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설립의 문제점: 공공의대가 정말 필요한가?
2020-11-09
월드뷰 NOV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7 |
글/ 이은혜(순천향대 의과대학 교수)
1. 공공의대 논란의 배경
1995년 설립된 서남대 의대가 부실교육으로 인해 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에 거듭 실패하여 2018년 폐교되었다. 폐교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던 2017년부터 서남의대 입학정원 49명의 처리방법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있었는데 서남의대의 설립 배경이 ‘지역 안배’였으므로 해당 입학정원을 전북지역 내의 대학에 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료를 위하여 보건지소 등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할 인력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2018년에 국립공공의료 대학원 신설을 시도했으나, 야당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4·15총선으로 180석의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힘을 빌어,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의 발생을 대비하고, 지방의 의사 부족 현상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공공의대 신설을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구대비 지역안배의 명분이 있는 전북과 현정권의 지지기반인 전남이 서로 공공의대를 유치하겠다며 경쟁을 벌이는 중이고, 전남 내에서는 국립대가 있는 목포와 순천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국립부경대의 공공방사선 의대 설립안을 제출했고 창원, 포항, 안동, 구미의 지역구 의원도 공공의대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식이면 지역구에 의대가 없는 거의 모든 국회의원이 표를 의식해서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포퓰리즘에는 여야가 없다.
한편, 서남의대 폐교 당시 재학 중이던 학생들은 전북대와 원광대에 분산 편입되었는데 두 대학의 기존 의대생과 학부모는 교육환경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여 강하게 반대했었다. 이번에는 공공의대 및 의대 증원을 추진하려는 당정안에 대해 전국의 의대생과 전공의가 동맹휴학, 국시 거부, 파업 등의 집단행동을 통해 강하게 반대했으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의학교육협회도 서남의대 사태와 같은 부실교육을 우려하여 반대하였고, 그 결과 9월 4일 의정 합의에 따라 의대 증원 논의가 일단 중단된 상태이다.
2018년 서남의대 폐교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와 국회는 의대를 함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을 다시 추진하는 것을 보면 뭔가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공의대 신설은 타당성이 없다. 공공의대 신설은 문재인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는 공공보건의료인력 부족, 대규모 감염병 대비, 지방 의사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본격적으로 공공의대 설립의 타당성을 논하기 전에 먼저, 공공의대의 설립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공공의료의 정의를 살펴보자.
2. 공공의료의 개념과 공공의대 설립의 타당성
공공의료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기 위해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12년 개정된 이 법률(제2조 제1호)에 의하면 공공의료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보편적 의료는 건강보험이므로 건강보험의료가 바로 공공의료이다. 이것은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을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한 ‘국민건강보험법’의 취지와도 부합한다.
공공의료의 국제적 정의는 국가가 국민에게 기본권 의료를 보장하기 위해서 ‘공적 재정(public fund)’으로 제공하는 의료이다. 즉, 공공의료는 의료보장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의료보장제도의 대표적인 유형은 국가공영제와 사회보험제도인데 국가공영제는 영국이 대표 국가이고 공적 재정은 조세이다. 사회보험제도는 독일이 대표 국가이며 공적 재정은 보험료이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사회보험제도이고, 일본과 대만도 사회보험제도를 택하고 있다. 사회보험제도의 장점은 민간의료기관도 정부와 계약을 통해서 공공의료를 생산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직접 많은 돈을 투자하여 공공병원을 짓지 않아도 국민에게 의료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보험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건강보험의료를 생산하는 민간병원은 공공병원과 동일한 지원과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의료기관을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당연(강제) 지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공공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도 ‘공공의료’로 간주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범용되고 있는 공공의료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일부 의료사회주의 학자들이 2000년 이후부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단체가 제공하는 의료만 공공의료라고 주장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공공의료=공공병원의료’라는 엉터리 프레임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민간병원은 공공병원과 동일하게 공공의료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대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
공공의료에 대한 저들의 주장을 적용한다면 국공립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만 공공의료이므로 공공의료의 발전을 위해서 공공의대를 별도로 설립하는 것은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의료에 대한 저들의 주장 자체가 잘못된 것이므로 공공의대 설립은 전혀 근거가 없다. 또한, 저들의 주장처럼 공공의료인 건강보험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공공의대가 필요하다면 49명 정원의 공공의대 하나로 5천만 국민의 공공의료를 커버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기존의 40개 의대 출신 의사들은 공공의료와 전혀 무관하므로 민간보험의료를 제공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는 민간보험의료를 생산할 수 있는 영리병원이 전혀 없다. 즉, 저들의 논리대로 한다면 대한민국에는 공공의료를 제공할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함과 동시에, 기존에 배출된 13만 명의 의사들은 오갈 데 없이 공중에 붕 뜨는 신세가 된다. 이런 모순은 절대적으로 ‘공공의료=건강보험의료’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므로 ‘공공의료=공공병원 의료’라는 잘못된 프레임을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
