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의 흐름과 기독교 성 가치관 교육의 나아갈 길

성교육의 흐름과 기독교 성 가치관 교육의 나아갈 길

2021-08-03 2 By 월드뷰

월드뷰 AUGUST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글/ 김지연(사단법인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


조기 성애화 교육의 현장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료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6~17).


외설적인 성교육을 반대하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다

최근 울산시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울산교총)가 울산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이른바 ‘포괄적 성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청소년의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조기 성애화’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울산교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동성애, 동성혼, 혼전 동거, 청소년들의 성관계 할 권리 등에 대해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교육적 가치와 사회통념에 맞지 않는 교육”이라며 “조기 성애화가 되지 않도록 학생들의 발달 시기에 맞춰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울산의 학부모 단체도 울산교총을 지지하며 외설적인 성교육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기 성애화’(early sexualization)란 아동의 전반적인 사고가 성(sexuality)에 함몰되어 전혀 성적이지 않은 일반적인 대상을 성적인 대상으로 대하거나, 성적인 상황이 아닌 것을 성적인 상황으로 해석하는 현상 즉 성적인 이슈로의 전환과 몰입이 강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성애화에 의한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 현상은 남자와 여자 즉 이성 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성애화가 심각하게 진행될수록 성적 대상(sexual objectification)으로 삼는 범주는 매우 광범위해지며 때에 따라서는 사람이 아닌 것도 성애화 대상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이 음욕의 죄악된 범주를 제한 없이 펼쳤을 때 동성이나 기르는 가축까지도 성적 대상으로 삼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등 삶의 중요 영역에 대한 통찰이 전혀 열려있지 않은 어린 자녀가 외설적 도서, 음란물 등에 노출돼 성적 충동에 함몰되길 바라는 양육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마땅히 행할 바를 아이에게 가르치고, 회개의 통로를 알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알게하라

인간에게 내재한 각종 충동은 인간의 행동을 끌어내는 엔진 역할을 한다. 성적인 충동 역시 그러하다. 성적 충동은 성령 안에서 잘 조절되고 절제돼야 함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기독교 양육자들은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결혼이라고 하는 지평 속에서 배우자와의 성관계를 통해 펼쳐지는 것만이 옳다. 결혼 이외의 경위로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은 간음이다.’라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교육해야 한다.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 하신 말씀(히 13:4)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이러한 결단 앞에서 죄 많은 인간의 뇌리에 파고드는 성애화의 사고는 점차 힘을 잃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이미 어긴 청소년, 즉 이미 간음하였음을 상담해오는 청소년을 만난다면 그들을 정죄감에 머무르게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고 회개하도록 인도해서 죄책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음란물을 즐기거나 조기에 성 경험을 했어도 교육과 신앙훈련의 현장에서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바른 성경적 성 가치관 교육을 하고 회개와 성화를 위한 지평을 열어준다면 조기 성애화된 부분도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다.

미디어와 문화가 성애화 일변도로 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바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영역이 바로 교육현장이다. 차세대를 바르게 훈육하기를 포기한 채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간음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조기 성애화 교육의 피해자가 되는 아이들

외설적 성애화 성교육에 노출된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된 성교육의 피해자인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성적 자기 결정권’ ‘합의 만능주의’ ‘콘돔 만능주의’를 앞세워 혼외성관계와 낙태의 길에 내몰리곤 한다. 실제로 인간의 조기 성애화는 성중독, 가정파괴, 자살, 신앙을 저버리는 일로 연결될 수 있다.

인간이 고도로 성애화된 상태에서는 성적 대상화를 못 할 상황이나 대상이 없다. 모든 대상을 성적 대상으로 삼켜버린 소돔과 고모라는 과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로마에서는 인간이 죄악된 성애화의 길로 갈 데까지 가고 나면 동성조차도 성적으로 대상화해 그릇된 음욕의 일을 일삼는다고 경고하고 있다(롬 1:26~27). 조기 성애화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만물과의 건강한 역동을 파괴하고, 인간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 형성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 안에서 거룩한 길로 나아가는 성화(sanctification)의 길을 훼방한다. 즉 영혼 파괴의 지름길 중 하나가 조기 성애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린 나이에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해 성 충동에 시달리게 만드는 성애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 경험을 하는 직접적인 인체의 부위(생식기 등)에 대해 어릴 적부터 끝없이 호기심을 품게 하고 각종 경험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생식기를 손으로 자꾸 만져보고 자극하도록 유도해 자위에 중독되도록 간접적으로 유도하고, 성관계하는 방법을 시각적 자료로 적나라하게 가르쳐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것도 대표적인 조기 성애화 교육이다.

어린아이에게 권총의 각 부위, 명칭을 일러주고 그 기능과 권총 쏘는 방법을 가르치며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준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그 아이는 총을 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질 것이다. 그나마 아이들에게는 권총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직접 쏠 가능성은 작다. 인간 내면에 총을 쏴보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올라올 만큼 기본적인 욕구가 내재화돼 있지도 않다.

그러나 생식기는 다르다. 생식기는 총과 달리 아이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 성적인 충동과 호기심은 인간의 내면에 가득히 존재한다.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 학교장, 여성가족부 장관, 성 교육자들은 무분별한 성 충동을 일으키는 성교육에 반대하는 양육자들과 교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성교육의 두 흐름


성교육의 두 흐름과 양육자들의 반응

성교육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 그중 하나는 성적 자기 결정권에 따라 합의(consent)를 했다면 청소년 성관계를 인정하라는 자유방임적 교육이다. 대신 원치 않는 임신이나 성병을 피할 수 있는 있도록 콘돔과 각종 피임법 사용을 권장하는 교육으로 일명 세이프 섹스’(safe-sex) 교육이라고 불린다. 또 다른 흐름은 청소년들에게 결혼과 가정 그리고 책임, 생명의 중요성을 알리는 훈육을 통해 혼외성관계를 절제하고 결혼을 통해 성(성)의 지평을 열어가도록 가르치는 앱스티넌스’(abstinence) 교육이다.

최근 전자에 해당하는 성교육 책자가 학교 현장에서 발견돼 적잖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선정하고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한 ‘나다움 어린이 책’이 문제가 된 것이다. ‘나쁜 교육에 분노한 학부모 연합(분학연)‘등 시민단체는 여가부가 추천·배포한 책은 ‘아동들에게 과하게 성적인 충동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동성애·동성혼을 지나치게 미화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많은 양육자는 ‘여가부가 양육자들의 동의도 없이 청소년의 성관계를 학생의 권리인 양 부추기는 성애화(sexualization) 도서를 초등학생용으로 배포한 것 아니냐, 당장 추천을 취소하고 교육현장에서 수거하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어린 자녀를 둔 김병욱 국회의원은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가부가 배포한 책이 초등학생에게 동성애와 조기 성애화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여성가족부가 제공한 동성애를 조장하고 성관계를 외설적으로 묘사하는 동화책을 전량 수거 및 배포를 금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게시 이틀 만에 5만 명의 국민 동의를 얻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나다움 어린이 책’을 배포한 여가부의 폐지를 요청한다.”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조기에 성적인 행위를 경험하고 동성 간 성행위든 이성 간의 성행위든 모든 종류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누리라고 여성가족부가 부추기는 것 아니냐며 학부모들이 항의하는 것이다. 결국, 여가부는 문제가 된 도서 7권을 모두 수거하겠다는 입장을 잠시 보이기도 했다.


한국 학부모만 별나다고?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런 학부모를 향해 세상에 뒤떨어졌고 손가락질한다. 외국의 학부모들은 청소년 자녀가 성관계하는 것에 대해 관대한데, 한국 학부모들만 꽉 막혔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즉 조기 성애화 교육에 반기를 들고 항의하는 학부모의 거센 움직임은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미국, 캐나다 등 서구에서는 조기 성애화 교육의 문제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미국 루이지애나, 캘리포니아 등 많은 도시에선 어린이 성애화 반대를 위한 학부모들의 등교 거부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도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몸을 더듬어보라고 하는 성교육’을 그만하라는 학부모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1)

2016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는 외설적 성교육을 받고 잘못된 성 행태로 빠지는 자녀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학부모들이 2,000명의 자녀를 자퇴 혹은 전학시키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2) 한국도 서구의 일부 잘못된 성교육 사조를 그대로 답습할 게 아니라 한국 실정과 정서에 맞는 성교육을 해야 한다. 조기 성애화 교육은 위험한 성행위를 조장해 각종 청소년 성범죄와 성병, 성중독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양육자들이 먼저 인지하고 자녀들에게도 교육해야 한다.


올바른 성 가치관 교육의 효과는 확실하다

아이들에겐 어른이 지켜주어야 할 동심이 있다. 또한, 초등학생은 삶에 대한 통찰, 인내심과 절제력이 부족하다. 자신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성숙도도 낮다. 사물에 대한 배경 지식과 경험이 충분하지 못하고, 실패와 성공을 통한 인생 철학 등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성에 일찍부터 노출되고 탐닉하도록 성적 자극과 충동을 유발한다면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양육자는 자녀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잘 성장해서 사회 구성원으로 잘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 행복하고 통합적인 삶을 살아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과 사랑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문 26조는 “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 ‘우선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Parents have a prior right to choose the kind of education that shall be given to their children.)”라고 선언한다.

