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과학, 법과 윤리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하여
2021-05-23
월드뷰 MA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
글/ 연취현(변호사, 연취현 법률사무소 운영)
비혼 출산 사건과 문제의 제기
작년 말,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일본 출생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모의 여성 연예인이 정자기증을 받아 비혼으로 아기를 출산했다고 밝힌 것이다(최근 이 여성과 그 아기가 공영방송의 유명 육아 예능에 출연한다는 것이 발표되면서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기실 유전공학 연구자나 의료인이 아니면 별 관심이 없었던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관계에 대해 모두가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고 싶었으나 국내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에 일본에 돌아가 정자기증을 받고 출산했다고 밝혔다. 이후 “일본에서는 가능한데 왜 우리나라는 불법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출산율 재고를 위해서라도 합법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제시되었다. 관련 규정을 검토한 보건복지부는 “현행 규정상 불법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법은 아니지만, 산부인과 학회 윤리 지침상 허용되지 않을 뿐”이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았다.
제24조(배아의 생성 등에 관한 동의) ①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하여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하여 난자 기증자, 정자 기증자, 체외수정 시술대상자 및 해당 기증자ㆍ시술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이하 “동의권자”라 한다)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생명윤리법’이라고 불리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 24조는 배우자가 있는 경우 배우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당연히 여성들의 요구는 산부인과 학회에서 정한 보조생식술 윤리 지침상 ‘원칙적으로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함’을 명시하고 있는 부분을 변경해 여성 본인에게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 없도록 하거나, 비혼자의 단독결정에 의한 시술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변경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또 다른 의문들
인공수정이 많아지면서 이와 관련하여 판례가 된 한 사건을 소개해본다.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자녀를 출산하였는데, 인공수정에 동의한 남편이 나중에 이를 번복하고 자신과 혈연관계가 없으니 자신의 자녀로 볼 수 없다면서 친생임자을 부인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은 치열한 법리 다툼으로 대법원까지 가서 약 5년 만에 결론이 내려졌는데,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진 경우에도 친생추정이 가능하고, 인공수정에 동의한 경우 이후의 출산과 양육에까지 동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법리와 이유에 따라 결국 남편의 친생부인의 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므2510 전원합의체 판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이 판례는 생명윤리법이 아닌 민법에 의해 판단된 예이지만, 생명윤리법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법률분쟁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작년 1월 우리나라가 여성 연예인의 비혼 출산 문제로 뜨거운 시기, 프랑스도 같은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생명윤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 소식이었다. 프랑스는 이미 결혼하지 않은 커플의 임신과 출산 시에도 의료보험 혜택과 체외수정, 인공수정, 정자기증을 허용하고 있는데, 동성애자나 비혼여성에게도 동일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법률안이 상정되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도 같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생명과 생명에 대한 과학, 그리고 윤리가 법으로 한계지어질 수 있을까?
그렇다. 이 문제의 본질은 비단 여성의 재생산에 관한 권리의 문제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임신과 출생에 관한 방식에 대한 모든 문제, 즉 눈부시게 발전한 유전공학, 생명공학, 그리고 의학의 성과를 인간 출생의 어느 부분에까지 관여하도록 허용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고 이 문제가 실은 생명윤리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 생명윤리법이 제정되기까지 그리고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의 연장선상인 것이다. 1997년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가 나오면서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생명윤리가 정립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한참 동안이나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심지어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 복제 송아지 영롱이가 성공함에 따라 생명윤리에 대한 직접적 논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음에도 보건부와 과기부가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이냐 ‘원칙적 허용’이냐를 두고 심한 견해차를 보임으로써 “과학기술의 발전과 윤리적 규제”의 문제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었다.
이러한 진통 끝에 통과되어 현재의 모습까지 갖추게 된 생명윤리법은 임신 이외의 목적을 위한 배아의 생성이 금지되고, 임신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사망한 사람의 난자 또는 정자로 수정하거나, 미성년자의 난자 또는 정자로 수정하는 것 등의 행위는 금지된다. 또한, 정자·난자·배아의 매매나 선별은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잔여 배아 역시 불임 치료 등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정하고 있으며, 실제 법원에서도 엄격한 해석에 의해 판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산부인과 병원에 인공수정 시술을 받으러 온 불임여성들로부터 인공수정 시술비 및 과배란 주사비 등을 감면해 주는 조건으로 인공수정 시술에 사용하고 남은 난자를 제공받아 체세포복제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이용한 사례에서 법원은 원래 자신들의 불임 치료를 위한 비용 지출이 예정된 불임 환자들에게 그 비용을 감면하여 주고 난자를 제공받아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이용한 것은 생명윤리법 제13조 제3항에서 금지하는 ‘재산상의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난자를 이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생명윤리법 규정의 목적과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위 조항의 ‘재산상의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난자를 이용하는 행위에는 난자 제공의 대가로 물건 또는 권리의 이전 등 적극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채무면제 등 소극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고, 한편 난자의 유상거래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위 규정은 난자를 인공수정 배아의 생성에 이용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체세포 복제배아의 생성에 이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1도48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업무상횡령·사기·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위반]).”
반면 현실은 어떠한가? 이미 암암리에 정자 공여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보도된 바 있다. 작년 초에는 남편은 원하지 않지만, 아이를 원하는 여성이 정자를 공여받기 위해 남자를 찾는 내용의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을 정도로 아기만을 원하는 여성들의 변화가 감지되기도 한다. 법으로는 금지하지만, 수요가 자꾸 늘면 시장이 어떤 모양으로 변화하는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그에 대한 우려로 ‘상업적 정자은행’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전문가들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업적인 행태의 체외수정 산업은 반드시 유전공학과 손잡게 되어 있고, 엄청난 자금력이 뒤따르는 이 산업은 방향 추 없이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인공 자궁을 개발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행위가 의료자원의 분배 문제로 연결되고, 곧, 경제력의 문제 및 빈부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비가 없는 남성이 정자를 팔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이 대리모 계약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업적인 행태의 체외수정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착상 전 진단을 통해 건강한 정자와 난자만을 시장에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한마디로, 우생학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장애를 야기할 수 있는 배아는 버려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생명윤리법이 배아 하나하나에 존업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과 전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결론은 다시 본질로
생명윤리법 제3조 제①항은 “이 법에서 규율하는 행위들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하여서는 아니 되며, 연구대상자 등의 인권과 복지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사람이 만든 법의 딱딱한 용어가 아니라도 하나님이 내신 생명의 법을 알고 있는 우리부터 생명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인간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부터 다시 생각할 일이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신 것이 진리다. 빠르게 발전하는 속도에 맞추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어보아야 한다. 법이 현실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로 맞추어 가는 것이 옳은가? 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를 돌이켜보는 일이다. 법은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인가? 윤리와 도덕의 최소한인가?
법이 지켜야 할 최고 원칙인 자연법칙이라는 상식이 무너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루다’라는 챗봇과 관련한 사건으로 ‘생명윤리’를 넘어 ‘AI 윤리’를 논하는 시대이다. 문제를 통해 문제의 해결이 아닌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ychuih@hanmail.net>
글 | 연취현
200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현재 수원에서 개인 변호사 사무실 운영 중이다. 7년 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법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기를 서원하고, 현재는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고 태아보호 대안입법을 촉구하는 ‘행동하는 프로라이프’의 사무총장, 복음적 가치구현과 종교자유를 추구하는 법률가 단체인 ‘복음법률가회’ 운영위원, 남성과 여성 간 분열을 초래하는 여성주의를 반대하고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하여 여성의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는 ‘바른인권여성연합’의 전문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