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폐지 10년…경쟁 예능 1인자가 남긴 것

“나는 가수다” 폐지 10년…경쟁 예능 1인자가 남긴 것

2024-08-22 0 By 월드뷰

월드뷰 AUGUST 2024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VIEW 4

황선우 (문화평론가, 작가)

국민일보, 기독일보, 펜앤드마이크 등 여러 언론·잡지에 칼럼 및 수필을 꾸준히 쓰며 작가 겸 문화평론가로서 책 집필과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20대 아빠의 저출산 Talk>(2023), <문화는 너다>(2022), <선의 비범성>(2021)이 있다. 또한, 문화비평 채널 ‘선우작가’를 운영하고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등 청소년과 청년에게 선한 영향 끼치려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예장 합동 총회 ‘다음세대목회부흥운동본부’의 전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한창일 때 모든 아마추어 오디션 참가자들을 잠시 묻히게 한 방송이 있다. MBC 김영희 PD가 2011년에 선보였던, 프로 가수들의 서바이벌 예능 “나는 가수다”이다. 2015년에 시즌 3까지 하고 폐지되었으니 곧 폐지 10년이 되어간다. 이 방송은 프로 가수 7명이 노래 경연을 한 뒤 7위 한 가수는 탈락하면서 다른 가수로 교체되는 룰이 있었다. 첫 가수 출연진은 김건모, 김범수, 박정현, 백지영, 이소라, 정엽, YB(윤도현 밴드). 데뷔 연차도 꽤 있고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 불리는 이들이 경쟁해서 탈락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방송 출연에 승낙했다.
그런데 첫 탈락자로 최고참 김건모가 선정되자 약속과 원칙이 파기된다. ‘국민가수 김건모가 탈락할 리 없다.’부터 시작해서, 김건모가 “립스틱 짙게 바르고(임주리)”를 다 부른 후 장난기가 발동하여 무대에서 립스틱을 바른 퍼포먼스를 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줬다는 말이 많았다. 당시 YB의 매니저 역으로 출연하던 김제동은 굳이 나서서 말한다.
“이번은 정말로 재도전 기회를 한 번은 주셔야 되는 게 맞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김제동은 립스틱이라는 경쟁 외적인 요소가 들어갔기에 이번 결과는 불공정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김건모는 재도전을 했고, 당연히 큰 논란이 되었다. “나는 가수다”의 룰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논란 속에서 프로그램을 잠시 중단한 것이다. 김영희 PD는 하차했고, 약 한 달 후 방송이 재개됐을 때 새로운 PD로 교체되어 진행되었다.
실제로 김건모가 립스틱을 발라서 7위를 했는지, 당시 김건모가 노래를 가장 못해서 7위를 했는지 각자 시청자들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 김건모는 “나는 가수다” 하차 후 토크쇼에 출연해서 후자의 이유가 맞음을 인정했다. “김건모 ‘내가 나가수 탈락한 진짜 이유는…’”, 〈뉴스엔〉, 2011.10.12.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립스틱 퍼포먼스를 포함한 모든 것은 김건모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모든 것은 김건모 책임이다. 불공정 요소는 조금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가 룰을 어기고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준 것은 김건모에게나 제작진에게나 김제동에게나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차라리 김건모가 7위 했을 때 시원하게 나갈 수 있도록 김영희 PD를 비롯한 “나는 가수다” 제작진과 김제동, 다른 가수들이 가만히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김건모 본인도 “‘나는 가수다’는 내 삶의 큰 전환점”이라 한 것처럼, 탈락 이후 “나는 가수다” 밖에서 더 진정성 있게 노래했다면 그의 가수 인생이 더 시원하고 멋지게 빛났을 것이다. “김건모 “‘나는 가수다’ 내 인생의 전환점”, 〈TV리포트〉, 2011.03.27.


