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사태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화웨이 사태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2020-10-04 0 By 월드뷰

월드뷰 OCTOBER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글/ 김상배(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화웨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2018년 말과 2019년 상반기를 달구었던 이른바 ‘화웨이 사태’는 최근 복잡다단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국 내에서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와 관련된 사이버 안보 논란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지만, 미중 양국의 외교적 현안으로까지 불거진 것은 2018년 들어서의 일이다. 2018년 2월 CIA, FBI, NSA 등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일제히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8월에는 미 국방수권법이 화웨이를 정부 조달에서 배제하기로 하더니, 12월에 이르러서는 화웨이 창업자의 맏딸인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9년 초에는 미국이 우방국들에게 화웨이 제품을 도입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는 외교전이 벌어지더니, 5월에는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민간 기업에게도 화웨이와의 거래 중지를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화웨이 문제를 산업의 문제가 아닌 안보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웨이 제품에 심어진 백도어(backdoor)를 통해서 미국의 사이버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데이터가 빠져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화웨이 문제는 ‘실재하는 위협’으로 부각되었으며, 이러한 담론에 근거해서 대내외적으로 화웨이 제재의 수위를 높여갔다. 이에 대해 화웨이와 중국 정부는 화웨이 제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심과 경계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주관적으로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이를 통해 달리 얻고자 하는 속내가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화웨이 제품의 사이버 안보 문제를 놓고 벌이는 미중 간의 ‘말싸움’은 앞으로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안보위협을 놓고 벌이는 담론 정치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보 담론 경쟁의 이면에 현실 국제정치의 이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실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기저에는 미래 첨단기술 중의 하나인 5세대(5G) 이동통신 부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있다. 실제로 최근 화웨이 견제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행보는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견제 의식을 노골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술 굴기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중국의 정책과 법·제도에 대한 강한 반감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전략적 수출입 규제와 이에 수반된 양국 간의 통상 마찰로 나타났으며, 이례적으로 우방국들을 동원해서라도 화웨이 제품의 확산을 견제하려는 ‘세(勢) 싸움’의 양상으로 드러났다. 이런 점에서 화웨이 사태는 미래 글로벌 패권을 놓고 벌이는 미중 양국의 ‘지정학적 경쟁’을 방불케 했다.

지난해 중순 주이슬라마바드 중국 대사관 부대사 자오리젠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화웨이 로고는 마치 미국 애플사의 상징인 사과를 쪼갠 의미라는 듯한 사진을 재미로 올린 이래(상단 그림) 모방/응용한 이미지가 온라인에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미중 간의 실제 관계를 잘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화웨이는 중국에서의 상호 “华为”를 음역한 것으로 ‘华’의 어원인 “꽃”이 본래의 의미이다.


사이버 안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맥락


화웨이 사태의 표면적 쟁점은 사이버 안보 문제이다. 길게 보면 사이버 안보를 둘러싼 미중갈등의 역사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5월 미군이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을 오폭하여 당시 중국 해커들이 미국 내 사이트에 대해 보복 해킹을 가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2001년 4월 중국 전투기가 미군 정찰기와 충돌 후 중국 하이난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중국 해커들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서 ‘미중 사이버 전쟁’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03년 중국산으로 추정되는 웰치아 바이러스가 미국 정부 전산망을 공격하여 비자 발급업무가 일시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고, 같은 해 미국 내 군사연구소와 미 항공우주국, 세계은행 등을 해킹한 일명 ‘타이탄 레인 공격’은 미중 사이버 공방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됐다. 2009년에는 구글, 아도비, 시스코 등 30여개 미 IT기업들에 대한 중국 해커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는데, 이는 ‘오로라 공격’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의 ‘쉐이디 랫(Shady RAT) 공격’은 미국의 정부, 국제기구, 기업, 연구소 등 72개 기관에 대한 중국의 해킹 공격이었다.

