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학
2020-07-07
월드뷰 07 JUL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
글/ 황승연(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농경시대의 대학
세계 최초의 대학은 1088년에 만들어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교(University of Bologna)이다. 볼로냐 대학교 이전에 이미 이집트와 인도에 지금의 대학교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학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아 볼로냐 대학교를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여긴다. 1999년 유럽의 29개 국가들이 볼로냐에 모여 단일의 고등교육제도를 만들어 활발한 상호 교류를 통하여 국제 경쟁력을 높이자고 결의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라고 부른다. 볼로냐에서 시작한 이유는 이 학교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볼로냐 대학 설립 이후에 프랑스에서는 1109년에 ‘파리대학’, 영국에서는 1167년에 ‘옥스퍼드 대학’, 1209년에 ‘케임브리지 대학’, 독일에서는 1386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세워졌다. 초창기 대학들에서는 학식이 있는 사람이 귀족 자녀나 혹은 젊은 성직자들을 학생으로 모아서 교수가 되었다. 이 당시에는 교수와 학생이 조합을 만들어서 주로 교회의 시설을 빌려서 강의를 했다.
당시에 책은 주로 필사를 했는데, 200쪽의 책 한 권을 필사하려면 4-5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의 성경책 한 권에 해당하는 성경 한 질을 사려면 집 한 채 값이었고, 성경 한 질을 필사하는 데 1천여 마리의 양가죽이 필요했다고 한다. 책은 주로 교회나 귀족의 집안에만 있는 귀한 것이어서 책을 구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교수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1440년경 독일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였고 인쇄술이 유럽 각지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집 한 채를 주어야 살 수 있던 책값이 돼지 한 마리 값으로 내려갔다. 책이 대량생산되면서 가격은 더 내려갔다. 책이 보급되면서 교회와 대학이 예전과 같이 지식을 독점하던 시기가 지나가 버렸다. 1517년 독일에서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이자 사제였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면죄부를 파는 교회와 교황청의 부당함을 알리는 95개 항의 반박문 대자보를 비텐베르크 교회의 정문에 붙인 이후, 이 반박문은 금속활자에 의해 불티나게 인쇄되어 전 유럽에 퍼졌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루터가 숨어 지내면서 세련된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책 또한 금속활자로 인쇄되어 전 독일에 퍼져나갔다. 많은 사람이 성경책을 갖고자 했다. 성경책이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인쇄가 돈벌이가 되면서 전 유럽에 인쇄소가 세워졌다.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종교개혁 이후 루터가 촉발한 인쇄소의 확산을 통해 지식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학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맞아 변신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학은 긴 침체기를 맞았다. 반드시 대학이 아니어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으로 얼마든지 지식을 습득하고, 대학이 아니라도 지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침체를 거듭하던 대학이 새롭게 태어난 것은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에 의해 금속활자가 발명된 지 350년이 지난 1810년 독일의 베를린에서의 일이다.
산업화 시대의 대학
근대 대학의 효시는 독일의 베를린에 있는 ‘훔볼트 대학교’라고 한다. 나폴레옹에게 패한 독일은 대학을 통해 엘리트를 양성하고 국가를 근대화시키려 하였다. 이런 목적을 갖고 대학을 만들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가르칠 자유’와 ‘배울 자유’였다. 교수들이 봉급을 받는 제도를 만들었고, 교수가 되고 정교수로 승진하려면 연구업적에 의해 평가를 받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자유롭게 연구’하고 이런 환경 속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훔볼트 대학 이후의 대학이 기존의 대학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른 대학이 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후 인구 증가와 산업화의 진전으로 인한 대학생 수의 폭발적인 증가에 따라 대학은 크게 발달하였다. 지금의 세계 대부분의 대학은 훔볼트 대학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분명히 근대 대학의 모범인 훔볼트 대학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크게 바꾸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전 세계에 확산된 정보기술의 발달과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차원에서 대학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대학
2019년 말에 발생하여 2020년 초에 전 세계에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하여 전 세계 모든 대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의 등교가 제한되었다. 이제 겨울을 맞이하는 브라질 등의 지구 남반구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북반구 나라들에서는 여름이 오면서 증가세가 주춤하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확산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좋든 싫든 모두 다 온라인 강의를 접하게 되었다. 온라인 교육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연령을 초월해서, 또 분야를 막론하고 가능한 대안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것은 코로나19 사태에 하나의 대안으로 시도되다가 이 사태가 끝나면 사라질 것인가?
