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2022-10-05October 2022 #월드뷰 커버스토리
10월 국회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강연자
스위스 쮜리히 대학 위르켄 욀커스 교수
‘교육학적 에로스’라는 개념 아래서 자행된 아동 성폭력의 문제
독일어권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공론화시킨 학자
정일권 교수의 번역 정리
정일권 이번에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초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독일 진보 교육의 상징이자 유네스코가 선정한 우수 학교인 오덴발트 학교(Odenwald Schule)에서 수십 년간 소아성애적 아동 강간이 이루어졌음을 밝혀내셨지요. 또한 아동 성폭력의 문제를 독일어권에서 공론화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대체 독일의 오덴발트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위르겐 욀커스 2014년 10월 1일, 독일 TV 방송(ARD)에서는 오덴발트 학교의 성폭력 역사를 다룬 ‘선택받은 자들(Die Auserwählten)’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아동 성폭력에 대한 이 이야기는, 허구적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에 기초해서 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며칠 후에 오덴발트 학교 출신의 어느 여학생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학생은 “오덴발트 학교에서 나는 그 무엇보다, 말해진 것이 결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아니라 단지 빈말(Worthülsen)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배웠다”라고 했습니다.
오덴발트 학교에 붙여졌던 ‘독일 개혁교육학의 우수 학교(Vorzeigeschule)’라는 아름다운 수사는 학생들이 경험했던 현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오덴발트 학교의 교장은 일종의 교주처럼 숭배를 받아왔습니다. 당시 오덴발트 학교의 교장은 게롤드 베커(Gerold Becker)였는데, 그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죠. 그는 마치 자신의 인격으로 독일 개혁교육학의 이상들을 대변한다는 듯했고, 그런 만큼 오덴발트 학교의 공적인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게롤드 베커는 수많은 저술에서 교육은 “소아로부터(vom KInde aus)” 사유되고 실현되어져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했습니다. 특히 “소아들에 대한 친밀함이 특별히 강조되어야(besonderen Betonung der Nähe zum Kind)” 한다고 했죠. 게롤드 베커는 이러한 주장들로 명성을 얻으면서 독일의 각종 언론에 등장했고, 그가 1985년에 오덴발트 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오덴발트 학교의 얼굴로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방송에서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이 방송은 공론의 장에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독일 개혁교육학(Reformpädagogik)의 학교가 성폭력이 자행되는 학교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었지만, 바로 그러한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것입니다.
정일권 그렇다면 오덴발트 학교 사태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독일 개혁교육학(Reform-pädagogik)과 어떤 관련성이 존재하는 건지요?
위르겐 욀커스 독일 교육학계는 오덴발트 학교에서 일어난 소아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보다 바로 이 질문에 대해 훨씬 더 골몰했습니다. 사실, 오덴발트 학교에 대한 소문은 여러 차례 존재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서 깊이 조사하려고 하지 않았죠. 오덴발트 학교가 입은 명성은 외부로 비쳐지는 학교의 이미지를 결정했고, 모든 학교 지도부도 이러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비판적 질문들이 제기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독일 68 반권위주의적-안티파적 개혁교육으로 독일 교육계의 교황으로 평가되는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Hartmut von Hentig) 교수는 1985년 오덴발트 학교 기념사에서 ‘오덴발트 학교는 장 자크 루소가 요구한 바로 그런 학교’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학교야말로 단지 이론을 추종하기만 하는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을 관찰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라는 거였죠. 헨티히 교수의 이 주장만큼 고급진 찬양은 없었기에, 오덴발트 학교의 홈페이지에는 이러한 헨티히 교수의 말이 오랫동안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오덴발트 학교는 독일에서 개혁교육학이라고 명명되어졌던 것의 핵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롤드 베커 교장 아래서 오덴발트 학교는 사회로부터 거리를 둔 일종의 도시국가로 이해되어졌고,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학교로 간주되었습니다. 1970년대 말에 급진적인 학교 비판이 유행하면서 교사 양성에 있어 공립학교의 대안들이 추구되었고, 오덴발트 학교는 그 자체로 사회적 변화 속에 있는 학교들을 위한 모델로 제시되었습니다(Schäfer/Edelstein/Becker, 1971).
