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과 저출산
2021-05-06
월드뷰 MA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
글/ 이희범(사}한국가정사역협회장, 목사)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선택한 ‘비혼’
요즈음 “왜 결혼하지 않는가?”라고 물으면 스스럼없이 자신은 ‘비혼족’이라고 소개하는 청년이 적지 않다. 미혼(未婚)과 비혼(非婚), ㅁ과 ㅂ 차이인데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비혼’이란 단어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 ‘N포 세대’로 대변되는 청년들은 이 비혼의 등장에 환호했다. 더 이상 결혼 문제로 주눅 들거나, 자존감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혼족들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쿨’한 사람들로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주변을 둘러보면 쿨함은 커녕 신혼집 마련 등에 지레 겁먹어 일찌감치 결혼을 단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비혼’이란 단어를 청년세대의 자기방어 기제로 분석하기도 한다. 강유진 교수(총신대)의 연구에 따르면 비혼 성인남녀 중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은 20%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분석해 비혼의 유형을 1) 결혼비용 부담형 2) 기회상실형 3) 불이익 부담형(결혼 이후 직장·가족생활에서 예상되는 압박감 등에 부담을 느껴 비혼을 선택) 4) 자발형 등 4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중 80%가 비자발적 비혼으로 파악됐다. 가장 흔한 것은 기회상실형(37.2%)으로 이들은 적당한 결혼 나이를 놓쳐서, 마땅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서, 시간이 없어서, 형이나 언니가 아직 미혼이어서 등을 비혼의 이유로 꼽았다. 이어 결혼비용 부담형(29.3%)과 자발형(20.7%), 불이익 부담형(12.8%) 순이었다.
결혼 상대방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이런 부담을 더욱 키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상적인 남편’은 키 177.4cm에 연 소득 4930만 원을 벌고, 자산은 2억7286만 원 이상을 가지고 있는 4년제 대졸 남성으로 나타났고, ‘이상적인 아내’는 키 164.3cm에 연 소득 4,206만 원, 자산 1억8247만 원을 가진 4년제 대졸 여성으로 나타났다. 실제 결혼을 외면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은 경제적 부담감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담감의 이유로 비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특히 남성이 느끼는 경제적인 부담은 더욱 크다. 강 교수의 연구에서도 비혼의 이유로 남성은 ‘결혼비용 부담형’(43.2%)이 가장 많았다. 남성이 가족 생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아직 강해 경제적 여건이 결혼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남성에게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부담이 크다”라며 “연애와 달리 결혼은 여러 각도에서 서로 재고 따져야 할 텐데 그런 부분에서 솔직히 자신감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비혼족’이란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청년은 여전히 결혼을 원하고 있다. 한국의 ‘비혼족’은 결국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실제 지난해 각 시도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수행한 조사를 살펴보면 미혼남녀 응답자의 60∼70%가량이 “결혼할 생각이 있다”라고 답했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심 희망마저 놓지는 않은 셈이다. 부쩍 늘어나고 있는 비혼족을 마냥 ‘소신 있는 젊은이’로 보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이들을 구출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비혼족’ 현상을 일종의 사회 흐름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에서는 청년들에게 많게는 3억 원 정도의 전세 자금을 저리(低利)로 장기융자 해주는 제도나 결혼 지원금 혹은 결혼 수당 제도, 보육비 인상 등 ‘파격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파격’이 아니라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이다.
