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적 북한 선교가 진정한 남북 평화

실제적 북한 선교가 진정한 남북 평화

2018-07-29 0 By worldview

북한이라는 폭압체제에서 벗어나 나는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자유는 믿음과 신앙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북한에서 겪었던 많은 경험들과 대한민국에서 배운 북한 선교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경험하고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100년 전 미국인 선교사가 ‘셔먼호’를 타고 평양에 들어 온 이후 뿌려진 신앙의 씨앗은 북한 지역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었다. 평안남북도, 황해도, 함경도 지역에 많은 교회들이 생겨났고 북한은 남한지역보다 더 개방되고 문명화됐다. 하지만 그런 북한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나라가 되었고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70년 간 박해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의 북한은 한 개인이 모든 권력과 부를 독점한 사이비 봉건적 교주국가가 됐다. 그래서 지금껏 존재한 그 어떤 공산국가보다 더 강력하고 잔인한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자유진영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 어떤 접근도 실패할 수밖에 없고 특히 북한 선교적 측면에서 오히려 북한에 악용당하는 것이 반복된다.

남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인권유린

분단 장기화는 같은 민족임에도 사상과 문화, 생활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만들어 냈다. 특히 변형된 독재적 잔악성이 날로 진화된 북한의 체제를 남한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너무나 어렵게 됐다. 그래서 남한 식의 접근 방식은 북한을 이해하는데 100%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권문제에서 한국인들은 과거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독재적 요소를 아주 큰 인권유린 과정으로 생각하지만 북한의 반(反)인륜범죄와 비교하면 사실 빙산의 일각처럼 느껴진다. 한국사회에서 ‘공개처형’은 상상할 수 없는 야만행위이지만 북한에서 ‘공개처형’은 일상화되어 있고 어린이들까지 공개처형을 목격한다. 히틀러, 스탈린 시대에 존재했던 강제수용소를 북한은 약 50년간 유지해오고 있다. 반인륜적 수용소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고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학살해도 지금껏 유지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필자는 함경남도 요덕 군에 위치한 수용소에 약 10년간 수감됐었고 그곳에서 인간이하의 경험을 했다. 반복되는 공개처형, 매일과 같이 벌어지는 아사(餓死), 고문을 목격했다.
히틀러의 아우슈비츠와 스탈린의 시베리아 수용소 군도를 합쳐놓은 것 같은 북한의 수용소에는 약 20만 명이 수감되어 있고 그들은 매일과 같이 죽어나가고 있다. 북한은 반체제 인사들을 본인과 가족을 연결시켜 처벌하고 있다. 북한과 같은 봉건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처벌방식이다. 이른바 ‘3대 멸족 연좌제’는 부모의 죄로 손자까지 처벌받는 시스템이다. 김정일의 큰 분노를 야기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경우 11촌까지 처형하거나 수용소에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3대 멸족 연좌제’는 수령 독재를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이며 그 수단으로서 강제수용소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북한 문제를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강제수용소 해체이며 그것이 존재하는 한 북한 문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수용소 외에 북한 주민들의 삶도 근대 노예제도보다 더 심각한 통제 속에 말 하나, 행동 하나 마음대로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골 가정의 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하고 있는 북한 정보기관은 인민들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20년 북한선교 성과와 실패의 교훈

