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요구하는 의사의 능력

법이 요구하는 의사의 능력

2020-11-10 0 By 월드뷰

– 소위 ‘최선’을 다할 실력과 정신력 –


월드뷰 NOVEMBER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글/ 석희태(경기대 명예교수)


중국의 상황 – 불필다언(不必多言)


“석 달이 안 되는 기간에 네 명의 의사가 환자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시정에 떠도는 괴담이 아니라, 저명한 의학 저널 ‘The BMJ’ 2016년 9월 27일 자에 “Stop killing Chinese doctors”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 모두에 나오는 것이다. 사실을 전한 용감한(?!) 사람은 중국 항주시에 소재하는 한 병원의 의사이다.

필자가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 원인이 화제가 됐다. 여러 요소 중에서 가장 비중 있고 그러면서 난감한 것은 의료사고,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즉 환자 측으로서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아주 초보적인 진료에서의 사고라고 입을 모았다. 그건 또 왜 그런가? 진단은 이러했다. “실력 부족, 이해 부족” 대화자들은 필자가 오다가다 만난 노상의 낭설꾼이 아니라, 필자를 특강 초청한 고위의 전문가들이었다.

지금은 어떠할까? 앞에서 비극적인 사달의 원인에 ‘난감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연유는 그 해결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설이나 기기 등 물적 요소는 돈 많은 나라가 어렵잖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자격과 실력과 사명감을 갖춘 의료인을 확보하는 것은 다르다. 장구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우수한 잠재력이 있는 인재를 의업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획기적인 개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필다언(不必多言).

필자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현실을 인지하면서 보건의료에 있어서 소위 “천하 대란”을 예감한 바 있었다(중국은 수년간의 준비 끝에 작년 말에 “기본의료위생 및 건강촉진법”을 제정하여 지난 6월 1일 자로 시행하였다).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의 규준


평생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의 책임을 연구한 필자는 – 멋쩍고 적절치 않은 말이어서 문자로는 남기고 싶지 않은 고백이지만 – 의사와 의료기관을 ‘사고(事故)’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경향을 지녀왔다. 각설, 의학·의술의 발전과 자기 환자의 치유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학자들과 임상의 의사들에게는 편치 않은 일이지만, 법률가로서는 주장된 의료과오 사안에서 어떤 주의의무의 위반 즉 과실이 있었으며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를 따지게 돼 있다. 다시 말하면, 의사 조치의 적절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과실 발생의 가능성은 진단·검사 단계, 자신의 전문성·시설 등 여건 판단 단계, 치료방법(요법) 및 치료 시기 선택 단계, 수술·처치 단계, 약물·영양물·혈액·방사선 등 체외물질의 처방·투여 단계, 간호 및 요양 단계, 재활 단계 등 진료의 전 과정에서의 모든 순간과 상황에서 존재한다. 마치 폭풍우 속의 처절한 항행을 방해하는 암초처럼 그 가능성은 숨어서 의사의 주의 태만이나 착오와 같은 실책을 기다리는 것이다. 게다가 환자는 생명 없는 단순한 대상물이 아니라, 생체이면서 자율적 의사(意思)를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의사는 사람의 신체와 정신, 질병과 진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의료시행 기술을 충분히 습득해야 하며, 그 기초 위에서 매 상황에 바로 응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주의(注意) 즉 긴장과 배려를 유지하여야 한다. 요컨대 의사는 엄청난 의학·의술 실력과 지속적 집중력 그리고 의사(意思)소통력 등, 한마디로 고도의 ‘능력’을 보유하여야 한다.