미국의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중국 해커들의 공격은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오바마 행정부로 하여금 군사적 방안까지 포함한 맞대응 카드를 꺼내게 했다. 이른바 ‘중국 해커 위협론’은 2010년대 초중반 미중 관계를 달구었던 뜨거운 현안 중의 하나였다. 2013년 미국의 정보보안업체인 맨디언트의 보고서는, 1997년에 창설된 중국의 해커 부대인 61398부대가 미국의 기업과 공공기관을 해킹하여 지적재산을 탈취하고 있다고 폭로했으며, 이는 2014년 5월 미 법무부가 이들 61398부대의 장교 5인을 기소하는 조치로 이어졌다. 이즈음에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는 국가 기간시설에 대한 해킹을 국가 안보 문제로 주장하고 때로는 미사일을 발사해서라도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사이버 안보를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 항목으로 격상시켰다. 급기야 사이버 안보 문제는 2013년 6월 미중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사이버 갈등은 좀 더 복합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미중 사이버 공방은 군사적 충돌로 비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산업과 통상 문제와 긴밀히 연계되는 양상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중국산 IT보안제품 위협론’을 내세워 중국 기업들의 IT보안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특히 5G 이동통신 분야와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쌓고 있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가해졌다. 실제로 화웨이, ZTE, 차이나모바일, DJI, 하이크비전, 푸젠진화 등과 같은 중국 IT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빌미가 되어 발목이 잡혔다. 기술 경쟁과 통상 마찰의 외양을 한 이들 문제는 사이버 안보나 데이터 주권 등의 쟁점과 연계되면서 그 복잡성이 더해갔다. 국가 안보의 함의가 큰 민군겸용기술(dual-use technology) 분야에서 벌어졌던, 과거 1990년대 미일 패권경쟁의 전례를 떠올리게 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한 화웨이 중국 공장 직원이 ‘동관’에 위치한 Huawei 휴대폰 생산 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은 이 회사 주요 공급품에 대해 제재 중에 있다. /asia.nikkei


중국의 ‘5G 기술 굴기’에 대한 미국의 견제


미중 사이버 안보 갈등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둘러싼 논란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8년 12월 멍완저우 부회장이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되며 화웨이 장비 도입 문제를 둘러싼 미중 양국의 갈등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이러한 논란의 과정에서 5G 이동통신 기술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화웨이의 네트워크 장비가 표적이 되었다. 화웨이 장비가 이른바 백도어를 통해서 미국의 국가 안보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유출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국의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이를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연결 사회에서 화웨이 장비의 위험성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라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화웨이 백도어가 실재하는 안보 위협이라는 주장과 이는 단지 미국이 국가 안보를 빌미로 내세운 허구적 위협일 뿐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미국 정부가 주장하듯이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의 도입은 보안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화웨이의 행보나 투명성이 부족한 기업 문화와 성격을 보면 이러한 주장은 ‘합리적 의심’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미국 정부가 보안 위협의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문제의 복잡성이 커졌다. 이러한 공세에 대해 화웨이도 자사의 제품이 보안 위협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화웨이의 입장은 자사 장비의 보안 문제가 발생한 적이 아직까지 없으며, 만약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회사 문이라도 닫겠다는 식이었다. 마치 ‘블랙박스’를 가운데 두고 누구 말이 맞는지 믿어달라고 ‘말싸움’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실제 위협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화웨이로 대변되는 중국 기업들의 기술추격이 5G시대 미국의 기술 패권에 대한 위협임은 분명하다. 화웨이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도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며, 2018년 현재 화웨이의 글로벌 이동통신 장비 시장점유율은 28%로 세계 1위이다. 화웨이 사태의 이면에 중국의 ‘5G 기술 굴기’에 대한 미국의 견제 의식이 강하게 깔려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의 불만은, 중국이 기술 기밀을 훔치거나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성장했다는 데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제조 2025’와 같이 중국의 정부 주도 정책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사이버 동맹 외교와 그 균열


