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도 치외법권 대상이라는 제10관

민간인도 치외법권 대상이라는 제10관

2021-11-20 0 By 월드뷰

한일 관계사 왜곡의 시작: 조일수호조규 – 강화도 조약 (4)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1


글/ 김병헌(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2020년부터 사용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1876년에 체결된 조일수호조규의 제10관을 “일본국 인민이 조선 항구에서 죄를 지었거나 조선국 인민에 관계되는 사건은 모두 일본국 관원이 심판한다.”라고 소개한 뒤, 이는 영사재판권(치외법권)을 허용한 불평등 조항이라고 서술하였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사용한 8종 검정교과서가 ‘치외법권’, ‘치외법권(영사재판권)’, ‘영사재판권(치외법권)’으로 기술(記述)하던 것을 이제는 ‘영사재판권’ 또는 ‘영사재판권(치외법권)’이라고 하여 영사재판권이 주(主)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필자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결과로 판단되지만, 이것 역시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는 없다. 특히 ‘치외법권’이 문제다.

‘치외법권’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외국인이 자신이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국내법에 적용을 받지 않고 자기 국가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국제기구 직원이나 외교사절 등에 한하여 일정 범위의 예외가 허용되어 온 국제법상의 특권”이라고 정의하였다. 또, ‘영사재판권’은 말 그대로 영사가 재판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으로, 이때 영사(領事)에 대해서 같은 사전에는 “접수국에서 파견국의 경제적 이익과 자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접수국에 파견되어 있는 공무원”이라고 정의하고, “파견국의 이해관계가 있는 산업·경제·통상 상의 제반 사항을 관찰·보호하고, 자국민을 위한 특정 행정 사무를 취급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치외법권’은 외교관이나 기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체류국의 법 적용을 면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하지만, ‘영사재판권’은 접수국에 체류하고 있는 자국민을 영사가 직접 재판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하나는 법 적용 대상이라는 점에서, 다른 하나는 재판의 주체라는 점에서 둘은 서로 다르다. 특히, 법 적용의 대상만을 두고 보더라도 ‘치외법권’은 국가를 대표하는 공무원이 대상인 반면, ‘영사재판’은 인민(人民) 즉 민간인이 그 대상이라는 점에서 동일시하기 어렵다.

또, 영사재판을 하려면 영사가 있어야 하는데, 수호조규 체결 당시 조선에는 어느 나라 영사도 부임한 적이 없다. 우리 기록에 국제법상 영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2년 4월 체결된 조미조약이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파견된 영사는 1882년 8월 30일 부산에 착임(着任)한 일본의 마에다 겐키치(前田獻吉)가 그 효시다. 수호조규 체결 당시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8관에 상민(商民) 관리관(管理官)을 두도록 하였는데, 이는 5개월 뒤에 체결되는 수호조규 부록과 무역규칙에 일본국 인민 관리관으로 표시된다. 따라서 인민 관리관의 통제하에 있는 일본국 인민은 상민이자 민간인이란 점에서 치외 법권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아직 영사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사재판이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다.

더군다나 교과서에 소개된 제10관도 일부만 제시하고 있어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다. 제10관 전체는 아래와 같다.

제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 있으면서 만약 그가 범한 죄가 조선국 인민과 관계되더라도 모두 일본국에 귀속시켜 심의 판단하며, 만약 조선국 인민이 죄를 범한 것이 일본국 인민과 관계되더라도 모두 조선 관리에게 귀속시켜 사변(査辨)하되 각각 그 나라의 법률에 의거 신문(訊問)하고 판단하여 털끝만큼도 비호하는 일이 없이 공평하고 합당하기를 힘써야 한다.(第十款 日本國人民在朝鮮國指定各口, 如其犯罪, 交涉朝鮮國人民, 皆歸日本國審斷, 如朝鮮國人民犯罪, 交涉日本國人民, 均歸朝鮮官査辨, 各據其國律訊斷, 毫無回護袒庇, 務昭公平允當.)