사실, 의료는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므로 우리는 그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인적·물적 여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주의를 기울인 가운데 시행될 것을 희망한다. 엄격한 의료인과 의료기관 자격 제도를 확립하고, 인적·물적 여건 및 의·약학과 의료기술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며, 활발한 국제교류를 추진하는 것은 모두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를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의사의 법적 책임 유무를 논할 때, 그 판단 기준, 즉 행위평가의 규준(規準)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잡을 것인가이다. 그 수준은 단순한 이상적·희망적 최대한이 아니라, 법의 목적인 정의의 구현을 위하여 요구되는 현실적·합리적 최대한이다. 그것은 당대 보건의료공동체의 실상을 전제로 하는 규범공동체의 정의 관념에 의해서 구체화된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견해와 대법원 판례는 당해 전문 진료 영역에서 실천되고 있는 임상의학의 지침을 의료의 규준으로 하고, 그 적용 시에 베풀어야 하는 주의의 정도는 ‘최선(最善)’ 내지 ‘고도(高度)’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사는 발전하는 의학과 술기를 습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찬하며 전문화되어야 하고, 아울러 의료기관은 우수한 의료인과 시설·기기 등 의료 여건의 확충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 요망된다.

현실에서 모든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위의 요소를 모두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다른 의료인과의 협동 진료 및 다른 의료기관으로의 전송(傳送=傳院)이 허용되고,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로 부과되기도 한다. 그리고 긴급한 의료상황이나 환자의 특정 진료 거부·전송 거부 등의 경우에 의료규준에의 미달이 적법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료규준의 고도성과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설시(說示)한 대표적인 대법원 판례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는 그의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보아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되고, 따라서 의사로서는 환자의 상태에 충분히 주의하고 진료 당시의 의학적 지식에 입각하여 그 치료방법의 효과와 부작용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 그 치료를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러한 주의의무의 기준은 진료 당시의 이른바 임상의학의 실천에 의한 의료수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나, 그 의료수준은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으로 파악되어야 하고, 당해 의사나 의료기관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할 것이다. (대법원1997.2.11.선고ᅠ96다5933판결)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고도한 의료의 전문성을 이유로 해서, 손해배상 소송상 원고 환자 측이 부담하는 의사 과실 및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이론이 정착함으로써, 피고 의사 측의 패소 가능성이 상승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의사의 능력을 더욱 고도화하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원고 쪽 증명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시한 대표적인 대법원 판례의 표현은 다음과 같은데, 이 논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의료행위가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고, 그 의료의 과정은 대개의 경우 환자 본인이 그 일부를 알 수 있는 외에 의사만이 알 수 있을 뿐이며, 치료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의료기법은 의사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손해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인지 여부는 전문가인 의사가 아닌 보통인으로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어서 환자 측이 의사의 의료행위상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의 발생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우므로, 이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환자가 치료 도중에 사망한 경우에 있어서는 피해자 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대법원1995.2.10.선고 93다52402판결).


정황의 미묘함과 의사의 고뇌 속 결단 그리고 법적 평가의 냉혹함


의료 과정에 관해서 상식적이면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보통 잘 잊어버리거나 가벼이 여기는 점들을 거론해 본다.

