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쟁의 전선들, 지켜야 할 가치들

문화전쟁의 전선들, 지켜야 할 가치들

2021-07-24 0 By 월드뷰

월드뷰 JUL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글/ 박성진(트루스포럼 연구위원)


21세기를 떠도는 사회주의 망령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1980년대 말 냉전의 종식을 지켜보면서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냉전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진영이 공산주의 진영으로부터 승리함으로써 사회제도의 발전이 종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냉전 후에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민주주의가 보편화되면서 영원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지구촌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에도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의 망령은 여전히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과거에는 소련이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다면, 현재는 중국이 그 지위를 이어받아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위협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과거 소련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여 수정된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특히,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몽(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통해 전 세계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네오막시즘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21세기의 사회주의 망령은 기존 사회주의 국가에서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출몰하고 있는데, 바로 신마르크스주의(이하 네오막시즘, Neo- Marxism) 사상을 통해서이다. 1960년대 중반에 유럽에 소개된 네오막시즘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혁명을 이루기 위해 사회의 하부구조인 ‘경제’ 부문만을 주목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서구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를 비롯한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질적인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신념, 가치, 문화적 전통’과 같은 상부구조를 파고들어 변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야 체제를 전복하고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네오막시즘이다. 이 사상은 1968년에 프랑스 68혁명을 통해 분출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 들어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 네오막시즘이 소개되면서 그람시의 ‘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나 ‘진지전(陣地戰)’ 개념은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전략을 제공해주었다. 그람시는 폭력 혁명적 투쟁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투쟁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그는 교육, 언론, 대중문화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계급해방투쟁은 기존의 신념, 가치, 관습과 같은 가치관에 도전하는 대항(對抗) 헤게모니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창출해내야만 그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가는 하나의 유기적인 과정으로 보았고, 사람들의 의식변혁은 결국 사회의 구조개혁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또 성숙한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동전(機動戰)보다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더 적합하고, 기동전은 그러한 진지전의 일부여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교육, 언론, 학계, 문화·예술, 종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 진지를 구축하여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대항 헤게모니를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다가 대세가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진지에서 나와 기동전으로 전환해 정권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완수한다는 것이 진지전 이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그람시의 혁명전략은 1980년대 말부터 지난 30여 년간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되어 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교육),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문화·예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정부)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노동조합 등이 설립되어 자본주의, 기업, 대한민국에 반(反)하는 정서를 생산하고 전파해왔다. 이들은 지난 세월 동안 각 분야에서 기존의 신념과 가치관에 도전하는 대항(對抗) 헤게모니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들어내며 진지를 구축해왔다. 그러다가 2008년 광우병 사태나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 때는 마치 결정적인 순간에 진지에서 나와 기동전으로 전환함으로써, 정권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진지전 전략의 실례(實例)를 보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현재 대한민국은 점진적으로 사회주의 계급혁명이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보수해야 할 문화전쟁의 영역들


그렇다면 이렇게 대한민국을 덮쳐오는 네오막시즘의 파고 앞에 기존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자각한다면, 당장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탈환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정권을 탈환한다면, 그 이후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제2의 대통령 탄핵 사건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자들은 네오막시즘의 진지전 전략을 간파하고, 이에 대응해서 그동안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내주었던 각 영역의 진지들을 회복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회복해야 할 영역들은 우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침투해서 그동안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해온 교육, 언론, 문화·예술, 종교 등과 같은 분야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참고할만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 1975년 8월에 미국 콜로라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국제 대학생선교회(CCC) 총재인 빌 브라이트(William Bright) 박사와 국제 예수전도단(YWAM) 총재인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 목사가 예정에 없던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 종이에 적어 온 것을 꺼내서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할 7대 문화영역이 각각 적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일곱 가지 목록 내용이 서로 같았을 뿐 아니라 그 순서까지도 일치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적어온 7대 문화영역은 가정, 종교(교회), 교육, 미디어(언론), 문화·예술(스포츠), 경제(과학·기술), 정부(행정, 입법, 사법)였다. 이러한 영역들은 한 사회의 신념과 가치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영역에 집중해서 우리 사회가 고수해야 할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문화적 전통을 생산하고 전파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 언급된 영역들은 큰 틀에서 ‘문화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Tylor)는 문화(culture)를 ‘지식, 신념, 예술, 도덕, 법 등을 포함해 사람들이 사회의 성원으로 살아가면서 획득하는 복합적 총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네오막시즘과의 싸움은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자들은 현재 문화전쟁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戰線)들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영역의 전선에서 바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신념과 가치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문화전쟁의 몇 가지 전선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가정’ 영역으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는 영역 중 하나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가정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페미니즘(feminism), 동성애(LGBTQ), 낙태법 폐지, 비혼모 출산 등의 이슈가 오늘날 가정을 위협해오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조직인 가정이 파괴되면, 그 사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고, 국가도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가정 영역을 보수주의자들이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교육’ 영역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중요한 장(場)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전교조에 소속된 교사들은 지난 30여 년간 학생들에게 자본주의와 대한민국에 반(反)하는 내용을 가르쳐왔다. 이러한 교사 밑에서 배운 학생은 그들의 가르침에 세뇌되어, 사회에 나가서도 우리 사회의 기존 가치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 영역의 보수주의자들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신념과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언론’ 영역은 시민이 사회와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窓)과 같다. 언론 보도는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데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언론은 ‘진실’을 가감 없이 사회에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이 특정한 이념에 치우쳐 사실을 보도하게 되면, 시민은 왜곡된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에서는 언론 노조의 전횡과 편파 방송 등이 논란이 되어왔다. 따라서 언론이 치우치지 않고 시민을 위해서 진실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보수주의 언론인의 역할이 요구된다.

네 번째, ‘문화·예술’ 영역도 오늘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면에서 정말 중요한 영역이다. 문화·예술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며 의식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예술계가 좌파 이념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계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신념과 가치관을 담은 콘텐츠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종교(교회)’ 영역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양심을 깨우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다. 특히 교회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사회의 약자를 돌보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교회가 사람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권위에 순종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아편같이 여기며 핍박해왔다. 그런데 최근 교회 내에서도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오고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신앙에 기초한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에 입각한 바른 기준을 제시하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 변혁자로의 부르심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령하신 두 가지 큰 명령이 나오는데, 하나는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고, 다른 하나는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이다. 절대자의 창조 섭리를 존중하는 보수주의자라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쓸 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의 문화에도 선한 영향을 끼치며 잘못된 문화는 변혁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여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네오막시즘의 영향으로 기존의 신념과 가치관이 크게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가정, 교육, 언론, 문화·예술, 종교와 같은 문화영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문화전쟁에 기꺼이 참전하여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신념과 가치관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유와 신앙, 그리고 인권을 지켜내는 길일 것이다.

<seongjean.park@gmail.com>


글 | 박성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기독교 보수주의 청년단체 트루스포럼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