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차별금지법(학생인권조례)으로 검열만 난무하는 교실

2021-11-21 0 By 월드뷰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글/ 육진경(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 대표)


학생인권조례는 미니 차별금지법


예전에는 학생인권조례를 종이호랑이라고 했으나, 이제는 맹수가 되어 학교 안을 휘젓고 있다. 매년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공문이 교육청으로부터 내려오고 있으며 그 공문에 따라 교직원 교육,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가정통신문 발송 및 인권교육을 하도록 한다. 학생들에게 나가는 가정통신문 예시를 보면 인권 침해를 받으면 신고하라고 여러 개의 전화번호와 인터넷 사이트를 알려준다. 이런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신고하는 것이 체질화된다.

발의된 차별금지법(평등법)과 학생인권조례를 살펴보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

①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③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은 제1항에서 예시한 사유를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신설 2017.9.21.>

혐오 표현이란?

어떤 표현이 혐오 표현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용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합니다. 또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부정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이 담긴 옷을 입거나 상징물을 만들거나 보여주는 행동, 혐오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행동까지 모두 혐오 표현일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스스로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차별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표현은 말이나 글뿐 아니라 옷, 상징물, 몸짓이나 동작과 같은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출처 : 2021년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학생 보호자 교육자료. 서울시교육청 2021.5.

서울시교육청 교육 자료를 보면 혐오 표현을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말과 글, 옷, 상징물 동작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부조리함이나 부정적인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풍자조차 혐오 표현이라 규정하고 있다. 풍자가 사라진 학교, 사회. 이것이 전체주의가 아니겠는가? 싫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유하여 풍자하는 것조차 규제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하는 것이 혐오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고 죄라는 말은 혐오 표현이 된다. 절대적 진리를 붙들고 있는 기독교가 가장 치명적이다.

혐오 표현 예시 (서울시교육청, 2021.5.3.)

○ 차별을 조장하는 호칭: “차이나”, “(장)애자”, “된장녀” 등
○ 부정적 인식을 고착화시키는 표현: “흑인은 게으르다”, “장애인은 복지예산을 축낸다” 등
○ 불쾌감, 모욕감, 공포심을 유발하는 표현: “똥남아”, “냄새난다”, “더럽다”, “삼일한(여자와 북어는 삼 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 동물에 비유 등
○ 소수자의 정체성이나 존재를 왜곡·부정하는 표현: “너희 나라로 가라”, “동성애자는 에이즈 환자이다” 등
○ 기타 경멸의 의미를 담아 “게이냐?”, “장애인이냐?”라고 묻는 것, “오크녀”, “뚱녀” 등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 발언 등
○ ‘코로나-19’와 관련 특정 국가(지역)에 대한 차별 등 표현: “너는 병균이야”, “코로나와 같이 너희 나라로 가” 등

사회적 소수자, 특히 성 소수자라고 하는 부류를 장애인과 함께 보호해야 할 대상인지 이 사회는 아직도 합의하지 않았다. 혐오 표현의 예에 한국 남성에 대한 경멸의 의미를 담은 한남충과 한남충 비하 손짓은 제외되는 특정 성 편향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보편적 인권이 아닌 편향적인 인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 등에서 실패한 난민 정책을 규탄하는 시위도 혐오 표현에 들어간다.


단위학교와 교사의 자율성 파괴(학교 민주주의 훼손)


학교의 학칙(생활규정)은 학교 공동체 구성원인 교사, 학생, 학부모가 협의하여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반영하고, 인권조례에 맞게 학칙을 개정하라고 지속해서 공문을 보내 학교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

예를 들면 휴대폰 소지는 학생의 인권이라며 자율화하는 방향으로 학칙을 개정하도록 유도했고, 또 학칙 개정에 학생의 의견을 50% 이상으로 하도록 지속해서 권고하고 있다. 휴대폰 소지의 경우 학생 의견을 묻게 되면 당연히 찬성 의견이 대다수가 나온다. 교사의 의견은 찬반이 갈리게 될 것이고 학부모의 의견도 그렇다. 학생의 의견을 50% 이상 반영하면 다수의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학칙이 바뀌게 되어서 결국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기가 어려워진다.

