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사

(서평)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사

2018-06-29 0 By worldview

(서평)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사

 

월드뷰 06 JUNE 2018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OOK REVIEW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에큐메니칼이란 말이 오늘날 종교적 의미에서는 ‘하나님 집에 사는 모든 식구’로, 사회적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이 거주하는 세계’라는 식으로, 자의적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오늘날 전혀 다른 의미의 ‘일치’로 오용되고 있지만, 어원인 오이쿠메네(οἰκουμένη)는 그런 뜻이 아니다. 집(οἰκοϛ)에서 파생된 동사 ‘거주하다’(οἰκέω)에서 유래한 이 말은 본래 로마 제국 아우구스투스가 호적을 명하는 대상이 되었던 ‘세상’을 이르던 말이다(눅 2:1).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곳에 이끌고 올라가 보여준 ‘천하만국’을 이르는 말이기도 했다(눅 4:5). 저런 세상이 만족스럽게 ‘일치’된 것은 에베소 교회 안에서의 일이다. “때(카이로스)가 가득 차니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비로소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 즉 명시적 ‘통일’(일치)이라는 용법이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일치의 도상에서 일치보다 중요한 어휘는 바로 아나케팔라이오사스타이(ἀνακεφαλαιώσασθαι), 곧 ‘머리됨’이다. 그리스도께서 머리됨이 바로 에큐메니칼의 본령인 것이다. [이 ‘일치’라는 용어를 누가는 ‘청지기’(또는 청지기의 업무)로, 고린도교회는 ‘직분’으로 가져다 쓰고 있다.]

이번에 홍성사에서 출간한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사>는 이 오이쿠메네 원리에 입각한 우리나라 개신교의 그야말로 ‘에큐메니칼’ 한 활약을 잘 담아내고 있다. 기간으로 치면 약 70년 남짓한 분량이지만 실로 역동적인 행전의 속편이 아닐 수 없다. 1885~1905년의 개신교 역사를 담은 제 1부에서는 여러 교파 선교사들이 성서와 찬송가를 번역하고 그것을 보급하며 전도하는 과정을 ‘일치’의 모습으로 담아냈다. 제 2부(1905~1918)에서는 일제 무단정치하에서의 일치된 저항을 정리했으며, 제 3부(1918~1928)에서는 그야말로 종파를 초월한 거국적인 3·1운동이 어떻게 일치를 이루어냈는지 담아내고 있다. 더 나아가 피선교국 지위를 넘어 세계선교 대회에 한국 국적의 기독교인을 파송하는 세계화 장면도 이 기간의 일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제 4부(1928~1945)에서 우리나라 개신교의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갈라지게 되었는지 유래를 다룬 점이다. ‘모세오경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오경의 J·E·D·P 자료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야기된 모세의 친저성 논란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마지막 제 5부이다. 1945~1950년대를 다룬 이 구간에서는 8·15 해방과 함께 각 교회가 어떻게 재건되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 친일청산이라는 잔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회 정서에 가담한 일부 개신교가 아직도 신사참배의 연좌에 스스로 함몰되어 있는 것에 반해, 일제시대의 상흔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재건’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 저자 고 전택부 선생의 복음이 이 시대에 더욱 돋보인다(이 책의 초본은 한국 NCC에서 발행한 1979년판이다). 이 ‘재건’이야말로 비극적인 순교와 배도로 얼룩진 초기 기독교 역사를 동여맨 ‘일치’의 표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일치’의 과정을 주도한 당시의 ‘한국 NCC’가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함으로 성서적 에큐메니즘에 충직한 청지기로서 본을 보인 것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이 책 말미의 그 인상적인 대목을 다소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이때 기독교 대표로는 김관식·김영주·김종대 등 남부대회 간부들이 참석했고, 기념행사 명칭은 ‘기미 독립선언 3·1전국대회’로 결정되었다. 대회 명예회장에는 이승만·김구·김규식 등 3영수를 추대했고, 초대 대회장에는 김관식(기돆, 남부대회 회장), 총무부장에는 이단(천도교), 식전부장에는 김종대(기독교, 남부대회 서기), 재정부장에는 남상철(천주고), 동원부장에는 김영주(기독교, 남부대회 전도부장) 등으로 삼아, 1946년 3월 1일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전국대회를 갖기로 했다. 그러자 좌익 계열에서는 박헌영·여운형·허헌 등 3인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여 좌우익 공동주최로 하자고 도전해 왔으므로 잠시 난처한 입장이기도 했으나, 결국 좌익이 가담하는 것은 본래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종교단체만의 주관으로 추진되었다…”(p. 228-9)

여기서 언급된 ‘본래의 정신’은 무엇인지 모든 한국 교회는 숙고함이 마땅하다. 저 인용문에서 공교롭게도 ‘이단’(그렇지만 여기서는 사람 이름 李團을 말한 것이다)으로 표기 된 천도교와도 3·1절을 함께 기념할 수는 있었을지언정 좌익과는 함께 앉지 못했다는 그 정신은 무엇일까. 그 정신은 바로 공산·사회주의가 본래 집(οἰκοϛ)을 훼손하는 파괴적 정신에 기인한다는 상대적 추론 속에서 이 한국 에큐메니즘 정신사의 본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자들, 특히 현(現) 한국NCC 소속 교회들에게 적극 이 책을 추천한다.

에큐메니칼 곧 ‘일치’란 ‘가이사의 세상’ 혹은 ‘이단의 세상’과 일치를 모색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추구했던 정신과 일치하는 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에큐메니칼 신학에 있어 ‘일치’보다 ‘머리됨’이 더 중요했던 역설의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