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본 건강한 가정

성경이 본 건강한 가정

2021-05-07 0 By 월드뷰

월드뷰 MA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이상원(전 총신대 교수,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성경이 제시한 가정의 모습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건강가정기본법안’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결혼 관계와 혈연에 기반한 가정의 개념을 해체시켜, 모든 형태의 공동생활을 가정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 법적으로 보호하고자 한다. 이 법안이 법제화된다면 동성 커플이나 혼전 동거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공동생활이 모두 가정으로 인정될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가정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시도에 동의하는가? 성경이 제시한 가정은 어떤 모습인가?

가정의 기원에 대하여 말하는 본문은 창세기 1:27~28, 그리고 창세기 2:24이다. 창세기 1:27~28은 가정형성의 두 가지 조건을 천명한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이 본문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인 결혼이 가정의 첫 번째 필수구성요소임을 보여 준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이 본문은 혈연 상의 자녀출산이 가정의 두 번째 구성요소임을 보여 준다.

첫째로, 이 본문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공동체는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다. 이것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이자 인류 최초의 가정이다. 이 본문에서 남자를 뜻하는 히브리 원어 자카르와 여자를 뜻하는 히브리 원어 니케마는 성적 존재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가정은 성관계가 가능한 자카르니케마의 공동생활로부터 시작된다. 가정은 자카르와 자카르 곧, 남자와 남자, 니케마와 니케마 곧, 여자와 여자의 공동체가 아니다. 성경은 동성 결혼과 동성 가정을 거부한다. 창세기 2:24은 창세기 1:27을 보완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성적인 존재인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창세기 2:24에서 사용된 남자는 전인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이쉬이며, 여자도 전인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이쉬아다. 몸은 몸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이생에서의 삶 전체를 뜻한다. 본문은 “한 몸이 되라.”라고 말하지 않고 “한 몸을 이루어가라.”라고 명령한다. 한 몸을 이루어가라는 말은 하나로 융합되라는 말이 아니라 독립된 두 개체를 유지하면서 상호 보완하여 하나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가라는 뜻이다.

남자와 여자는 먼저 자카르와 니케마의 입장에서 신체적으로 상호 보완하여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루어가야 한다. 인간의 신체는 심장 혈관계, 호흡기계, 신경계, 생식계라는 네 개의 핵심 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세 계통은 다른 신체의 도움이 없이도 작동하나 생식계만은 열쇠와 자물쇠같이 다른 성을 가진 배우자와 관계해야만 하나의 체계로 작동한다. 남성 생식기는 정자만 생산하며 여성 생식기는 난자만 생산한다. 정자 하나만으로는 자녀 생산을 할 수 없으며 난자 하나만으로도 아무 기능도 할 수 없다. 정자는 독립된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며 난자도 독립된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하나의 살아 있는 독립된 생명체로 작동한다. 다음으로 남자와 여자는 이쉬이쉬아의 입장으로 나아가 신체적인 상호보완뿐만 아니라 생각, 습관, 생활에서 서로의 독특성을 살리면서 조화를 이루어 전인을 구현해야 한다.

둘째로, 가정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이미 이루어지지만, 창세기 1:28에는 이에 추가해 가정에. 부과된 가장 중요한 소명이자 인류의 종교 활동과 문화 활동의 시작점이 되는 명령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성관계를 가지고 자녀를 낳을 것을 명령하셨다. 인류의 종교 활동과 문화 활동은 자녀출산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세 시대에 국가형태의 공동체가 시작될 때까지 믿는 자의 가정은 교회와 동일시되었다. 이 시대에는 별도의 전도 활동이 없었고, 가정에서 자녀를 낳아 신앙으로 교육해 교회의 전통을 계승해 나갔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전통은 셋의 가문으로 이어졌는데, 노아까지 이르는 셋 가문의 족보(창 5:1~32)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일이 자녀를 출산한 것밖에 없다. 그러나 자녀를 출산했다는 말은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진술이다. 족장 시대에 장자를 통한 혈연의 계승을 중요시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장자를 통한 혈연의 계승이 곧 교회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세시대 이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공동체로 교회가 확대되었고, 신약시대에는 교회가 국가의 범주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인류의 범주로 확대되면서 혈연 이외의 사람들에 대한 본격적인 포교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전도는 자녀를 출산하고 믿음으로 잘 양육해 가정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전도하기가 어렵고 자녀를 낳으려고 하지 않는 오늘날과 같은 때에, 신자의 가정이 적절한 숫자의 자녀를 낳아 신앙으로 잘 교육하고 신자로 양육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첩경이 된다.


자녀 출산을 통한 인류의 번성


신자들의 가정은 가정 교회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짐과 동시에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고 설명해주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가정의 중요한 두 구성요소인 결혼과 혈연이 바로 이 의미를 가진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시청각적인 유비다. 남편에게서 발견되는 특징들이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향해 보여 주는 특징들을 반영하고 있고, 아내에게서 발견되는 특징들이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가져야 할 태도를 반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성부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보여 주는 태도를 반영하며, 자녀들은 신자들이 성부 하나님을 향해 보여 주어야 할 태도를 반영한다.

