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편집 아기”의 신학적, 윤리적 문제점들
2019-01-04“유전자 편집 아기”의 신학적, 윤리적 문제점들
월드뷰 01 JANUARY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2 |
이상원/ 총신대 교수
C.S. Lewis는 그의 공상과학소설 『페렐란드라』에서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에 도취 되어 있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현대인은 우주선을 쏘아 올려 우주 공간을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내면은 동물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예리하게 비평한 바가 있다. 최근에 발표되어 논란을 빚고 있는 한 과학자의 “유전자 편집 아기” 임상 실험 성공발표에서도 이 같은 루이스의 비평이 시의적절한 것임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11월 26일에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 소속으로 알려져 있는 허젠쿠이가 일곱 커플의 배아들에 대하여 최신 유전자 편집기술인 크리스퍼(CRISPR/CAS9)기술을 적용하여 배아로부터 에이즈 감염을 일으키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의 수용체인 CCR5 유전자를 제거한 후에 이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아이를 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출생된 아이와 부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출생된 아이의 상태나 생사문제 등 모든 것을 비밀에 붙이고 있는 데다가 중국 당국이 서둘러 비밀통제에 나서고 있어서 더 이상의 상황 파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알려진 바로는 허젠쿠이는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라 6개 법인의 대표이며 7개 회사의 주주인 동시에 5개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인이어서 이번 실험발표가 산업이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으로 볼 때 허젠쿠이의 실험은 생명파괴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배아를 대상으로 하여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유전자치료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에이즈에 대한 대응과 치료를 유전자조작을 통하여 시도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면 허젠쿠이의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시도는 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창세기3:24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아내신 다음에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룹”이라든가, “불”이라든가, “칼”과 같은 장치들은 죄에 대하여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하나님이 이 같은 장치들을 동원하여 차단시키셨다는 말은 인간의 생명에 관련한 어떤 부분은 인간이 손대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설정하셨다는 뜻이며, 만일 인간이 이 영역에 자의적으로 손을 대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인류 문명 전체가 이 영역에 손을 대면 인류 문명 그 자체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함의한다. 인간이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인간 생명의 영역으로서는 첫째로, 인간 생명의 창조과정의 일정 부분이고, 둘째로, 영생의 영역이다. 유전자 편집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첫 번째 과정 곧 인간 생명의 창조과정이다.
인간 생명의 창조과정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참여를 허락하신 부분은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 안에서의 성관계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성관계를 통하여 여성의 자궁 안에 정자를 사출 되어 수정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의 과정은 그 성격상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질서의 메카니즘에 맡기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규범적인 바른 길이다.
인간생식의 과정에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이다. 인공수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체내수정이고 다른 하나는 체외수정이다. 체내수정은 남성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정자가 난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할 때, 정자로 하여금 난자가 있는 곳까지 이르는 것을 도와주는 기술이다. 체내수정은 남성에게 어떤 의료적인 문제가 있어서 정자를 힘있게 사출하는 것이 어려운 것을 도와 주는 기술로서, 수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개입하는 치료적인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수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개입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체외수정은 이른바 시험관수정(ivf, in vitro fertilization)이라고 불리우는 기술로서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 넣어 인위적으로 수정시킨 다음 착상시키는 방법이다. 허젠쿠이의 실험은 시험관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오늘날에는 시험관수정이 아무런 윤리적인 문제가 없는 시술인 것처럼 소개되어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기독교윤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면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비윤리적인 기술이다. 그 근거는 이 기술이 수정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인 동시에 배아 살해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가 자연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는 수억 마리 이상의 정자들이 치열한 경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건강성이 검증된 한 두 마리의 정자가 난자와 만나도록 되어 있는데, 시험관수정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된다. 이로 인하여 건강하지 못한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늘어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험관수정의 낮은 성공률 때문에 많은 배아들의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시험관수정은 다수의 인간 배아를 파괴하고 – 이것은 곧 살인행위다 – 하나의 배아를 얻는 엽기적인 시술이다. 시험관수정의 발달과정을 보면 수많은 배아 파괴와 배아 남용 그리고 비윤리적인 배아 실험 등을 거쳐서 이루어져 왔고, 이 같은 비윤리적인 과정은 오늘날의 시험관수정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허젠쿠이는 시험관수정 그 자체는 문제가 없는 시술인 것을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나 이는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허젠쿠이가 시도한 유전자치료다. 허젠쿠이가 시행한 것처럼 유전자치료는 병든 유전자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건강한 유전자를 삽입하여 유전자 차원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기법이다. 질병을 치료하여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작업은 – 병든 유전자를 치료하는 것을 포함하여 – 넓은 의미의 인간구원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치료는 몇 가지 전제 조건하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첫째로, 유전자치료 기술은 열성 유전자를 우성 유전자로 치환하여 더 나은 인종을 만들고자 시도하는 우생학적 시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20세기 초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하여 주도되었고, 나찌 정권이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시행했던 우생학 정책은 인종차별과 학살의 주범이 되었다.
둘째로, 유전자치료는 생식세포치료와 체세포치료로 나누어진다. 생식세포치료는 배아 치료를 의미하며 체세포치료는 성인의 체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를 의미한다. 문제는 유전자치료가 매우 높은 실패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있다. 체세포치료의 경우에는 치료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실패의 후유증이 인체의 일부에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대물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통상적인 치료방법이 한계에 이르러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체세포치료를 시도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식세포치료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허젠쿠이가 시도한 것이 바로 생식세포치료다. 생식세포치료의 경우에 치료에 실패하면 바로 배아 살해로 이어지게 되며, 배아 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전자 기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극히 희박한 경우에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이상과 변이가 나타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허젠쿠이는 일곱 명의 커플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여 한 두 건에 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는데, 이 말은 이 한 두 건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에는 실패했다는 뜻이며, 이는 곧 배아 살해가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출산에 성공한 경우도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 오고 있다. 난치병은 30억 개 가량 되는 DNA의 염기들 가운데 몇억 개 정도의 염기가 잘못되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단 한 개의 염기서열이 잘못되면 찾아오는 것이다. 그만큼 DNA의 염기 배열은 극히 정교하고 민감한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정교한 기구를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이렇게 정교하고 민감한 염기 배열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극히 위험한 작업이다. 생식세포치료는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기독교생명윤리에서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바, 이 금기를 허젠쿠이가 함부로 건드린 것이다. 허젠쿠이의 과학자로서 업적에 대한 욕심과 산업이익이 이런 무리수를 감행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에이즈 질환을 유전자조작의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런 시도는 터진 댐을 손으로 막으려는 매우 무모한 시도다. 에이즈는 사회적으로는 주로 남성 동성애자들의 무절제한 성교를 통하여 확산되고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성관계에 대한 범사회적인 제재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전염성 질병은 사회적 공익을 위하여 공개해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서 에이즈 환자들을 공개하여 성적 접촉을 차단하며,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전통적인 약제들을 개발하는 등의 근원적인 해결책은 방치한 채, 극히 위험한 부작용을 수반하며 대중화도 불가능한 유전자조작을 통하여 에이즈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발상이다.
하나님이 명시적으로 허락하신 결혼 관계 안에서의 자연적인 성교를 넘어서서 인간생명창조에 과학기술을 남용하여 무분별하게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죄이며, 그 엄중하고 무서운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현대의 유물론적인 과학계를 향하여 분명하게 경고하고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swlee7739@hanmail.net)
글/ 이상원 (총신대학교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에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M.)와 네덜란드 캄펜신학대학교(Th.D.)를 졸업했다. 미국 보스톤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와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