오덴발트 학교는 관료적 감독으로부터 자유를 요구했고, 항상 민주주의 학교로 인식되기를 원했습니다. 오덴발트 학교의 교장 게롤드 베커는 시골에 위치한 전원 기숙사학교의 창립자들과 연계를 추구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모델이라며 추앙했죠. 이런 일들은 그의 업적을 증명하는 요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덴발트 학교는 결코 다른 학교들과의 비교를 용납하지 않았고, 오덴발트 학교의 모든 역사들은 몇몇 사람들로 구성된 좁은 인맥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덴발트 학교는 독립적으로 발전하려 하지 않았기에 ‘위대한 과거’라는 후광만 남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종종 주어지는 자유 시간들은 방임에 이르기까지 허용되었고, 마약 소비가 일상적인 오덴발트 학교였지만, 한편으로는 통제된 공간이었기에 학생들은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마지막 기회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독일의 아카데믹한 교육학에 있어서 시골에 위치한 전원 기숙사학교는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 모범 기관들로부터 어떠한 평가도 받지 않았던 모델이었습니다. 시골에 위치한 전원 기숙사학교는 학교가 보여 주어야 할 진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여겨졌고, 그 학교에서 학생들은 상호존중하며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게롤드 베커는 오덴발트 학교를 하나의 ‘교육학적 지방(pädagogische Provinz)’으로 즐겨 묘사했는데, 사람들은 이 학교에서는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보장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게롤드 베커는 오덴발트 학교와 같은 장소에서 학생과 교사가 진정한 교제를 추구할 수 있으며, 공립학교들은 학교 건축과 경직된 시간표로 인해 강요받는 학교라고 비판했죠. 그는 공립학교의 수업들이 45분 박자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학습 훈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구조를 극복해야만 학교가 ‘인간적(human)’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에, 그는 독일 개혁교육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학교들은 비인간적인 학교라고 보았지요.
하지만 오덴발트 사태로 인해서 독일 개혁교육학의 종말(Ende der Reformpädagogik)을 암시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성폭력 사태로 인해서 개혁교육학이 말하던 이상화의 초기 상태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린 것입니다.
정일권 소아성애 문제가 독일 교육계에서 이렇게까지 발생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독일의 개혁교육학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기초와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도 같이 말씀 부탁드립니다.
위르겐 욀커스 지난 20년 동안 독일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소아성애 행동가들이 생겨났습니다. 초기에는 교육학 저널인 〈Betrifft: Erziehung〉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다 1979년에는 ‘독일 소아성애 연구 및 활동 공동체 등록협회(Deutsche Studien- und Arbeitsgemeinschaft Pädophilie e.V)’가 결성되었는데, 독일 크레펠트에 본부를 둔 이 단체는 많은 지역 본부로 나누어지며 2003년까지 존속했습니다.
독일의 시대정신에 따라 성해방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학 프로그램이 되면서 오덴발트 학교, 섬머힐 학교 등은 이 사상을 대변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억압적 권위가 없다면 어떠한 노이로제도 없다면서 해방된 성(befreite Sexualität)을 해방된 인간의 기초로 간주했습니다. 교육학에서의 이러한 해방적 담론은 1960년대 후반부와 1970년대 초반부에 하나의 여론 권력을 형성했지요.
