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의료는 위험한 제도인가?
2020-11-15
월드뷰 NOV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2 |
글/ 박종훈(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COVID-19 시대에 들어서면서 논란이 되는 이슈 가운데 하나로 원격 의료가 있다. 원격 의료라는 제도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박근혜 정부 시절로 기억한다. 정부는 신성장 동력의 일환으로 원격 의료 시스템의 전격적인 활성화를 기획했으나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서 본격적인 시행을 유보(?) 했었고 그 문제는 최근까지도 수면 아래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상황이 되면서 환자들이 병원을 방문하기 꺼리고, 병원 측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선호하면서 원격 의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많은 국가가 이미 원격 의료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 과정에서 의료계의 저항 때문에 끝내 원격 의료를 시행하지 못한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원격 의료가 의료계의 저항에 부딪히는지가 궁금해진다.
원격 의료란?
원격 의료(Telemedicine)란 원격 통신과 정보 기술을 이용해서 원거리의 환자들에게 진단, 치료, 모니터링 등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역적인 제한으로 인한 환자와 의사 간의 대면 진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것인데, 의료의 특성상 ‘대면 진료보다 나은 진료 행태는 없다’라는 점 때문에 원격 의료의 시행을 고민한다면 이 시스템이 갖는 장·단점의 특성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쉽게 설명하면 섬에 있는 환자가 진료를 보기 위해 육지로 나가지 않고도 섬에서 먼 거리에 있는 병원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중증 외상 환자거나 누가 봐도 당장 긴급한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송을 하겠지만 당장 이송이 필요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어렵거나, 기본적인 처방 정도로 충분한 경우라면 먼 거리를 이동해서 병원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원격 의료 시스템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본 개념은 이처럼 아주 단순하지만, 목적과 쓰임새는 매우 다양하다. 단순히 환자와 의사 간의 지리적인 접근의 곤란함 외에도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 균등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도 아주 좋은 방식이 될 수 있다. 즉, 대도시의 의료 수준은 상당히 높은 데 반해 도시에서 먼 거리의 지역 의료 수준이 상당히 낙후된 경우, 특히 장비나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인력의 질적인 문제일 경우 원격 의료를 통해 동일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을 보자. 북경과 상해에서는 병리과, 영상의학과 의사의 수준이 상당한 데 반해 신장 지역 같은 변경 지역의 경우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는 있으나 그 수준이 대도시만 못할 수 있다. 장비야 갖출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 근무할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이런 경우 해당 지역의 내과, 외과 의사들은 정확한 진단하에 치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검사 결과를 믿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게 된다. 오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광범위한 지역의 의료 역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균일하게 끌어올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럴 때 대도시의 의료진이 정확한 진단을 원격으로 제공함으로써 전국이 비슷한 의료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제 진료가 활성화된 우리나라에서는 또 다른 쓰임새가 있는데 바로 외국인 환자 진료다. 외국인 환자의 경우 해당 국가에서 진료를 받고, 한국에 입국해서 치료받은 후에 다시 자국으로 갔다가 필요할 때 재입국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종종 자국의 진단이 잘못돼서 애초에 우리나라에 올 필요가 없었던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해당 국가에서 시행한 검사 자료를 원격으로 사전에 보내고, 이를 검토한 후 원격 화상 진료 시스템을 통해 진료를 한다면 입국이라는 불필요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있다. 또 치료 후 정기 검진이 필요한 경우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 얼마든지 한국으로 재입국을 하지 않고도 해당 국가에서 진료를 끝낼 수 있으니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IT 시스템이 잘 완비된 국가라면 이 시스템을 시행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에 이동이 제한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입국 후 14일이라는 격리 기간을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원격 진료 시스템은 각광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을까?
사실 직접 대면에 의한 진료 이상의 진료는 없다. 대면 진료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약간의 발품을 팔기가 싫다는 이유로 또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원격 의료가 이용된다면 그것은 원격 의료 활성화의 본 취지와 맞지 않는다. 즉 모든 상황에서 원격 의료가 적용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최상의 진료는 대면 진료이기 때문이다. 앞서 원격 의료의 활용 사례를 들었지만, 대부분의 상황이 대면 진료가 용이하지 않거나 의료 수준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해당된다. 사실 대면 진료가 아닌 원격 의료의 경우 오진 등 부적절한 치료 제공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대면 진료의 경우도 이러한 부분은 있을 수 있지만, 원격 의료의 경우는 대면 진료보다 진료적 측면에서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원격 의료가 시행되는 경우는 대면 진료와는 전혀 다른 상황임이 전제된다고 할 것이다.
원격 의료는 위험한 제도인가?
