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인권과 언론의 자유
2021-10-07‘입법 폭주’ 언론독재 사회가 지향하는 곳
월드뷰 OCTO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
글/ 이영풍(KBS 보도본부 기자)
하나님은 왜 인간을 모두 다르게 창조하셨을까? 남성과 여성, 피부 색깔, 성격과 성품, 재능과 달란트, IQ와 EQ 등등. 왜 이렇게 모두 다르게 창조하셨을까? 사람의 지문을 보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 깊은 섭리의 실체를 우리가 알 길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인간이 어차피 서로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생각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다.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생각, 철학, 기호, 삶의 지향점이 모두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한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대접할 때 우리는 행복하고 평화롭고 온전한 사회를 이뤄갈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이 서로 간의 공감(共感)이고, 그 공감이 온전하게 잘 이뤄지는 사회가 모두가 행복한 사회, 평화로운 사회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vs 전체주의 국가
역사 속에서 인류는 그동안 크게 두 가지의 체제를 경험하고 있다. 하나는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자유가 아예 없는 전체주의 국가체제이다. 하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대한민국 등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아프가니스탄, 중국, 구소련 등이다. 핵심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전자는 종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폭넓게 존중받는 사회인 반면 후자는 종교 및 언론의 자유는 고사하고 천부인권이 압살당하는 체제이다. 과연 어느 체제에서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3백여 명의 한국 정부 현지 조력자들이 왜 그 험한 길을 돌고 돌아 한국행을 선택했겠는가? 답은 명확하다. 자유다!
모두가 갈망하는 자유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종교의 자유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언론자유이다. Freedom of Speech. 누구나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표명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을 보장하는 나라이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천부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독재국가이다. 일당 독재당의 수령, 당 서기나 소수의 독재자 집단이 나머지 모든 사람의 생각과 철학, 종교를 통제하려 드는 ‘1984년 조지오웰’식의 ‘동물농장’ 같은 국가가 그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체주의 국가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점령하고 나서 제일 먼저 착수하는 작업이 왜 교회와 언론사 폐쇄이겠는가? 베트남이 그랬고, 북한이 그랬고, 중국 공산당이 그랬고,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그러하다.
눈과 귀, 입 모두 닫아라! 언론독재 시대 열려
“입 닫아라! 눈과 귀도 막아라!” 이런 선전 구호가 난무하는 사회로 진입하는 순간 그 사회는 법치가 지배하는 국가가 아닌 일당 독재나 소수의 인치(人治)가 지배하는 독재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야만의 시대이며, 공정과 정의, 인권이 탄압받는 시대가 열린다. 이런 식의 독재사회로 진입하는 ‘헬 게이트’의 문고리를 지금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 열었다. 그게 바로 ‘언론중재법’으로 쓰지만 실은 언론독재법, 언론재갈법, 언론봉쇄법으로 읽히는 법안의 실체이다. 왜 그런가? 난해한 육법전서식이 아니라 쉽게 그 실체를 살펴보자.
➀ 즐겨보는 인터넷 기사가 수시로 차단된다. 국민의 알 권리는 무시당한다.
언론중재법에는 ‘열람차단청구권’이 포함됐다. 간단하다. 누구든지 자신과 관련한 기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거나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 얼핏 좋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주로 관심을 갖고 다루는 권력자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문제를 제기하면 인터넷 신문과 포털에서 볼 수 없게 된다. 부정부패,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자의 입장이라면 이 얼마나 좋은 ‘도깨비방망이’요, ‘손오공의 여의봉’이겠는가? 1987년 대통령 직접선거 체제를 이끌어낸 故 박종철 씨 물고문 치사 사망 사건은 공직자 한 명의 제보로 시작해 중앙일보의 특종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 이후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많은 언론의 경쟁 보도로 그 실체가 드러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지금 집권 여당이 통과시키려고 하는 언론중재법이 그때 있었다면 아마도 박종철 씨 사망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취재 초기에 기사 출고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집권여당이 지금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이 실행되는 순간 국민의 알 권리가 고스란히 차단당하고 무시당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➁ 취재원이 다 드러나 언론에 제보할 길이 막막해진다.