헤리티지 재단 설립자이자 대표를 지낸 에드윈 퓰너(Edwin Feulner)는 성적 충동에 그대로 끌려다니는 성애화 교육이 아닌 성적 충동을 적절하게 절제하고, 결혼과 가정을 위해 지킬 것은 지키도록 훈육하는 성교육의 성과에 대해 기고했다. 그는 5,000명의 10대를 조사한 결과 혼외성관계를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 청소년이 그 서약식 후 성적 행위가 3분의 1로 감소했으며, 부모가 이를 지지할 때 성관계 가능성이 75% 하락했다고 보고했다. 뉴욕주 먼로 카운티는 “지금 나는 성관계할 나이가 아닙니다(Not Me, Not Now)”라는 공익광고를 TV와 라디오를 통해 방송했다. 청소년들의 성적 절제를 장려한 결과 이 광고가 방영되는 기간 15~17세 여학생들의 임신율이 1,000명당 63.4명에서 49.5명으로 감소했다. 15세의 성행위는 46.6%에서 31.6%로 하락하는 효과를 거뒀다. 아칸소주 리틀록에서도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를 위한 청소년 절제력 향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교육인 ‘자발적인 절제(Abstinence by Choice)’ 프로그램을 매년 20개 학교 4,000여 명의 7~9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교육받지 않은 학생에 비해 절제 교육을 받은 학생의 성행위 시작사례가 대폭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바른 성교육은 생명을 잉태하는 소중한 행위에 있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고 특히, 청소년기에는 절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기독교 성교육은 청소년의 성적인 욕구나 호기심 충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요소들의 존재를 인정하되 성적 행위를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충동과 욕구를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면서 청소년 시기를 보내야 함을 교육하고, 만일 실족하여 죄를 지은 청소년이 있다면 회개하여 주님을 더욱 잘 믿도록 돕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외설적 성교육을 부추기는 성 교육자들의 핵심적 거짓말

한국 전체 청소년의 첫 성관계 경험 연령이 평균 13.6세이므로 성 윤리 교육 및 혼외성관계의 문제점을 알리는 교육은 아무 효과가 없다. 차라리 어릴 때부터 안전한 성관계 방법, 즉 피임법을 교육해야 한다.

성교육과 관련해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절제 교육 무용론을 주장하며 피임 교육의 중요성만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질병관리청 ‘제14차(2018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중 약 94.3%는 성관계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5.7%에 해당하는 응답자의 첫 성 경험 연령이 평균 13.6세였다. 마치 우리나라 전체 청소년이 평균 13세에 성관계를 하므로 피임 위주의 성교육이 답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러나 국내의 수많은 세속적 성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우리나라 청소년들 전체 평균 성 경험 연령이 13.6세이니 이미 결혼을 통한 성관계의 당위성이나 절제 교육은 잘못된 구시대적 교육이라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런 일은 허다하다. 미국 역시 청소년 대부분이 성관계를 즐기고 있다는 언론 조작이 있었다. 그러나 가족성장국가조사(the National Survey of Family Growth)에 따르면 2006~2008년 청소년 중 약 60%는 성관계하지 않고 절제하며 생활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짓말까지 동원해가면서 세속적 성 가치관을 퍼뜨리는 성 교육자들은 아동 청소년들이 합의하에 하는 성관계 즉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아닌 합의에 의한 성행위라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성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이고 옳은 교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소년의 혼외 성행위 즉 간음도 학생의 권리로 보자는 것이다.


1) https://www.change.org/p/jim-cunningham-stop-self-touching-being-taught-in-sex- education-in-primary-schools
2) https://www.hangyo.com/news/article.html?no=46427


피임 위주의 성교육 방법, 무엇이 문제인가


아동 청소년에게 시행되는 피임 교육의 실태

‘청소년의 원치 않는 임신이 낙태 등 심각한 문제로 연결된다. 따라서 각종 피임법을 어려서부터 상세히 가르치는 교육이 최선의 교육이다.’라고 하면서, 성교육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콘돔, 월경주기법, 먹는 피임약, 응급 피임법, 기초 체온법, 점액 관찰법, 자궁 내 장치, 살정제, 정관 수술, 난관 수술, 질외 사정법 등 10가지가 넘는 피임법을 아동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중학교 보건 교과서에는 정관 수술을 통한 피임 방법이 포함돼 있다. 질외 사정법에 대해서는 “사정 직전에 음경을 질 밖으로 빼내어 사정하는 방법”이라며 “쿠퍼선액에도 정자가 들어 있어 실패할 확률이 높으므로 피임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다”라고 주의를 시킨다. 성관계 후 복용하는 응급 피임약에 대해서는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먹어야 하고 구입할 때 의사 처방이 필요하며… 반복 사용하면 피임 효과가 떨어진다”라고 상세히 교육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내가 피임을 한다면 어떤 피임 방법을 선택할 것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라며 학습과제를 제시한다. 이것이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피임 방법과 주의사항 등 사실을 알려주는 교육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항의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즉 현재 시행되는 이런 피임 위주의 교육을 시행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방향성 및 방법의 그릇됨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되는 아동 청소년 대상 피임 위주의 성교육 방법, 무엇이 문제인가

이와 같은 피임 교육 방식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많다. 성교육 현장에서 시행되는 청소년 피임 교육 방식의 문제점은 크게 다섯 가지다.

1) 미성년자의 혼외성관계를 당연한 학생의 권리로 전제하고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청소년에게 피임 교육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전제’ 자체를 잘못 설정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피임 중심 교육은 청소년 사이의 성관계, 즉 미성년자의 혼외성관계를 당연한 학생의 권리로 전제하고 있다는 말이다.

2017년 서울 모 중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집단 피임 교육을 받고 심리적 고통을 하소연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했다. 청소년에게 바람직한 성문화를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어느 센터에서 ‘남친(남자친구)과 여친(여자친구)이 있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이라며 콘돔사용법을 가르쳐 줬다. 그 자리에서 강사가 여학생에게 남성 인조 성기에 실습 삼아 콘돔을 씌워보라고 시켰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부천의 모 중학교에서도 ‘남친을 믿지 말고 콘돔과 피임약을 믿으라’라며 콘돔사용 실습 성교육을 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부천의 한 학부모가 이렇게 항의했다.

“이런 종류의 피임 교육에는 합의를 전제로 ‘결혼 여부를 떠나 남친, 여친과 얼마든지 자유롭게 성을 즐기라’라는 메시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기독교 양육자들은 이 부분에 매우 당황하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권리로 우리 자녀에게 이런 자유주의 성교육을 주입하는 겁니까.”

“네 남자친구(혹은 여자친구)와 성관계할 땐 콘돔 정도는 쓸 줄 알아야 해. 애라도 생기면 어떡하니. 낙태하면 부작용 심해. 너의 몸은 소중하니까 콘돔을 챙겨.”

이것이 청소년 성교육 현장의 일상적 메시지다.

이는 청소년 간 혼외성관계를 정상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부추기는 교육이다. 미국과 유럽의 성교육 사조를 아무런 비판 없이 답습한 결과다. 놀라울 정도의 문화 사대주의다. 그러니 청소년 피임 교육에 항의하는 학부모와 교사가 늘어나는 것이다. 피임 교육의 잘못된 전제를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 모든 피임 교육은 1남 1녀로 구성되는 결혼이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성관계는 결혼 후 부부관계에서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어야 한다. 전제를 잘못 세우면 아무리 훌륭한 정보 전달도 결국 외설적 교육이 되고 만다.

울산에서 교회 중심으로 청소년 성교육을 진행하는 김미혜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합의하고 청소년끼리 하는 성관계를 정상이라고 전제하고 시행하는 피임 성교육은 여러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무리 훌륭한 피임 기술이 나온다 해도 전제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분명 다음 세대를 도덕적으로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전제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쉬쉬하는 은폐식 성교육이 답은 아니다. 잘못된 전제를 세우고 무책임하고 실험주의적인 방식으로 성교육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없다. 성교육에선 극단적 금욕주의도, 맹목적 자유주의도 모두 위험하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성경 말씀에 기반을 둔 성교육, 즉 바른 전제 위에서 진행되는 성교육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전제를 바로 세우면 청소년의 성 가치관을 바로 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성관계는 부부, 즉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전제하에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어긴 청소년이 정죄감에 머물다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간음했을 때는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선 진정한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을 교육해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2) 생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현행 미성년자 대상 피임 교육의 두 번째 문제점은 ‘잘못된 전제’의 결과물로서, 그 전제와 연속 선상에 있다. 부부간 정상적 성관계의 열매로서 임신이 아닌 ‘미성년자 간의 혼외성관계로 발생한 임신’을 우려한 나머지 생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지금처럼 청소년 간 혼외성관계를 정상으로 인정하는 피임 교육을 받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청소년들의 뇌리에는 소중한 아기에 대한 첫인상이 왜곡이 일어난다. 즉 생명이 주는 기쁨과 소중함을 배우기도 전에 생명을 피해야 할 대상 혹은 위기와 저주의 첫인상으로 각인시키는 잘못된 효과를 낳게 된다는 말이다.