의사 단체가 원격 의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의사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의사가 반대하는 논리는 대면 진료가 아닌 원격 진료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는 제도가 왜 대한민국에서만 위험할까?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원격 의료는 시행 단계에서 위험할 수 있는 경우는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애초의 정부안을 보더라도 초진 환자가 아닌 재진의 경우에만 적용하고, 급성기 질환이 아닌 만성질환 가운데서도 일부 질환의 경우에서만 적용하려고 했다. 그것도 특이 사항이 없는 재진에서만 시도되고 또 거기서도 3회 이상의 원격 진료는 안 되는 것으로 하고 있었는데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도 위험했을까? 대면 진료보다 안전한 진료가 없지만, 사실상 정말 그렇다는 보고서는 없다. 원격 의료를 반대하는 의사들이 이 같은 제반 상황을 충분히 이해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고 하지만, 사실은 원격 의료로 인한 기존 의료계의 판도 변화에 대한 우려가 더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즉 환자에게 위험하다는 것은 피상적인 이유고, 실은 의료인들, 특히 개원 의사들은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대형 의료기관이 원격 진료 시스템을 통해 전국의 환자를 통째로 흡수할 것이라는, 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개원가는 초토화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시나리오가 등장한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러한 이유가 의료계, 특히 개원의 중심의 의사들이 반발했던 이유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럴까?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모 대형 의료기관이 원격 의료 시스템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개원가에서 우려하던 형태의 준비는 아니었다고 확신하는데, 그 이유는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원격 의료를 통해 의료 수익을 올리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필자의 판단은 그렇다.
원격 의료 시스템 자체도 쉬운 것은 아니다. 진료하는 의료인과 환자 측 모두 화상으로 진료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고, 사전에 시간도 약속해야 한다. 특히 고령의 환자는 조력자가 없으면 원격 진료 시스템의 실행이 불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이동해서 대면 진료가 가능한 성인에게나 사용 가능한 시스템이지, 정작 원격 진료가 필요한 고령의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오히려 활용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렇게 쉽지 않은 시스템을 이용하려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경제적인 이득이든 시간상의 이득이든 뭔가 얻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매우 큰 가치라야 할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병·의원 접근성이 지리적으로 어렵지도 않고 – 농촌 지역을 제외하면 도심의 경우 반경 수백 미터 안에 수십 개의 병·의원이 있다 – 병원의 입장에서는 고작 재진료비가 수천 원에 불과한 수가 체제하에서 그 이익을 얻자고 시간과 장비를 투자해서 환자를 확보할 매력이 없다.
병·의원과 그나마 약간의 거리가 있는 농촌은 어떨까? 대부분의 농촌 지역 또한 비록 도시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차량으로 최소 수십 분 안에 병원을 갈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은 국토가 광활한 국가가 아니다. 게다가 농촌 지역의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시스템에 접속해서 도시의 의사들과 원격으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차라리 직접 병원을 방문하는 것 이상으로 힘이 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진료 내역 안에서 허락된 원격 의료가 의료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진료와 약 처방은 또 다른 문제이다. 진료는 원격으로 했다고 해도 약이 배달되는 제도가 없으므로 환자 입장에서는 어렵사리 진료를 원격으로 했다 쳐도 약을 사기 위해 다시 병·의원이 있는 곳까지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격 의료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 제도가 과연 성공할지 의문이다. 원격 의료를 통해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는지에 대한 정부의 목적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 제도로 인해 의료 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는 불신의 골이다. 의료계는 지난 수십 년간 정부 정책으로 인해 의료 환경이 매우 나빠졌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설령 선한 의도로 접근해도 의료계는 의구심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영리 병원 문제만 해도 그렇다. 20년 전만 해도 의료계는 건강보험 강제 지정제(모든 병원은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함)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위헌 소송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건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의료제도하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영리 병원 제도가 대한민국에서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 명확한데도 강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원격 의료, 문제가 있다면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얼마 전에 당뇨 진단을 받았다. 당뇨 치료에 들어서면서 주치의로부터 연속 혈당 측정이라는 시스템 사용을 권고받았다. 급여가 아닌 비급여 항목인데, 주사침을 피하층에 삽입하면 2주간 실시간으로 혈당이 측정되고 그 자료가 앱을 통해서 나와 주치의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몇 주 또는 몇 달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하고 한차례 혈당 검사를 하는 것을 근거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혈당을 측정하고 원격으로 치료 방침을 지도 받으니 참으로 신기하고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다.
원격 의료이건 무엇이건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고 보완해 가면서 나아가야지 변화 그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격 의료를 시대정신이라고 볼 만한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세계적인 추세도 그렇고 실제 사회적인 요구도 높다. 따라서 어떻게 활용하고 보완할지의 문제이지 거부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증 암 수술을 하고 자국으로 돌아간 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방문이 어렵게 된 수많은 외국인의 경과 진료는 어찌할 것인가? 원격 의료는 위험하니 어떻게든 입국하라고 해야 할까?
<pjh1964@hanmail.net>
글 |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에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원자력병원에서 스태프로 있다가 2007년에 고려대학교 병원으로 이직한 후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병원장, 사립대학교 병원회 부회장, 한국환자혈액관리학회(KPBM) 회장, 대한골연부조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이며 의료 정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