국립대를 포함한 기존의 40개 의대에서 공공의료인 건강보험의료를 제공할 의사를 교육하고 있으므로 이미 기능적으로 공공의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동일한 공공의료를 제공할 의사를 별도의 공공의대를 통해서 기존 의대와 다른 방식으로 선발하고 교육하겠다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국민을 개천에 사는 가재로 취급하면서 그들의 자식을 위한 현대판 음서제를 실현함과 동시에, 의료사회주의자들의 의료계 장악을 위한 확고한 진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국가공영제를 시행하는 영국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에서도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에 대해서 정부가 전적으로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의료보장을 실현하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정부의 책무이다. 심지어 의료민영화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조차도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에 대해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료보장국가들과 미국은 국민의 세금부담을 우려하여 의대 신설이나 입학정원 확대에 대해서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반드시 장기적인 인력수급계획하에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전국민건강보험 적용이라는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거의 없다. 국립대학의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을 뿐인데 이것은 사립 의대 졸업생도 건강보험의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립 대학을 차별해온 것이다.
저들이 주장하는 공공의대 설립의 주목적 중 하나가 지방 의사 확보인데 한국의 도시-농촌 간 의사밀도 차이는 OECD 국가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적다(그림 1 참조).
또한, 2019년에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8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16년과 2018년의 연간 미충족 의료율은 도시지역은 0.5%(9.0 => 8.5) 감소했지만, 농어촌지역은 1.0% 감소(10.9=> 9.9)하는 등 농어촌지역의 미충족 의료율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표 1] 참고).
같은 자료에서 연간입원율은 농어촌지역(13.7)이 도시지역(9.2)보다 오히려 더 높다([표 2] 참조). 그리고 도시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입원율이 감소 추세지만, 농어촌은 그렇지 않다.
또한, 2주간 외래이용률은 도시는 2016년 28.2%에서 2018년 26.5%로 감소했지만, 농어촌은 24.8%에서 26.5%로 증가하여 도시와 농어촌 간에 차이가 없어졌다([표 3] 참조).
이상의 자료에서 도시지역과 농어촌지역의 주민 간에 의료접근성의 차이가 없으므로 저들이 주장하는 공공의대의 필요성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공공의대 신설은 전혀 근거가 없으며, 기존 의대에 대한 차별정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본권 의료의 제공 및 국민건강의 향상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대를 신설하여 겨우 49명의 의사를 추가로 배출하는 것보다, 공공의료를 제공할 의사를 교육하고 있는 기존의 40개 의대를 공공의대로 인정하여 합당한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합리적이다.
3.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운영의 문제점
이처럼 논리적 근거도 없이 급조된 공공의대가 제공하는 의학교육의 수준이 어떠할지는 폐교된 서남의대 사태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의대 건물을 만들고 우수한 교원을 충분히 확보하여 학생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공공의대 설립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한다고 되어있는데 남원, 목포, 순천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지자체 중 최하위 수준이다. 또한, 공공의대는 무상교육이므로 등록금과 교직원 월급 및 연금도 세금에서 나와야 한다. 지금도 세금이 폭탄 수준인데 전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공공대학을 특정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지역구에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재선만 된다면 나라가 거덜 나도 상관없다는 참으로 파렴치한 속셈이다.
게다가, 의대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련병원이 필요한데 이것은 의대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병원 건물만 있다고 해서 학생실습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정 규모의 병원 건물을 짓고, 첨단장비와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보조 인력을 채용하여 안정된 팀워크와 진료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것은 의대 설립보다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교육과 수련을 위해서는 다양한 환자 풀(pool)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해당 지역에 일정 규모 이상의 인구가 없거나, 전국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지 않는다면 환자 풀 확보가 안 되므로 정상적인 교육과 수련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김성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에 의하면 의학교육과 임상 수련을 위하여 국립대병원으로 파견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대학의 학생들 틈에 끼어서 ‘동냥’으로 교육과 수련을 받아야 하는 공공의대 출신자들의 수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이것은 서남의대의 사례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그러므로 급조한 공공의대는 서남의대와 마찬가지로 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공공의대 출신 학생들은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현행 의료법 제5조 제3항에 의하면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려면 입학 당시 평가인증을 받은 대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상황을 벌써 예측하고 김원이 의원이 ‘의료법 일부 법률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의하면 의무사항인 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이 없어도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면 의대 신설이 가능하다. 이것은 ‘부실 의대 양산법’이며, ‘공공의대=제2의 서남의대’를 기정사실화하는 법안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공공의대 출신 학생들은 3류의사를 면하지 못할 텐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혈세 낭비이다.
