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2021-12-22 0 By 월드뷰

어린이를 위한 기독교 세계관 (7)


월드뷰 DEC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3


글/ 심재승(Dordt University 교수)


19.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님에게 이르러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시면서,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전혀 죄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다. 죄 없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죽으심으로 그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대속 제물이란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용서해 주는 방편을 말한다.

동물로 대속 제물을 삼던 구약의 율법이 제정한 죄 용서 방식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전하게 실천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동물의 피를 통한 제물은 필요가 없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죄 용서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온 삶을 통하여 죄없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므로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며(요 3:16).”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포도나무(하나님의 백성)에 속해 있는 사람마다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 것이다(요 15:1-5).


20.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엡 2:8)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그 구원하시는 방편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인 된 사람이 구원받을 만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은혜로 죄를 용서하신다. 은혜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는 선물을 의미한다. 그 은혜로운 용서를 받아들여서 내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사람마다 자신의 죄를 가슴 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통로요, 그에 대한 죄인의 응답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절반을 담당하시고, 죄인인 사람이 믿음으로 절반을 담당해서 서로 협력하여서 된다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스스로 믿음을 만들고 유지할 수 없으므로, 그것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도 사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우리의 구원은 완전하게 100% 하나님의 선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감사함으로 받아,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면서 죄인의 구원이 값없이 거저 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은 오해될 수 있다. 구원이란 누군가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죄인 된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원래 아무 대가 없이 거저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 대가를 치르신 분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바탕으로 은혜로운 구원이 이해되어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죄 용서를 위해서 하나님께 드릴 것이 전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대신 그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큰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떻게 대제사장인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렇게 큰 사랑을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는가?

죄용서와 구원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우리는 무한히 겸손하고 감사해야 한다.


21. 교회는 구속받은 성도들의 공동체,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골 1:24)


성도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의 죄가 용서되어 그들이 더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듣게 되고 배우게 된다. 그러니까 교회는 구원받는 백성들이 태어나는 매우 소중한 곳이다. 그러한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교회는 또한 그것을 전파하는 매우 소중한 곳이다.

하나님 백성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는데, 성경은 이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여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참포도나무이다. 그 참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바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의미한다(요 15:1-5). 교회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데 모인 공동체란 것은 마치 가지들이 참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과 같이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나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긴 가지, 짧은 가지, 굵은 가지, 가는 가지, 그러나 서로 모양이 달라도 그들 모든 가지는 한 생명체 안에 붙어있는 것이다.

성경은 교회가 한 생명체임을 또한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몸에는 눈, 코, 손과 발, 팔과 다리 등 여러 가지 기관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기관은 한 몸이라는 생명체에 붙어있을 때만 살 수 있고 그래야만 각각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교회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속해 있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청년과 노인, 그리고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등 매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속해 있다. 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생명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가 용서되고 그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의 생명체, 한 몸인 것이다(고전 12:12).

교회가 한 몸,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가르침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라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다르다고 해서 업신여기고, 욕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로 다르므로 한 기능이 할 수 없는 것을 서로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장점을 그 몸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몸에 모두 다 똑같이 눈만 있다면 서로 동일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을까? 눈만 잔뜩 있는 몸이 살 수 있을까? 그 몸은 물론 먹지 못할 것이다. 입만 잔뜩 있는 몸은 어떨까? 먹기만 하고 말만 하고 살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요 선물이다. 한 몸이 그렇게 다양할 때에만 그 안에서 각각이 서로 풍부하게 봉사하고 사랑할 수 있고, 그럴 때만 그 몸이 건강할 수 있다. 이렇게 건강하고 풍요로운 모습이 바로 교회여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여러 가지가 한 나무에, 그리고 여러 지체가 한 몸에 연합하여 한 생명체를 이루는 것처럼 교회는 여러 사람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이다. 여러 지체는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한뜻을 가지고 산다. 성경은 이것을 그리스도가 몸 된 교회의 머리라고 가르친다.


22. 어린이는 하나님의 구원에 포함된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연합하여 있는 교회 공동체에서 어린이는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어린이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신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돌아가셔서 그렇고,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그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그렇고, 또한 그들을 잘 양육해야 건강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교회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차별하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몸에 여리거나 아픈 부분이 있으면 더욱 그것을 보살피듯이 공동체의 여린 부분인 어린이를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고, 사랑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인격체로 대하고 양육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를 내게 오게 하라 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셨다. 또한, 그들의 순진한 믿음을 칭찬하시며 어른들의 믿음의 본으로 가르치기도 하셨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어린이는 다만 어린 사람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사랑받는 부분으로 어른과 같은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이다.

<jay.shim@dordt.edu>


글 | 심재승

칼빈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칼빈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도르트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기독교 교육, 기독교 대학 교수훈련과 공공신학에 관련해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