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있어서 남성의 책임

낙태에 있어서 남성의 책임

2021-03-16 0 By 월드뷰

월드뷰 MARCH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1


글/ 이상원(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산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결정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해 임산부와 배우자가 함께 결정했다면 이 행위에 대한 도덕적이고 법적인 책임도 임산부와 배우자가 함께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폐기된 형법 제269조는 낙태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임산부에게 묻고 있고, 형법 제270조는 의료진에게만 묻고 있을 뿐 배우자 곧, 남자에게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도덕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임산부에게만 묻는 것은 세 가지 성경적 관점에서 지지받기 어렵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지으셨다


첫째로,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평등성의 기반으로부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참여하고 서로 동의한 행위에 대해 여자에게만 도덕적, 법적 책임을 묻는 태도가 나올 수 없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손수 지으셨으며,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하게 땅을 정복하라는 문화명령을 주셨다(창 1:26~28).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인간학적 인식의 신학적 근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격이 하나님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사실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동등한 것처럼, 남자와 여자는 그 본질상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평등하다.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 평등이라는 터전으로부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참여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 남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여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불평등성이 나올 수가 없다.

둘째로, 성경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명확한 상보적 관계로 파악하고 있고, 이 상보적 관계는 남자와 여자의 성관계와 이를 통한 임신의 경우에 가장 명확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임신이나 임신중절에 대해 남자와 여자가 공동책임을 지는 것이 순리다. 남자와 여자는 존재에 있어서는 평등하지만, 그 역할과 기능에서는 해소될 수 없는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이 차이가 서로를 보완하여 온전한 인간의 삶을 형성하게 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문화대명령을 동등하게 받았으나(창 1:28),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해 이 문화대명령을 수행한다. 여자의 능력과 재능은 남자의 능력과 재능과 질에 있어서 동등한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향하는 방향과 발휘되는 영역이 다를 수 있을 뿐이다. 뇌 구조상으로 본다면 여성은 언어, 논리, 분석을 관장하는 좌뇌와 정서, 직관, 창조, 통전 등을 관장하는 우뇌를 남성보다 더 쉽게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의 차이 때문에, 결혼 관계 안에서뿐만 아니라 결혼 관계 이전과 밖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남자 혹은 여자들로만 구성된 공동체 안에서보다는 남자와 여자가 눈을 맞대고 바라보면서 어울리는 공동체 안에서 성욕은 훨씬 더 쉽게 극복된다.

또한, 성관계 시에 남성과 여성의 흥분 곡선이 서로 다르다. 남성의 흥분 곡선은 급격하게 솟아오르고 신속하게 떨어지는 반면에, 여성의 흥분 곡선은 천천히 솟아오르고 완만하게 내려간다. 남성들은 사정을 일차적인 목표로 빠르고 관능적이며 강하고 직접적인 성관계를 원하지만, 여성은 지속적이고 부드러우면서 정교한 형태의 성관계를 선호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성교 시 두 당사자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노력 특히, 남자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성교는 자아를 기꺼이 포기하고 동반자를 배려하는 헌신 속에서만 완성된다. 성관계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더 작은 부분을 표현한다. 남자는 자기 시간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외부 세계에서 보낸다. 그러나 여자는 성관계 시 자아를 유보함이 없이 준다. 성교 시 여성 성기는 자기의 몸 안으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지만, 남성 성기는 밖으로 배출한다. 여성의 성기가 정액을 받아들이면 정액은 여성의 성기와 몸 전체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잉태는 여성의 몸과 마음 전체의 문제다. 반면에 남성은 정액을 사출하고 난 이후에 성기를 포함한 몸과 마음에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처럼 생리학적 구조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에게는 일부일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남성에게는 일부다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남자가 자신의 일반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을 따라서 다처성을 추구하면 여자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된다. 남자는 여자의 물리적이고 인격적이고 통전적인 여성성의 대체 불가성을 존중해야만 하며, 상호순종의 태도를 가지고 다처제를 거부해야 한다.


