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혁명의 엽기적인 기원

성 혁명의 엽기적인 기원

2023-06-09 0 By 월드뷰
조평세 (부편집장)

조평세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이사)

영국 런던 킹스컬리지(KCL)에서 종교학(B. A.)과 전쟁학(M. A.)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이사로 활동하며 영미식 보수주의를 한국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서로 <레이건일레븐(열아홉, 2020)>, <예수는 사회주의자였을까(개혁, 2021)>, <모든 사회의 기초는 보수다(기파랑, 2023)>가 있다.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자유민주사회를 지난 수십 년 동안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는 ‘도덕규범 타파 운동(transgressive movement)’은 본질적으로 ‘성 혁명(sexual revolution)’ 운동입니다. 애초부터 전통 가족 체계와 성 윤리, 종교 등 “현존하는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할 것 – <공산주의 선언(1848)>”을 선언했던 마르크스주의는, 한동안 동구권 정치경제로 국한되었었지만, 이제는 서구 정치·사회·문화 곳곳에 비집고 들어와 온갖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키고, 급기야 ‘인권’, ‘차별금지’ 또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정상과 상식을 도리어 ‘억압’이라고 몰아세우는 형편입니다.
‘서구마르크스주의’, ‘네오마르크시즘’, ‘문화막시즘’ 또는 ‘젠더 이데올로기’라고도 불리는 이 거짓 이념은, 처음부터 인간의 성(sexuality)을 반(反)기독교 문화전쟁의 전장(戰場)으로 삼았습니다. 성 문제는 인간 생명은 물론 각 개인의 세계관 형성에 직결되는 ‘인간관’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장 취약한 영역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성 혁명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결코 정상적일 수 있다거나 ‘정치적으로 옳다(politically correct)’고 여길 만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성 혁명의 엽기적인 기원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한 미국 메인(Maine)주의 레인즐리(Rangeley)에 가면 약 200에이커(24만 평)에 달하는 부지에 ‘오르고논(Orgonon)’이라는 사유지가 있습니다. 이곳 ‘오르곤 연구소’에는 오르곤 에너지 관측소와 오르곤 축적기, 심지어는 클라우드버스터(cloudbuster)라고 불리는 오르곤 발사대가 전시되어 있는데. 바로 ‘성 혁명의 아버지’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를 기념하는 박물관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라이히는 ‘오르곤 에너지’라는 개념을 창시했습니다. 그 에너지란 다름 아닌 성적 오르가즘에서 분출된다는 어떤 우주적(cosmic) 원기를 말하지요. 그는 이 방사 에너지를 통해 정신질환은 물론이고, 화상 치료에서 암을 포함한 모든 신체적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에너지를 관측하고 축적하여 일상에 적용하는 기구를 실험하고 개발했습니다. 이 오르곤 축적기에 튜브와 긴 파이프를 연결해서 ‘발사대’를 만들고, 오르곤 에너지를 하늘에 쏴 구름을 만들거나 ‘지울’ 수 있다고 라이히는 여겼습니다.. 실제 라이히와 그의 추종자들은 애리조나주 사막을 푸르게 만들겠다며 한동안 서쪽 하늘을 향해 오르곤을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특허 출원 신청은 거절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망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는 외계인이 오르곤 에너지를 활성화해서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또 이 에너지를 유해 방사선으로 무기화해 지구에 살포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라이히가 그의 연구 과정에서 치료를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 착취를 일삼았다는 것입니다. 라이히의 연구소 지하에는 심지어 ‘영유아 오르곤 연구실’도 있었는데, 이곳에서 아동들이 수십 명의 ‘치료기술사’들에 둘러싸여 ‘성적 놀이’를 강요받았다는 기록과 증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이비 유사 과학을 넘은 사기극이자 성적 착취였습니다.
라이히와 그의 연구 활동을 우려 깊게 지켜보던 당국이 비로소 개입할 수 있었던 계기는 그의 ‘발명품’들의 판매였습니다. 미국 FDA(식약청)는 그의 연구와 실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더 이상 ‘의료기구’ 판매를 중지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한 라이히는 법정 모독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투옥 후 9개월 만에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법원은 사회적 유해성을 이유로 라이히의 저서 6톤 어치를 소각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의 ‘오르곤 과학’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오르곤 발사대를 소형화해 만든 ‘휴대용 클라우드버스터’가 팔리고 있고, 뉴에이지 서클과 일부 음모론자들 사이에서는 오르곤 개념과 ‘마법 물질’ 개념을 혼합해서 만든 ‘환경 정화’ 도구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이트에서도 ‘오르고나이트’, ‘구름지우개’ 등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위대한 작가였던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의 말이 깊은 탄식처럼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아무것도(nothing)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anything) 믿게 된다.”