2015년 광주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점을 발견한 교계와 시민단체가 조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잘못된 성교육의 부정적 효과가 그대로 드러났다. 앳된 목소리의 여자 청소년이 갑자기 “청소년도 성적 권리가 있고 섹스를 합니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당당하게 “임신과 출산은 섹스한다면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발언했다. 이 여학생은 임신이 위험한 것이라고 왜 이렇게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청소년의 성관계를 통한 임신을 경고하며 피임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에서 ‘위기’라는 사고가 그대로 스며 나온 것이다. 청소년을 만나 상담하다 보면 임신과 생명에 대한 인상이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변화돼 있음을 인식한다. 임신 자체가 위기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차세대의 심령 속으로 파고들어 있음을 체감한다. 교회 안에서도 그런 아이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 가치관 교육을 한 뒤 한 여학생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청소년 간의 성행위로 생긴 아기가 아닌 부부간의 성관계로 생겨난 아기라면 그 임신은 위기가 아니겠죠. 그런데 이제는 왠지 임신이나 출산 자체가 커다란 트라우마처럼 무의식적으로 각인돼 있어요. 원치 않는 청소년 임신에 대한 대책으로 피임 교육을 받아 왔거든요. 임신이라는 단어에 결혼이 아닌 청소년 성관계, 사귀는 오빠와의 성행위라는 단어가 늘 세트로 딸려 나오는 것같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 과정에서 생명 잉태는 축복이라기보단 피임을 제대로 못 한 처참한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이는 부정적인 생명관이 싹터 아기에 대한 첫인상 자체가 왜곡된 경우에 해당한다. 앞서가는 피임 교육을 한답시고 부부간 성이 아닌 청소년 간 성적 결정권을 강조하다 보니 그 결과물인 임신과 새로 태어날 인간에 대한 인상도 달라져 버린 것이다. 청소년의 프리섹스를 권리로 전제한 피임 교육을 통해 그 프리섹스의 결과 파생된 생명을 ‘소중한 자녀’가 아닌 ‘지워버려야 할 골칫덩이’로 대상화하기에 이를 수 있다. 즉 간접적 낙태 옹호 효과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양육자들은 태중의 자녀에 대한 첫인상이 위기이자 혐오의 대상이라는, 끔찍한 인간관을 구축하는 성교육을 반대해야 한다. 자기 성적 결정권의 무한 주입의 결과가 결국 생명 경시 및 무의식적 살인 의지로 연결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생명 잉태를 인생의 위기로 각인하는 교육의 방향성을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까. 결혼은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1남 1녀가 영육 간의 연합을 맹세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다. 이 결혼 안에서 성, 즉 부부간 성관계에 따른 임신과 출산이 먼저 순리적으로 교육된다면 생명 탄생에 대한 첫인상이 부정적인 것으로 왜곡, 주입되는 것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크리스천 부모는 세상 성교육이 청소년 성관계에 따른 위기로서 출산을 각인하기 전에 기쁨으로 자녀를 낳고, 이 땅에 충만해져 가는 통로가 되는 가정의 가치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구체적으로 자녀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부모가 직접 자녀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더욱 깊게 체험하게 된 소소한 기쁨을 아이들과 진솔하게 나누는 것도 바람직하다. 결혼 안에서 정상적인 부부관계, 따뜻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해서 생명은 저주와 위기가 아니라 무한한 기쁨이자 설렘, 희망이라는 따뜻한 메시지가 전달돼야 한다.

3) 그 방법들의 불완전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은연중에 맹신하게 만든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진행되는 피임 교육의 세 번째 문제점은 질외사정, 콘돔, 경구 피임 등 10가지가 넘는 피임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만, 막상 그 방법들의 불완전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은연중에 맹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피임의 불완전성이란 쉽게 말해 원치 않는 임신이 발생할 수 있음을 뜻한다. 물론 많은 성교육 교육자들이 피임 방법이 불완전함을 간단하게 언급 정도는 한다. ‘피임에 실패할 수 있으며 100%의 피임 성공 기술은 없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피임을 실패한 상황을 깊이 있게 직면하는 훈육을 충분히 하지는 않는다.

바이엘 코리아 여성건강사업부가 작년 가을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콘돔의 피임 성공률은 82%에 그친다. 즉 콘돔을 사용해도 5명 중 1명은 임신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월경주기를 염두에 두고 배란기를 피해 성관계를 하는 방식을 일컫는 자연주기법 역시 피임 성공률은 76%였다. 4명 중 한 명은 피임에 실패해 임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체외사정을 통한 피임 방법 역시 피임 성공률이 70%대에 머물렀다. 경구 피임약의 피임 성공률은 91%로 발표됐다. 결국, 피임의 기술들에 대한 통계는 피임했어도 임신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보여준다.

청소년이 성적 충동에 몰입된 상태에서 ‘설마 아기가 생기겠어’라는 마음으로 콘돔을 맹신하게 해서는 안 된다. 피임 기술을 과신하게 하거나 그 한계를 불명확하게 교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 어떤 피임 기술도 100%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즉, 피임 방법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태중에 생명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성관계한 두 남녀가 아기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됨을 의미한다. 얼마든지 부모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있지만, 이에 관한 생각을 마비시키고 오로지 피임약을 입에 털어 넣는 것, 혹은 콘돔을 사용해 성관계하는 것까지만 생각이 머물게 하는 성교육은 매우 반성경적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이름의 끝 모를 쾌락추구 논리만 있고 그 결과 생기는 생명에 대해서는 ‘난 몰라. 생각해 본 적 없어’라고 결론 내리게 만드는 교육은 기독교 성교육에서 철저히 지양해야 한다.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경험한 한 여자 청소년의 탄식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무리 피임을 잘한다 해도 아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어요. 그냥 피임 방법 위주로 교육하고 그 방법이 가진 불확실성에 대해선 딱 부러지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이런 교육이야말로 무책임한 성교육 아닌가요. 성관계를 즐긴 후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사고를 마비시키는 교육은 정말 잘못된 성교육입니다. ‘콘돔 잘 챙겨서 성관계하라’가 아니라 ‘성관계는 결혼한 뒤 하는 거야’라고 제게 말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4) 각종 피임 방법이 정신과 육체에 끼치는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알리지 않는다.

현재 피임 교육의 네 번째 문제점각종 피임 방법이 정신과 육체에 끼치는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구에서는 10대 청소년의 가방에서 피임약이 나와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으로 점차 인식돼 가고 있다. 10대가 피임약을 책가방 한쪽에 잘 비치하고 챙겨 먹는 것을 장려하는 피임 교육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등에서는 능률적인 피임을 원해서 피하에 호르몬을 이식한 청소년에 대한 통계도 등장한다. 그러나 의약학계 전문가는 피임약의 부작용에 대해선 쉬쉬하거나 정확히 숙지시키지 않는 분위기를 우려한다. 각종 호르몬 피임약이 우울증과 혈전증 등의 위험을 상당히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샬롯 스코블런드 교수팀은 2000~2013년 15~34세 여성 106만여 명을 대상으로 호르몬제 피임과 우울증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호르몬 피임제를 사용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이보다 우울증 위험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식형 호르몬 피임제를 사용한 10대는 우울증 위험이 1.8배, 프로게스테론 전용 알약 복용 여성은 2.2배 높았다. 해당 연구팀의 오드빈드 리데가드 교수는 “호르몬 피임약을 복용하는 10대에서 우울증 위험이 평균 2배 가까이 높았다. 이는 10대는 피임제를 먹기 전 그 부작용을 반드시 숙지할 필요가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라고 조언했다. 한때 피임약과 우울증은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주장을 뒤집는 발표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피임약의 단기적 부작용에만 집중한 채 장기적 부작용은 간과해 온 실수를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즉 10대 때 먹은 피임약이 성인이 돼서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연구자료 발표언론인 ‘컨버세이션’은 10대에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은 성인이 돼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 혹은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우울증 위험이 간과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에는 경구 피임제가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축소한다는 발표도 나왔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의대 니콜 피터슨 교수팀은 “피임약의 주성분인 합성 호르몬이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 피임약을 복용하는 일부 여성에서 불안·우울 증상이 동반되는 것은 두뇌 부위의 크기가 축소되면서 올바른 기능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피터슨 교수팀은 그 근거로 90명의 여성을 경구 피임약 복용군 44명과 비 복용군 46명으로 분류하고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조사한 결과를 제시했다.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은 안와전두피질과 후방대상피질의 크기가 수축해 두께가 얇아졌다고 발표했다. 후방 대상 피질은 내향적 사고를 관장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피임약의 혈전 생성 부작용 역시 부각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피임제 복약지도 매뉴얼을 통해 만 35세 이상이고 흡연자이면 피임약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지침을 내렸다. 이유는 경구 피임약이 혈전 생성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외에도 편두통, 고혈압 여성 등도 모두 피임약 복용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피임약 복용으로 한 해 20명 정도가 사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타 혈전 생성 사고도 한 해 2,500건 이상 발생했다고 밝혔다.

피임 효과는 증가시키고 부작용은 감소시켰다며 자신 있게 내놓은 3·4세대 피임약에서 압도적으로 더 높은(1,751건) 혈전 사고가 발생해 의학계에 충격을 줬다. 물론 모든 의약품은 그 정작용이 부작용을 웃돌아 환자에게 끼치는 유익이 해악보다 더 큼이 확실함을 예상할 수 있을 때 상용화될 수 있다. 정작용은 차치하고 부작용만 침소봉대하는 것도 바른 자세는 아니다. 약의 부작용만 보자면 먹을 약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의약품이든 그 부작용에 대해 쉬쉬하거나 그 부작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복용을 권고하는 것은 의료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그 대상이 10대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5) 서구에서 실시하는 피임 교육을 국내 성교육 현장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답습한다.