49명 정원이라는 공공의대의 규모도 문제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인구 대비 의과대학 수가 많으므로(3.6~5.8 vs. 10.1) 상대적으로 의대의 규모가 작다([표 4] 참조). 따라서 의대당 졸업생 수가 적은데(120~216 vs. 74) 학생 수가 적으면 교육적인 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공공의대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성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문제점들은 아래와 같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도 같은 이름의 법률안을 발의했는데 내용은 비슷하다.)
1) 공공의대가 아니라 의전원: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에 의학전문대학원과 보건대학원을 둔다는 것은 공공의대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만 결국 저들이 말하는 공공의대는 실제로는 의학전문대학원인 셈이다. 의전원 제도는 노무현 정부가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가 결국 실패한 정책인데 그걸 다시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2) 총장 선출과 임명제청: 독립 법인인 공공의대 총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이사들이 선출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며 독립 법인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또한, 국립대 총장의 임명제청은 교육부 소관인데 교육부를 통과(passing)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3) 총장의 도덕성: 총장은 임원이나 교직원과 달리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도 임명할 수 있게 되어있다. 대학의 총장은 임원이나 교직원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인데 이런 불합리한 조항을 만든 것으로 보아 총장이 이미 내정되어 있다고 의심할 수 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국립대학 총장을 낙하산 인사 내지는 논공행상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한다는 의미이므로 매우 부적절하다.
4) 학생선발: 학생선발 대상이 학사학위자 또는 이와 같은 수준으로 인정되는 자이므로 기존 의대와 달리 시험이나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의료취약지의 시도별 분포,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수 및 필요 공공보건의료인력 수 등을 고려하여 시도별로 일정 비율을 선발한다고 되어있는데 의전원 입학 후 4년,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 4~5년, 세부 전문의 1~2년을 마치려면 10년 이상 걸리는 것을 고려할 때 ‘현재’의 필요인력을 고려한 선발인원의 규모가 ‘10년 후’에도 적정할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지자체장이 추천하고 시민단체가 포함된 위원회가 선발하는 것으로 되어있고, 우수한 학생보다는 ‘공공의료에 대한 열의가 높은’ 학생을 선발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윤미향이 조민을 선발하는 것인데 이것은 현대판 음서제이다. 당연히 학생의 수준이 떨어지고, 방대한 양의 의학교육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우며, 결국 저질의 3류의사가 양산될 텐데 그런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국민은 마루타인가? 공공의료에 대한 ‘열의’나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결코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 그런 덕목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방대한 의학지식의 습득과 적용 능력이 절대적으로 우선되어야 한다.
5) 학생 지원: 학생의 입학금,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 학업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학교가 부담하는 것은 기존 의대 학생과 비교할 때 과도한 혜택이며, 국민의 세금부담을 가중시킨다. 단일보험제도하에서 동일한 공공의료를 제공할 의사들인데 공공의대 학생에게만 과도한 혜택을 주는 것은 명백한 차별정책이다.
6) 의무복무: 의사 면허 취득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복무(수련 기간은 1/2만 인정)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한편, 의무복무지역의 변경이 가능하므로 유명무실한 지역의무복무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의무복무 인력에 대한 직무교육 제공, 경력개발 지원, 공공보건의료기관과 보건복지부 우선 채용 및 국제기구 파견 우선 선발 등도 기존 의대 졸업생과 비교할 때 과도한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특혜를 받고 앞날이 보장된 학생들이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할지 의문이다. 10년의 기간 중 수련 이후 나머지 기간만 채우고 나면 원하는 대로 진출할 수 있는데 감염내과나 중증외상, 역학조사관, 의학·바이오 연구 등의 고된 의무복무를 성실하게 수행할지도 의문이다.