2019년에 접어들 무렵 미국 정부와 화웨이가 벌이는 실랑이는 국제적으로 그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2018년 말 트럼프 행정부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로 대변되는 미국의 주요 첩보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보이콧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마치 국제적으로 화웨이 장비가 발붙일 곳을 아예 없애려는 듯이 보이는 강경 행보를 이어갔다. 이에 호응하여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은 2018년 말 5G 공급망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캐나다는 중국과의 갈등을 무릅쓰고 미국의 요청에 따라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일본 역시 정부조달 입찰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2019년 2월 하순을 거치면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미국의 압박에 동참하는 듯이 보였던 미 우방국들이 국제 공조의 전선에서 이탈하는 조짐을 보였다. 영국 국가사이버보안센터(NCSC)가 화웨이 장비의 보안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데 이어, 독일 역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2018년 미국의 요청에 따라 화웨이를 배제했던 뉴질랜드의 경우는 총리가 직접 나서 입장 변화의 가능성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프랑스도 특정 기업에 대한 보이콧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 국가가 이탈한 데에는 5G 부문의 선두 기업인 화웨이를 배제하고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현실적 부담 외에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미중 경쟁에서 무리하게 ‘내편 모으기’를 시도하는 미국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사태의 전개에 직면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더 선진화된 기술을 막기보다는 경쟁을 통해 미국이 승리하길 바란다”며 그 동안의 강경 자세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실상 미국의 반(反)화웨이 전선이 와해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었다.

그렇지만 화웨이 사태는 2019년 5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 당국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렸고, 주요 민간 IT기업들에게 거래 중지를 요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와 거래하는 자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제재를 180일간 유예했으나, 화웨이의 숨통을 죄는 조치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구글, MS, 인텔, 퀄컴, 브로드컴, 마이크론, ARM 등 주요 기업들은 화웨이와 제품 공급 계약을 중지하고 기술 계약을 해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미중 갈등의 전면에 부상한 화웨이 장비의 사이버 안보 논란은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바꾸어 가며 지속되고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의 한국


이렇게 복합적 양상으로 진행되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한국의 미래 전략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한국과 같은 중견국의 입장에서 특히 고민스러운 것은, 화웨이 사태로 대변되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결과가 두 개의 호환되지 않는 표준의 진영을 출현시킬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진행되는 5G 기술 패권 경쟁의 지정학적 양상은 상호 분리된 두 개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창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실제로 화웨이 사태에서 엿보는 최근의 양상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주도하는 ‘초국적 질서’의 비전과 중국 기업과 정부가 모색하는 ‘주권적 질서’의 비전이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하여 충돌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러한 두 네트워크가 ‘디지털 신(新)냉전’의 세계 질서를 거론케 할 정도로 상호작동성과 호환성이 결여된 모습으로 향후 구축되어 간다면, 두 네트워크의 가장자리에 있는 중견국인 한국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구도가 한국에게 기술·경제적 선택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차원의 전략적 선택까지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중이 벌이는 5G 시대 안보화 담론정치의 와중에 한국이 추구할 기술담론의 내용은 무엇일까? 저렴하고 경쟁력 있는 기술과 장비의 도입인가, 아니면 한반도의 안보 환경을 염두에 둔 국가 사이버 안보 또는 데이터 안보일까? 또한 5G 부문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지향할 정책과 법제도 모델은 무엇일까? 미국식으로 초국적 데이터 유통을 보장하는 개방과 자유의 모델인가, 아니면 중국식의 국가주도형 기술지원과 인터넷 통제의 국가주권형 모델인가? 끝으로, 미중이 벌이는 사이버 동맹·연대 외교 사이에서 한국이 취할 전략적 선택은 무엇일까? 미국의 사이버 동맹 진영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과의 기술·경제적 협력을 강화할 것인가? 이러한 고민들은 단순히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의 몫으로만 남겨놓을 수는 없는 국가 전략의 난제들임이 분명하다.

<sangkim@snu.ac.kr>


글 | 김상배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정보혁명과 네트워크 세계정치’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