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성을 잃은 정부의 태도
2021-04-12
월드뷰 APRIL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0 |
글/ 심동섭(목사, 변호사)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의 갈등
COVID-19가 한국 교회를 덮쳤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본 것이 어디 교회뿐이랴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것이 교회이다. 교회는 이미 1년 이상 제대로 모이지 못해 신자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렸던 교인들이 다시 돌아올지 확신하지도 못한다. 대형 교회는 그래도 형편이 낫겠지만, 재정적 압박으로 이미 수천 개의 소형 교회가 문을 닫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교회가 또 문을 닫을지 알 수가 없는 실정이다. 상가나 타인의 건물을 빌려 설립한 교회는 더이상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버티기 힘든 지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심각한 피해는 교회 내부의 갈등이다. 정부가 비대면 예배만 허용할 것을 발표했을 때 한쪽에서는 그것을 신앙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여기고 대면 예배를 강행함은 물론이고 법적 쟁송 등으로 다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러한 반발을 교회의 이기주의라고 하며 정부의 조치에 순응해야 한다고 서로 다투고 있다. 후자의 입장에 선 분들은 아직도 교회가 대형주의, 물량주의의 환상에 벗어나지 못해 대면 예배를 고수하고 있다고 질책하고, 심지어 교회가 자기 이기주의에 빠져 이웃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대면 예배를 고수하는 것에 대해 사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면 예배를 고수하는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자기 이기주의에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님이 밝혀지고 있다. 사실 비대면 예배를 강제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그들이 비난하는 대형 교회가 아니라 100명 미만의 교인을 가진 소형 교회이고, 무엇보다도 농촌 교회의 피해가 심각하다. 중대형 교회는 발 빠르게 비대면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비대면 시설을 갖추고 성도를 관리할 수 있지만, 소형 교회 특히 농촌 교회에서는 그런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농촌 교회 교인들이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 교회는 대면 예배를 고수하는 교회와 비대면 예배로 전환해야 한다는 교회 사이에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은 비대면 예배를 지지하는 측이 다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대면 예배는 대면 예배를 보완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더라도 연주장의 현장에서 듣는 감동이 어떻게 집에서 오디오로 듣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연주장에서는 연주자와 관객이 숨결을 함께하며 음악을 감상하고, 감정이 고조되며 서로 하나가 되는 희열을 느낄 수 있으므로 적지 않는 비용을 치르면서 연주장으로 가지 않는가? 어떻게 비대면 예배를 대면 예배에 견줄 수 있겠는가? 비대면 예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허용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일상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분들의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 현장 예배가 주는 감동과 영적 감화력은 비대면 예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법이라는 이름의 예배 금지는 과연 정당한가
문제는 법이다. 아무리 대면 예배가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법이 그것을 금하고 있다면, 그것을 어기면서까지 대면 예배를 강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가 법으로 규정하는 대로 비대면 예배가 원칙이라는 분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정의에 따른 법이 아니면 법이 아니라는 원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국회가 제정하고 정부가 행정입법을 한다고 해서 모두 법으로서의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가의 폭력을 보았다. 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니다!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스스로 법치주의 국가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법은 정당하지도 않고 독재 권력의 수단이기 때문에 법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부의 예배에 대한 규제 조치는 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경우를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첫째로 정부가 대면 예배를 전면 금지하고 비대면 예배만 허용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법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예배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그렇다. 비대면 예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능하고 여기에는 정부의 허가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혼자서 설교하고 찬양하고 동영상을 올리는데 무슨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겠는가? 아무리 코로나로 인한 조치가 엄중해도 비대면은 어떤 경우라도 법을 어기지 않고 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허용하고 말고 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비대면 예배만 허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 실질의 내용은 예배에 대한 전면 금지이다.
