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강국을 위한 한국 의료의 문제와 나아갈 방향

의료 강국을 위한 한국 의료의 문제와 나아갈 방향

2020-11-16 0 By 월드뷰

월드뷰 NOVEMBER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3


글/ 이규식(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 연세대 명예교수)


1. 우리나라는 의료 강국인가?


먼저 방역은 공중보건 문제이기 때문에 의료와는 분리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공중보건이나 의료나 핵심에는 의사가 있으므로, 엄격하게 분리하기는 어렵다. 금년 코로나 감염병 확산 과정에서 한국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여 방역을 잘했다고 하며 의료 강국이라고 자랑하지만 방역 강국과 의료 강국은 구분해야 한다.

먼저 K-방역을 자랑하는데 대한민국이 방역 강국이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첫째는 1963년 박정희 정권에서 방역과 가족계획 사업을 위해 시·군·구 단위로 보건소를 세우고 국가가 지역 단위로 방역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잘 짜 놓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2015년에 메르스 사태를 경험하면서 바이러스 감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비를 한 것이 매우 유효하였고, 국민이 정부의 방역 지침에 잘 순응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중국 우한에서 COVID-19가 유행할 때 우리나라 바이오 업체에서 진단 키트를 개발해 쉽게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의료인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대구 지역에서 COVID-19가 확산될 때 전국에서 모여든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구 밖으로의 전염을 잘 막아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 우한에서 COVID-19가 유행할 때 의사협회의 중국인 입국 차단 주장을 정부가 제때 받아들였다면 대만과 같은 진정한 방역 강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COVID-19의 방역을 보고 의료 강국이라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의료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며, 의료비가 낮다는 점에서 의료 강국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표현이라 하겠다.


2. 어떻게 의료 강국이 되었나?


대한민국이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비교적 빠르게 의료 강국이 된 것은 실은 건강보험제도가 원칙에서 벗어나 건강보험환자를 보는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급여)와 건강보험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비급여)를 동시에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비급여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덕분에 의료 강국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나 다른 측면에서는 국민 경상의료비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의료보장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기에 의료 강국 소리를 들으면서도, 다른 한편에는 제도 붕괴 걱정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의료 강국이라는 평가를 얻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새로운 의료 기술에 접근이 용이하고, 다음으로 의료비가 저렴해 쉽게 치료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의료 기술은 2000년대 들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더욱 빠르게 도입되었다. 비급여 항목의 경우 병원이 임의로 의료비를 정할 수 있어서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서비스에 비해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수익을 병원 시설이나 의료 기술에 재투자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건강보험 의료기관으로 지정을 받으면 비급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 행위의 안전성 판정을 얻은 후 수가를 창구 옆에 게시하면 비급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의료 기관이 건강보험의 급여 서비스와 비급여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것을 혼합진료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나라들이 혼합진료를 금지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이를 허용하고 있어 비급여 서비스가 쉽게 보급되었다.

다음으로는 낮은 의료수가이다.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급여 서비스의 가격은 정부가 통제하기 때문에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가격을 임의로 책정할 수 있는 비급여 서비스라고 해도 무턱대고 가격이 비싸지면 환자가 이용하기 어려워 혼합진료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다 보니 의료기관들은 비급여 가격을 급여에 비해 높게 책정하더라도 환자가 수용 가능한 수준의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비급여 서비스의 가격이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의료기관에서 혼합진료가 가능해 어려운 수술의 시술 건수가 많아지고 임상 경험이 쌓여 자연스럽게 의료 기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비급여 서비스를 영리 병원에서 제공하는데, 영리 병원 서비스는 건강보험 적용자라도 건강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의료비가 매우 비싸다. 영리 병원을 찾는 경우는 매우 부유하거나, 치료받기 위해 몇 개월씩 대기하는 것이 힘들 때 어쩔 수 없이 이용하기 때문에 어려운 행위의 시술 건수가 적고 의사의 기술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의료가 외국인들이 보기에 수가는 낮고 기술 수준은 높아 세계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3. 의료 강국 유지가 가능할 것인가?