우선 질병 또는 건강 이상 상태에 대해 말하자면, 표현된 증세와 실재하는 현상(現象) 사이에 반드시 규칙적·정형적 상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울러 그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반드시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편 의료는 대개 신체나 정신에 자극을 주는 이른바 침습성(侵襲性)을 지니므로, 그 자체 위험성을 내포하고 또한 한 곳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 호결과 발생 – 동시에 다른 곳에는 불가피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 악결과 발생 –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료 개입에 대한 환자의 신체와 정신의 반응은 매우 다양하여, 반드시 유형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의사는 어떤 복수의 잠정적 판단을 시발로 해서 결과를 예측해 가면서 처치의 내용을 수정해 가는 동적 태도를 취하게 돼 있다. 그리고 그 잠정적·동적 과정에서 시의적절한 결단과 실시가 있어야 한다. 환자에게 설명해야 할 것과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려 적절히 이행하고 동의를 얻는 것은 또 별개의 과업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의사가 준수해야 하는 행위규준이 임상의학 원칙이며 그 선택과 시행은 최선·고도의 주의로써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끊임없이 결단의 순간을, 경우에 따라서는 갑자기, 맞이한다. 만성질환의 정기적 진료나 근접경과관찰의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 순간 한 사람 의사는 자신의 결행이 초래할 효과와 반(反)효과 사이에서 고독한 고뇌를 겪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다. 효과와 반효과의 격차가 근소하거나 사례연구 보고가 부족할수록, 즉 정황이 미묘할수록 그 표리의 격차는 더 크다. 이러한 정황은 대부분의 진료 임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이고, 불행히도 환자 측이 수긍하지 않는 결과로 귀결되어 소송으로 과책 여부를 논쟁하게 되는 사례도 많이 있다. 과거지사를 재구성해서 논하는 소송에서 결론을 내리는 법과 법관은 그저 의학 원칙과 정의의 기치 아래 냉정·냉혹할 뿐이다.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숱한 분쟁사례 중에서 ‘미묘한 정황’을 절감할 만한 사례를 두 가지만 설명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첫째 사례(대법원2006.10.26.선고ᅠ2004도486판결[업무상과실치사])는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 후 폐색전증으로 4일 만에 사망한 사건으로서, 의사는 산모가 출산 후 보인 증상을 통해 폐색전증을 예견하고 회피할 수 있었는지를 논한 사안이다.

산모는 수술 다음 날부터 호흡곤란·복부팽만·오심·저혈압·빈맥·발열·현기증 등의 증세를 보였고, 아울러 출혈이 계속되었다. 앞의 증세들은 폐색전증·빈혈·폐부종·장폐색의 공통적 증세이며 일부는 수술 후 나타날 수 있는 흔한 증상 중의 하나이다. 한편 혈전으로 인한 폐색전증은 분만 전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고 급격히 악화하는 치명적인 합병증으로서, 다양한 임상상을 보인다. 심전도·흉부방사선사진·동맥혈가스분석검사 등으로는 확진하기 어렵다. 폐혈관조영술을 실시하면 이를 확진할 수 있지만, 침습적인 검사이므로 그 자체 색전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항응고제인 헤파린을 투여하여 폐색전증 발생을 회피할 수 있으나, 출혈이 있는 환자에게 헤파린을 주사할 경우 출혈이 증가할 위험성이 있다.

의사는 언제 어떠한 결단을 하여야 하는가? 다른 한 사례(대법원1998.2.13.선고ᅠ96다7854판결[손해배상(의)])는 환자가 어떤 수술을 받은 후 헤모글로빈 수치와 헤마토크리트 수치가 급격히 정상 이하로 떨어지면서 심한 어지럼증이 있어 수혈을 받았는데, 그 혈액이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것이어서, 환자가 전염된 사건이다. 결과에 대해 혈액을 관리·공급한 대한적십자사의 과실을 인정한 것과는 별도로, 수혈을 담당한 의사는 수혈에 의한 HIV 감염 위험 등을 환자에게 설명해 주고 수혈을 받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기회를 줄 의무가 있었는지를 논한 사안이다.

의사는 피할 수 없는 수혈을 결단하고 그 시행에 즈음하여 환자를 향해, “수혈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혈액은 검사 결과 일단 안전한 것으로 판명됐으나, 현대 의학상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HIV에 감염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례도 있었다. 수혈에 동의하겠는가?”라는 내용의 소위 ‘의사소통’을 쉽게 시도할 수 있을까?


의사는 아무나 하나?