이 법에는 또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고의 또는 중과실’ 사유를 예시했다. 이를 근거로 소송이 제기되면 언론사의 기자나 피디는 보도내용이 사실이란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 의혹이나 범죄사실을 제기한 취재원을 고스란히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변(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김태훈 대표 변호사는 “기자가 제보자를 공개하게 되면 향후 어느 누가 권력자들의 비리를 언론에 제보하겠는가?”라며 이 법의 본질적인 폐해와 문제점을 지적한다.
➂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사들의 탐사보도 끝장난다.
이 법은 다른 언론사의 보도내용을 인용하는 길도 막아놓았다. 정정, 추후보도 내용이 포함된 기사를 “별도의 검증 없이” 인용하면 하위, 조작 보도로 볼 수 있게 했다. 더구나 인터넷 신문은 정정, 반론 청구만 있어도 이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언론사들의 릴레이식 탐사보도는 복잡한 베일에 가려져 있는 거대권력이나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피아 세력의 비리나 범죄를 드러내 법치의 심판을 받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법의 통과로 취재원이 다 드러나 권력 내부의 심층적인 접근이 아예 차단되는 것부터 문제이고, 이제는 인용 보도가 불가능해져서 이러한 형태의 다양한 탐사보도도 불가능해졌다.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도 폭넓게 차단된다.
➃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권력자들의 전략적 봉쇄소송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 법은 피해 주장액의 5배까지 징벌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고 초기 법안개정안에는 그 기준 하한선도 언론사 매출액의 1만분의 1부터 시작한다고 규정했었다. 연간 매출액이 1조3천억 원 규모인 KBS의 경우 사건 당 1억3천만 원, 연간 매출액 3천억 원 규모인 조선일보의 경우 사건 당 3천만 원에서부터 손해배상금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루에 보도되는 기사 건수를 고려한다면 이 법을 악용해 무분별한 소송전을 펼칠 가능성이 큰 권력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안성맞춤인 법인 셈이다. 반면 언론사는 거의 매일 천문학인 손해배상 위협에 시달린 나머지 보도를 제대로 못 하는 위축 효과 및 자체검열 부작용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이는 곧 언론자유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당한다.
➄ ‘전직 고위공직자는 제외’, 이 법의 최대 꼼수인가?
이 법 초안에 대해 각종 반발여론이 심화되자 집권 여당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등 현직 고위공직자를 제외한 수정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고위공무원들도 퇴직하고 나면 이 법을 ‘도깨비방망이’처럼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도 이 법이 실행되는 내년 5월 이후면 이 법을 ‘손오공 여의봉’처럼 악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퇴임 후 전직 신분이면 고위공무원 예외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되는 셈이다.
가짜뉴스 잡는 척, ‘진짜뉴스’ 죽이는 법
이 법을 통과시킨 집권 여당은 언론중재법이 가짜뉴스를 잡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실은 ‘진짜뉴스’ 죽이는 법이 아닌가? 가짜뉴스는 현행 언론중재위원회의 반론 보도와 정정 보도 청구, 민, 형사 손배소 제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의신청 등의 제재절차를 통하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여당은 이런 강경 무리수는 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들에게는 대한민국 헌법이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천부인권과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결국, 내년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전에서 유리하게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고 셀프검열하게 만들려는 것 아니겠는가. 퇴임 후 국정 최고 책임자의 안위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언론자유 보장되어야
지난 8월 폭염 속의 언론독재법 반대 투쟁 현장에 매일같이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특정 보수언론을 당장 폐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언론독재법 시위를 방해하는 난동 시위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왜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리도 참지 못하고 훼방을 놓으려고 할까?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고 악마화하는 순간 그 빈 틈바구니를 열고 스며든 세력은 바로 소련의 스탈린이나 독일 나치의 히틀러 같은 극단적 전체주의 세력이었음을 벌써 잊었나?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탄압받고 인권이 파탄 나는 그런 사회로 과연 가고 싶은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인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바로 그 점을 우리 국민에게 묻고 있다.
<yplee506@gmail.com>
글 | 이영풍
영국 웨일즈 카디프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석사)을 졸업했으며, 2001년 아프가니스탄 KBS 종군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2015), KBS 우수프로그램 최우수상(2014)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공감으로 집권하라(2020)>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