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2019-01-04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월드뷰 01 JANUARY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5 |
이상원/ 총신대 교수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본문의 “우리”는 좁게는 바울과 아볼로 등을 뜻하지만, 넓게는 모든 신자들을 가리킨다. 신자들은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다. 본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들의 조건을 제시한다. 어떤 영역에서 일하든지 기초가 되는 전제조건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즉 비밀이 사역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 비밀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한다. 구원의 계획이 왜 비밀인가? 바울이 서신을 쓸 당시는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막 전환되는 시대였는데, 이 시기까지는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상징의 형태로 가리워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물제사다. 동물제사는 십자가사건을 상징적으로 예표 한다. 신약 시대에는 구원계획이 완전히 드러나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어떤 사역을 하든지 중심 속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구원의 복음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다. 그것이 흔들리거나 불분명하면 사역자가 될 수 없다. 구원의 계획 혹은 복음은 하나님 나라 사역자들이 갖추어야 할 전제요 핵심이요 근간이다.
본문은 구원의 계획을 마음에 품은 하나님의 나라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한다. 첫 번째 마음가짐은 “일꾼”에 나타나 있고, 두 번째 마음가짐은 “맡은 자”에, 세 번째 마음가짐은 “충성”에 나타나 있다.
먼저 “일꾼”은 헬라어로 휘페르타스인데, 허드렛일을 하는 조수를 말한다. 군대로 치면 하사관이나 보좌관, 의료계에서는 인턴이나 레지던트, 변호사로 치면 사무장 등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궂은 일은 도맡아 하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자기 이름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빛나는 사람은 장교, 변호사, 의사다. 시사점은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하는 궂은 일을 하지만 우리는 묻히고 주님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거푸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건물이 세워진 다음에 거푸집은 떼어내고 건물만 드러나야 한다. 거푸집이 계속하여 남아 있으면 흉물이 된다. 우리도 주를 위한 사역을 할 때 궂은 일들을 하지만, 다 하고 난 뒤에는 우리는 과감하게 빠지고 주님의 이름만이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 “맡은 자”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로서, 저택 경영인이라는 뜻이다. 바울 당시의 귀족 집안에서는 주인이 가정 사무를 직접 관장하지 않고, 하인 중에 지혜로운 자를 선택해서 가정 경제 운영을 전부 맡겼다. 저택경영인은 하인이지만, 큰 권한이 주어진다. 저택경영인은 가정의 재정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주인이 명한 지침에 따라서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택경영인은 오늘날로 말하면 고용사장에 비유될 수 있다. 고용사장은 회사 전체를 경영해야 하지만, 오너의 지침을 벗어날 수 없다. 고용사장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상당한 전문적인 기술과 훈련과 식견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각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려면 그 분야에 고유한 전문적인 기술과 식견을 철저하게 습득해야 한다(법학적 지식, 의학적 지식, 경제학적 지식, 정치학적 지삭, 예술적 기술 등). 저택경영인이 가정 경영을 잘 운영하려면 고도의 전문적인 스킬과 테크닉이 필요하듯이 효율적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려면 각 영역의 테크닉을 철저하게 수련하고 마스터해야 한다.
세 번째 “충성”은 피스티스인데, 피스티스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아 이루어내는 강력한 믿음을 뜻한다. 조지 뮬러가 간절히 기도해서 고아들을 먹여 살린 것이라든가,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중병을 낫게 하는 것 등이 강력한 믿음이다. 둘째는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 믿음은 이른 바 교리적 믿음으로서 동정녀 탄생, 오병이어의 기적, 물 위를 걸으신 예수, 해가 중천에 머무르는 것, 바다가 갈라지는 것, 부활 등과 같이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교리들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셋째는 신실하게 어떤 일을 일관성 있게 수행해 내는 태도를 뜻한다. 본문이 말하는 피스티스가 바로 이 뜻으로서 “충성”으로이라고 번역되었다. 충성은 주인이 보든 보지 않든 꾀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는 태도를 말한다.
충성은 오이코노모스와 관계가 많다. 오이코노모스에게는 부정을 저지를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주인 대신 재정 관리를 하다보면 주인의 재정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틈이 많다. 바로 이 순간에 꾀를 부리지 않고, 주인이 보든 보지 않던 주인이 보고 있는 것처럼 신실하게 관리하는 태도가 충성이다. <벤허>라는 영화에는 유대귀족인 벤허가 노예로 붙잡혀 간 다음에 벤허의 집에 에스더와 에스더의 늙은 아버지만이 남는 모습이 나온다. 이 늙은 아버지가 바로 오이코노모스 곧, 저택관리인이다. 끌려 간 주인이 생사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주인의 모든 재산은 사실상 오이코노모스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에스더의 늙은 아버지는 주인이 반드시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주인이 언젠가 돌아와서 재기할 수 있도록 주인의 재산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관리한다. 마침내 벤허가 기적처럼 돌아 왔을 때 에스더의 늙은 아버지는 그 동안 성실하게 관리해 온 재산을 그대로 넘겨주어 벤허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이것이 바로 모범적인 오이코노모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 일이 내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태도로 우리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의 비밀을 마음에 품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궂은 일을 다 하지만 우리 자신은 묻히고 주님만을 드러내야 하며, 우리의 사역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문적인 식견과 기술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역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마음(Coram Deo)으로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또 한 해를 맞이하면서 새겨야 할 교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swlee7739@hanmail.net>
글/ 이상원 (총신대학교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에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M.)와 네덜란드 캄펜신학대학교(Th.D.)를 졸업했다. 미국 보스톤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와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