현행 피임 방법 교육의 다섯 가지 문제점 중 마지막서구에서 실시하는 피임 교육을 국내 성교육 현장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2005년 1월 약국에서 미성년 청소년이 응급 피임약 노레보(LorLevo)를 요구할 경우 제한 없이 무료로 줄 수 있는 조항을 법제화했다. ‘내일의 피임약’으로도 불리는 노레보는 성관계 후 24시간 안에 복용하면 피임에 성공할 확률이 9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현대약품이 수입해 약국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의사 처방이 꼭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대부분의 경구 피임약은 처방이 필요 없지만, 응급 피임약의 경우 고농도 호르몬 제제여서 그 부작용이 사전 경구 피임약보다 훨씬 강하다. 따라서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일반 구매할 수 없도록 해놨다. 그런데 프랑스 청소년은 이 응급 피임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한국에선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복약지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문의약품이지만 프랑스 학교 보건실에선 2004년 3월부터 응급 피임약을 요구하는 모든 청소년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료로 제공한다. 프랑스의 22학군을 조사한 결과, 중고등학교 청소년 7,074명이 이 약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중 23%가 약 공급에 만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많은 프랑스 성교육 관계자들이 응급 피임약 공급이 청소년들의 임신을 막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언론은 소녀들이 노레보를 복용하는 것을 잊는 경우가 자주 발생해 임신에 대한 응급조치로 낙태 시술이 더 자주 시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에선 어떤 토론이나 공론화도 없이 그저 선진국이 시행한 정책이니 무작정 따라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은 그렇게 사대주의적으로 진행하면 안 된다. 꼼꼼히 따져보고 국내 사정에 맞는지 점검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청소년에게 노레보를 무료로 나눠줬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만큼 청소년 간 성관계가 흔해졌다는 뜻이다. 어쩌다가 응급 피임약을 무료로 나눠줘야 할 정도로 청소년 성 윤리와 성도덕이 무너진 것일까. 여기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해외 성교육을 찬양하는 일부 사람들은 프랑스 사례를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프랑스에선 해마다 1만 명의 청소년이 임신하는데, 이 수치가 1995년에서 1997년 사이 조금은 주춤하다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극적인 피임 교육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놓기 바쁘다. 분명한 사실은 청소년의 임신 및 출산이 줄어든 이유가 청소년이 바른 성 가치관을 정립하거나 이전보다 더 건전한 이성 교제를 가져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들에게 강력한 피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그것을 사용하도록 약국과 학교 보건실에서 무료로 응급 피임약을 살포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성교육 현장에 몸담은 전문가 중 상당수는 10대를 아예 절제 및 자기조절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 치부한다. 이런 잘못된 전제를 하고 있기에 콘돔과 사전 피임약, 응급 피임약을 종류별로 골고루 교육하는 일에 주력한다. 즉 10대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피임법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의 성교육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게 최선인 것처럼 교육현장에서 받아들여진다. 이런 현실인 만큼 건전한 성교육을 진행하는 현장 전문가의 반론을 반드시 경청해야 한다.

“서구 성교육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서 그릇된 성교육마저도 여과 없이 좇아가는 교육공동체가 돼서는 안 됩니다. 프랑스의 정책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사례입니다. 한국이 무작정 따라가야 할 멘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른 성 가치관 함양교육은 효과적이고 절실하다


지킬 것은 지키자는 성교육, 즉 성도덕과 결혼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교육이 과연 효과 없는 구시대의 진부한 교육인가? 성교육 현장에서 10대는 아예 절제 및 자기조절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 치부돼야 하는가? 그들에게 콘돔과 피임약을 성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게 유일한 답일까?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보고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절제력을 함양하는 교육의 효과에 대한 증거’ 보고서에 따르면 전인적인 절제력과 자기조절 능력을 고취하는 성교육은 신체적·정신적 웰빙 및 청소년이 미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적인 충동에 마냥 끌려다니지 않도록 절제력을 함양, 지켜낼 것은 지키자”라는 취지의 건강한 성교육이 젊은이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10대부터 활발한 성행위를 하면 이는 건강상의 심각한 문제를 남기거나 정신적·정서적 웰빙을 감소시키며 낮은 학업성취도, 혼외 출산 등을 초래하는 경향이 높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는 프리섹스를 조장하는 외설적 성교육에 대항하는 총 22가지의 절제력 함양 성교육 프로그램들의 효과를 다룬다. 이들 22개 프로그램 중 17개에서 10대가 충동적으로 성교를 시작하는 시점이 지연되고 조기 성행위가 감소하는 긍정적 결과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예를 들어 ‘앱스티넌스 온리 인터벤션(Abstinence Only Intervention, 2010년)’ 교육을 받은 학생의 3분의 1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성관계 시작 연령이 늦춰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5개 공립학교에선 ‘리즌 오브 하트(Reason of Heart, 2008년)’라는 절제력 함양 성교육 후 1년 뒤 해당 교육을 받은 학생의 9.2%가 성관계를 시작했지만, 교육받지 않은 학생은 16.4%가 혼외성관계를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헤리티지 키퍼스(Heritage Keepers)’ 교육 프로그램을 받은 중고생은 1년 뒤 시행한 조사 결과 해당 교육을 받은 학생은 14.5%가 성관계를 시작했지만,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은 26.5%가 성관계를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미국 중서부의 5개 도시 중학교에서 진행된 ‘지킬 것은 지키자(2005년)’ 교육은 인성 함양과 절제의 이점을 알리는 성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이 교육을 받은 학생 역시 혼외성관계 감소, 성관계 파트너 감소 경향을 보였다. 아칸소주의 20개 학교에서 시행된 ‘앱스티넌스 바이 초이스(Abstinence By Choice, 2001년)’ 교육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 부모의 80%가 학교에서 자녀에게 성관계할 권리 및 피임을 강조하는 ‘세이프 섹스(safe sex)’ 교육보다는 절제력을 함양하는 성교육을 시행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절제력 함양의 이점을 배울 필요가 있는 10대들이 절제의 이점을 전혀 듣지 못하게 가로막는 성교육 현실을 지적하며 “10대의 성행위는 본인과 사회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낙태업계, 퀴어업계까지 성교육에 뛰어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교육 현장에 밀려드는 세속적 흐름은 매우 거세다. 생명과 가족의 가치, 결혼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하는 청소년 성교육 시간에 낙태 사업과 퀴어 인권업으로 돈을 버는 단체의 강사들이 와서 성교육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산아제한 운동의 창시자이며 우생론(優生論)자인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는 출산이 여성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적극적인 피임과 산아제한 이론을 펼쳤다. 그는 1916년 최초로 산아제한진료소를 열었으며 2021년 산아제한연맹(The Birth Control League)을 세웠는데 이후 이 단체는 낙태 기관인 국제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으로 계승됐다. 마거릿 생어는 유력한 생물학자에게 피임약 개발을 권유하고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등 경구 피임약 개발에 앞장섰다. 마거릿 생어의 운동은 산아제한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생식자, 즉 생명을 잉태할 부모의 경제적 여건, 사는 환경 등에 따라 출산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눠 부적격자의 출산은 제한해야 한다는 우생론을 지지했다. 이는 인구의 수는 줄이고 인구의 질은 높여야 한다는 맬더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론과도 맥이 닿아있다. 결국, 그는 우생론과 산아제한 운동을 접목했다. 즉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만한 우월한 인자를 가진 생명체에게는 생존할 권리를 부여하고 열등한 인자는 싹을 잘라내자는 우생론적 사상을 품고 산아제한 정책에 매진한 것이다. 이렇듯 생명의 가치에 인간이 우열을 매기는 반기독교적인 사상 속에 만들어진 단체인 가족계획연맹은 미국에서 낙태 시술 단체로 전락했다. 연간 30만 명의 태아를 죽이는 상담 및 수술을 돕고 있다. 심지어 그 태아의 사체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돈을 벌다가 들켜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미국 의료진보센터(The Center for Medical Progress)는 2015년 9월 가족계획연맹의 태아 장기 매매 현실을 비밀리에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가족계획연맹 고위 임원들이 어떻게 허술한 지침을 이용해 낙태아의 신체를 팔아 이윤을 남길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낙태한 태아의 세포를 연구 목적으로 판매해 이윤을 남기는 행위는 미국 연방법에 따라 범죄로 간주한다. 태아의 사체가 돈이 되는 순간 낙태를 종용하거나 낙태할 목적으로 임신을 하는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계획연맹 텍사스지부의 디렉터였던 애비 존슨(Abby Johnson)은 이 단체가 낙태 태아 장기 거래를 통해 1건당 100~200달러의 이익을 남긴다고 폭로했다. 존슨은 가족계획연맹 텍사스지부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8년간 낙태 태아 장기 거래에 관여했다. 낙태된 태아의 장기 매매를 논의하는 현장을 폭로한 동영상에서 이 단체는 “장기를 손상하지 않고 모양 그대로 적출할 수 있다”라고까지 한다. 문제는 이렇게 태아의 사체로 돈을 벌기 위해 낙태를 종용해온 단체가 청소년들의 성교육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생명주의 운동가 사라 킴 대표는 “가족계획연맹은 10대의 성관계를 부추기는 성교육, 즉 외설적 성교육을 해서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청소년들이 성적으로 문란해져 충동적으로 성행위를 해 임신하면 그 태중 자녀를 죽이러 가족계획연맹의 수술대로 찾아와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낙태업계 시장 활성화의 주된 동력이 성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더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꿩먹고알먹고’인 셈이다. 이 단체는 미성년자가 합의하에 콘돔과 피임약만 잘 챙겨서 성관계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성애화(sexualization) 교육을 해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았다. 학교를 믿고 어린 자녀들을 보냈는데 낙태 조장 업계가 학교로 들어와서 아이들의 영혼을 망치고 있음을 뒤늦게 안 부모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항의를 펼쳤다.

