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율성과 대학 정책

대학의 자율성과 대학 정책

2020-04-07 0 By worldview

월드뷰 04 APRIL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글/ 신현석(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 대학의 위기


우리나라 대학에 곧 닥칠 위기가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2018학년도부터 대학 입학 정원은 고등학교 졸업자 수를 앞지르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문을 닫는 대학들이 속출할 것이다. 올해로 벌써 12년째 맞이하는 등록금 동결로 대학들은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으며 교육 여건 개선과 학생 복지 악화로 인한 대학 교육의 황폐화를 우려하고 있다. 경제·산업계에서는 대학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여전히 등록금이 비싸고, 등록금을 투자로 보기보다는 비용 대비 효과에 상응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 규모를 크게 늘리지 못하면서, 사회적 책무와 공공성을 강조하며 대학의 자율을 제한하는 통제의 종류와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의 대학들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위기 현상은 오래전부터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매년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대학 경쟁력 순위는 2011년 59개국 중 39위였으나 2014년 50위권으로 급락했으며 2017년 63개국 중 53위로 떨어졌다. 국가 경쟁력이 20위권이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 낮은 순위이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국가 경쟁력 평가의 고등교육 및 훈련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1년 142개국 중 17위를 기록했지만 2017년에는 137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해마다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매년 세계대학의 랭킹을 발표하는 QS 2020년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5개 대학(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포항공대, 성균관대)이 100위권 내에 있고, 그나마 THE 평가 순위에는 100위 안의 대학이 2개에 불과하다. 내부에서 발원된 대학 위기론은 국제적인 평가를 통해 그 결과가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이해


왜 이런 위기가 우리의 대학에서 초래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학의 문제와 위기가 자발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대학 위기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처방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다.

현재 고등교육을 이끌어가는 직접적인 두 주체는 대학과 정부이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이면서 연구하는 기관이다. 중세부터 전통적으로 자치와 자율의 공간으로서 학문 탐구의 자유를 누려온 대학은 연구 중심 대학의 탄생과 국·공립 대학의 설립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가운데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남아있는 자유, 행정과 거버넌스에서 남아있는 자치의 전통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대학은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자율이 정부 정책에 의해 통제되고, 정치적 세력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의 핵심 활동 영역인 교육과 연구 그리고 행정은 대부분 법규에 의해 판단되고 있으며, 정부의 규제와 감시 영역이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확대되고 있다. 가령, 학령인구의 감소는 대학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학의 기본 교육 여건과 역량을 평가하고, 정원 감축을 권고하거나 재정 지원을 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의 자율적 판단보다는 정부가 제도를 통해 먼저 나서서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법규에 의거하여 고등 교육 정책을 추진하고, 대학은 인적·물적 자원의 확보와 정비를 통해 학교를 경영⋅관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은 민주적이거나 쌍방향 소통보다는 일방적 통보인 경우가 많았다. 그간의 통치의 역사와 행정 풍토가 국가주의 교육을 착근시켜왔던 탓에 이런 방식의 정책 메커니즘이 관행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정부는 인적 자원과 국민 세금을 통한 안정적인 재정 자원을 바탕으로 모든 고등교육 사안들을 통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다원화, 다분화된 사회에서 파편적 접근에 몰입하다가 큰 그림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

한국 고등교육의 문제를 넘어 위기론의 난설 난해를 접하며 대학도 힘들고 정부도 힘들다. 대학은 재원 확보를 위한 등록금 동결의 대체재를 마련할 수 없는 데다 뭔가를 자발적으로 하려면 정부의 규제와 눈치를 살펴야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그동안 해왔던 정책이라는 이름의 관행적 틀 속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문제들을 방어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큰 그림과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설계할 여유가 없다. 여기에 정권적 차원에서 국정과제라는 명목으로 주어지는 숙제는 새로운 현안으로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적인 추진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예가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관련된 정책으로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인 국·공립대 네트워크 체계, 공영형 사립대 도입, 고등 교육 재정 확충, 반값 등록금 유지, 거점 국립대의 명문대 육성, 자율적 특성화 지원이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려면 우리나라 고등 교육의 큰 그림 속에서 이들 과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기존의 정책과 충돌할 때 정책을 변경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추진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책 추진을 위하여 재원 확보에 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국정과제는 어떻게든 무조건 해야 하는 최우선의 것으로 요구되고 있다. 결국, 대학의 위기는 대학 자율성의 위기이고 정부 정책의 위기이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고등교육이 정부의 정책으로 추진된다는 것은 정부가 관련 법규에 의해 공여된 권위를 행사하여 제도적 개입이 필요한 대학의 현안과 미래 상황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고등 교육 정책은 고등 교육에 관한 정부와 대학 간의 소통 장치이기 때문에 정부는 개혁의 기획을 통해 대학은 자율적인 개혁의 실행을 통해 정책의 협응적 소통이 중요하다. 이러한 기획과 실행의 협응적 소통이 얼마나 조화롭게 펼쳐지고 실질적 협력을 끌어내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패가 좌우된다. 따라서 고등 교육 정책은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통제에 바탕을 둔 가치의 권위적인 배분’에 있는지 아니면 ‘민주적인 조성 기제’인지에 따라 성격이 다르게 나타난다. 고등 교육 경쟁력이 상위인 국가들에서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두말할 나위 없이 후자이다.

물론, 현재 정책 환경에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갑자기 바꾸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꼭 해야 할 것만 하고 자발적인 변화와 혁신을 포기하면 적어도 신입생 확보에 걱정이 없는 대학들은 생존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대학은 자율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고, 이런 사립대학들은 관립대학의 아류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학령인구의 감소와 지능·정보사회의 변화 요구는 서서히 대학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등 교육 정책을 주관하는 교육부는 5년마다 바뀌는 정권 발 국정 과제를 정책으로 전환하여 추진하기 때문에 정치적 권력관계의 주종 관계에 있다. 따라서 교육부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으며, 관습적인 정책 행태가 유지되곤 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망망대해 대략 어느 지점에 고기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만으로 어망을 투척하는 낡은 방식으로는 어쩌다 만선이고 대부분은 빈 배이기 때문에 넓은 바다에 대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조업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대비하는 미래 고등 교육의 종합적인 청사진 마련이 시급하다. 이는 교육부에서 주관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 특별 기획 하에 전 정부 부처 합동으로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시급하고 중차대하다는 의미이다. 고등 교육 정책 현안은 교육부가 주관하되 관련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협의 구조에서 정책의 형성 과정에서는 합의를, 집행 과정에서는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결정에 따라 합리적인 실천을 모토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교육부는 힘을 빼고 협력적 거버넌스의 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대학은 물론 정책 현안의 이해 당사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협업하고 공조한다. 이때 당연히 고등 교육 정책에 대한 교육부의 역할과 기능은 축소 지향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하고, 수직적 정책 추진 구조의 상위자가 아닌 수평적 구조의 중개자 내지는 촉진자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정책 실패의 상당 부분은 콘텐츠의 빈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는 대안의 선택과 대안 이행 과정에서 일방통행에 따른 부적응과 디커플링 그리고 현장과의 괴리에 따른 정책 오차의 발생을 야기하는 정책 추진 메커니즘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 안정적인 재원이 법정 교부금 형태로 확보되어야 한다.

<hsshin01@korea.ac.kr>


글 | 신현석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교육행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교육정치학회, 한국교원교육학회 및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과 대학발전기획단장을 통해 정부 고등교육정책을 자문한 바 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기획예산처장과 사범대학장 및 교육대학원장을 맡아 대학 운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