의료보장제도는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이용자(환자)가 의료이용을 할 때 의료수가를 직접 지불하지 않고 보험에서 부담해 준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의료가격이 있는지 거의 인지할 수 없게 된다.1) 이렇게 이용자가 가격을 인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 수요에 서비스 배분을 맡기면 비용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용자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2)로 인해 의료 이용이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의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모든 국가는 시장을 토대로 하는 수요 접근을 버리고, 필요도 접근을 하여 의료를 배분(배급) 한다. 필요도는 시장 가격에 의하여 이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자나 정부가 전문가의 자문을 토대로 인구구조, 질병구조, 의료기술 등을 감안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건강보험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요도의 결정과 우선순위 설정 같은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고도 환자의 수요에 의료 이용을 맡긴 탓에 의료 이용도가 OECD 평균과 비교하면 2배 정도 높고, 복지국가라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와 비교하면 무려 3배 정도 높다. 그러므로 현재와 같은 상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의료제도나 의료보장제도가 붕괴할 위험성이 높다. 의료 이용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강보험제도가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보험 의료의 수가가 다른 국가에 비하여 매우 낮기 때문이다. 즉, 국민의 의료 이용도가 OECD 국가 가운데서 가장 높은데도 불구하고 GDP에서 차지하는 경상의료비의 비중은 낮은 편이다. 이것을 두고 한국의 의료 체계가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면 그러한 측면도 있으나, 경상의료비가 낮은 원인은 의료보험을 도입한 1977년 의료보험 수가를 낮게 책정하여3) 그 흐름이 아직 이어져4) 경상의료비의 비중이 작게 유지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GDP에서 차지하는 경상의료비 비중의 증가 속도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환자들의 수요에 맡겨 의료이용을 허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 방법을 그대로 유지하다가는 건강보험 재정 관리의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경상의료비가 낮으니 의료 서비스의 관리(감염 관리, 환자 안전관리, 질 관리 등)에 대한 비용도 매우 낮아 질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의료는 문제가 있다.5) 의료 강국이라는 외부의 평가는 의료 서비스 관리의 내면적인 질에 대한 논의 대신에 피상적으로 나타난 낮은 수가나 기술 수준에 따른 논평에 불과하다. 의료 서비스의 관리 측면이나 지방의 중소 병원의 상황을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료 서비스의 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 2010년 의료기관 인증제를 도입했으나, 대부분의 중소 병원이 비용을 이유로 인증 신청을 꺼리고 있다.6) 의료기관에서의 안전성이나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수록 서비스 관리 비용이 높아지며, 그로 인해 의료수가를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의료수가를 높여야 중소 병원도 의료기관 인증을 받아 서비스의 질 개선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역시 의료비 증가를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수요 접근책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의료수가를 인상하게 된다면 2020년대 후반에 이르면 우리나라의 경상의료비는 OECD 국가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가 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의료비 관리를 철저히 해도 앞날이 어두운데 우리는 수요 접근을 하여 높은 이용률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의료 이용이나 의료비 관리를 위한 장기적인 의료계획도 없어 나침판 없는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


4. 향후의 정책 방향


의료 강국이라는 명칭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고난도 수술은 서울의 빅 파이브 병원이 있고 성형이나 백내장과 같은 수술은 개인 의원에서도 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가 굳이 선전하지 않아도 의료 강국이라는 별칭은 개별 의료기관의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안심하고 건강보험 의료를 누리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제도를 의료보장제도의 원칙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먼저 수요 접근을 버리고 필요도를 토대로 의료 서비스를 배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필요도는 시장이 아니라 보험자(구매자로 부름)가 우선순위를 정하여 배급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필요도 접근을 할 경우는 비급여가 존재하기 어렵다.7) 필요도는 보험자가 배분(배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과 같은 효율성을 얻거나 소비자의 반응성(responsiveness)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료보장 국가들은 제한된 보험 재정으로 필요도를 가입자에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비록 시장만큼의 효율성을 찾기는 어렵더라도, 공급자를 1차, 2차, 3차 의료기관으로 계층화를 시키는 한편 필요도의 우선순위에 따라 환자들도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을 거치면서 의료를 이용하는 의뢰체계(patient pathway)를 정립하려는 등의 노력을 한다. 그리고 의료계획을 수립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원의 적정한 개발과 배치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동원할 때 국민 경상의료비의 적정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의료 서비스 관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의료기관이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인증 받은 의료기관에 인증 비용 보상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전국민의료보험과 함께 실시된 적이 있었던 진료권 설정과 같은 의료의 지역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을 도입할 때 의료기관의 지역 간 균점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02kslee02@gmail.com>


1) 환자가 가격을 인식할 수 없을 따름이지 의료수가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야 의료기관이 환자를 치료한 후에 진료비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아 재생산이 가능해진다.
2) 수요는 가격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가격을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 수요에 의료이용을 맡기면 환자는 의료를 남용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모럴 해저드라 부른다.
3) 1977년 당시의 1인당 소득이 1,000달러, 수출이 100억 달러에 불과하여 의료보험을 도입하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보험료가 임금 인상으로 연결되어 수출에 지장을 주는 것을 가장 염려하였다. 이에 처음부터 보험료를 임금의 3% 수준으로 낮게 책정하였고, 저보험료는 저수가로 연결되었다.
4) 1990년대 중반 보험 재정 상태가 양호해지자 1995~97년 3년 동안에는 매년 10%대로 수가를 인상하였고 2000년 의약분업을 놓고 의사들이 벌인 파업을 무마하기 위하여 수가를 세 차례에 걸쳐 28.78%를 인상하여 초기의 저수가를 상당히 극복하였으나, 2017년 상대가치수가 제2차 개정 연구에서 의과의 원가보상률이 85.9%, 비급여를 포함하면 105.9%가 되고 있어 여전히 저수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의료원이 응급실에 온 환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감염이 확대된 사례를 볼 때, 의료서비스 관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6) 인증제는 미국 JCI의 병원 인증제와 같은 제도이다. 2020년 4월 기준 급성기 병원의 17.7%만 인증을 받았는데 이것은 중소 병원들이 비용부담을 이유로 인증 신청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7) 외국에서 오는 환자에게는 이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으니 의료 강국을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글 | 이규식

미국 하와이 대학교 경제학 박사,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명예교수이며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이다. 2010년 한국의료기관인증평가원 초대 원장,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장, 한국보건행정학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