가족계획연맹이 10대 성교육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성교육 도서 <이렇게 하는 게 완전 정상이지(It’s perfectly normal)>는 남학생, 여학생의 자위 모습을 자극적인 그림과 글로 수록하고는 자위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기술했다. 또한 ‘성관계를 갖는 것이 사랑을 이뤄내는 것(sexual intercourse is making love)’이라고 수록하는 등 합의한 청소년끼리는 이성끼리든 동성끼리든 성관계를 해도 된다고 교육하고 있다. 사라 킴 대표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성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의 장이 아니라 그 교육을 하는 사람의 윤리관, 신앙관, 세계관이 전달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낙태로 돈을 버는 자들에게 맡길 수 없어요. 학부모들은 청소년 성관계와 조기 성애화를 유도하는 성교육에 반대합니다.

2014년 4월 루이지애나주 등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가족계획연맹과 같은 낙태 종용 단체들이 학교에서 성교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생명을 경시하는 단체가 생명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캘리포니아 교육청은 미국의 퀴어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인 HRC(human rights campaign)와 같은 단체를 버젓이 공립학교 성교육 단체로 추천하고 있다. HRC는 각종 퀴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기업으로부터 LGBTQ 지지 선언문을 받아내는 활동 등 많은 영혼을 동성애와 성전환의 죄로 미혹하는 단체이다. 이런 단체를 공립학교의 성교육 단체로 추천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교육청은 학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입장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단체에 의해 동성애와 성전환을 인권이라고 주입 당하고 있는 학생과 그 가족들의 것이 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변절시키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짓기 전에 즉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이미 결혼제도를 천명하셨다. ‘배필’이라는 정체성은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남과 무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위상이다. 성경은 이 땅에 생육, 번성, 충만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신 명령을 논함에 있어 남녀 간의 연합, 즉 ‘결혼’을 통해 공동체로 존재하는 것을 첫 단추로 꼽는다.

그러나 어느덧 교회 안에서도 이상한 성 가치관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거야. 그러므로 성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만 가져야 해. 성관계는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가져야 해. 사랑에 대한 확신도 없이 혹은 책임을 질 수 없을 때는 성관계하는 게 아니야. 충동적으로 성관계해선 안 돼.”

이 말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 성교육에서 사랑이 성관계를 위한 충분한 전제라는 식의 메시지는 절대 금물이다.

“성관계는 결혼한 부부끼리만 하는 거야. 그 외의 경로로 성관계를 가지면 그것은 간음이야. 우리가 만일 간음죄를 저지른다면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시키시는 은혜가 임하신단다.”

이렇게 모호하지 않게 교육하는 것이 바른 기독교 성교육이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고전 13:5~6)”을 포함한다.

그러나 세상 문화는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성관계를 해도 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사랑을 단순한 감정의 끌림이라고 정의해 버리는 세상 문화 앞에서 이러한 표현은 매우 위험한 교육으로 치달을 수 있다. 즉 사랑의 조건과 의미를 어떻게 변질시키느냐에 따라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말조차도 도덕률 폐기론과 똑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이렇게 간음과 사랑을 물타기 하며 철저한 상황주의를 일반화하려는 세상의 성문화 앞에서 우리는 악한 문화가 사랑을 함부로 재정의하고 결혼의 의미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전략적으로 싸워야 한다. ‘기독청년 성의식 조사 결과 보고서(정재영, 2014)’는 한국 미혼 젊은이들의 성 가치관의 일면을 보여준다. 1,000명의 20~30대 크리스천 청년을 대상으로 성 윤리 의식을 설문 조사한 결과 약 52%가 ‘성관계를 가졌다’라고 답했고 약 61%는 ‘혼전에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답해 충격을 줬다. 혼전 성관계를 가진 기독 청년의 약 50%가 ‘사랑의 확신을 주기 위해서’, 32.7%는 ‘성적인 충동과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성관계를 했다’라고 답변했다. 상당수 크리스천 청년들이 간음이 사랑을 확신시켜줄 것이라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혼 계획에 대해서는 ‘반드시 결혼할 것이다’라는 응답이 54.5%였다. 규칙적인 말씀 묵상과 교회 예배 출석, 청년부 활동 등 개인 신앙생활을 잘하는 청년일수록 혼외성관계 비율이 낮았다. 해당 보고서는 신앙 성숙도가 높은 경우 혼외성관계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요약하고 있다. 개인 신앙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의 경우 동성애나 낙태 등의 사회적 논란이 있는 주제에 대해 더 성경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연 때 청년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뜻밖에 크리스천 청년들이 기본적인 기독교 성 윤리 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했거나, 받았다 해도 세상 메시지가 물타기 된 성 가치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해당 보고서에서 20~30대 기독교 청년들이 교회에서 기독교 성교육을 받은 경험은 17.7%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그들은 기존 기독교 성교육에 대해 구체적이지 않고(29.3%), 현실적이지 않으며(12.2%), 지나치게 종교적이고(12.2%), 혼전 순결만 강조한다(7.3%) 등의 불만족 이유를 피력했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 성 교육자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인간의 성애의 희락을 누리도록 합법적인 결혼의 지평을 열어 두셨음을 확고히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성 교육자들마저 ‘꼰대’로 찍히기 싫어서 결혼의 중요성을 더이상 강조하지 않다 보니 인간의 성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성관계는 하나님이 만들어 두신 결혼제도 안에서 타당하며 온전하다는 교육, 인간에 내재한 성적 욕구는 그 자체가 죄가 아니며 음욕의 죄로 치닫도록 놔두는 것이 죄임을 말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인간의 성적 충동과 욕구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보장받음을 알려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가르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어느덧 교회 안에서도 비혼주의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이른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문화와 연합하고 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종종 ‘청년이여 결혼하라’라는 주제로 강연하는데, 강연 후 수많은 청년이 “내 안에 충만한 비혼주의를 오늘 보았습니다. 회개했습니다”라고 전해온다. 비혼주의는 하나님이 주신 이른바 독신의 은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왜곡된 성 가치관이다.


성경적 성 가치관 교육을 고수하는 깐깐한 부모 되기

자기 방에 들어간 아이는 그 방에 있는 것이 예전에는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방에 들어간 자녀가 자신의 방이 아니라 N번방, 즉 사이버 세상 속 음란 지대에 들어가 허우적거릴 수 있다.

우리의 자녀를 노리는 악한 미디어와 성교육 사업이 범람하고 있다. 크리스천 양육자는 자녀의 신앙 및 사회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소위 ‘쿨한’ 부모가 돼 자녀의 인정을 받아보려고 자녀의 신앙 성장을 방임하는 부모들이 있다. 간음조차 사랑이라고 말하는 세상 풍조 속에서 자녀가 성적인 문제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사랑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녀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이 기쁘시도록 힘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도와줄 수 없는 곳에서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악의 길로 빠지지 않고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다. 크리스천 양육자들은 생애 중 특정 기간을 자녀와 공유할 뿐이다. 자녀 역시 그들의 생애 중 특정 기간만을 부모와 공유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청지기 정신을 갖고 자녀 양육에 좀 더 양적·질적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청소년기는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다. 또래 집단의 판단을 신경 쓰느라 양육자나 하나님의 뜻을 등한시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10대 때 또래의 의견을 중시하는 경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다. 기독 학부모들은 10대 자녀가 고도로 성애화된 또래 집단과 어울리도록 방임되면 자연스레 그 집단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실제로 미성년 자녀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쿨하게’ 허용했다가 성관계까지 하는 것을 알게 돼 임신할까 봐 고민하는 양육자도 있다. 혹시 자녀가 부모에게 이유 없이 반항하고 불순종하며 친구를 괴롭히는가. 어른과 친구에게 예의가 없는 특성을 보이는가. 그런 문화가 지배하는 또래 집단의 일원이 된 자녀는 반드시 그 문화에 젖게 마련이다.

양육자 중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내 자녀가 또래 집단에서 꿋꿋이 버티며 선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쁜 집단과 친구를 통째로 바꿀 수 있으니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든지 개입하지 말고 전적으로 아이들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 그러나 성경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라는 말씀을 통해 자녀의 영적 상태에 대해 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또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 20:19)”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잠 22:24)” 등 많은 구절을 통해 분별을 가지라고 말씀해 주신다.

크리스천 양육자는 자녀가 좋은 또래 집단이나 친구를 만나 청소년기에 그들과 함께 잘 성숙하도록 기도하고 지도해야 한다. 자녀가 기독교 동아리 활동, 교회 찬양대 활동 등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청소년 시기 교회와 가정에서 목사님이나 양육자, 교사로부터 받는 영적 자산은 평생의 영적 자양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대가 또래와 함께하는 신앙 성장 활동은 많은 시간과 물질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평생에 걸쳐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된다.

또래 집단만이 제공해주는 건강한 비교의식과 응집력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경험하는 게 좋다. 하지만 성장의 시기는 전 생애 중에 상당히 짧다. 청소년기는 매우 금방 지나간다. 그 질풍노도의 시간에 자신과 유사하되 도전을 주는 좋은 신앙의 친구들이 함께한다면 금상첨화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삶을 나누는 훈련을 하는 것은 어떤 과외로도 대체가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나쁜 습관이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베푸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고 어울리며 신앙에 악영향을 받는 환경에 자처해서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분별력을 가져야 하지만, 청소년은 대체로 경험 통찰 인내심 등 다양한 면에서 어른보다 미숙하다.

