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국정원 기능의 정상화
2022-07-28[ISSUE]
월드뷰 JULY 2022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발행사
절실한 국정원 기능의 정상화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태우 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관으로 북방정책 입안과 비밀수교 교섭의 핵심 실무 역할을 담당했다. 2004년 국정원 1차장 퇴임 후 7년간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장으로 근무했으며 저서로는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이 있다.
문재인 정부 5년, 나라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지만 안보분야의 상처는 특히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와 미·북 대화에 매달려 있는 동안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해 이젠 미국을 타격할 수 있게 됐고 우리를 겨냥한 전술핵무기의 실전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9·19 군사합의로 휴전선 정찰비행이 금지되고 휴전선 감시초소(GP)가 철거됐고 전방 2개 사단이 해체돼 북한의 기습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돼 ‘훈련 없는 군대’가 됐고 중국에 ‘3불 약속’을 해 군사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군 기강도 엉망이 됐다. 국방백서에서 주적(主敵) 개념이 사라져 ‘적을 모르는 군대’가 됐다. 군 수뇌부는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표현했고, 군부대는 취객, 치매노인, 시위대에 쉽게 뚫렸다. 군 지휘관들이 사고 발생과 인권 시비(是非)에 신경 쓰는 동안 군 기강은 무너지고 국군은 ‘보이스카우트 군대’라는 호칭을 얻었다. 참수부대 장교가 돈을 받고 작전계획을 북한 공작원에게 넘겨 ‘부패한 오합지졸’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우리 국방태세는 문자 그대로 ‘총체적 부실’이다.
무력화된 공안체제
더욱 심각한 것은 공안체제의 무력화다.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데 재작년 국정원법 개정 등으로 우리의 대응체제는 크게 약화됐다.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든 간첩이나 정부 전복 기도에 관한 정보 수집은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 정치개입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정원의 국내 보안정보 기능을 폐지했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간판 업무의 하나였던 대공수사권을 폐지해 이제 대공수사 업무는 경찰 혼자서 담당하게 됐다.
안보사범 수사에서 가장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북한과의 연계 여부인데 2020년 말에 개정된 국정원법 제4조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에 대한 정보 수집 범위를 “반국가 단체(북한)와 연계되거나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 침해 행위에 관한 정보”로 제한해 안보 침해 사범 정보 수집은 착수조차 어렵게 됐다.
전에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죄) 위반죄 수사가 간첩 및 반국가 행위 수사의 주요 단서가 됐는데 찬양·고무죄와 관련된 정보 수집을 국정원 직무에서 삭제해 버렸다. 이제는 조국 전 법무장관이 관련됐던 사노맹 사건이나 이석기 전 의원이 관련됐던 지하혁명조직(RO)사건 같이 북한과의 직접적인 연계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반국가 행위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정보 수집도 할 수 없게 됐다.
국정원뿐 아니라 경찰, 검찰, 군의 공안부서도 완전히 무력화됐다. 2017년 622명이 던 보안경찰 규모가 2020년 474명으로 24퍼센트 감축됐고 업무도 일반 수사업무와 통합됐다. 검찰 공안부도 공공수사부로 개편되면서 조직 축소와 베테랑 요원 전출로 공안전문 기능이 사실상 폐지됐다. 국군기무사령부도 2018년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의 허위제보로 하루아침에 해체되고 국군안보지원사령부로 신편되는 과정에서 요원 4,200명이 3,000여 명으로 축소됐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이관에 따른 문제점
2024년 1월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하게 되면 경찰조직이 가진 태생적 한계 때문에 대공수사가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북한 간첩의 90퍼센트가 제3국을 통해 침투하고 있고, 작년 8월 검거된 청주간첩단 사건에서 보듯이 간첩침투 징후 파악과 채증을 위해서는 해외 활동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찰은 해외정보망도 없고 외국에서 정보·수사 활동을 할 경우 주권침해가 되어 수사나 채증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대공수사를 위해서는 국내정보와 해외정보, 인간정보(HUMINT)와 기술정보(TECHINT), 암호해독,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야 하나 경찰은 이런 정보 자산(資産)을 갖추기 어렵다. 대공수사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체포 간첩의 역용인데, 공개조직인 경찰은 이런 비밀공작에는 부적합하다. 정보와 수사는 긴밀한 연계 하에 추진돼야 하는데 정보 수집은 국정원이 하고 수사는 경찰이 하게 되면 긴밀한 연계활동이 불가능해진다.