온라인 교육은 1995년 3월 필자가 경희대학교에서 ‘정보사회론’이라는 과목의 수업을 PC통신 ‘천리안’을 통해서 실시한 것이 처음이었다. 1995년 2학기에는 전국의 5개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회학개론’이라는 과목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실시하였다. 이후에는 전국에서 20여 개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한국가상대학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개 과목을 공동으로 운영하였다. 이것이 발전하여 우리나라에서 ‘사이버대학’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최초의 원격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교육부는 학교 당국을 통해 필자에게 ‘어떤 법적 근거로 온라인 수업을 하느냐?’라고 해명을 요구하였다. 필자의 목표는 대학교육보다는 평생교육 시대를 열기 위해 온라인 수업의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육부는 나름대로 정보화시대를 대비하는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이버대학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이버대학은 평생교육과는 거리가 먼, 지방대학을 지원하는 고졸자 학생들을 흡수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들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여겨지면서, 목적대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 정보통신 기술과 장비의 놀라운 발전은 온라인 교육에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면서 대학과 학교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유튜브 대학’이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열어버린 판도라 상자
지금 대학에서는 기말 시험을 앞두고 ‘비대면 시험을 할 경우 부정행위를 어떻게 방지하느냐?’라는 문제로 토의가 한창이다. 또 교수들의 온라인 콘텐츠 개발과 학생들의 원활한 수강을 위해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 논의 중이다. 다양한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자고 한다. 과제와 시험의 평가에 대한 제도 보완을 역설한다. 맞춤형 강의를 제공해야 하고 강의 콘텐츠를 세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서버를 확충하고 장비를 보급해야 한다고 한다. 온라인 강의 콘텐츠를 제작할 장소를 확보하고 제작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탁상공론이다. 이미 모든 것이 각자 개인의 노트북과 스마트폰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능 면에서 정말 스마트한 휴대전화기를 다 갖고 있다. 서버나 장비는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는 누군가가 제공하고 있으니 돌아가고 있지 않겠는가? 콘텐츠는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올리고 있다. 강호의 고수들이 모두 자신의 지식과 필살기를 공개하고 있다. 학교뿐 아니라 신문이나 라디오 또는 TV가 하던 교육 기능을 유튜브가 거의 다 장악했다. 유튜브에 최고 수준의 강의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다 있다. ‘Crash Course’, ‘PragerU’, ‘Khan Academy’를 방문해보라. 체계적인 강의가 아닌 단편적인 다양한 지식을 얻을 곳으로 ‘TED’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세바시’도 있다. E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도 거의 다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독일 교수의 니체 강의에서부터, 의대생들을 위한 보기 드문 수술장면들도 다 찾아볼 수 있다.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쏟아져 유튜브에 쌓이고 있다. 어느 날, 지금보다 훨씬 친절하게 모든 정보를 분류하여 안내해주는 서비스가 나타날 것이다. 언어의 장벽은 거의 없어졌다. 이미 학생들은 세계적인 교수들의 강의를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수들도 세계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교수들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취미로 연구를 하는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이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렸다. 세계와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수 있다. 교육부에서 교수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온라인 강의 20% 이하’의 규정에 기대어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과연 얼마나 가겠는가?
우리나라 교육부는 20% 이하로 제한해놓은 온라인 강의의 허용 비율을 높이는 데 주저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청에 당황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어느새 구글 대학이 등장하고 있다. 무궁무진한 유튜브 강의들이 널려있다. 이미 한글 자막 서비스가 되는 강의가 많다. 조만간에 구글 번역기는 자막이 아닌 음성 더빙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1990년에 이미 ‘앞으로 30년 후면 현재와 같은 대학교육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 30년 후가 2020년 올해이다. 공교롭게도 이 예상은 맞았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지나간 세월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술 환경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1995년에 필자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원격수업 ‘정보사회론’ 수업을 교육부에서 관여하지 않았으면 온라인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했을 것이다. 지금도 교육부는 교육을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국민은 유튜브 대학의 학생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많은 회사에서는 대민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재택근무를 하는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제는 졸업장이 아니고, 인맥이 아니고, 개개인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로 평가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능력만으로 취업하고, 능력만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런 능력은 대학이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 구글에서 학위 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대학들은 자기 학교의 학위증이 어떻게 다르다고 설명할 것인가? 이제 개인과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와 같이 덩치가 큰 공룡은 변화하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변신하려는 대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온갖 규제를 다 없애고 대학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 대학과 교수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각자도생’하는 것이 답이다. 지금 ‘구글 대학’이 어느새 우리 앞에 놓여있다. 우리 손바닥 위 휴대폰에.
<lion@khu.ac.kr>
글 | 황승연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독일 Saarbrücken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았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