크리스천 양육자는 자녀가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무엇을 하며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지 파악해야 한다. 자녀의 친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친구 선택권을 전적으로 자녀에게만 맡기는 것을 부모의 관대함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기독교 성 가치관 교육


하나님의 창조질서, 청소년의 뇌 발달에서도 드러난다

사도 바울은 영혼이 중요하니 육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선포하지 않았다. 영과 혼과 몸이 모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했다. 이처럼 영혼과 육체는 이분법적으로 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상호 매우 밀접하게 역동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육체 중에서 뇌는 중요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신비롭기도 한 곳이다.

하나님은 ‘온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1,500g의 장기’라 불리는 뇌를 인간에게 주셨다. 정신과 의사이자 영성 지도자인 제럴드 메이(Gerald G. May)는 그의 저서 <영성 지도와 상담>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뇌가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중간지대로 역할 하는 중요한 지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 양육자들은 10대 자녀들의 뇌가 성인의 뇌와 다른 성숙도를 보인다는 것을 잘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과 성인 간 뇌의 차이가 정신적 성숙도나 전행동(total behavior)의 차이로 연결됨을 알고 있어야 한다.

뇌의 성숙과 발달에 있어 청소년은 어떤 특징을 보일까? 청소년의 전두엽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서 한창 발달하는 시기다. 전두엽은 상황 판단, 사고, 계획, 자기 인식, 위험요인 자각, 통찰하는 능력 등을 제공한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인간다운 성숙한 사고와 판단을 하게 만드는 부위가 바로 뇌, 그중에서도 전두엽인 것이다. 최근 10년간 미국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이 생애 첫 21년 동안 뇌 영역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뇌의 발달, 즉 뇌 신경의 연결은 뇌 뒤쪽(후두엽)에서 앞쪽(전두엽)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마지막으로 신경 연결이 완결되는 부위가 전두엽이었다. 사고의 성숙과 관련된 부위인 전두엽의 발달이 뇌 부위 중 가장 늦게 이뤄지다 보니 어른과 청소년의 정신적 성숙도는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반면 가장 먼저 발달하는 후두엽은 생애 중 가장 먼저 발달하는 부위이다 보니 청소년이나 어른이 유사했다. 뇌 부위 중 변연계는 인간의 각종 본능, 욕구, 충동과 관련된 영역이다. 전두엽과 달리 청소년은 변연계 발달이 상당히 이뤄진 상태라 본능적 욕구와 충동이 활발하다. 종합하자면 10대의 뇌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조절하는 전두엽은 아직 전선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반면 충동과 본능적 욕구의 부위인 후두엽은 상당한 기능을 한다. 즉, 청소년 시기 종합적인 상황 판단, 인내, 절제, 오래 참음의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에서 충동과 호기심, 욱하는 변연계의 역동을 누르는 기능이 통상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10대의 뇌는 어른에 비해 80% 정도밖에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하곤 한다. 10대 자녀들의 감정 기복이 심하고 화를 잘 내고 충동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시작은 거창했는데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그만두거나, 담배나 알코올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등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뇌과학이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그래서 사회는 청소년에게 선거권, 결혼 등 중요한 결정권을 청소년에게 섣불리 부여하지 않고 내적 자산이 쌓이고 뇌가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된 양육자는 자기 자신도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녀와 다투게 된다.

자녀가 성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음란물을 보다가 들켰을 때, 혹은 성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때, 간음의 죄를 저질렀을 때 이들을 쥐잡듯 야단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라는 성경 구절을 이때 한번 되새겨 보면 어떨까. “내가 만약 자녀가 사는 디지털 범람 시대 속 청소년이라면 어땠을까. 저 아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야.” 이렇게 한번 심호흡을 해보는 것이다. 부모는 성적인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해 당황하고 수치스러워하고 있을 그 아이에게 공감해주고 사랑으로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성 가치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줌으로써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회개해야 할 부분을 확실히 주님 앞에 인정하고 직면하며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청소년이라도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착실하게 맺어갈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근본이 있는 청소년은 살아온 연수만 더해간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통합적인 사고를 하며 인내력을 갖고 있다. 죽음과 구원에 대한 통찰을 지닌 청소년이 얼마든지 있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차이점을 인지시키는 것은 미성년자를 차별하자는 말이 아니다. 미성년자이든 어른이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부모는 이러한 구원의 공평함도 명료하게 제시해야 한다.


청소년은 청소년답게

최근 미성년자에게도 성인만큼의 자기 결정권을 주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특히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도 성적 자유를 누리도록 방임하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이는 학생 조례에도 영향을 끼쳐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 각종 성적 지향을 청소년의 권리로 인정하는 상황까지 왔다(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5조).

성인을 압도하는 체구와 힘을 가진 청소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평균 신장과 체중 등은 최근 크게 성장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1985~2019년 전 세계 193개국 6,500만 명 이상의 5∼19세 어린이 및 청소년의 키와 체질량지수(BMI) 등을 분석해 의학 저널 ‘랜싯(Lancet)’에 게재했다. 35년 전만 해도 한국 19세 평균 키는 세계 130위권 수준이었다. 이후 청소년의 신체 조건은 큰 개선을 이뤘고 최근에는 세계 60위권에 진입했다. 보고서는 중국과 한국에서 지난 35년간 청소년 평균 키가 가장 큰 개선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미성년자는 여전히 성인의 보호와 보살핌, 훈육이 필요하다. 기독교 양육자들은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형사처벌을 받을 만한 죄는 지었지만 실제로 형사처벌 받지 않는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촉법소년이라고 한다. 최근 이 연령대의 범죄가 늘고 청소년 범죄로 보기 힘들 정도의 계획적 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촉법소년의 나이를 낮춰서라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인만큼 준엄한 법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의 ‘미성숙함’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자의 자리에 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기에 미성년자의 참정권에도 제한을 둔다. 심지어 성인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인생의 경륜과 지혜를 갖춘 나이가 됐을 때 입법자의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나이 제한을 두는 나라도 있다.

미국은 헌법상 하원의원이 되려면 최하 25세가 돼야 하고, 상원의원이 되려면 최하 30세가 돼야 한다. 성인 중에서도 어느 정도 사회적 경험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통찰이 기대되는 나이에 이르렀을 때 입법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말이다. 입법이라는 중요 활동에서 충동과 호기심, 혈기가 충만한 인물보다 삶의 성숙, 노련미, 책임감 등을 두루 갖춘 인물이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성인이라 해도 나이를 기준으로 참여 및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당에 10대에게 성인에 준하는 각종 성적 결정권을 주자는 발상은 매우 무책임한 사고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연수가 쌓여간다는 말은 물리적 나이만 누적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경륜과 체험, 성찰이 함께 축적됨을 뜻한다. 그러므로 선거 연령 제한, 술·담배 이용의 제한, 형사처벌 제한 등 청소년에게만 적용되는 몇 가지 제한은 청소년을 차별하는 게 아니다. 한국도 성인이었다면 무기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저질렀어도 만 18세 미만의 소년에겐 무기 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미성년자의 경우 15년형이 법정최고형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이 관대한 이유는 청소년이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청소년에게 모든 성적 권리와 자유를 비판 없이 허용하고 권리를 확장하자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영국에선 10대가 술이나 담배를 소비할 선택권은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타고난 성별을 교체할 권리는 인정해 준다. 기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의 탈 성전환 네트워크 리더인 찰리 에반스는 10대 때 성별 교체를 섣불리 결정했다가 큰 후회를 하고 진실을 알리는 운동에 힘쓰고 있다. 타고난 성별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10대가 증가하는 영국의 현실을 알리고 있다. 물리적인 나이가 한 개인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나이와 상관없이 개인적 성숙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나이에 따라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미성년자와 성인 간 차이를 둔다. 특히 청소년은 미성숙함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적으로 여러 제도를 통해 배려하고 보호한다. 기독교 양육자는 이런 점을 잘 인지하고 자녀들에게 바른 권리, 차별이 아닌 구분과 배려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내가 간음한 자인데 무슨 자격으로 제가 자녀에게 기독교 성교육을 하겠습니까?

어떤 크리스천 양육자들은 “나 역시 성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젊은 시절을 보낸 불완전한 죄인인데, 어떻게 내 자녀들에게 성경적인 성 가치관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라는 고민 글을 보내오기도 한다. 혹은 “나의 과거는 성적으로 죄악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 성경적 성교육은 시작조차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 온전한 성 가치관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라며 잔뜩 어깨를 움츠린 크리스천 양육자들을 더러 만나게 된다. 자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자책감으로 선뜻 성경적 성교육을 위한 준비에 발을 담그지 못하고 있지만, 성경적 성교육의 필요성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며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성경 말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육을 입고 있는 현재로서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존재일 뿐임을 주저함 없이 선언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고전 13:9)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영적 수준’이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엡 2:2)”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침묵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긍정하는 당위성을 우리에게 부여하지는 못한다. 이 땅의 현실 속에 영적 군화를 신고 꿋꿋이 서서 하나님 나라, 즉 우리 본향으로의 방향성을 끝없이 드러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비록 불완전한 양육자라 하더라도 말이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온전하시다. 그러나 온전하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불완전함을 아시고도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완전한 우리가 온전해지기 위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 우리의 차세대를 주의 자녀로 잘 양육하는 사명 역시 포함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임이 절대 자랑거리는 아니다. 또한, 이 사실이 성경적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것에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온전해질 것을 명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9~12).


