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을 옥죄는 교육부의 ‘사학 혁신 방안’
2020-04-06
월드뷰 04 APRIL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
글/ 김경회(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공공성을 앞세워 사학을 ‘공영화’하려고 해
교육부는 2019년 12월 18일에 발표한 ‘사학 혁신 방안’에 대해서 사학 경영자들의 강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 또한 ‘사립학교법시행령’ 개정안이 2020년 2월 28일 입법 예고되어 의견 수렴 과정에 들어가자 사립대학 법인 측의 저항도 본격화되고 있다. 사학법인협의회는 사학 혁신 방안에 대하여 “사학 지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중략) 정부 재정 지원을 빌미로 사학 운영의 기본적 권리를 말살하는 것은 당초 설립 취지와 건학 이념을 묵살하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횡포이며, 일방적 공공성과 책무성만 강조한 ‘사학 황폐화’ 정책 방안”이라고 거부하고 있다. 현 정부는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내세워 사립학교를 국·공립에 준하여 지도·감독권을 강화하고 사학 운영의 자율성의 폭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교육 의원들은 사학의 인사·재정권을 제한하는 법안들을 제출하였는데 이와 같은 사립학교의 ‘공영화’ 정책은 2005년 노무현 참여 정부 시절에도 시도되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방 이사 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사립학교법을 일방 처리했으나 기독교계와 사학이 반발하자, 1년 6개월 만에 내용을 완화해서 재개정했다. 작년 12월에 교육부가 발표한 사학 혁신 방안은 2005년 열린우리당이 추진했으나 당시 야당과 사학계의 반대로 무산된 과제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학 혁신 방안은 사학의 자율성을 박탈해
첫째, 시정 요구 없이 임원 취소 요건에 배임죄를 추가하고 기준을 낮추어 사립학교법 취지와 내용에 위배된다. 임원 승인 취소 기준을 낮추어 사학의 경영자를 쉽게 해임하려고 한다. △ 1천만 원 이상 배임·횡령 임원은 시정 요구 없이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하도록 하고, △ 시정 요구 없이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회계 부정 기준을 대폭 낮추고 있다. 사립학교법에 임원 취소 사유로 명기되지 않은 배임죄를 추가하는 것은 법률 유보 원칙에 위배되고, 1천만 원 이상 횡령을 시정 요구 없이 이사 승인 취소 요건으로 시행령에 규정하는 것은 사립학교법의 “비리 정도가 중대한 경우”로 보기 어려워서 법 취지와 합치되지 않는다. 더욱이 배임죄는 처벌 범위 불명확성으로 인하여 학계에서도 폐지 논란이 있는 형벌인 것을 감안할 때 시정 요구 없이 임원 승인 취소 요건에 배임죄를 추가하여 교육부나 교육청이 쉽게 사립학교 임원을 해임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개방이사에 자격 기준을 제한하여 건학 이념 구현에 적합한 인사를 선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 설립자 및 설립자 친족, 당해 법인 임원 경력자, 당해 법인이 설립한 학교의 장을 역임한 자는 개방이사 선임 대상에서 제외하고, △ 정관이 정하도록 한 개방이사추천위원회 조직과 운영·구성을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사립학교법」 개정 방침을 밝혔다. 개방이사가 건학 이념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법령에 개방이사추천위원회는 해당 학교의 건학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자를 개방이사로 추천하도록 명문화하였다. 그렇다면 전직 임원과 학교장 등이 학교의 특성과 정체성을 잘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법인에 종사했다는 이유로 개방이사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이다.
셋째, 사립 교직원 징계를 관할청에서 재심의하는 것은 인사권 박탈이다. 사학의 미온적 징계 처리를 막고 엄정한 징계를 위해서 △ 중대 비리를 범한 교직원 징계 의결을 요구한 사안에 대해 징계위원회 의결 내용이 미흡한 경우, 교육청에 설치하는 징계심의위원회에서 재심의하고, △사립 사무직원에 대해서도 교육청이 징계·해임 요구 등을 통해 제재할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한다. 징계권은 임용권의 하위 권한으로 임면권자와 분리할 수 없는 인사권으로 징계권을 사립학교 교직원의 임면권자가 아닌 관할청에 부여하면 학교 법인의 인사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사립학교법 제66조의 2(징계의결의 재심의 요구)에 따라 관할청은 학교 법인의 징계가 미흡할 경우 재심의를 요구하여 엄정한 징계를 지도할 수 있다.
