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의 영리법인병원 왜 허용되어야 하나?
2020-11-14
월드뷰 NOV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
글/ 김원식(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교수)
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 내용에서부터 최근의 2020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내용에까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공정’이다. ‘공정’이 청년 검찰개혁, 경제, 교육 등 거의 모든 정부 정책 내용의 서두에 빠지지 않는데도, 진정한 공정사회는 점점 더 요원해지는 것만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이 느끼는 공정은 단순히 최근 정부가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이나 청년수당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이다. 어쨌든,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는 공정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 의대 설립이나 의대 정원 확대 등도 모든 국민에게 의사가 될 기회를 주거나, 지방에서도 의료서비스를 동등하게 받을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공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성과 측면에서, 실현 불가능하고 오히려 배출되는 의사들의 질적 저하와 신뢰할 수 있는 지역병원의 난립에 따른 예산 낭비를 낳을 것이므로 진정한 ‘공정’과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의 개념은 정부가 모든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정부 예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보편적 무상복지를 우선으로 확대 적용하고, 이를 1% 고소득 국민에 대한 세금부과와 미래세대가 갚을 국가채무로 조달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복지정책이고 공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 따라 국민의 소득과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정부가 현금으로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의 복지 욕구는 다양해지고, 질적으로 고급화가 폭발적으로 요구되는데, 이를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부문으로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충족된다고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의료, 교육, 주택 등 국민의 기본 생활을 질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정부, 민간, 시민단체 등 다양하고 체계적 복지서비스 공급시스템을 세워야 한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경험 삼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의료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 및 의료공급체계의 자율화, 민간 부분의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서비스 제공 등이 있어야 한다. 일반 국민에 있어서 의식주에 대한 절대적 궁핍이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에서, 건강과 의료는 그들의 가장 절실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적인 재산이 많아도 건강 문제에 부딪히면, 제한 없는 진료비 지출도 감당하려고 할 정도로 국민의 생명에 대한 애착은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더 커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제한된 의료자원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모든 국민이 건강이나 의료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Ⅱ.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된 이후, 끊임없이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평등 의료에 대한 논의로 모든 국민이 공평한 의료혜택을 원하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왔다. 그리고 대중영합주의 정치권은 이러한 움직임에 동조하여, 소위 ‘문재인 케어’ 등 무분별한 공공의료 지출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사실상 이를 실현하게 하는 것은 어느 선진국도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국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의료수요는 급팽창해갈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평등한 의료욕구와 이에 대한 불만은 앞으로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진실로 국민이 원하는 의료가 무엇인지 또한, 이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나 의료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제시된 적도 없다. 그리고 설령 이러한 의료수준이나 의료시스템의 규모가 결정된다고 해도, 이를 조달할 수 있는 의료자원이나 재원은 충분할 수 없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존경받는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던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 (Theory of Justice)>은 사회적 후생에 관련된 이론을 정립하는데, 경제학적 관점에서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의 이론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 확립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했다.
그는 정의의 원리가 합리적인 계약자들이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으로 가려진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에서,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원리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는 1) 기본적 자유와 권리, 2) 동등한 기회에서의 이주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 3) 직위에 따른 권한과 권력, 4) 소득과 부, 5) 자기 존중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합리적 계약자들은 평생 정상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히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질병과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합리적 계약자들은 다음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았다. 첫째, 개인들은 사람이 함께 누리는 게 가능한 평등의 기본적 자유의 체계에 관한 손상될 수 없는 동일한 원리를 가져야 한다(평등한 자유의 원칙). 둘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해야 한다면, 이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에 결부되도록 배정되고(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사회의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이익(max(min))이 되게 해야 한다(차등의 원칙).1)
롤즈의 논의에서 합리적인 계약자가 되기 위해서는, 질병과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보건의료의 공정성 혹은 공공성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된다. 즉, 적어도 보건의료의 공정성이 보장되어,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한 합리적 계약자가 있어야 공정한 사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개인들이 이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의료시스템의 구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효율적인 혹은 정의로운 의료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이유에서건 의료공급이 제한적이고, 초과수요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과수요의 상태에서는 할당(rationing)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 공적 의료체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할당이 이루어지면 의료의 수요자 가격은 균형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거나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초과수요에 대하여는 공공의료가 관리할 수 없는 영역에서 해소되게 된다.
둘째, 의료서비스는 희소한 재화이므로, 다다익선의 상시 초과수요 상태이다. 의료서비스가 모든 국민에게 절대적 기준에서 일정 수준 이상 배분되어야 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에게는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을 더 건강하게 하고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수준의 의료공급 및 진료체계가 상시 마련되어있어야 한다.
셋째, 소득의 증가에 따라서 의료수요가 증대할 때, 추가적 수요에 대하여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는 모든 국민의 부담 수준에 대한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의료서비스는 공공재가 아니고 개인적 구매의 대상인 사적재이며, 이는 의료서비스의 제공에 대하여 대가를 지급하게 해야 과대한 초과수요를 억제할 수 있는 시장재이다.
