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2021-12-09
월드뷰 DEC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7 |
글/ 곽태원(서강대학교 명예교수)
들어가며
우리는 이제 선진국의 일원이 되었다. 최선두 그룹은 아니지만, 소득수준이나 기술 및 산업의 수준 그리고 정치제도와 국민이 누리는 자유의 수준 등에 비추어 볼 때 선진국이라고 하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고비를 더 넘어야 이른바 선진 복지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도입된 복지제도의 내용과 그 운용의 안정성, 복지에 사용하는 재정의 비중 등에서 아직도 상당한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복지의 개념이나 기본철학이 오해되고 있거나 집단들 간에 극단적인 이견을 보여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제도의 도입이나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중에 대표적 주제의 하나인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에 관한 논쟁을 생각해 본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개념
먼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개념부터 정리한다. 보편적 복지는 주로 좌파의 지지를 받고 있고, 선별적 복지는 우파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극단적인 보편주의자들은 복지제도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러한 제도가 효율적이고 공평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복지급여대상을 선별하기 위한 자산 및 소득조사(means test)를 해야한다. 그런데 극단적 보편주의자들은 이러한 조사조차도 없어야 공평하다고 주장한다. 복지 대상으로 분류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복지를 제공하자고 하는 보편주의적 접근은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공평하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획일적 보편주의에 대립하는 자들을 선별주의자라고 칭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복지서비스의 성격이나 목적에 따라 보편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선별적인 접근이 타당한 경우도 있다는 입장이 획일적 보편주의에 대립하는 선별주의자의 견해라고 생각한다.
사회보험과 보편적 복지
보편적 접근이 필요한 대표적인 경우가 연금이나 의료보험 같은 소위 사회보험 성격의 복지서비스이다. 모든 사람은 나이 들면 소득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도 일종의 위험이므로 이에 대한 보험이 필요하다. 질병의 위험에 대해서도 보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에 대한 보험을 민간부문의 상업적 보험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회보험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설계함으로써 보편적 복지제도의 성격을 갖는다.
사회보험이 보편적 접근이지만 여기서도 극단적인 보편주의접근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모든 국민의 의료비용을 국가가 세금수입으로 부담하는 경우 완전 무상의료제도가 된다. 이것은 순수한 보편주의복지 서비스이다. 완전 무상의료의 경우 이를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므로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또 의료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위급하고 중한 질병에 걸려도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긴 대기열(waiting line) 문제로 진료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는 보편주의 원칙과 능력에 따른 부담의 원칙을 적절히 조합한 매우 좋은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보편주의의 원칙을 따르면서도 합리적인 유상서비스로 운영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는다.
공공부조 제도와 선별적 복지제도
사회복지의 가장 중심적인 기능은 가구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과 소득의 부족 사태라는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회보험도 이러한 기능을 감당하지만, 공공부조 제도를 통해서도 이러한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 공공부조 제도는 자산 및 소득조사를 통해서 선별된 저소득 가구에 직접 일정한 소득을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서 이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이 제도는 선별적 복지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 제도를 보험적인 기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빈곤도 교통사고처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효과도 강하다. 국가의 재정수입으로 일부 계층을 빈곤의 정도에 따라 직접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분배개선 수단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제도의 문제점
빈곤 문제와 분배격차 문제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보편주의적 접근은 공산주의식의 소득분배이다. 모든 소득 활동의 결과를 전부 정부가 거둬서 그것을 모든 주민에게 획일적으로 배급하는 것이다. 강력한 재분배 방법이지만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짐으로써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도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전면무상급식이나 현 정부가 집권 초기에 시행하려고 했던 모든 노인에 대한 노인연금 등도 보편적 제도이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선별적으로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보편적 서비스로 바꾸면 예산은 더 많이 들고 분배개선 효과는 줄어든다. 예산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더 중요한 복지서비스가 제한되거나 포기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또는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는 늘어나지만 정작 의미 있는 지원을 받아야 할 어려운 사람들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맺음말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선택은 이념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접근이 더 합리적인가의 실용적인 문제라고 본다. 모든 정부의 일이 예산제약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꼭 필요한 복지서비스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수준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운용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별의 원칙이 더 많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성경은 고아, 홀로 사는 여인, 그리고 나그네 등 소득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웃을 돌보라고 명령한다. 디모데전서 5장 9절에 나오는 과부 명부에 올리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성경은 정부나 교회에 의한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지 않는 듯 하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고 그렇게 선별된 경우에도 가족이나 친족이 먼저 돌보게 하고, 그것조차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교회가 돕도록 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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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태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을 거쳐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에서 2년 그리고 서강대학교에서 20년간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조세연구원 이사,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친 조세 관련 전문가로 부동산 등에 대한 자본소득 과세의 연구에 몰두했으며, 2006년에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