공공의대 졸업생을 감염내과, 중증외상, 소아외과 전문의로 육성하려면 직무교육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서울의 유명병원에 몇 년간 파견을 보내야 하는데 그 후 실제로 지역에서 의무복무를 하는 기간은 고작 2~3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감염내과나 중증외상 등 비인기 진료과 기피 현상은 수가를 정상화(현실화)해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환자 진료를 의사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보조 인력인 간호사들의 간호수가 현실화가 동반되어야만 실제적인 효력을 기대할 수 있다. 지방 의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환자의뢰(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하며, 진료권 설정과 같은 환자분산정책이 필요하다. 환자의뢰체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데 소위 문재인 케어는 그나마 미약하게 존재하던 환자분산정책인 본인부담금의 장벽을 없앰으로써 환자의뢰체계를 완전히 망치고 있다.
역학조사관이 필요하다면 현재의 유명무실한 공중보건의사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 즉, 지자체 소속이 아니라 질병관리청 소속으로 바꾸고 필요한 교육을 추가하면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의대의 교육과정에서 일차 의료와 공중보건의 비중을 늘림과 동시에 보건소의 진료 기능을 없애고 공중보건업무를 강화해야 한다.
기초과학 및 제약·바이오 인력을 강제로 지정한다는 것도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다. 그리고 해당 분야에 공공의대 출신 의사를 아무리 많이 투입하더라도 현정부의 반기업·반시장 정책하에서 주 52시간 근무규정까지 지키려면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보다는 연구진에게 적용하는 주 52시간 근무제부터 폐지하는 것이 기초과학 및 제약·바이오 분야의 발전에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공공의대 졸업생의 지역의무복무제도는 일본의 정책을 베낀 것인데 기왕 하려면 제대로 베낄 것이지 귤을 탱자로 만들면 안 된다. 일본은 농어촌지역의 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2006~2007년부터 장·단기 정책을 시행했다. 단기적으로는 지역 의료기관의 근무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기존 의료인력의 지역유입을 유도했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에 근무할 의사를 별도로 선발하여 교육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것은 자치의과대학을 통해 전문성 있는 지역 의료인력 양성하는 제도와 기존 의과대학에 별도로 정원을 마련하여 지역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지역 정원제도로 구분할 수 있다.
일본의 자치대학 졸업생 중 의무복무 후 해당 지역에서 계속 근무하는 비율은 69.6%이며 약 30%는 지역을 떠났다. 이 정도면 나쁜 결과는 아니지만, 일본은 오랜 막부 전통의 영향으로 지방자치가 강하고, 중앙과 지방 간 격차가 적고, 환자의뢰체계가 유지된 상황이므로 그나마 이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면에 한국은 지방자치의 역사가 짧고 재정자립도가 낮으며, 중앙과 지방 간 격차가 크고, 환자의뢰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경북대, 전남대, 부산대 등 지방에 있는 유수의 국립대학이 부속병원을 두 개씩이나 갖고 있고 모두 1,000병상이 넘지만, 해당 지역의 환자들은 대부분 서울 등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므로 의료자원 불균형 현상의 근본 원인인 진료권 폐지 및 환자의뢰체계의 붕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공공의대 졸업생의 지역의무복무제도는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하고 결국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벤치마킹을 제대로 하려면 겉에 보이는 것만 차용해서는 안되고, 근본적인 취지도 세트메뉴로 같이 가져와야 한다. 또한, 공공의대 졸업생이 배출되려면 최소 10년이 걸리는데 일본과 달리 우수한 의사를 지역에 유치하고 자연스럽게 유입되게 만들 수 있는 단기 정책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저들의 공공의대 정책에는 최소한의 진정성도 없다.
4. 결론
결론적으로, 국립 공공의대 설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의 개념을 명확히 설정하고 적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즉, 공적 재정으로 제공되는 건강보험의료를 공공의료로 명확하게 정의하고, 기능적으로 이미 공공의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기존의 40개 의대에 대하여 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만약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공공의대 신설을 강행한다면 의료자원 불균형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공공의료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근거도 없고, 긴급하지도 않은 정책을 코로나19 와중에 일방적으로 강행하려는 시도는 의료사회주의자들의 백년대계를 위해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는 불온한 행위이다.
<grace@schmc.ac.kr>
글 | 이은혜
1998년에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되었으며 세부전문분야는 유방영상 및 유방암진단이다. 2010년부터 국가암검진 질관리사업에 참여하면서 보건의료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의사가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작년에 보건대학원에 진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