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복음
2021-05-19곽태원 교수의 성경과 경제 이야기 (1)
월드뷰 MA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3 |
글/ 곽태원(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회주의에 미혹된 기독교인
경제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틀(frame)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경제체제이다. 경제체제란 경제에 관한 이념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로 경쟁하는 두 가지의 체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이다. 지금도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을 빼면 찾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아직도 사회주의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주의의 본질을 조금 이야기할 필요를 느낀다. 다음 회에서는 자본주의를 잠시 훑어보고 그다음부터는 좀 더 실제적인 경제문제나 경제 현상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룰 계획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던 완성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수많은 소위 지성인들이 사회주의에 미혹되었고 수많은 청년이 혁명 전선에 자신의 생명을 던졌다.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자신의 능력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그 열매는 생산에 공헌한 것과는 상관없이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갖는 사회, 그런 사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러한 사회는 초대 교회에서 먼저 실현되었다.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이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35).”
이 말씀을 보면 사회주의의 원형은 복음 속에서 아름답게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실종되어 흔적마저 없어졌다가 자본주의가 급하게 근력을 키워가기 시작하는 말세(?) 즈음에 되살아났다. 정말 복음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시장의 역동성과 사유재산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태도에 있다.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재산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도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라고 한다(행 4:32b). 이것 때문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자본주의 체제는 시장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경제문제를 아주 쉽게 풀어간다. 그런데 개인의 사적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에는 시장이 설 자리가 없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사회(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우리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시장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없으면 모든 경제문제를 일일이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체제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부(또는 공산당)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모든 사람과 자본 토지 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재화를 생산하게 하면 시장에 맡겨 놓은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생산된 결과를 필요에 따라서 공평하게 배분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정한 시장의 경쟁에 내던져 놓으면 경쟁력이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누리고 약자는 빈곤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정부가 분배를 결정하면 각자의 개별적인 사정을 자세히 파악해 정의로운 기준에 따라 각자의 필요를 반영한 평등한 분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쉬운 예로 정부가 서울시민의 아침 식사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다음에 그것을 만들 재료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런 요리를 가장 잘하는지를 파악해서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요리하게 하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 이 일 만을 위해서도 엄청난 수의 공무원이 있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하나님의 진리에 대적하는 사회주의 실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커다란 약점 중 하나가 개인의 필요를 채워준다고 하면서 개인의 필요를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혹시 필요가 파악되고, 개인의 능력이 확인되었다고 해도 개인에게 그런 일을 실제로 하도록 해서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각자가 자신이 상대적으로 가장 잘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은 인센티브가 있다. 그러나 계획경제제체에서는 모든 것이 정부나 당의 명령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하는 데 명령은 그 이행을 보증하는 강력한 제재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자랑하는 공평한 분배를 위해서도 개인이나 가정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개인들의 의사에 반하는 재분배를 위한 힘이 필요하다. 장황한 이야기를 했지만, 계획경제체제가 원만하게 운용되려면 우선 엄청난 정보가 필요하고 다음 강력한 중앙정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권력이 아니라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주의가 가장 앞세우는 정의로운 분배를 위해서는 정부나 당이 정의롭고 선한 존재여야 한다. 완전한 정보와 능력 그리고 완전히 선한 성품을 가진 독재자가 있다면 계획경제체제는 정의롭고 효율적인 경제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암묵적으로 정부가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요컨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 공동체가 공산공동체였다는 점 때문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성경적이라고 보는 것은 섣부른 것이다. 성령님이 다스리시는 완전한 사랑의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것을 완력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짝퉁을 넘어 진리에 대적하는 것이다. 설사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고 해도 권력이 집중되면 본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부패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등을 가져다준다는 약속은 지켜질 수 없다. 정보와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극도의 비효율이 만연한다. 이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것이 20세기의 사회주의 실험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twkwack@sogang.ac.kr>
글 | 곽태원
서강대학교 곽태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을 지냈다. 그 후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에서 2년, 그리고 서강대학교에서 20년간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한국조세연구원 이사,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거친 조세 관련 전문가로 부동산 등에 대한 자본소득 과세의 연구에 몰두했으며, 2006년에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