한국사회를 경험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북한 선교에 대한 관심은 나의 삶에 가장 우선 순위였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북한 주민들을 복음화 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어린 시절 기독교 가문에서 출생해 성장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모친 강반석은 칠골교회 집사였고 그의 외삼촌은 목사였다. 이런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김일성은 공산주의 이념보다 기독교적 사상과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김일성이 구소련에 의해 권력을 잡게 됐을 때 그는 공산주의 이념보다 기독교적 체계에 기초한 통제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자신의 개인권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회주의 이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권력 세습을 단행했고 북한 체계를 정상적인 사회주의 체계가 아닌 봉건적 사이비 교주(敎主)체계로 만든 것이다. 김일성을 아버지로 그를 칭송하는 노래와 성경과 비교되는 ‘교시록’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김일성 우상숭배를 위한 ‘십계명’까지 만들어냈다. 그들은 그것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이라고 부른다. 주말 생활총화, 수요 강연회 등 교회에서 하는 것들을 흉내 내서 북한 주민들을 교육하고 통제하는데 활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신앙, 기독교가 북한에 침투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우상숭배와 가짜 교리는 진짜 신앙과 성경이 들어가면 스스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북한은 기독교와의 전쟁을 반세기동안 벌여왔다. 간첩은 용서해도 기독교인은 절대로 용서라는 것이 없다. 북한만큼 기독교인들을 극단적으로 탄압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1990년대 이후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난에 대응하기 위해 가짜 교회와 절을 만들고 거기에 더해 가짜 목사와 신도, 가짜 스님을 만들어내 활용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에 종교학과를 만들어 각종 종교 교리를 배우고 있는데 그들은 종교인들을 상대하는 정보요원으로 배치된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교회로부터 들어오는 현금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평양에 가짜 교회들을 만들어 가짜 예배를 드리고 들어오는 헌금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거쳐 북한 정권에 흡수되고 있다. 공식적 북한 방문을 통해서 전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제 북한을 경험하고 나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좋아하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접근방식 때문에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막대한 헌금을 모아서 건립한 평양 과기대는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단절된 구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군사과학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북한 정권은 북한 선교라는 목표를 가진 교회집단이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허락한 것은 충분한 통제능력과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목표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퓨터 공학을 중심으로 한 평양 과기대는 사실상 북한정권이 필요로 하는 IT 기술의 획기적 향상을 통한 북한의 군사과학 기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평양 과기대를 통해 북한 대학생들이 전도된 사례는 단 한건도 찾아 볼 수 없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들이 성경적 이야기를 하면 그 즉시 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애당초 목표로 한 북한선교와 과기대의 역할은 전혀 무관한 것임을 지금 상황에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1997년 경 탈북자 70여명을 구출하다가 납치돼 평양 보위성 감옥으로 끌려간 김동식 목사는 북한 정보기관의 회유와 협박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하 감옥에서 ‘순교’ 했다. 중국 단둥, 연길, 장백 등에서 북한 정보기관원들의 독살과 납치는 끔찍할 정도로 자주 자행됐고 많은 분들이 희생됐다. 한국에 입국한 3만 명의 탈북자중 상당수는 중국 현지에서 목숨 걸고 그들을 도와준 목사, 선교사들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해 안전하게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런 희생과 노력이 바로 진정한 사역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기독교와 전쟁 중인 북한 정권을 뚫고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과정이고 그것은 결코 편하게 평양을 방문하며 현금과 물자를 지원하는 것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기독교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돈과 식량, 물자를 공급하는 방식의 대북 선교접근과 목숨 건 탈북자 구출과 라디오, USB 등을 통한 복음전달 등 위험한 일을 감수하며 북한 주민에게 직접적인 복음을 전하는 역할로 양분화 됐다.
북한 내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지하교회는 대부분 중국 현장에서 목숨 걸고 탈북자들을 돕고 북한에 USB 성경을 보낸 희생적 선교활동의 산물이다. 막대한 현금과 식량과 물자를 평양정권에 공급하는 방식의 접근방법은 북한정권에 현금과 식량을 대주는 역할 외에는 사실 얻은 것이 없다.

◎ 강철환 기자. 조선일보 11년간 근무했고 현재는 북한전략센터를 운영하며 북한내부에 외부의 정보를 대량으로 유입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북한 복음화 지금이 바로 타이밍이고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역사적 사명

지금 북한 주민들은 3대째 이어져오는 폭압체제에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북한 곳곳에 ‘샤머니즘’이 창궐하고 사람들은 미신에 빠져 자신의 삶을 점쟁이에 의탁하고 있다. 김일성 우상화가 무너지면서 마음속에 생기는 공백을 미신이 대신 채우고 있다. 가장 어렵고 자신들의 믿고 의지했던 절대자 김씨 정권의 허구가 드러나는 지금이 바로 북한주민들을 복음화 시키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열려서 자본주의식 자유화가 이뤄지면 그때 선교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절박할 때, 무엇인가 갈구할 때 복음화는 더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현재 북한 정권은 3개의 체제로 움직인다. 첫 번째는 교육 시스템이다. 우상숭배 교육을 포함한 북한식 교육을 통해 주민들을 무지몽매하게 만들고 북한 정권에 복종하도록 만들어낸다.
두 번째는 통제 체계이다. 강제수용소와 전국에 위치한 감옥들을 통해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억압한다. 세 번째는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탈북자를 막고 외부의 정보가 내부로 스며들지 못하게 통제하는 것은 북한 정권을 지키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바로 외부의 정보를 차단하는 통제 시스템을 붕괴시키면 나머지 두 개의 통제 체계는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북한 내부에 유입되는 한국 드라마와 각종 영화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성경과 기독교적인 영화들, 애니메이션, 설교 동영상들도 USB와 라디오를 통해 북한 내부에 대량으로 유입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중 국경을 넘어 신의주, 라진-선봉 시장 등 국경 시장에서 유통되는 정보들은 내륙으로 퍼져나간다. 김정은 정권이 할 수없이 방치한 시장은 이제 주민들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영역이 됐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시장 확대는 정보의 확대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한국교회는
북한선교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남북대화와 평화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의 개념은 북한 동포들이 자유를 되찾고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 동포들이 노예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덮어두고 평화를 이야기하면
그것은 북한 동포들이 보기에 위선이고 가짜 평화로 볼 수밖에 없다. 그들 스스로 북한 동포들에게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도록 끊임없이 압박하고 협상하고 그 대가로 북한을 도우려고 하는 전략은 진짜 평화를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강철환

1968년 평양시 중구역에서 출생했다.
재일북송교포인 조부가 정치범으로 숙청되면서 약 10년간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1992년 북한을 탈출해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2005년 저서 <평양의 어항>을 읽은 조지 W 부시대통령의 초빙을 받고 백악관에서 약 40분간 면담했다. 2006년에는 북한인권운동의 공로로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에 선정됐다.
조선일보에서 정치부, 동북아연구소 기자로 11년간 근무했고 현재는 북한전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내부에 외부의 정보를 대량으로 유입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