의사가 이해하고, 외워서 기억하고, 익혀서 숙달하며, 배려해야 할 항목은 엄청나게 많다. 그런 능력이 웬만큼 갖추어졌다고 해도 집요함과 사명감(!)이 없으면 그 능력 발휘를 장기간 지속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의학과 의술은 날로 발전하고, 사람들의 건강 욕구는 날로 증대한다. 의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하는 것에 반대할 수 있는 명료한 근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품질(Quality)·접근성(Accessibility)·경제성(Affordability), 모든 요소를 종합해서 그렇다. 이러한 수준 도달이 가능하게 한 가장 주요한 요소가 사명감을 갖춘 우수한 의사들이 존재함이었다고 필자는 장담한다. 전통적으로 인재들이 의업을 외면해온 외국의 처참한 사례를 둘러보면 확신이 선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도 최우수의 인재가 의업·의학을 지원하고 이후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풍조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훌륭하고 많은 의료기관과 선구적인 의료보험체계를 갖추었다고 해도, 의료수준의 향상은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필자가 몇 해 전 중국에서 보건의료기본법 제정 세계 동향과 의료분쟁조정제도에 관해 실시한 이틀간의 특강 맨 끝 시간에 참여자 중 최고위직이었던 인사가 참았던 문답을 제기했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보건의료를 성취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비결이 무언가?” 신의 한 수를 알고 싶은 거다. 짧고 분명하게 답했다. “비결이 있다. 우수한 의사를 보유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나?” “우리는 의사를 높게 대우한다.” 매우 재빠르고도 확신에 찬 결정적 질문이 직설로 들어왔다. 짐작한 대로라고 생각했다. 즉 “의사의 보수는 어느 정도인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를 존대하는 것이다. 자부심과 사명감을 품도록.”

필자는 그동안 많이 분석하고 비교해 봤다. 식민치하에서 의학교를 마치고는 부와 평안이 보장된 개업이 아니라 과로와 박봉이 기다리는 교직을 택하거나 민족독립투쟁의 가시밭길을 택했던 선현들의 사례, 세계 최빈국이었던 시절에 운 좋게 선진대국에 유학이나 연수를 간 의사들이 엄청난 봉급의 유혹을 뿌리치고 조국에 돌아와 헌신한 사례, 민간의료기관의 초빙을 거절하고 대학병원이나 공립병원을 지키는 사례를 외국에서 찾기는 어렵다.

외국의 보건의료 법제와 의료과오에 관한 판례를 분석해 보면 그 나라의 의료와 의사 수준을 추리할 수 있다. 우리의 수준이 못 미치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추리되는 것이 사실이다.

재차 강조하자면 의사의 실력과 자세,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보건의료를 세계적 수준으로 견인한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이런 훌륭한 상황과 풍조는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거니와, 한번 허물어지면 당연히 그 회복은 어렵다. 저간에 우리 사회를 경악시킨 정부의 소위 ‘공공의대’ 신설계획이니 그 대학 학생선발제도의 개선안이니 하는 것의 내용을 일별하자면, 최고도의 이해력과 기억력과 집중력에 대한 평가임을 담보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만 유리한 희한한 방법으로 의학생을 선별하고자 하는 것이 의도의 핵심으로 짐작되는 것이었다. 그건 필경 웬만하면 아무나 의사 노릇을 할 수 있고, 또 그게 대중의 소망 아니냐는 무식한 착각과 탐욕과 포퓰리즘의 소산일 것이다. 만약 그 계획이 무분별하게 실행되면, 의사의 수준을 하락시키고 의료와 의료계의 수준을 저열화(低劣化)하며 나아가 우수 인재가 의업과 의학을 외면케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예측되고도 남는다. 그렇게 악순환이 일어나면 그 무책임한 정치적 술책의 희생자는 누가 되는가. 불문가지(不問可知).

우리 국민이 희망하는 의료와 의사의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법이 요구하는 의사의 능력 또한 엄청나게 높다.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수준이요 능력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법은 ‘외줄 타기 천사’ 의사를 냉혹하게 지켜본다.

<sukht@daum.net>


글 | 석희태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경기대학교 법학과 교수로서 법과대학장·행정대학원장·일반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경기대 명예교수 겸 연세대 객원교수로 있다. 대한의료법학회 초대·2대·3대 회장 및 미래의료인문사회과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위원인선위원회 초대·2대 위원장, 교수신문 편집인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