크리스천 양육자들이여 ‘제발’ 어깨를 펴라

지금까지 온전치 못한 자신 때문에 자녀를 적극적으로 훈육하기를 포기했던 양육자가 있다면, 이제부터 주님 앞에 기도하기를 바란다. 어깨를 쫙 펴고 양육자로서 출발점에 진지하게 서기를 바란다. 과거의 죄 때문에 사탄의 장난에 볼모 잡혀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회개하고 주께 사함받고 고치심을 덧입은 양육자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성령 안에서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 회개를 기쁘게 받으신다. 음란죄든 거짓말한 죄든 우리가 지은 죄가 아무리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그리스도로 보내시어 우리 모든 죄의 삯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르게 하시고, 성경에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케 하신 분이다. 피조물인 우리, 죄의 삯을 사망으로 치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대신 죽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큰 사랑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사랑을 망각하면 하나님의 용서하심도 망각하게 되고, 그 용서하심을 망각하면 회개의 길로 접어들기를 심령 깊숙이 주저하게 된다. 성경은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할 뿐 아니라 땅의 본질적인 변화, 즉 고치심을 준다고까지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교회와 가정에서 가르쳐야 할 기독교 성 가치관 예시문


성경적 성 가치관 교육을 위해 다루어야 할 주제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회와 학교에서 핵심적으로 많이 다루어져야 하는 기독교 성 가치관 주제는 낙태, 동성애, 성전환, 음란물 및 모방(성폭력) 등이다. 이 네 가지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해 교회 아동 청소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을 위한 워딩의 구체 사례는 아래와 같다.

기독교 성 가치관 교육을 할 때는 구속사 즉 창조-타락-구속의 흐름으로 대상과 현상을 파악하고 교육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온전하다. 또한, 기독교 성 가치관 교육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바로 선악의 분별 즉 세계관의 시작과 끝이 바로 성경 말씀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 선악의 분별 기준은 성경이라는 전제를 재확인하고 성경적 세계관 교육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양심의 찔림 여부, 가책 여부, 합의 여부, 남에게 손해를 끼쳤느냐의 여부가 선악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료하게 교육해야 한다. 즉 정확무오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인 것이 곧 죄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이 곧 선임을 깨달아 알게 해야 한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는 것은 악하다고 말해야 하며 악을 악이라고 깨닫는 것은 회개의 통로가 열리게 되는 첫 관문으로 오히려 우리가 이 깨달음을 주심에 감사해야 함을 전제하고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유익하다.


[1] 생명의 소중함(창조의 원형)에 대해 교육할 때–낙태가 죄임(타락의 길)을 함께 교육한다.-나아가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보혈의 능력을(구속하심) 교육한다.

1) 창조 : 하나님은 천하 만물과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고 찬양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창조 솜씨와 창조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개미는 개미의 모습대로, 새는 새의 모습대로, 나무는 나무의 모습대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확연히 다르게도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는 유일하게 ‘사람’이다. 예수님은 천하 만물보다 한 영혼의 생명이 귀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또한, 우리의 이웃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유일한 존재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이 땅에 성육신하고 오신 하나님, 즉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것에서 그치지 않으셨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셨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영혼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형상대로 빚어진 생명인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씀을 통해 명하고 계시며 십계명에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를 태중에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선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시 71:6).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 1:15).

이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태중의 자녀가 온전한 생명이며 하나님의 형상이 깃든 인간이라는 존재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 타락 :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형상이 깃든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낙태는 태중의 자녀를 죽이는 일이다. 성경은 살인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살인은 죄이다.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

그런데도 세상에는 태아를 죽이는 것이 먼저 태어난 자들의 권리라고 주장하며 낙태를 합법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반생명주의 문화가 사회에 만연한 와중에 크리스천 청소년들도 적잖게 영향을 받을 위기에 놓여있다.

태중의 사람이던, 태어난 사람이던, 어린아이던, 노인이던, 청소년이던 하나님의 형상 깃든 생명임을 알게 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의 자녀들도 품을 수 있도록 어린 나이부터 교육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9년 4월까지는 낙태를 죄로 인정하고 처벌하는 이른바 낙태죄 처벌법(형법 269조와 270조)이 있었다. 그러나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이 조항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면서 낙태를 한 사람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되었다. 낙태죄 처벌법 폐지 찬성자들은 이것이 낙태 합법화라 주장하며, 임신 주 수 제한 없이 태아를 죽일 권리를 인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죽이거나 괴롭히는 것에 대한 처벌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태중의 힘없고 연약한 아기를 죽이는 것은 허용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악한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예수님도 태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다. 만일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 가운데 예수님이 오셨다면 낙태 시술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독교 양육자들은 태어나는 아기 수보다 낙태되는 아기가 더 많다는 심각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편의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반기독교적이고 반생명주의적인 모든 법과 문화가 잘못된 것임을 깊게 깨닫고 생명주의 기독교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한 영혼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와 한 영혼을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에 차이가 생길수록 그 공동체의 영성은 악하고 그릇된 영성임을 알아야 한다.

3) 구속 :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생명을 사망의 길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성육신하고 오셨다. 그분이 예수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바로 그것이 한 인간의 생명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이며 마음이셨다. 우리도 그 마음을 닮아 이웃을 사랑하고 태아를 사랑하는 진정한 생명 사랑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2] 남자와 여자를 각각 특별한 성별로 창조하셨음(창조의 원형)에 대해 교육할 때–성별 교체를 통한 신체 훼손과 자신의 성별을 속임이 죄임(타락의 길)을 함께 교육한다.-나아가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보혈의 능력을(구속하심) 교육한다. 교육을 위한 워딩의 구체 사례는 아래와 같다.

1) 창조 :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신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평하다. 주님의 자녀가 됨에 있어서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남자와 여자를 사랑으로 품으신다. 이렇듯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남녀평등의 개념은 바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길을 남녀 모두에게 여셨다는 것이다. 또한, 남자와 여자에게는 성별에 따른 차이점, 즉 특별함을 부여하셨다. 남자와 여자에게 여러 가지 다른 점을 두어 남녀를 구별하셨으며, 그에 따라 기능적 질서를 부여해 주셨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남녀를 어떻게 다르게 만드셨는지 잘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성별에 감사하고 부부간의 화평, 형제자매 간의 화평, 남녀 간의 화평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을 태중에서 창조될 때부터 결정하셨다. 남녀 성별은 수정된 때로부터 결정된다. 남자와 여자의 성별은 염색체, 6,000개가 넘는 유전자, 체세포의 수용체, 호르몬, 근육, 뼈, 체모, 면역계, 임신 가능 여부, 목소리 등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남녀의 성 비율은 직업군별로, 취미 생활별로, 교회에서 헌신하는 직분별로도 다르게 분포하기도 한다. 남녀의 특별함을 교육하면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남녀 성별의 차이가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성별과는 무관한 개인의 차이점도 뚜렷하게 있음을 알려 개인적인 차이 때문에 상대방을 놀려서는 안 됨도 교육해야 한다. 남자아이가 그림 그리기나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섬세한 성격이라고 해서 여자 같다고 놀리거나, 여자아이가 스포츠를 잘한다고 해서 남자가 될 것이라고 놀리는 것은 하나님이 개인에게 주신 재능을 근거로 상대방의 성별에 혼란을 주는 잘못된 행동임을 알려야 한다.

2) 타락 :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남자와 여자로서의 본질, 즉 성별을 거부하고 반대 성별로 교체하고 싶다며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타고난 성별은 자유의지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성호르몬을 주입하고, 때에 따라서는 성형을 동반하기도 하는 성별 교체 과정은 이제 더는 이상하거나 은밀한 일이 아니다. 미디어와 잘못된 성교육 커리큘럼이 인공적인 성별 교체를 공공연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자신의 성별을 바꾸기 위해 상담을 받는 청소년이 10년 사이에 여자 청소년 기준으로 4,000% 이상 증가했다. 젠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성교육 교사들은 성별은 남녀 두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이며, 흰동가리의 성별이 바뀌듯이 인간도 성별이 바뀔 수 있다고 가르친다. 더 나아가 “남자와 여자의 성별은 바뀔 수 없으며 성염색체 등을 기반으로 정해지는 것”이라는 표현은 이분법적 성 고정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잘못된 표현이며, 타고난 성별과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들을 향한 폭력적인 혐오 표현(hate speech)이라고 주입한다. 그 와중에 미국에서는 자신의 성별이 다른 성별로 바뀌어 버릴까 봐 공포를 느끼는 아이들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성전환이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성급하게 자신의 몸을 훼손한 것을 후회하고 원래의 성별로 돌아가고자 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별을 교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된 몸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회개해야 할 죄이다. 또한, 타고난 성별이 아닌 반대 성별로 자신의 성별을 법적으로 정정하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성별에 대한 거짓 증언에 해당되므로 이 역시 회개해야 할 죄이다. 각 개인이 살아가는 문화 속에서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식별되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속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찰이 아닌 자가 경찰복을 입고 다니며 경찰 행세를 하거나, 의사가 아닌 자가 의사 옷을 입고 의사 행세를 해서는 안 되듯이 남자와 여자도 하나님 주신 성별에 감사하며 그 성별의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신 22:5).”

