 한국이란인교회를 설립하여 담임하고 있으며, 전 세계를 다니며 이란에서의 경험과 이슬람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