경찰의 대공수사 능력 낙후도 큰 문제이다. 경찰에서 대공 업무는 기피대상 1호여서 유능한 전문가 양성이 어렵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검거한 간첩 60여 명 중 경찰 검거 간첩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경찰의 ‘안보수사심의회’도 문젯거리다. 경찰은 2019년부터 일반시민, 시민단체 대표, 변호사 등 민간인들로 구성된 ‘안보수사심의회’가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에 대한 수사 여부를 검토토록 돼 있어 극비리에 추진돼야 할 간첩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국정원의 경찰수사 지원에 따른 문제점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이 경찰의 해외 업무를 도와주면 된다고 하나 그렇지도 않다. 국정원이 해외에서 수집한 정보는 민감한 출처에서 수집한 것들이 많아 경찰에 제공하기 어렵다. 국정원 정보의 경찰제공 사실이 알려지면 공작원·협조자 확보와 외국 기관과의 협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능이 완전 폐지되기 전 경찰과 국정원이 함께 준비하면 차질이 없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보안문제 때문에 국정원 대공 파일을 경찰에 넘기기가 어렵고, 유능한 대공 수사요원 양성을 위해서도 최소한 10~15년이 소요되어 차후 대공수사의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대한민국이 ‘간첩 천국’이 될 가능성이 많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종북 세력은 대폭 확산됐는데 공안체제는 더욱 허술해졌기 때문이다. 세계 82개국 가운데 안보수사를 경찰에만 맡기는 나라는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필리핀 등 11개국에 불과하다. 외부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직면한 나라 가운데 안보수사를 경찰에만 맡기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
한반도 적화통일은 김일성 세습왕조의 숙원 사업
그러나 박지원 국정원장이 발표한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이유를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권력 분산과 흑역사 청산을 위한 것이라는데 국정원과 경찰이 나눠 가진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몰아주는 것이 무슨 권력 분산인지 모르겠다.
흑역사 청산을 위해서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20여 년간 국정원 대공수사가 문제가 된 것은 소위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단 한 건뿐이며, 그것도 간첩 혐의 입증에는 실패했지만 수사 및 기소할 근거는 충분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재작년 탈북녀 성폭행 사건에 이르기까지 훨씬 많은 ‘흑역사’를 가진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몰아주는 것이 무슨 흑역사 청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폐지한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일부 좌파 인사들은 북한이 작년 1월 노동당 규약 개정 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한다”는 조항을 삭제하자 북한이 적화혁명을 포기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노동당 규약 서문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청산한다”는 내용이 삽입돼 있어 ‘선거를 통한 적화 혁명’을 적화통일의 한 방식으로 추가한 것일 뿐 적화혁명 포기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은은 이미 2015년 1월 초 노동당 간부회의에서 남한 선거에 개입해 종북 세력들이 정당의 핵심 위치까지 진입하게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그들 용어대로 하면 ‘어리석은 개꿈’이다. 남조선 적화혁명은 김일성 세습왕조의 포기할 수 없는 숙원 사업이고 ‘발전된 대한민국’의 존재는 김일성 세습정권의 최대 안보위협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은 문재인 정권 5년간 한국 내 종북 세력 확산으로 크게 고무돼 있다. 작년 노동당 규약 서문에 ‘선거를 통한 적화 혁명’을 추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핵보다 더 두려운 것
사정이 이런데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지금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나?”라는 생각이 대세이고 반국가 행위 경력이 국회 진출용 훈장이 됐다.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김정은 환영 행사와 트럼프 대통령 사진·성조기 밟기가 수없이 열린다. 서울경찰청은 인공기와 김정은 사진을 불태웠다고 현역 의원에게 소환장을 발부했고 대법원은 집시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좌파 교사들은 이승만·박정희는 친일파·독재자이고 김일성·김정은은 민족 지도자·영웅이라고 대놓고 교육한다. 대통령은 북한간첩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라고 찬양하면서 그의 서화를 청와대에 걸어 놨고, 국정원장은 원훈석을 신영복 글씨체로 새겨 놨다. 사정이 이런데 김정은이 대남적화 전략을 포기할 리가 없고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 강화도 기대하기가 어렵다.
북한의 핵 위협은 미국의 확장억지 공약으로, 전면전 도발은 한미동맹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같은 집권자의 출현, 종북 세력의 확산 및 국민 안보의식 해이는 한미동맹이나 첨단 군사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더욱이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된 데다, 문재인 정부에서처럼 국정원의 북한 사이버 심리전 대응 활동이 정치개입이 되고, 반국가 단체 간부 동향 파악이 불법사찰이 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의 북한송금 동향 파악이 직권남용으로 처벌받는다면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을 막을 길이 없다. 국민들의 각성과 국정원 기능 정상화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특히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하루빨리 회복돼야 한다.
평화와 통일은 기독교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독일통일에는 기독교인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서독 기독교민주당(CDU) 아데나워 초대 총리는 ‘친서방 노선’과 ‘힘의 우위’ 정책으로 서독의 번영과 통일의 기반을 마련해 놨다. 서독 교회는 동독 교회를 지원해 민족 이질화를 막는 ‘작은 다리’를 놓았고 동독 목회자들은 탈공산·촛불 혁명을 주도했다. 그리고 기독교민주당 헬무트 콜 총리와 독일 기독교인들이 통일을 완성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상황은 안타깝다. 평화를 외치는 사제와 목사들이 평화를 해치고, 통일을 외치는 그들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이 진보적 사제와 목사로 위장한 친북·종북주의자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시 가장 의지할 대상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으로 나라를 지키듯 우리 기독교인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켜주면 좋겠다.
donyou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