넷째, 교비 회계 세입 대상 기부금 확대하는 것은 재정 운용 자율성을 침해한다(사학 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 규칙). 기부 용도가 지정되지 않은 기부금 및 학교 구성원이 단체로 이용·사용하는 업체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학교 회계로만 받도록 하고자 한다. 법인 회계와 교비 회계 구분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 유일한 점을 고려할 때, 기부 용도가 없는 용도 비지정 기부금을 어느 회계에 귀속시킬지는 학교 법인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법인회계에서 부담하는 법정 부담금 규모를 국고 보조액과 연결시키고 학급·학생 정원 조정에 반영하는 상황에서 용도 비지정 기부금을 법인회계로 귀속을 금지하면 법인의 전입금을 줄 것이다.
다섯째, 사학 경영자의 의견 수렴하지 않은 일방적 처리로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였다. 사학 혁신 방안을 성안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학혁신위원회에 사학 경영자 입장을 대표할 인사는 배제되었다. 더욱이 사학 혁신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학 경영자를 대표하는 사학법인연합회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였다.
여섯째, 국회에서 법률로 정할 것을 시행령으로 규율하여 교육 제도 법정주의에 위배한다. 헌법 31조 제6항에 교육 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 제도 법정주의 정신에 따라 사학 제도는 법률로 규율하는 것이 정당하다. 더욱이 사학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기에 이를 제한하는 것은 법률로 규율하는 것이 법률유보원칙에 부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 입법을 통한 규제로 인하여 의회 입법 원칙이 깨지고 법치주의 체계가 흔들리게 된다.
사학의 자주성 확대가 공공성 강화보다 더 시급해
사립학교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공공성 강화보다는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과 수요자의 다양성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자주성의 확대이다.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자발적 퇴로를 마련하고 시대 변화에 맞추어 사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 과제를 대안으로 제언한다.
첫째, 학생 수 절벽 대책으로 사립학교의 해산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합계 출산율이 1미만(0.98)인 유일한 나라이다. 저출산 영향으로 2030년에 초·중·고교 및 대학 학령 인구(18~21세)는 2017년 대비하여 각각 34%, 17%, 23%, 31%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8년 입학 정원이 유지될 경우 2024년에는 지역 대학과 전문대학이 약 12만 명의 정원을 채우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립대학이 학생 부족과 재정난으로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는 경우에 잔여 재산은 설립자 또는 정관이 지정하는 자에게 귀속하도록 하고 나아가 운영 위기에 처한 한계 대학의 자진 폐교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증여세 감면 등 유인책도 고려해볼 만하다.
둘째, 사학 정책 형성 과정에 사학 대표자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하도록 한다. 사립학교법에 사립학교와 관련된 중요 정책이나 제도 등을 심의하기 위한 기구 설치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아 정부가 일방으로 사립학교 규제 정책을 생산하고 있다. 사립학교법에 가칭 “사학제도심의회”를 설치하여 사학 대표자의 참여를 보장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문부성과 도도부현(시도)에 사학 관계자가 포함된 교육계 인사로 ‘사학심의회’를 설치하여 사립학교 설치․폐지 및 변경 등을 사전 심의토록 하여 사학행정권한의 남용을 통제하고 있다.
셋째, 사립학교 재정 지원 기준을 법률로 정해서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사립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이 행정부의 재량에 맡겨져 정권에 따라 지원 기준이 바뀌고 전 정부에서 만든 사업이 없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재정 지원 사업을 무기로 등록금을 동결시키거나 입시 정책과 연계시켜 구조조정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처럼 재정 지원 사업이 사학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법률로 지원 대상과 지원 기준을 일본의 ‘사립학교진흥조성법’처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사립대학은 지원받을 수 있는 규모를 예측할 수 있어 보조 금액을 고려하여 중장기 대학 발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넷째, 법인 회계와 학교 회계의 통합 등 후진적인 제도를 선진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에 속하는 회계(학교 회계)와 법인의 업무에 속하는 회계(법인 회계)로 구분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국가가 설치한 서울대학교 법인에 법인 회계와 교비 회계를 구분치 않고 회계 단일화를 법률로 보장한 것처럼 회계 통합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법인 회계와 학교 회계가 통합되면 법정 전입금 부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학교 업무에 관련된 법적 다툼 소송비를 교비로 지출하여 횡령죄로 처벌받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kimkh1019@daum.net>
글 | 김경회
서울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 부교육감(교육감 권한대행)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학분쟁조정위원,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