오르곤 축적기에 들어가있는 한 여성


성 집착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 혁명가를 비롯한 급진좌파 세력은 빌헬름 라이히의 엽기적 기행을 두고 단지 그의 비상한 ‘천재성’ 때문에 말년에 잠깐 미쳐버린 것뿐이라고 치부합니다. 그러면서 라이히의 초창기 성 혁명 이론과 통찰을 두둔합니다. 하지만 라이히의 이론과 실험은 처음부터 퇴폐적이고 성 착취적이었습니다.
그는 정신분석 실습 초창기부터 생장 치료(vegetotherapy)라는 정신 상담 요법을 개발했는데, 정신 상담가가 환자 뒤에서 말로만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마주 본 상태에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치료’에 유익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환자들은 용이한 접촉을 위해 전라의 상태로 상담에 임했고, 그 접촉이 성적인 것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라이히 본인 스스로도 한 때 그의 치료법을 오르가즘요법(orgasmotherapy)이라고 부를 정도였지요.
그의 세 번의 결혼 상대와 수많은 내연녀는 자연스럽게 대부분 그의 환자였거나 실험 조교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최초 환자부터 애인이 되었습니다. 라이히의 일기에 따르면 이 환자는 라이히와의 잠자리를 위해 임대한 열악한 방에서 추위에 떨다가 패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라이히의 첫 아내이자 훗날 저명한 정신분석학자가 된 애니 (핑크) 라이히는 그의 네 번째 환자였고 당시 18세 의대생이었습니다. 라이히가 노르웨이에서 오르가즘 연구에 몰두할 당시 찾아온 실험 대상 중에는 훗날 독일의 총리가 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와 그의 내연녀였던 거트루드 마이어(Gertrude Meyer)도 있습니다. 거트루드는 라이히의 실험 조교가 되었고 그를 따라 미국에 이민하여 정착했습니다. 라이히의 세 아내 모두, 정신분석을 빙자한 그의 성 문란과 외도를 이유로 그와 이혼했습니다.


라이히의 저작들은 단지 그 제목만으로도 그의 성적 집착에서 시작된 사회주의 혁명론의 지적 궤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 ‘근친상간 금기를 깬 사례에 대하여(1920)’, ‘자위행위의 다양한 형태(1922)’, ‘자위행위로서의 틱 행동(1924)’, <오르가즘의 기능(1927)>, <사춘기, 금욕, 결혼윤리: 부르주아 성개혁에 대한 비판(1930)>, <성 윤리의 침략: 성 경제(sexual economy)의 역사에 대하여(1932)>,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성 혁명(1936)>.
젠더 이데올로기의 교과서 격인 <성 혁명>의 독일어 원제는 참 적절하게도 <문화전쟁에서의 성: 인간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위하여>입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권력자들이 대중을 성적으로 억압해 사회를 통제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인데, 1968년 프랑스에서 대학생 남녀가 상대방 기숙사에 자유롭게 드나들게 해달라는 폭력시위로 시작한 ‘68 성 혁명’ 당시 시위대가 경찰에게 투척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라이히의 충격적인 성장배경


20대 초였던 1919년, 빈 대학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만난 라이히는 곧바로 ‘성적 억압(sexual oppression)’이라는 프로이트의 개념에 심취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당시 대학가를 휩쓸던 마르크스주의의 사회구조 혁명론에 이 성적 억압 개념을 접목해 ‘성적 쾌락을 통한 인간 해방론’을 주창했지요. 말 그대로 ‘프로이트-마르크시즘’입니다. 그리고 1920년대 말부터 벌써 그는 성-정치 출판소(Sex-pol Verlag)를 설립하였고, 청소년과 노숙자를 상대로 정신 상담과 마르크스주의 사상 교육, 성 해방 교육 등을 제공하는 ‘프롤레타리아 성 혁명 정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라이히를 프로이트의 성적 억압 개념에 그토록 몰두하게 했을까요? 그리고 그의 활동 초반부터 혼신을 다해 성 해방 운동에 전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라이히의 성장배경을 관찰해보면 그의 성 집착적 강박과 사상적 흐름이 상당 부분 이해됩니다.