인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저출산 정책
이 비혼과 맞물려 이 사회에 가져온 또 하나의 재앙이 있다. 바로 저출산 문제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산국이다. 2020년 출생아 수는 27만 2,400명으로 전년보다 3만 300명이 줄어 10.0% 감소했다. 2020년 출생아 수는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후 가장 적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 출산율은 0.84명으로 전년 0.92명보다 0.08명 감소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조출생률은 5.3명으로 전년보다 0.6명이 줄어 출생아 수 합계 출산율과 마찬가지로 197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저출산으로 고령 인구 비중 증가, 노인 부양비 증가, 지방 인구 소멸 등이 심각해질 것이란 위기감이 널리 퍼졌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시행됐고 이후 역대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수립하고 엄청난 자원을 투입해왔다.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 아래 예산을 143조 원이나 쏟아부었다. 하지만 출산율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미혼, 즉 혼인 연령이 높아지는 것과 비혼 대책에 아낌없는 노력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초저출산은 한국 경제와 사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인구 쇼크’라며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들이 팔을 걷어붙였지만, 백약이 무효하다는 무력감만 가져다주었다. ‘저출산 현상 지속→국가 위기→출산율 반등 필요’라는 단순 논리로 움직여온 정부 정책의 실패였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2월 저출산 문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했다. 국가가 개인에게 출산을 강요해온 기존 정책 방향 대신 아이를 낳아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5년마다 새롭게 짜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출산율 목표치도 없애기로 했다.
그러나 저출산은 한국 사회 여러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원인을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동시장에서 성 평등을 실현하고 삶의 질을 높여야, 아이를 낳고 싶은데도 못 낳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생각도 비슷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 19~69살 국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출산 장려’에서 ‘국민 삶의 질 제고’로 전환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93%로 압도적이었다. 찬성한 응답자(930명)들은 ‘일·생활의 균형(23.9%)’, ‘주거 여건 개선(20.1%)’, ‘사회적 돌봄체계 확립(14.9%)’ 차례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꼽았다. ‘출산 지원’(13.8%)은 네 번째에 그쳤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회나 정부, 지자체들의 ‘패러다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관성적인 정책과 사업도 그대로다. 행정안전부는 2016년 12월 지자체의 저출산 극복 노력을 홍보하겠다며 누리집에 가임기 여성 수 등을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년마다 실시하는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도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출산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에 여성들은 분노했다. 출산에 대한 사회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데, 법과 제도·정책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저출산 대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성 평등, 아동 발달, 가족과 인구 구조의 변화 등 복합적인 목표 아래 가족 정책 또는 사회보장 정책을 시행할 뿐이다.
하나님의 축복 “생육하고 번성하라”
결혼 자체를 못하는 병든 사회 분위기에서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보육 및 경력단절 여성 지원 등 기혼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으로 청년층의 일자리와 주거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혼율을 낮추지 못하면 저출산 대책은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가장 탁월한 저출산 정책은 ‘결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 전문가’로 알려진 어느 취업 컨설턴트는 “저출산 문제 역시 취업의 악순환에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다”라며 “청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면 청년들이 결혼도 빨리하고 자연스럽게 출산도 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이철희 교수(서울대 경제학) 역시 서울 인구 심포지엄에서 “출산장려금과 같은 명시적 저출산 외에도 많은 정책이 간접적으로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 주거, 교육,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의 정책이 직접적인 출산장려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효과를 얻기 힘들다”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크리스천 청년들에게 일러주고 싶다. 성경은 결혼과 출산을 하나님의 가장 근원적인 축복으로 말씀한다. 일반 청년들은 사회적 보장이나 정부의 지원이 가능할 때 결혼도, 출산도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크리스천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적 기반에 따라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7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만일 참으로 가난했던 나의 부모님께서 지금처럼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적 보장에 의지해서 결혼이나 출산을 생각했다면 필자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일곱이나 되는 나의 형제들은 그렇게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이나 숙식을 공급받지 못했다. 그 시절은 우리 형제들뿐 아니라 절대 국민이 그렇게 태어났다. 그러나 아는가? 그때 태어나서 고생했던 우리 국민이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았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신다. 자녀는 나의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지원과 후원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키우시고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결혼도, 출산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신앙적 태도일 것이다.
<lhb2242@naver.com>
글 | 이희범
사)지구촌가정훈련원장이며, 사)한국가정사역협회 회장이다. 저서로는 <남편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어요>, <가정사역 부부학교 초급 과정>, <땅에서 풀어야 하늘이 풀린다>, <이희범 원장의 행복 만들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