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을 반대하는 이유

언론중재법을 반대하는 이유

2021-10-06 0 By 월드뷰

월드뷰 OCTO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7


글/ 권혁만(KBS 시사교양국 PD)


곧 국회에서 언론중재법이 통과될 모양이다. 각종 국내외 언론 관련 단체에서 국회 강행처리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음에도 여당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에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현장에서 KBS 시사교양 PD로 일해 왔던 언론인으로서 추적60분, 소비자고발, 환경스페셜, 세계는 지금 등 권력과 환경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느낀 경험들을 바탕으로 지금 논란이 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허구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이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보게 될 국민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동안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취재대상자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과 회유, 그리고 방해다. 대개가 정치권력, 행정권력, 자본권력인 기득권세력은 어렵게 방송이 나간 후에도 정정 보도나 법적 소송 등으로 제작진을 괴롭힌다. 물론 방송에 하자가 있거나 보도 내용에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요구를 들어주어야겠지만, 대부분은 방송내용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면피성 혹은 나중을 위해서 제작진을 위협하는 것이다.

공정한 저널리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취재대상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해야 할 뿐 아니라 권력에 대한 독립된 감시자 역할이다. 그런데 언론중재법이 제정되면 기득권력에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고, 날개를 달아주게 될 것이다. 과연 펜과 마이크뿐인 일선 기자와 피디가 이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언론피해구제는 언론중재위나 명예훼손 처벌법 등 각종 제도와 법으로도 보장된다. 일선 기자나 PD들은 높아진 국민의식과 보편화 된 지식정보, 엄격해진 보도지침과 자기검열로 인해 실수나 하자 없는 보도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제정되면 일선 언론환경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언론의 감시기능은 점점 약화 될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고 반대로 그 혜택은 누가 가져갈까?

일차적인 피해자는 언론인 당사자다. 특히 언론 본연의 사명을 위해 일하는 정의롭고 양심적인 기자일수록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2차 피해자는 언론사가 될 것이다. 언론중재법이 발효되면 기사로 인한 엄청난 손해배상금과 법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가짜뉴스를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정권이 언론을 길들이려는 조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알 권리를 빼앗긴 국민이다. 언론의 권력과 환경감시기능이 상실될 때, 언론은 기득권자들의 선전과 홍보 도구가 될 뿐이며, 그로 인한 정책의 실패 더 나아가 부패와 비리의 폐해는 국민에게 그대로 전가될 것이다. 반대로 그 혜택은 언론감시의 대상자, 즉 기득권세력들이 가져갈 것이다. 결국, 현재 논란이 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혜택은 그 법을 강행 처리하는 세력집단에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독재법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법 제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자유를 근거로 그동안 미력하나마 언론이 권력을 감시해왔는데 이제는 거꾸로 공산 국가들처럼 권력이 언론을 감시하고 수단화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1990년 필자가 KBS 입사 후, 석 달 만에 KBS 민주화 투쟁이 일어났다. 당시 한 달간의 파업투쟁에 참여했으며 그 후 1997년 노동법 반대 투쟁, 2003년 KBS 사장임명 반대 투쟁, 2008년 미디어법 반대 투쟁, 2012년 방송 독립투쟁, 2014년 KBS 사장 퇴진 투쟁, 2017년 공정방송 및 사장 퇴진 투쟁 등 수없이 많은 방송언론민주화투쟁이 있었다. 나아진 언론환경에서 후배들에게 더는 방송 민주화를 명분으로 한 파업투쟁은 없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것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비록 거대권력에 무임승차한 정부이지만 그래도 이 정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최소한 지난 수십 년간 언론노동자들의 희생과 피로 이룩한 언론의 자유만큼은 보장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스스로 방송과 언론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이 정부가 오히려 이전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악법을 국민을 위한다는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다. 정말로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법이 발의되자마자 진영논리를 떠나 야당과 국내외 모든 언론단체 심지어 여당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법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이 법이 제정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2020년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지수를 보면 한국은 180여 개국 중 42위로 유럽 국가들을 제외하고, 아시아권에서는 비교적 선두그룹에 있다. 하지만 이 악법이 제정되면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북한, 중국, 러시아처럼 매우 심각한 단계에 이를 것이다. 이미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제언론단체에서도 비판성명이 나왔다. 자유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이 1970~1980년대의 군사독재 시절로 후퇴하게 될 것이며 결국, 수십 년간 언론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겨우 정상궤도에 오른 한국 언론에 미중유(未曾有)의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이 악법으로 인해 국민의 정당한 알 권리가 제약되고 권력의 부패와 기득권의 비리가 언론의 감시로부터 성역화됨으로써, 그 피해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k-immanuel@daum.net>


글 | 권혁만

KBS 입사 후 시사교양국, 편성기획에 근무하며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 추적60분, 세계는 지금, 환경스페셜, 소비자고발, 코리언 지오그래픽 등 다수의 시사다큐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KBS개혁추진단 제작분과 팀장, 도쿄 PD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대상(사회문화부문, 2015년), 27회 한국PD대상(시사다큐 작품상, 2015년), 안종필 자유언론상(추적60분, 2005년), 이달의 PD상(환경스페셜, 2011년 9월)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