단위학교별로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교육공동체가 협력하고 참여하는 것이 교육 자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에서 학교 생활규정까지 참견하고 지시하고 압력을 넣어 학교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허물고 있다.

어떤 교육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 학부모와 학생은 선택권이 있다. 그런데 이미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와 계속 발의되고 있는 차별금지법(평등법)은 학부모와 학생이 받을 교육을 선택할 권리를 차단하고 있다. 차별 없다는 학교에서 차별당하는 다수의 국민은 국가에서 제외되는가?


언어와 사고(思考)의 관계


교육에 대한 정의는 간단하지 않지만, 교육은 다음 세대에 지식과 기술을 전해주고 사회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 차별금지법인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역은 이미 부모 세대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로 혁명화하는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 부모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자녀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 ‘여자답다, 남자답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부모가 ‘여자다워야지, 또는 남자답게 해야 해.’라고 하면 잘못된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된다. 잘못된 언어를 쓰는 부모의 권위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 언어를 잃어버리면 다음 세대를 잃어버린다.

인간의 사고(思考) 활동이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가 바뀌면 인간의 사고도 바뀐다. – 독일의 언어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언어와 사고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며, 생각한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언어가 왜곡되고 오염되면 우리의 사고 체계도 왜곡되고 오염된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이고 생물학적인 사실도 외면하는 것이 젠더 이데올로기다. 남자, 여자라는 단어를 지우게 되면 사고 속에도 남자, 여자가 사라진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거짓’이 세상을 장악하는 것이고, 그릇된 교육을 받을수록 더욱 거짓에 장악된다. 남자 또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의심하고 흔들리며 평생 찾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러면 주일학교에서 또 가정에서 올바르게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차별금지법은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하고 있다. 가정, 교회, 신학교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거짓된 것과 맞서 싸워야 한다.

남녀의 구별을 없애려는 시도가 학교에서 일부 성공한 예가 출석부다. 처음에는 남학생이 앞번호 여학생이 뒷번호였던 것이 왜 여학생이 뒤로 가느냐는 여성계의 반발로 격년제로 남녀가 앞번호를 해왔다가 이제는 남녀 구분 없는 가나다순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 남학생 여학생이 아니라 그냥 학생으로, 남자로서, 여자로서가 아니라 나로서 살라는 것이다.

인격체로서 남녀는 동등하다. 그러나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지며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다르고, 호르몬, 염색체도 다르다. 체격이나 장기(臟器)도 차이가 난다. 당연하게 체력도 다르기에 100m 달리기 채점 기준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기준 달라야 한다.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녀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9).

마지막 때에 부어주실 성령님을 말씀하시면서 그냥 종들이 아니라 분명하게 남종과 여종이라고 구별하신 성경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이 마지막 때 창조 질서를 교란시킬 것을 미리 아셨다는 사실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토론 문화가 사라짐


2021년 2월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대한 토론회를 공지했다.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대해 우려하며 반대 의견을 가진 교사로서 토론회에 참가하고자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패널을 추가할 수 없다고 하며 토론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편향된 인사로 구성된 것을 지적하며 참가하기를 강력히 요구하자 교육청 관계자는 영상을 보내주면 토론회 중에 틀어주겠다고 했다. 3분 정도의 영상을 제작해 보냈는데 토론회에 내보내지 않았다. 결국, 토론회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국가기관인 서울시교육청 토론회마저 이렇게 편향적이었다.

혐오세력이라고 낙인을 찍은 교사와 시민단체에는 표현의 자유가 사전검열로 차단되었고,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대한 토론회는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학부모들의 수많은 반대 댓글이 달린 유튜브 영상은 계속 게시하라는 요청이 쇄도했음에도 토론회 직후 내렸다.

각 학교나 교실 형편은 어떠할까? 최근에 유치원생과 초등생에 대한 조직적인 페미니즘 세뇌 교육 정황이 온라인상에서 발견되어 시민단체가 이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출처: http://www.andong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99


문학에 대한 검열


문학 작품 특히 고전 문학은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바탕으로 해석해야 함에도 젠더 이데올로기로 문학을 재부팅 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고전 문학을 현재의 시각에서 현재의 잣대로 검열하고,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고 무지한 일이다.