프로이트는 소아성애를 도착(Perversion, 倒錯)과 하나의 범죄(Verbrechen)로 간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적 금기가 극복되고 소아들의 성 욕구들이 수용될 때만 성취될 수 있는 ‘소아성애자들의 해방(Emanzipation von Pädophilen)’이 매우 빠르게 하나의 테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아들의 욕구들은 바로 성인들과의 섹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아성애적인 작가들은 소아들과 청소년들을 그들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하는 해방자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소아들은 결코 성인들의 성 욕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오히려 주변으로 밀려날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급진적 해방 이론의 권위들에 프랑스의 미셀 푸코와 장 폴 샤르트르가 속합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소아들에 대한 성인들의 에로틱한 시선은 도발적인 문화 형식이 되어버렸는데, (12세 소녀를 창녀로 묘사한) 영화 ‘Pretty Baby(1977)’나 데이비드 헤밀터(David Hamilton)의 작품 ‘Dreams of a Young Girl(1971)’ 속에 등장하는 사춘기 소녀, 영국 록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의 1969년 작품의 앨범 커버에서 이러한 소아성애적 시선들이 발견됩니다.
오덴발트 학교의 교사들 중에 공개적으로 소아성애자였던 교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 속에 ‘소아성애자 운동(Pädophilen-Bewegung)’에 대한 동정 여론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교육학적 에로스(pädagogischen Eros)’에 대한 이야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많은 학생들은 성인과 소아들 사이에 합의된 섹스에 대해서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오덴발트 학교 자체가 고정된 규칙들을 가지고 있거나 명료한 한계들을 규정하고 있지 않은 자유주의적 장소로 간주되기도 했지요.
오덴발트 학교가 학교 내 소아성애 사태를 직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을 때도 소아성애 범죄자들은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는 그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성욕과 그에 주어진 욕구들에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오덴발트 학교의 교장부터 소아성애 범죄자인데, 어떻게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정일권 그렇다면 지금 독일에서는 개혁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움직임이 얼마나 강하게 일어나고 있나요? 수십 년간 진행되어 온 개혁교육 및 조기 성교육을 바로 잡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까?
위르겐 욀커스 교육기관에서의 성폭력 문제는 단지 오덴발트 학교나 시골에 위치한 전원 기숙사학교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독일 개혁교육학에 대한 시각과 평가를 위한 우리의 분석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일 개혁교육학과 전원 기숙사학교 등의 교육기관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기존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직시하게 합니다.
최근에는 위르그 예게(Jürg Jegge)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교사이자 오덴발트 학교의 게롤드 베커와 같은 저명한 작가이며, 각종 미디어에 등장한 스타로 수십 년 동안 비판 없는 경탄을 받아온 그는 스위스 개혁교육학의 얼굴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는 ‘반권위주의적 교육(antiautoritäre Pädagogik)’을 주장했고, 소아들을 해방시키고자 했으며, 특히 청소년들을 성적으로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소아들과 청소년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게 한 다음, 성적인 착취 관계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희생자의 책을 통해서 그의 악행이 폭로되기 전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교육학적 신념들과 함께 항상 올바른 편에 서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폭로 이후 수많은 보도들이 쏟아졌고, 이제는 도대체 (독일) 개혁교육학 전반에 무슨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시급한 질문이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개혁교육학이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오늘날 개혁교육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봅니다.
오덴발트 학교의 교장 게롤드 베커와 달리 예게는 자신의 행위를 인정했을 뿐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의 선한 의도들에 호소했고, 어린 학생들과 주고받았던 깊은 애정에 대해서 말했으며, 피해자들과의 우정을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과 함께한 행위를 마음에 들어 했고, 자신이 ‘신선한 육체(Frischfleisch: 새로 관계 속에 들어온 어린 학생들을 말한다, 역자 주)’를 데려왔을 때에는 기존 학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는 주장을 펼쳤죠. 어린 학생들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정일권 이제는 한국도 이러한 문제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자 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오덴발트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 독일 교육계가 오랜 시간 가져왔던 소아성애에 대한 관점과 무관하지 않음을 볼 때, 저희가 하는 일들이 한국 교육계를 깨우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