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불 시험
2021-04-11
월드뷰 APRIL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
글/ 박기성(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시편 13:1)
많은 기독교인이 지금 부르짖고 있는 기도일 것이다. 서울 동부구치소의 쇠창살 사이로 보였던 “살려주세요”라는 피켓은 인간으로서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요양병원에서 코호트 격리되어 죽어가는 어르신들을 보면서는 억장이 무너졌다. 문을 닫아야만 하는 자영업자와 직장을 잃은 실직자의 탄식,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한 폐렴의 긴 터널, 치솟는 아파트 가격과 세금 등으로 “살려주세요”라는 절규는 국민 모두의 절규가 되었다.
이 엄혹한 현실에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부의 명령에 따라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다. 예배에 목숨을 걸라고 외쳤던 수많은 목사가 비대면 예배 뒤로 숨고 있다. 방역을 빙자해서 교회를 탄압했던 정부도 예배를 통한 전염은 거의 없었다고 인정했지만, 교회 대부분은 여전히 정부 시책에 순응하고 있다.
이재철 목사는 하나님이 우한 폐렴 사태로 온라인 예배라는 대포를 교회에 쏘셨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예배당 짓고 꾸미는데 과도한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고, 성도들이 그 공간의 목사에게 종속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질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내 대부분의 분쟁이 건물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이런 지적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예배를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현장예배를 고수하는 소수의 목사가 있다. 전광훈, 심하보, 손현보, 고병찬, 서영호, 안희환 목사 등이 그들이다.
다니엘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고, 이 때문에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다(다니엘 6:10~16). 정부의 명령에 따르는 목사들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해 뭐라고 설교할까? 작금의 상황과 다니엘이 처했던 상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선을 그을지도 모른다. 그럼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주기철 목사는 헛된 죽임을 당한 것인가? 북한이나 중국에서 공안의 감시를 피해 모여서 드리는 지하교회의 예배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지나친 것인가?
국가의 교회에 대한 탄압에 직면해서 위의 소수의 목사를 중심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국의 사례에 주목하게 되었다. 영국 왕의 박해를 피해 목숨 걸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 결과가 미국의 헌법이다. 이 헌법은 국가라는 집단이나 전체의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자유주의 헌법이다. 수정 헌법 제1조는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도 종교의 자유와 국교 불인정 및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교회 예배에 대한 간섭은 국민 기본권의 심대한 침해로 위헌이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57번 나오고 해방 등과 같은 의미의 단어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인간을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켜서 자유를 누리게 하심이다(갈라디아서 5:1). 하나님은 당신과 언약을 맺을 수도, 안 맺을 수도 있는 자유까지 인간에게 주셨다. 이러한 자유를 국가가 억압하거나 찬탈할 때 교회는 분연히 일어나서 천부적 자유와 인권의 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목사 대부분은 궁색한 변명 뒤로 숨어 행동하지 않고 있다. 지금 왕 앞에 나가는 에스더처럼 순교와 같은 엄청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예배 탄압이 부당하다는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에 참여하는 정도를 요구하고 있으나, 대부분 의 목사는 외면하고 있다.
이 대부분의 목사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곡해해서 정치적 언행을 금기시한다. 그러나 정교분리는 국가의 영역과 교회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의미이다. 종교인이 중세의 교황처럼 정치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신정국가를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사는 성경에 기초해서 사회의 옳고 그름을 알려주어 깨우칠 의무가 있다(정동수 목사). 이사야는 므낫세 왕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톱으로 허리가 잘려 죽었고, 예레미야는 눈물로 호소했으나 결국 유대인들이 바빌론의 포로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 때 미국의 수많은 목사는 하나님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치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특정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이들이 법을 통해 복음의 핵심인 자유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목사들이 옳고 그름에 대해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언행을 금기시하고 비대면 예배 뒤로 숨는 목사들은 하나님을 교회 안에 가두고 있다(안희환 목사). 하나님의 뜻이 교회에만이 아니고 온 땅에 이루어져야 하고, 우리의 사명은 교회만의 빛과 소금이 아니고 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법을 구실로 국민을 괴롭히는 부패한 정치가와(현대인의 성경, 시편 94:20) 우한 폐렴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방역을 빙자한 교회에 대한 핍박도 하나님이 허락하셨음을 믿고 감사드린다. 이런 불 시험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공인된 로마에서는 기독교가 부패했지만, 로마의 지하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도성이 이루어졌다.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쭉정이가 제거된 후 사도들이 많은 표적을 행하고 교회의 대부흥이 일어났다. 지금의 불 시험이 쭉정이를 솎아내고 알곡만 남긴 후 성령의 불을 붙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인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가 알곡 신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kpark@sungshin.ac.kr>
글 | 박기성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을 거쳐 성신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한국 경제학회에서 수여하는 청람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성신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촌성결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