복지론자들이 제안하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등 평등주의적인 의료시스템은 롤즈의 정의론에 배치된다. 평등주의는 사실상의 공평주의(equalitarianism)로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을 전혀 무시한다.
의료와 같이 자원이 제약된 상황에서의 정의는 롤즈가 주장하는 차등성의 원리로써 취약계층의 후생극대화(max[min])이어야 하며, 이는 경제학의 효용이론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의 하나다. 사회적으로 가장 열악한 개인의 의료수준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즉, 정책적으로 정부는 가장 의료혜택 수준이 낮은 개인들의 의료수준을 끌어올리도록 공공의료 정책을 펴야 한다. 즉, 모든 개인에게 필수 의료를 보장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재정 능력에 따라 필수 의료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필수 의료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요구하는 개인들에 대하여는 원만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나 의료비 조달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롤즈나 대니얼스(N. Daniels)2) 등의 정의에 대한 논리를 확장하여 이중 의료체계(two-tier system)를 유지해야 한다.3)
의료공정성을 위하여 정부는 적극적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나 건강보장을 높여가면서 의료의 서비스로서의 특성인 개인별 의료서비스 선호는 다양하게 선택의 기회를 얻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개인의 비용으로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것인가 아닌가는 선택의 문제로서, 이러한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정의로운 의료체계의 구성에 필수적이다.
자유로운 의료시스템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민간의료기관에 공공성(비영리)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즉, 공공성에 매달리는 한 이들은 투자하지 못하고 국민 평균 수준의 건강보험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즉, 새로운 서비스가 공급되지 못한다.
Ⅲ.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을 담당하고 있는 요양기관의 90% 이상은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인하여 사실상 비급여서비스를 통한 생계형 영리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아무리 비급여를 급여화 해도 건강보험보장률은 60%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속해서 비급여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급여가 R&D 등을 통한 본질적 의료수준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편의적 의료만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민간 의료에 건강보험의 강제 적용을 받지 않고, 주주를 모아 대규모 자본을 유치, 병원 운영을 통한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며, 이를 통해 벌어들인 이윤을 법인 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면 건강보험 요양기관과 경쟁하면서 본질적 의료서비스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4) 영리법인병원의 국민 건강 및 사회적 기여는 다음과 같이 예견될 수 있다.
첫째, 영리법인병원은 민간 자본이 병원의 비효율적인 부문에 참여하여 경영을 개선함으로써 수익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의사는 자격제로서 자격의 부여가 독점적이어서 독점이윤이 발생한다. 영리법인병원은 의료에 대한 독점이윤을 사회적으로 배분하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셋째, 영리법인병원은 사실상 병원경영을 관리와 진료라는 역할로 구분하는 것이 된다. 경영에만 전념하는 경영진에 의하여 서비스 산업에 적절한 선진 경영기법이 도입됨으로써 의사의 진료와 경험의 병행에 따른 비효율을 극복할 수 있어서 병원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 외부투자는 병원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는 기존의 민간 병·의원에 대한 병원 회계의 벤치마크가 되어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건강보험 수가 결정에도 도움이 된다.
넷째,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된다고 해서 모든 병원이 영리화하지 않는다. 특정 전문화되고 미래의 의료기술 개발을 통하여 성장하고자 하는 병원 중심으로 투자개방형 병원 체제가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민간부문의 의료산업에 대한 역할 및 공공성 기여를 인정하고 이들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국민에게 자발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유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법인병원을 허용하여 병원이 투자기금을 유치하고 의료기술 개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통한 의료서비스의 개선을 통하여 고소득층만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들도 같은 시설을 정부의 지원으로 공유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허용은 저소득층의 양질 의료서비스 배제 가능성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된다.
그리고 외국의 의료기관들도 국내에 들어와서 국내 의료기관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5천만 인구로서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7번째 국가로서 의료산업의 규모 면에서도 외국 의료기관들과 해외의 어려운 환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의약학에 거는 세계인들의 기대를 확인했다. 이제는 규모 있는 외국의 병원도 유치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의료허브’가 될 기회로 삼아야 한다.
<wonshikk@gmail.com>
1) 박상혁, “정의로운 의료체계에 대한 연구”, 의료정책연구소, 2008.
2) Nornan Daniels(1986), Just Health Ca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참조.
3) 박상혁, “공정한 사회, 공정한 보건 의료체계”, 『공정한 사회, 공정한 의료』 자료집, 2010.10.1.; 김원식, “경제학으로 본 공정한 의료”, 『의료정책포럼』, 8권 4호, 2010, pp. 38-43. 참조.
4) 야당 및 일부 시민단체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도입이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나, 영리의료법인과 의료민영화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
글 | 김원식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Texas A&M Universtiy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사회보장학회장, 한국연금학회장 그리고 한국재정학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