이는 조선국이 지정한 항구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국에 귀속시키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 관리에게 귀속시켜 심판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일본인 범죄자를 일본국 관원이 재판한다는 내용만 수록하고 이를 조선의 주권을 침해한 영사재판권 또는 치외법권 조항이라 하였다. 더구나 10관은 조·일 양국 범죄자 처리에 대한 규정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영사재판권(치외법권) 조항이라 한다면, 조선인 범죄자도 그 대상에 해당되는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 결국, 수호조규 10관은 조선국 항구에서 발생한 양국 범죄자를 누가 관할할 것인지를 정한 재판 관할권 규정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본이 개항장의 자국 범죄자에 대한 재판권 관할을 수호조규에 포함한 데는 조·일 간 사법 체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타국에 체류할 때는 별도의 협정이 없는 한 체류하는 국가의 법을 따라야 한다. 일본은 수호조규가 조선과 처음 맺는 통상 조약인 만큼 장차 조선 개항장에 체류하게 될 자국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조선이 일본과 같은 수준의 근대적 사법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면 별문제가 아니겠으나 당시 조선은 그렇지 못하였다. 조선은 1894년 갑오개혁 때가 되어서야 겨우 사법권이 분화(分化)되는데, 그때까지 조선에서는 원님이라 불리는 수령(守令)이 행정·사법·군사 업무를 모두 관장하고 있었다.

형벌 중 주리[周牢] 트는 장면

더욱이 입법 체계까지 치밀하지 못한 조선에서 범죄인 신문은 수령이 동헌에 앉아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바른대로 불지 않으면 죽음도 면치 못하리라!’라는 엄포로 시작하여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죄를 실토할 때까지 사정없이 주리를 틀어라!’라는 말 한마디에 혹독한 고문이 가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조선의 사법 체계에 일본이 자국민을 그대로 맡겨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우리가 만약 사법 체계가 미흡하여 잔혹한 형벌이 자행되는 나라와 수교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국민을 상대국의 사법권에 그대로 내맡길 수 있겠는가? 외국에 체류하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라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 인식에서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재판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조선 범죄자의 재판은 조선 측에서 관할할 수 있도록 형평성을 갖추었던 것이다.

이러한 재판 관할권에 관한 문제는 1882년에 체결된 조미 조약의 제4관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조미 조약에서도 기본적으로 미국인 범죄자는 미국이,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이 관할한다는 점에서 조일수호조규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4관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만약 조선이 이후 법률과 심판하는 법을 개정하여 미국에서 볼 때 미국의 법률 및 심판하는 법과 서로 부합하면 즉시 미국 관원이 조선에서 심리 판단하던 권한을 회수하고, 이후 조선 경내의 미국 인민들을 곧 조선 지방관의 관할에 귀속시킨다.(如朝鮮日後改定律例及審案辦法, 在美國視與本國律例辦法相符, 卽將美國官員, 在朝鮮審案之權收回, 以後朝鮮境內美國人民, 卽歸地方官管轄.)

아직 조선의 사법 체계가 미흡한 상황에서는 미국인에 대한 재판권은 미국 관원이 행사하지만, 차후 조선의 사법 체계가 진전되어 미국과 비슷해지면 미국 관원들의 재판권을 회수하여 조선 지방관 관할로 귀속시킨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교과서에서는 대부분 ‘치외 법권은 잠정적으로 한다.’라고 서술하였으나 이 또한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치외법권도 그렇지만 잠정적이란 표현이 모호하다. 당장은 치외법권을 인정하지만 추후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당장은 인정하지 않지만 추후에는 인정하겠다는 뜻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 연구에 있어서 원전(原典)을 이해할 정도의 한문 소양은 필수이다. 한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오역(誤譯)과 오해(誤解)를 초래한다. 한국사 교과서에 서술된 조약문에 대한 왜곡된 서술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문 교육을 소홀히 해 온 데 따른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다음 호에 계속)

<cleanmt2010@naver.com>


글 | 김병헌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성균관 대학교와 경원대학교 강사를 거쳐 독립기념관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는 <국역 사재집(思齋集)>, <국역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역주 이아주소(爾雅注疏) 전6권>, <화사 이관구의 언행록>, <國史, 이대로 가르칠 것인가!>,<30년간의 위안부 왜곡, 빨간 수요일>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