결혼 관계가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관계를 온전하게 설명하려면 반드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라야 한다. 결혼이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로 이루어지는 경우 신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설명하는데 치명적인 결함이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남자는 여자와 성관계를 가질 때만 성관계 자체 안에 내재해 있는 아가페적인 태도와 황금률적인 태도를 행사할 수가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성감의 차이 때문에 두 파트너가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남자가 여자의 입장을 살피고 인내하는 가운데 기다려주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감대가 동일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성관계를 가질 때는 이 태도를 체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한, 혈연 상의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닌 경우, 부모는 자식을 향한 아가페적 사랑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를 입양하는 경우에 입양한 자녀에게 아가페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으나, 이때는 단지 도덕적이고 의지적인 결단을 통해 본능적인 사랑에 근접하고자 노력하는 것뿐이다.

자녀출산은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터전이 되기도 한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으로 인류문화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땅을 정복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땅의 티끌”과도 같고(창 13:16) 하늘의 뭇별과도 같이(창 15:5)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명령이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초창기의 인류에게 주어졌을 때는 인류의 숫자가 너무나 적었고 인류가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지구표면의 자연계는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당시의 자연은 거대한 수목으로 가득 차 있었고, 공룡과 같이 위협적인 동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던 환경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난 이후에도 인간의 수명은 천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산아 제한 없이 자녀를 낳아야 했고 또 낳을 수 있었다. 따라서 초창기의 인류는 산아 제한 없이 많은 숫자의 자녀를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아담의 계보를 보면 아담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각 계보를 서술할 때 이런 패턴에 따라서 기록되어 있다. “…는…을 낳은 후…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이 본문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등 특히, 홍수 이전의 초창기의 인류는 100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창세기 1:28의 명령에 따라서 산아 제한 없이 많은 자녀를 낳았다.

그러면 이 명령은 이른바 현대의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변하고자 한다. 현대에는 초창기 인류와는 달라진 상황 때문에 창세기 1:28의 명령을 철저하게 강조해야 겨우 인류의 적정 숫자가 유지될 수 있으며, 만일 근거가 빈약한 인구과잉에 대한 우려 때문에 철저한 산아 제한을 하면 인류의 총 숫자가 인간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크게 줄어드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이 바른 예측이다.

우선 현대 인류의 수명은 초창기 인류의 수명과 비교해 볼 때 1/10 정도로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1000년 가까이 접근했던 인류의 수명이 최대 100년 정도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평균수명은 30년 후반을 넘지 못했다. 가임연령은 20세에서 40세 정도까지 약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플라스틱 제재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환경호르몬 등의 영향과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불가피하게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등의 원인 때문에 자연적인 불임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다가 질병과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의 증가 등이 겹쳐서 자연 출산율이 큰 폭으로 줄어든 상태다. 1750년에 세계 인구가 7억5천만 명이었다가 오늘날 75억 명으로 늘어났지만, 인구증가 속도는 이미 현저하게 둔화되고 있다. 현재의 저출산율이 지속되면 2200년에는 현재의 절반으로, 2300년에는 현재의 1/7로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결혼과 출산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인구과잉으로 주거지나 식량자원 그리고 물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가 빈약하다.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것으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등의 경우 도시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도시를 벗어나면 사람의 자취를 보기 힘들 정도로 한가롭고 평온한 유휴지와 농경지가 넉넉하게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농경지가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도 전혀 근거가 없다. 예컨대 미국의 옥수수 지대의 절반만을 경작해도 180억 명 정도의 식량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유휴 농경지가 전 세계에 널려 있다. 인구가 너무 많아 식수가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도 근거가 없다. 1970년에 깨끗한 식수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30%였는데, 2015년에는 91%로 증가했다. 인간이 사용 가능한 물 가운데 17%만 사용되고 있고, 그 물도 해마다 새롭게 채워지고 있다. 게다가 해수의 담수화 설비가 발명되어 무제한으로 식수 공급이 가능하다. 에너지 자원의 경우도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수십 년 안에 석유자원의 고갈을 염려했으나, 역청 사암과 셰일 유전의 발견으로 5000년 동안 전 세계의 인류가 사용하고도 남을 원유가 매장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 명령을 받아낼 수 있을 만큼 탄탄하고 풍요로운 자연 세계를 준비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인간이 자원고갈을 염려해 엄격한 산아 제한을 해야 할 만큼 빈약한 곳이 결코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결혼과 혈연에 기반한 자녀출산은 가정의 기본요소이다. 이 두 요소가 하나님이 정하신 건전한 가정형성의 두 기둥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 질서를 철저하게 견지할 때 인류의 종교와 문화는 풍성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며, 이 질서를 거스르면 인류문명의 운명은 멸망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