경쟁에서 탈락한다고 해서 절대 끝이 아니고 오늘이 절대 끝이 아님을 알면서, 우리는 때로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 경쟁의 룰을 어기면서까지 어설프게 경쟁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더 약하게 만든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 혹은 탈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설프게 번복하지 말고 정정당당히 경쟁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

“나는 가수다”는 늘 화제와 논란의 중심이었다. 재도전 논란 전부터 “나는 가수다” 반대론자였던 이들이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 꾸준히 비판하여 더 주목받았다. 그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가수끼리 등수를 매기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했고, 애초에 경쟁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도전 논란에 대해서는 오히려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과연 그들의 비판은 타당할까?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수입이 50배 늘었다’고 밝힌 박완규도 사실은 “나는 가수다” 반대론자였다고 한다. “박완규 수입 공개, ‘과거보다 50배 늘었다’”, 〈엑스포츠뉴스〉, 2012.02.24.
그런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이 경쟁의 수혜를 상당수 얻은 셈이 됐다. 이처럼 경쟁은 경쟁에 대해 회의적인 이에게도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준다.
그는 자신이 “나는 가수다”에 대한 회의를 멈춘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배들의 곡이 대중 여러분에게 알려지고 여러분이 즐기게 됐어요. 걸그룹이나 아이돌 그룹에 잠식됐던 가요계를 풀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나오고 싶었어요.” “‘나가수’ 박완규 ‘순위에 연연하지 않겠다’ 합류 소감”, 〈OSEN〉, 2011.12.18.

경쟁에 대해, 특히 프로 가수들의 경쟁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의 분통을 샀던 “나는 가수다”는 결국 그 회의론자들을 포함한 국민 다수에게 감동과 감탄을 줬다. ‘얼굴 없는 가수’라 불리던, 가창력은 대한민국 Top이지만 방송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가수들이 주말 황금 시간대(골든타임)에 편성된 예능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수 있었고 노래할 수 있었다. 소름 돋는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 그리고 최고의 연주와 편곡 실력을 갖춘 밴드로 인해 “제발(이소라)”, “여러분(윤복희)”, “나 항상 그대를(이선희)” 등 여러 명곡이 재조명될 수 있었다.
박정현은 자신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4년 활동하면서 TV에서 노래하는 기회의 한계를 느꼈어요. 라이브 밴드와 열심히 연습해도 항상 그런 방송은 새벽에 방송되더라고요. 골든타임에 방송되는 프로에서는 노래를 2분 30초, 3분으로 잘라달라고 해요. 그런데 골든타임 지상파 TV에서 라이브 들려줄 수 있는 무대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나가야 되는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박정현 나가수 출연 속사정 ‘TV서 노래 기회 한계 느꼈다’”, 〈뉴스엔〉, 2011.08.18.

“나는 가수다” 명예졸업까지 하며 가수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은 박정현은 자신의 노래 “꿈에”와 “첫인상(김건모)”,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조용필)” 등 여러 명곡을 재조명시켰다. ‘재조명’이란 건 기성세대를 향한 말이 아니다. 이 노래가 나올 때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가 이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게 해주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보았을 때, “나는 가수다”에 경쟁 요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건 그다지 좋은 의견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여러 비판 중 가장 들을 만한 의견은 가수 신해철에게서 나온다.
“스스로 가위바위보에 져서 보컬 포지션 맡은 입장으로 저 같은 사람도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가수인 건 아니에요.” “‘100분 토론’ 신해철-김태원 ‘나는 가수다’에 일침”, 〈TV리포트〉, 2011.04.11.

그 역시 “나는 가수다”에 있는 경쟁 요소만을 보고 비판한 점은 아쉬움이 있으나, 이처럼 색다른 시선이 있었던 것만으로 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있었다. 고음을 잘 올리지 못하면 가수가 될 수 없다고 평가하는 현실에 대한 일침이자, ‘폭발적인’ 무대만을 요구하는 “나는 가수다”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절제미 가득한 김연우가 핏대를 올려야만 하는 곳이 “나는 가수다”였다.
신해철의 말은 “나는 가수다”가 부흥하던 시기에는 크게 의미 없었다. 하지만 대중이 더 이상 고음 폭발에 질리고 새로운 것을 원할 때 신해철의 말이 들어맞았다. 대중은 사실, 가창력이 조금 떨어지거나 심지어 가수가 아닌 사람이 노래하더라도 큰 감동을 받는다. “나는 가수다”는 이 점을 놓쳐 시즌 2와 시즌 3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후 MBC는 새로운 서바이벌 예능 “복면가왕”을 출범시켰다. 가수 아닌 사람도 노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승은 늘 가창력 출중한 가수들이 한다 해도, 일찍 떨어진 출연자의 무대, 즉 잔잔하고 부족한 노래를 들으며 감동하는 시청자 역시 적지 않다. 이로써 MBC는 또 한 번 음악 예능에 성공했다. 물론, 이 역시 관객들의 투표를 받는 등 경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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