함께하기에 책임도 함께져야 한다


인간 신체는 심장 혈관계(the cardiovascular system), 호흡기계(the respiratory system), 신경계(the nervous system), 생식계(the reproductive system)라는 4대 핵심계통으로 구성된다. 이 계통들 가운데 심장 혈관계, 호흡기계, 신경계는 다른 신체의 도움이 없이 한 몸 안에서 자율적으로 작동된다. 그러나 생식계만은 다른 성을 가진 배우자와 연합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는다. 생식 관계에서 다른 성을 가진 배우자들은 서로를 완성한다. 남자와 여자가 기능과 역할의 차이 때문에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해 문화대명령을 이루어간다는 관점은 삼위일체론적인 신학적 기반을 가진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그 기능과 역할이 명확히 다르며, 이 다른 기능과 역할이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해 창조사역과 구원사역을 완성한다. 창조와 섭리사역은 성부께서 주도하시고 성자와 성령이 협력하는 사역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데 필요한 터전을 마련하는 객관적 구속사역은 성자께서 주도하시고 성부와 성령이 협력하는 사역이다. 객관적 구속사역을 신자에게 실질적으로 적용해 살려내시는 주관적 구속사역은 성령이 주도하시고 성부와 성자가 협력하는 사역이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간학적이고 신학적인 기반에서 볼 때 남자와 여자가 각기 다른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를 보완해가면서 성관계와 이에 수반하는 자녀출산 과정을 함께 진행한다면, 출산 과정에 뒤따르는 결과에도 항상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결과를 도출함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자녀출산 과정의 결과 가운데 하나인 낙태행위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남자가 면제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당연히 책임에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셋째로, 성경은 결혼 관계에 있어서 기능적인 의미에서 남자의 주도권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고, 이 주도권은 성관계와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임신에 대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임신이나 임신중절의 결정에 있어서 임산부보다 배우자인 남자에게 더 큰 도덕적이고 법적인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성경은 결혼 관계 안에 있는 남자에게 지도하는 지위를 부여하고, 여자에게는 그의 지도에 따라야 하는 위치를 부여한다(고전 11:3이하; 엡 5:22,23 골 3:18; 벧전 3:1; 딤전 2:9 이하). 남자는 아내의 머리로서 지도하는 위치에 서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 질서는 기독론적 배경을 가진다. 기독론적 배경이라 함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는 것이다(엡 5:22-23). 또한, 이 질서는 창조론적 배경을 가진다. 아담이 먼저 창조되고 그 이후 하와가 창조되었으며(딤전 2:13),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고, 남자가 여자를 위해 지음을 받지 않고, 여자가 남자를 위해 지음 받았다(고전 11:9). 물론 이 질서는 존재의 질서가 아닌, 기능적 질서다. 뱀으로 위장해 나타난 사탄이 아담을 먼저 유혹하지 않고 아담이 모르는 가운데 하와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친 것(창 3:1)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아담의 지도적인 위치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하와는 사탄의 유혹이 자기에게 찾아 왔을 때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아담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았어야만 했다.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대해 아담의 지도를 받아 대응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대응한 것 자체(창 3:2-3)가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었음을 뜻한다. 급진적인 페미니즘이 가정에서 남자의 지도적인 지위를 거부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사탄의 계략에 먼저 빠진 주체가 하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와에게 일절 질문을 하지 않으시고 아담을 부르셔서 사실 확인을 하셨고, 아담이 자초지종을 답변해야 했다(창 3:3-12). 하나님은 아담을 부부의 대표이자 책임을 져야 할 지도자로 대우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에 대해 아담과 하와에게 공동책임을 물으시고 함께 벌을 내리셨다(창 3:16-17).

이 질서는 삼위일체적 배경을 가진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에 대하여 지도적 위치에 있고, 성자는 성령에 대하여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영원한 위계가 삼위일체의 관계 안에 확립되어 있다. 결혼 관계에서 남자에게 지도적 위치가 부여되었다면, 자녀출산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따라서 자녀출산의 결과인 낙태에 대해 임산부에게만 일방적으로 도덕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남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