3) 구속 : 우리는 하나님의 남녀 창조질서를 어그러뜨리는 각종 교육과 미디어, 문화의 잘못된 점을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러한 거짓을 받아들인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별에 감사하고, 그 성별에 부여하신 특별함이 잘 작동되어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이웃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에 남자와 여자가 모두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성경은 남자이든 여자이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 즉 구원에 있어서 남녀의 공평함을 보증하심을 강조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장 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장 16절).

하나님의 남녀 창조질서를 파괴하려는 나쁜 문화와 법, 죄가 우리 가운데 거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이미 이것에 대해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며 감사해야 하며,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인 남녀 성별에 감사하고 기뻐하게 교육해야 한다.


[3] 남녀 혼인의 귀중함과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의 문화 명령(창조의 원형)에 대해 교육할 때–동성 간 성행위 등 각종 음행이 죄악임(타락의 길)을 함께 교육한다.-나아가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보혈의 능력(구속하심)을 교육한다. 교육을 위한 워딩의 구체 사례는 아래와 같다.

1) 창조 : 성경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고 각종 간음을 금하고 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명확한 성경적 결혼의 원칙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막 10:4~6).

남자와 여자 즉 이성 간의 결혼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한다. 이 결혼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켜야 할 규범이다. 결혼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명령 순종의 첫 단추로 인식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서로 배필이 되게 하심으로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 이미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가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다. 이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혼자 있는 것이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여자를 지으신 것은 결혼을 통한 공동체를 이루시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통해 서로에게 배필이 되어서 상호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도록 하셨다. 특별히 배필의 ‘돕는(ēzęr)’ 역할이 강조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 공동체를 이룰 때만 가능해진다. 사람이 혼자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으므로 배필을 통해 가정 공동체를 이루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사명을 수행토록 하나님께서 여자 창조와 결혼의 동기로 명백히 제시하셨다. 성경은 이 결혼을 귀히 여기라고 명하셨다.

2) 타락 : 그러나 최근 결혼의 개념을 왜곡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거의 30개에 가까운 나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이른바 선진국들이 동성결혼을 이미 합법화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비추어 볼 때, 동성 결혼은 인간에게 허용된 보편적인 관행이 아니며 죄이다. 성경 여러 군데에서 동성 간 결혼, 동성 간 성관계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결혼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역행하는 것으로서 결국, 인간 창조 시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적 가정의 구성, 자녀의 잉태 등의 복락을 누리지 못하게 하며 죄악의 보응을 받게 한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특히 남성 간 성관계는 매독, 임질, 에이즈와 같은 성병뿐 아니라 항문암. 변실금. 이질, 바이러스성 간염 등 수많은 질병과 직결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와 명령을 따르는 데서 참다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잊지 않도록 차세대를 교육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자녀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는 대중 매체 전반에 걸쳐 동성 결혼을 미화하는 일들이 흔히 벌어지고 있으며 드라마의 소재로도 다루어질 만큼 동성 결혼은 이제 더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사회적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성경적 결혼제도를 유지하는 나라가 되도록 함께 기도해야 한다. 또한, 자녀들에게도 어릴 적부터 바른 결혼관을 가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3) 구속 : 하나님이 주신 결혼의 질서를 인간이 파괴하는 죄를 일삼아 온 것을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를 믿는 사람들을 사망에서 건지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우리는 구원과 거룩의 길로 나아간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5~6)”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결혼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우리의 차세대들이 이 말씀대로 살아가며 순종하는 길에 성령님께서 늘 역사하실 것을 소망하고 기도해야 한다.


[4] 우리에게 무엇을 보고 듣고 먹고 마실지 선택할 자유의지를 주셨음(창조의 원형)에 대해 교육할 때–악한 미디어 특히 음란물, 게임 중독 등이 죄임(타락의 길)을 함께 교육한다.-나아가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보혈의 능력을(구속하심) 교육한다. 교육을 위한 워딩의 구체 사례는 아래와 같다.

1) 창조 :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자유의지를 주셨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그곳의 모든 실과를 먹을 수 있도록 위임과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 것을 명하셨다. 아무리 보암직하고 먹음직해도 우리가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서 우리가 순종해야 할 명백한 부분이다. 우리의 인생이 판단하기에 가엾어 보이나 주님 보시기에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어느덧 각종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 곁으로 찾아왔다. 그런 기기들 자체가 악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도의 기술력이 응집된 기기를 통해서 지구 반대편의 모르는 사람에게도 SNS를 통해 예수님을 전할 수 있고, 선한 교육과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또한, 순식간에 많은 양의 정보를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능률적으로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일에도 유용하게 쓸 수도 있다. 모든 디지털 기기와 대중 매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웃과 자녀들에게 전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타락 : 그러나 이것을 잘못 허용하면 독이 된다. 음란물, 폭력물, 공포물 등 아이들의 심령을 악한 길로 이끄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중 매체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디어 속에 분명히 악한 것들이 존재하며, 그것과 싸워야 함을 어릴 적부터 교육해야 한다.

2012년 5월, 행정안전부가 전국 청소년 1만 2,2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성인물 이용 실태 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39.5%가 음란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중 14.2%는 음란물을 본 뒤에 실제로 따라 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음란물을 본 뒤에 변태적인 장면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됐다(16.5%)거나 이성 친구를 성적 대상으로 인식(7.9%)하고, 일부는 성추행이나 성폭행 충동을 느꼈다(5%)고 답했다는 것이다. 음란물을 많이 보는 청소년일수록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충북의 7개 고등학교 학생 1,53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음란물을 매일 3시간 이상 보는 학생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7.6%는 성추행을, 35.7%는 강간이나 준강간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답했다. 음란물이 성범죄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음란물을 매일 ‘30분 이내로 보거나 전혀 보지 않는다’라고 답한 학생의 성범죄 비율은 2.9%에 그쳤다. 2012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교 연구진이 평균 연령 26세의 성인 남성 28명을 대상으로 음란물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성적인 사진을 본 그룹이 일반 사진을 본 그룹에 비해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4년 독일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포르노를 즐겨 보는 사람의 뇌를 연구한 결과, 포르노를 많이 볼수록 뇌가 쪼그라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포르노를 많이 본 사람일수록 자극과 보상 반응을 담당하는 뇌 부위, 즉 대뇌의 바닥 핵 가운데 있는 선조체(stratum)가 작아져 있다는 것이다. 음란물 시청은 뇌 손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캐나다 라발 대학교의 신경과학 연구원 레이첼 바르(Rachel Barr)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포르노를 정기적으로 시청한 사람들은 대뇌 피질의 29%가량을 차지하는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에서 손상이 발견되었다. 이 부분이 손상되면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강박적 행위, 의지력 약화, 우울증, 발기 부전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진은 “포르노를 자주 시청하는 것은 정신 건강과 성생활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유타 대학교 심리학과 빅터 클라인(Victor B. Cline) 명예 교수는 음란물을 접촉한 후에 겪게 되는 4단계 변화를 발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1단계에서는 호기심으로 음란물을 접하고 강한 자극을 받는 단계이다. 2단계에서는 자극을 느끼기 위해 반복해서 보다가 갈수록 일반적인 음란물은 싱겁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무감각 상태가 되어 좀 더 자극적인 음란물을 찾게 된다. 3단계에서는 음란물의 내용을 보편적인 성으로 인식하는 일반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4단계에서는 음란물에서 본 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겨 실행함으로써 성폭력 범죄자가 되거나, 변태 성욕자가 되어 타인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스스로 고통받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혼을 파괴하는 강력한 사탄의 도구가 바로 음란물이다. 우리는 눈으로 저지르게 되는 간음인 음란물 시청이 죄임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죄와 싸울 때 피 흘려 싸우라 하신 말씀을 함께 읽어 보자.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3) 구속 : 기독교 교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먼저 인지하고 아이들 교육에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예수님은 너의 눈이 너에게 죄짓게 하면 뽑아 내버리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단호하게 죄악과 싸움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미 음란물로 죄를 짓고 있다면 함께 회개 기도를 유도함으로써 용서하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죄를 멀리하려다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도록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또한, 반복적인 죄를 짓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고 양육해야 한다. 음란물을 조금만 봐라가 아니라 딱 끊도록 교육하는 명료한 지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상은 교회학교에서 청소년을 교육할 때 교사와 양육자가 참조하여 아이들과 간단하게 나눌 수 있는 4가지 성 가치관 주제의 핵심적인 내용과 흐름이다. 여기에 덧붙여 <너는 내 것이라(김지연, 두란노서원, 2020)>와 <나의 어여쁜 자야(김지연, 두란노서원, 2020)>, <덮으려는 자 펼치려는 자(김지연, 도서출판 사람, 2019)> 등을 참조로 4가지 주제별 심화 학습이 가능하다.

<butterflies1440@gmail.com>


글 | 김지연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백석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사)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이며, 에이랩 아카데미 선임연구원이다. 성경적 성 가치관에 관련된 주제로 활발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두란노 바이블 칼리지 기독교 성 가치관 전담 강사와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 특임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극동 방송에서 성 가치관 관련 1분 칼럼을 3년째 방송 중이며 CTS 성 가치관 교육 프로그램의 주 강사로 활동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덮으려는 자 펼치려는 자>, <나의 어여쁜 자야>, <너는 내 것이라>, <딩동, 선물 왔어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