문학 작품은 창작 당시의 사회적 배경, 문화적 현상, 유행하던 사조 등, 즉 맥락을 고려하여 감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문학 작품은 이런 여러 가지 다양한 맥락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올해 내려온 양성평등 읽기 자료 중 일부다.

[그림 1] 초등용 양성평등 읽기 자료 ‘나무꾼과 선녀’

초등용 양성평등 읽기 자료 ‘나무꾼과 선녀’는 다음과 같다. 나무꾼과 강제로 결혼했지만 결국 하늘나라로 돌아온 선녀는 현재 선녀가족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선녀가족부 장관이 된 그 선녀는 다음과 같이 연설을 하며 마무리된다. “더 이상 폭력의 편에 서지 맙시다. 이제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갑자기 선동적인 말을 외치며 나무꾼을 가해자 즉 남자는 가해자, 여자는 피해자 구도로 프레임을 짜며 마무리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초등학생도 많을 텐데 기본적인 텍스트를 무시한 이런 읽기 자료는 남성을 혐오하게 하고 문학 작품을 시대의 산물로 보지 못하게 하며 왜곡된 인권 잣대로 난도질해 버린다. 서울신문 젠더연구소와 서울특별시교육청이 공동기획한 초등용 양성평등 읽기 자료다.

[그림 2] 중등용 양성평등 읽기 자료

중등용 양성평등 읽기 자료는 선화공주와 무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동요’에 대한 내용이다. 선화공주는 목에 칼을 쓰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서동에게 단호하게 선화공주와 무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동요’에 대한 내용이다. 선화공주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너에게 변명의 말을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내 말의 무게를 진 채로 광장에 서 있어라. 네 노래를 따라 부른 이들도 너를 보며 깨닫는 바가 있겠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들도 너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언행에 가책을 느끼며 살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읽기 자료에서는 서동에게 변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선화공주는 분노에 가득한 표정으로 서동에게 평생의 징벌을 내린다. 그리고 함께 노래를 부른 언중들에게도 자신들의 언행에 가책을 느끼며 살게 할 것이라고 용서 없이 증오하고 있다. 서동요는 배경 설화가 있는 가장 오래된 4구체 향가다. 당시 이런 형식의 노래가 널리 불렸을 것으로 추정하며, 선화공주라는 인물도 실제 인물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일 뿐이다. 설화를 젠더 이데올로기로 난도질하면 어떻게 문학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겠는가?


독서 자료에서 자기 검열 강요


학교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 프로그램도 혐오 표현 검열을 위한 연습일 수 있다. 다음은 서울시교육청 독서 프로그램 활동자료다. 이 자료는 각 학교 도서관에서 독서 캠프를 할 때 사용하라고 내려보낸 것이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검열해 보라는 점검표, 일상에서 차별 표현을 찾아보는 활동과 함께 젠더 페미니즘 도서들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 2020년 독서 프로그램 서울특별시교육청

올해는 특별히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혐오 세력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엠네스티 자료를 이용하여 교사 연수까지 시행했다. 이제 잘 교육(주입) 받은 교사와 학생들은 기독교인들을 혐오 세력으로 거침없이 몰아세울 것이며, 기독교인의 언행에 대한 대응표현까지 배워 공격할 것이다. 이대로 혐오 세력이라는 낙인을 받아들인 것인지, 복음과 진리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지킬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사진 2] 엠네스티의 혐오 표현 수업 활용자료 ‘액션 툴킷’
[사진 3] 엠네스티의 혐오 표현 수업 활용자료 ‘액션 툴킷’ 스티커
출처: https://amnesty.or.kr/campaign/againsthate/


맺음말


우리는 어떤 말을 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주신 창조 질서를 따르는 말을 할 것인지 이 세대에 유행하는 말, 하나님을 거스르는 말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사악한 회색지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며 그곳은 주님께 속한 곳이 아니다. 박해를 받더라도 구별된 말, 거룩한 말, 주님께서 허락하신 말을 하는 자가 성도가 아니겠는가? 한국 교회가 이 음란한 광풍을 이겨내고, 이 땅에 거룩한 주님의 나라가 다시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선 학문과 이념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sarang2624@naver.com>


글 | 육진경

새하늘교회 사모로 주일학교를 섬기고 있으며, 31년 차 중학교 교사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한 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약칭 리커버)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