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진전과 기본소득
2021-12-06
월드뷰 DEC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
글/ 김용하(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이 꿈꾸는 미래
4차 산업혁명으로 진보한 인류와 지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빅 데이터, 모바일, 인공지능 기술이 이끄는 미래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일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일하지 않아도 잘 사는 유토피아는 아마도 천당이나 극락 같은 곳일 것이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1516년 유토피아를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아내의 바가지에 마음을 상할 이유가 없고, 아들의 가난을 염려하지 않고, 딸의 결혼지참금을 걱정하지 않으며, 나이 들어 일을 못 하게 되더라도 아직 일하는 사람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손 대대의 생활과 자신의 행복이 약속되어 있어서 즐겁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500년 전에는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는 미래에는 실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하기 위해서는 현대 자본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생산함수와 후생함수가 다시 정립되어야 한다. 즉, 가계 소득의 원천인 임금·이윤·지대는 노동·자본·토지라는 생산요소의 대가로 지급된다.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된 시대에도 자본과 토지는 계속 투입되어야 하지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는 노동의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생산요소라고는 오롯이 노동밖에 없는 근로자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유토피아의 꿈, 기본소득제
이에 대한 답이 기본소득이다. 국가가 전 국민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공평하게 기본소득을 나누어주면, 기본소득으로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다. 이는 현재 기본소득 주창자의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에 대한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는 사유재산제에 대한 부정이 전제되고 있다. 기본소득제 주창자의 사상 기저에도 공유자본의 개념이 깔려 있다. 토지·환경·빅 데이터 등에 대한 사회적 공유를 전제로, 이에 기초한 과세를 통해 기본소득제 운용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의 경제·사회적 배경에는 토지 가격이 급등해서 자산의 불평등성이 극도로 양극화되고,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AI 로봇 등에 의해 자동화가 진행되어 일자리가 없어지며, 인간의 물질만능주의적 탐욕 때문에 지구환경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어 지구온난화에 따른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미래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기본소득 주창자는 토지 가격 급등, 자동화, 경제성장, 글로벌리즘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본소득의 도입에 필요한 재원도 인류사회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징벌적 과세를 주장하고 있다.
1960년대 유럽 등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도 2차대전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동화가 진전되어 미래의 일자리가 걱정되고, 1968년 로마클럽 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무분별한 물질 중심 성장주의에 따른 환경파괴와 자원과 에너지의 고갈 위험으로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논의는 지난 60년간의 맹목적 성장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실현 불가능한 이상(理想), 기본소득제
그렇지만, 기본소득제 도입 필요성의 전제가 되는 경제·사회적 환경은 그리 무르익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도 코로나19에 따른 취업자 수의 감소 요인을 빼면 그리 진행되지 않았다. 고용정보원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경제 종사자 수도 전체 취업자 수의 2%를 넘지 않고 있고, 노동소득분배율도 2017년 62.0%에서 2019년에는 65.5%로 다시 상승했다. 무엇보다도 혁명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면, 국민의 공동체 의식이 충분히 성숙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존 조사연구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공동체 의식이 유럽, 미국 등 경제선진국뿐만 아니라 미얀마 등 저개발국과 비교해도 낮은 것으로 조사된다. 특히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이 38.9%(2018년 기준)나 되는 현실에서 보편적인 기본소득제를 시행할 수 있는 재원 조달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8년 기준으로 16.7%에 이르는 빈곤 인구를 선제적으로 축소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정액의 기본소득보다는 선별적인 보충적 소득지원제도가 동일한 예산조건에서 더 우월함이 명확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시기에 기본소득 도입에 필요한 재원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꿈꾸는 유토피아가 그리는 기본소득의 개념은 인류의 미래사회를 구상할 때 짚고 넘어갈 수 있는 이상적 제도 중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현시점에서 우리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기에는 아직 너무나 허무맹랑하다.
<yongha01@sch.ac.kr>
글 |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과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영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