코로나 상황이 위중할 때 예배를 전면 금지해야 할 경우가 올 수 있음을 이해한다. 문제는 형평성으로 돌아간다. 정부가 다른 시설에 대해서는 전면 금지를 하지 않으면서, 유독 교회의 예배에 대해서만 전면 금지를 한다면 그것은 정당성을 잃은 것이다. 예컨대 예식장, 극장, 공연장 등에는 일정한 수 또는 수용 능력에 따른 비율로 제한하는 조처를 하면서 교회의 예배만 예외를 둔다면 그건 안 될 일이다. 더구나 초기에 성당이나 절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고 유독 교회만 통제했으니 종교 간에도 형평성을 지키지 않고 차별한 것이다.
또한, 비대면 예배만 허용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예배의 방식을 규정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비대면 예배도 정상적인 예배로서 허용될 것인가, 하나님이 받을만하신 예배인가 하는 것은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결정할 일이다. 정부가 이것을 결정한다면 교회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허용하는 것이 되어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예배는 그 성격상 규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정부가 5인 이하로 모여 드리는 농촌 교회의 예배에 대해서도 비대면 시설이 없다고 하며 단속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예배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가 있다.
다음은 교회의 수용 능력에 따른 일정 비율 방식의 규제이다. 즉, 수용 능력의 10% 또는 20%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러한 규제는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본다. 다만 이때에는 다른 시설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영화관에 대해 한 좌석 띄우기를 허용한다면 교회의 예배도 같은 방식으로 허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교회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를 가한다면 그것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소모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020년 7월 8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최근 감염사례를 분석해 보면 교회의 소규모 모임과 행사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발표하면서 교회의 정규 예배 외 모든 소모임과 행사를 금지했다. 이어서 2020년 8월 18일에는 대면 예배를 금지하고 비대면 예배만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문제의 핵심은 정 총리의 말대로 교회의 소모임이 감염사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만일 정 총리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교회는 정부의 소모임에 대한 규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대본이나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정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그 근거가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했으나 아직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형평성을 잃은 정부의 태도
사실 정부는 교회의 소모임뿐만 아니라 교회의 대면 예배가 감염의 위험성이 높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것이 진실에 입각한 것이라면 소규모 모임을 강행한다거나 현장 예배를 고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배가 감염의 원인이라는 통계나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2021년 1월 31일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인 윤태호 씨는 언론에 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은 거의 없었다고 실토했다. 이것은 그동안 교회가 감염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던 정부와 언론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고백이다.
그렇다면 정 총리는 왜 느닷없이 교회의 소모임을 지목하면서 감염의 주원인이라고 발표하고 이어서 교회의 대면 예배를 금지했을까? 이어서 친정부적인 성향을 지닌 언론이 교회를 감염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대대적인 보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를 국민과 등지게 해 서로 반목과 질시를 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근거도 희박한 사실을 발표할 때 그 이면의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방역을 이용해 정치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 총리가 그와 같은 조치를 발표한 것은, 묘하게도 보수단체가 8·15 광복절 집회를 대규모로 개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한 때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현 정권이 위기의식을 느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기에 따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을 보면서 집권층에서 위협을 느끼지 않겠는가? 정부가 보수단체의 집회는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극도로 규제하면서 민노총 집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식, 최근 백기완 씨의 장례식 등 친정부정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집회에 대해서는 단속을 느슨하게 한다면 누구나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여기에서 대통령 탄핵 주장의 당·부당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교회 예배의 자유 또한 그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는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공존한다. 현 정부에 찬성하는 교인도 있고 반대하는 교인도 있다. 정부에 찬성하는 교인은 포용하고 반대하는 교인은 타도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교회 내부의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교회의 소모임과 대면 예배를 금지한 것이 과학적 근거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자료를 제시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교회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사실을 감춘다면 정치 방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의 심판, 아니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예배는 소중하다. 어떤 사람은 한두 번쯤 빠져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생명보다도 소중하다. 만일 누군가가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자유민주국가의 원칙이고 또한 법치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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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동섭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했으며, 신학박사이다. 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민영 소망교도소장, 중앙대 법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양병교회 담임목사, 법무법인 로고스 파트너 변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