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갈등, 페미니즘 그리고 성경적 대안
2021-07-13
월드뷰 JUL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
글/ 현숙경(침례신학대학교 교수)
들어가면서
최근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은 심해지고 있다. 남혐, 여혐, 한남충 등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신조어들이 유행어처럼 퍼지고 있고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히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최근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잠재적 가해자’인 모든 남학생이 교실 앞에 서서 ‘잠재적 피해자’인 모든 여학생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강요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왔던 여성을 배려한다는 취지로 수많은 여성 편향적 제도와 법들이 제정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남녀 불평등이라는 기울어진 저울의 무게를 다른 한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남성 우월주의 타파, 가부장제 타파를 위한 해결책이 결국 여성 우월주의와 역차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사회 현상과 함께 결혼과 출산율의 급감, 이혼 및 비혼 가구의 증가 등 가정 해체 현상은 사회질서의 근간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런 다층적인 사회 문제들을 가로지르는 공통분모는 다름 아닌 남녀 갈등의 악화이며, 이 갈등 구도의 저변에는 페미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
남녀 갈등과 페미니즘
실제 페미니즘이 사회에 끼치고 있는 영향을 보면 그들의 목표가 결코 남녀의 조화로운 공존과 평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페미니즘은 어떻게 시작된 것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20세기 초반까지 진행됐던 초기 여성운동은 여성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느끼며 남성과 동등한 법적, 사회적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웠다. 피나는 노력 끝에 여성들은 비로소 재산권, 이혼권, 양육권, 참정권 등 마땅히 누려야 할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쟁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구조적인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을 여성 문제에 적용한 1960년대의 급진 페미니스트들이었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성별 불평등의 구조를 가부장제라고 명명했고 불평등의 근원을 “성”에서 찾았다. 즉,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요소가 바로 임신과 출산인데 이 요소가 결국 여성을 도구로 전락시켜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1960년대의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하나 같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였으며 많은 여성에게 그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외쳤다. 대표적인 급진 페미니스트였던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의 “임신은 야만적이다”라는 주장이나 남자친구 혹은 남편은 난폭한 강간범과 동일인물이라고 외친 매리 앤 맨하트의 외침에 임신과 출산에 대한 혐오감과 더 나아가 남성 혐오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임신과 출산의 굴레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가족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임신과 출산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통해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낙태는 권리 주장에 필수조건이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만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태아의 살 권리가 무참히 짓밟았는가. 미국에서 1973년에 낙태가 합법화된 이후 낙태 건수의 공식집계만 해도 대략 6,500만 건이다. 이는 우리나라 총인구수를 훨씬 웃도는 숫자이다. 여성의 권리 주장을 위해 타인의 권리는 무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백번 양보한다 해도 결코 수용할 수 없다. 남성의 권력 행세의 부당성을 외치는 여성들이 오히려 그 부당한 권력을 가장 나약한 태아에게 마구 휘두르는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여성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 암울한 역사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녀 불평등 타파를 위한 여성해방의 일환으로 낙태를 권리로 외치고, 여성의 권리를 강조한 나머지 결국 남녀 갈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페미니즘은 분명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 남성의 지나친 여성 억압과 여성 무시도 결코 성경적이지 않지만, 여성의 인권향상을 빌미로 가정에서의 해방을 조장하고 낙태를 권리로 외치는 것 역시 반성경적이다. 그럼 성경에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적 남녀관계
우선적으로 여성 불평등의 근원을 가부장제라고 보는 페미니즘적 사고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성경은 불평등의 근원이 가부장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에 있다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여기에서 “남편을 원하고” 부분에 대한 히브리어 동사는 마샬(mashal)로서 ‘지배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영어 성경의 NET 버전에서는 “want to control”(지배하기 원하다)로 표시되어 있다. 즉, 서로 조화와 화합의 관계였던 남녀관계는 타락 이후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대립의 관계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남성에 대한 혐오의 원인은 모든 인간이 본질상 죄의 자녀이기 때문이며(엡 2:1~2), 불평등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고 죄로 인한 타락 때문이다.
결국,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남녀의 ‘질서’가 억압과 지배라는 ‘불평등’의 형태로 변질되었고 남녀의 타고난 ‘차이’는 ‘차별’로 둔갑한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함으로써 타락한 인간은 서로를 대적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여성을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남성은 여성을 힘으로 지배해 왔고 이에 대해 분개한 일부 여성은 이러한 지배 관계에서의 해방을 외치며 그에 대한 방안으로 임신과 출산을 거부하게 되었다. 결국,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저지른 불순종의 죄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창 1:28)”라는 하나님의 첫 지상명령을 거부하는 또 다른 죄를 낳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올바른 남녀관계는 무엇일까? 우선,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것이다(창 1:26~27). 하나님은 남녀 둘 다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다. 어느 한 성별이 다른 한 성별에 대해 차별을 가하거나 억압하는 행위는 결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남녀관계에 질서를 부여하셨다. 즉,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 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에베소서 5:22~25).
위 말씀은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이 부분은 분명히 남녀의 무조건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하지 않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강요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의 자발적인 복종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즉, 그리스도의 권위에 교회가 자발적으로 순종하듯이 남편의 권위에 아내는 자발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복종은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엡 5:25)”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적 남녀관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 속에서 자발적 복종과 목숨 건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남녀관계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거듭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내 자아가 팔팔하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탓하고 사회구조를 탓을 하는 것은 결코 근본적인 남녀 갈등의 문제 해결을 가져올 수 없다. 가부장제 타파가 해결이 아니라 내 안에 육적인, 혼적인 자아가 죽고 하나님만이 사실 때 비로소 우리는 타락 이전의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몸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명령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거듭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기반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할 때, 네 이웃 중 가장 가까운 이웃이 남편 혹은 아내 아니겠는가. 그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적인 남녀관계인 것이다.
<sookkhyun@kbtus.ac.kr>
글 | 현숙경
Texas A&M University에서 영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침례신학대학교 실용영어학과 교수이며 바른인권여성연구소 세움에서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