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허무는 사람들

2019-03-10 0 By worldview

/수필/

담을 허무는 사람들

 

월드뷰 03 MARCH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VIEW 1

 

최충희/ 작가

 

처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이야기입니다. 거의 120년 전인 1893년의 이야기인데요. 무어 선교사님이 지금의 조흥은행 본점과 롯데호텔 중간 지점에 작은 한옥을 빌려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 이름은 곤당골교회. 이 교회는 한국에 여섯 번 째 세워진 교회였는데 20여 명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불신자 청년 한 사람이 곤당골교회에 나왔습니다. 이 청년이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례까지 받게 되었지요. 그런데 청년의 신분이 교회에 알려지자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청년이 백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백정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정도로 비천한 신분이었고 호적도 없는 때였습니다.

곤당골교회에는 이 주사, 신 주사라는 관리 몇 사람이 교인으로 있었는데 이들이 백정과 같이 교회에 다닐 수 없다고 무어 목사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제안하기를 양반은 앞자리에 백정은 뒷자리에 앉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어 목사님은 이런 제안을 모두 거절했지요. 이 일로 인해 이십여 명의 교인들 중 열다섯 명이 교회를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나간 그들은 따로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가 한국 교회의 7번째 교회인 홍문섯골교회입니다.  홍문섯골교회는, 양반 관리들이 주축으로 모여,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고 사람을 차별하는 교회라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설교할 사람을 찾지 못해 홍문섯골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오직 언더우드 선교사만이 홍문섯골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곤당골교회의 청년 백정 박성춘은 교회와 목사님이 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이 죄송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사람대접 해주는 무어 목사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더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했습니다. 청년 백정 박성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곤당골교회로 나오게 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백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곤당골교회는 백정 교회라고 불려지게 되었지요. 교회가 갈라 진지 3년이 지난 후에 곤당골교회에 불이 났습니다. 곤당골교회가 다시 교회를 재건하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그동안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연단을 받은 홍문섯골교회가 교회를 짓지 말고 우리와 합치자고 제안 해왔습니다. 이 일로 결국은 두 교회가 다시 합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 시작한 교회가 바로 승동교회(현재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입니다.

어느 날, 승동교회에 왕손인 이재형이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백정들이 한 부분을, 왕손과 이주사, 신주사 등 관리들이 한 부분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장로 선출이 있었는데 백정 출신 박성춘이 장로에 피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왕손 이재형도 장로에 피택이 되어 백정 출신 장로와 왕손 출신 장로가 한 테이블에 앉아 교회를 위해 지혜를 모으고 기도하며 아름답게 교회를 섬겨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정 출신 박성춘 장로의 아들이 지금은 세브란스 의대인 제중원을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몇 해전 TV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이 바로 백정 출신 박성춘 장로의 아들로, 실제 인물입니다.

초창기 한국교회가 어떻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간증입니다. 저는 이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의 모든 담을 허무신 예수님의 위대하심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당시 이스라엘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어린아이, 상전과 종, 종파 간에 높은 담들이 강력하게 가로 놓여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은 철옹성같이 완강했습니다. 그런데 그 높고 높은 담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전에 멀리 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화평이신 예수께서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담이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가운데 놓여있는 사람 사이의 담.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한 담.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이 높고도 높은 담을 단번에 허무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들도 화평케 하는 자요,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애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 많아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무신 담을 혹여 우리가 다시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고 두렵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차별이 있고 파벌이 있고 분쟁이 있다면 분명 우리들은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혹 그 원인이 허물지 않은 내 안의 편견과 고집이 쌓은 높은 담들로 인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화해와 평화를 원하지만 결코 온전한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이기적인 이해관계와 인간의 악한 죄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만큼은 ‘진리와 사랑이신 주 안에서 하나 됨’을 지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너와 내가 하나 됨을 애쓸 때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마치 초대교회 백정들이 모인 곤당골교회와 왕족 관료들이 모인 홍문섯골교회가 막힌 담을 헐고 승동 교회로 하나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교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사랑과 거룩함으로 하나 되어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도와주시기를 간구 드립니다. 내 안에 있는 담을 먼저 허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교회도 시시로 막힌 담이 있는가 돌아보고, 작은 담이라도 쌓여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내가 그 담을 허무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담을 쌓는 자가 아니라 허무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담을 허무신 예수님! 값없이 차별 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하늘 아버지! 우리는 모두 그 안에서 한 백성이요 한 자녀입니다.  담을 허무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담을 허무는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2:13-16).”

<choi.choonghee@gmail.com>

 

최충희 | 미국 세인트루이스 한인장로교회에서 사모로 섬기던 중 2000년 미주 교양지 <광야>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지에 <너, 하나님의 사람아!> 와 <일분 묵상>을 연재했으며 해외기독문학 회원으로 다수의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하트 앤 서울 미주 복음방송에서 <최충희 칼럼>과 <성경 속 인물 산책>을 진행했다. 저서로 <희망 온 에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