과학과 언어에 일찍부터 조숙했던 라이히는 12살부터 집안 하녀들과 성관계를 했는데, (이 또한 사실상 주인집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하인을 성 착취한 행동입니다.) 그때 즈음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과외선생과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훗날 동료들에게 털어놓은 라이히 스스로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당시 수개월 동안 불륜 현장을 몰래 지켜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성적 자극을 느꼈고, 자신의 침묵을 대가로 어머니에게 자신과도 성관계를 요구할 것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불륜을 일러바치지요. 그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끔찍한 구타가 시작됐고, 고통을 못 이긴 어머니는 양잿물을 마셔 자살하고 맙니다.
라이히는 이후 30대가 될 때까지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밤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 사이 대학 시절에는 연인이었던 젊은 유치원 교사가 임신하고 불법 낙태를 시도했다가 감염으로 죽기도 하지요. 이 또한 그에게 큰 정신적 채무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난 인물이 프로이트였습니다. 프로이트의 ‘성적 억압’ 이론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다른 설명’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그를 짓누르는 죄책감으로부터 그를 해방시켰습니다. 그의 어머니를 죽인 건 아버지도, 어머니 자신도, 자기 자신도 아닌, 결혼제도와 같은 성-억압적인 사회의 구조와 인식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를 구원할 일생의 사명은 그 억압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적 금기 타파 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악몽도 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라이히의 성적 강박과 집착의 정신적 왜곡은 그렇게 고착화되고 강화되어 ‘성 혁명’ 이론으로 열매 맺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차별금지법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성 혁명은 정치적으로 옳다(politically correct)고 여길만하기는커녕 결코 신사적이거나 세련되거나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 혁명의 반(反)상식적이고 정신병적인 뿌리를 분명히 기억하고, 비정상과 변태(變態)를 정상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의 거짓과 마땅히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달의 특집


이번 달 커버스토리 인터뷰는 본지 편집위원 안석문 목사(아침교회 담임목사)가 차별금지법 반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제자광성교회 박한수 목사와 함께, 한국 사회를 깊이 물들이고 있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동성애 문제와 차별금지법 반대에 큰 목소리를 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건 목회자로서의 ‘본능적인 몸부림’이라고 답한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성 혁명에 맞서 싸우는 이 투쟁이 목회자뿐 아니라 복음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의 본능적인 몸부림이 되길 기도합니다.


‘차별금지법의 해악’을 주제로 한 특집 칼럼은 두 파트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파트에는 이번 6월 13일 화요일 영락교회에서 있을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 교회 연합기도회(희대연)”에서 강단에 서는 여섯 분의 원고를 실었습니다. 먼저 길원평 교수는 ‘교육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인권조례의 법적 문제와 실제 폐해 사례를 고발하였습니다. 조영길 변호사는 지난 16년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성공적으로 막아온 한국 교회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회가 선진국 중 차별금지법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최초의 나라와 교회’가 되는 섭리적 사명을 받아들일 것을 권면합니다.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진정한 자유란 죄로부터의 자유이며 오직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성경 본문을 통해서 정리합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구약 성경 오바댜와 다니엘의 사례를 통해,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창조적 분리’와 ‘전투적 비폭력’으로 다시 교회가 문화를 주도할 것을 도전합니다.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는 성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차별금지법의 ‘성별 정체성’을 꼬집으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엄격히 제정한 ‘거룩한 분리’를 지켜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끝으로 수원중앙침례교회 고명진 목사는 삶의 행태와 신앙이 계승되지 못한 ‘다른’세대와 신앙의 유산이 바르게 전수된 ‘다음’세대를 구분하며, 성적 기준이 망가진 이 시대에 ‘다음’세대를 키워낼 수 있도록 바른 성경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청년들의 원고를 실었습니다. 김정희 대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하고 청년들로부터 정당한 기회를 빼앗는 악법임을 강조합니다. 정혜민 청년은 소아성애도 취향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성적 지향’의 모호성과 군대 내 동성 간 성범죄를 조장하고 여성을 도리어 차별하는 차별금지법의 모순을 지적합니다. 주성은 청년은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할 수 없고, 소송이 두려워 자기 검열이 심화되는 차별금지법의 폐해를 친구들에게 조금만 알려주면 곧바로 찬성에서 반대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이다헌 청년은 PC주의의 사상적 배경을 검토하면서, 그 일환인 차별금지법이 국가 공권력을 통해 ‘차별 없는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점에서 부정의한 법이며, 국민 모두를 강자와 약자로 갈라 이간하는 엉터리 법이라고 지적합니다.


나가며


이번 호에서는 특집 원고뿐 아니라 특별히 한국 교회 여러 목회자들이 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한마디씩 모아서 지면에 담았습니다. 더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글들을 통해 도전받고 용기를 얻어 차별금지법 반대에 동참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목회자 3천 명이 모이는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 교회 연합기도회”를 통해 한국 교회와 성도들 모두가 교단과 교파, 정치 여야를 떠나 하나 되어, 성경적 가치관에 반하는 성 혁명의 실체를 바로 알고 마땅히 맞서 싸우는 동력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월드뷰>도 동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