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랄 팬데믹
2021-09-09
월드뷰 SEPT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2 |
글/ 소윤정(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관광에 이어 뷰티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할랄 산업’
㈔한국할랄산업연구원(원장 노장서)이 말레이시아 정부 산하 할랄 정책기관인 할랄개발공사(HDC)와 지난 7월 말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8월 11일 뒤늦게 밝혔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된 서명식에서 이루어진 두 기관의 양해각서 주요 내용으로는 한국의 무슬림 친화 관광서비스 교육과 자문, 그리고 한국에서 무슬림 친화 관광서비스의 홍보와 인정을 위한 상호 협조, 한국의 무슬림 친화 관광서비스 개발 과정에서 말레이시아의 지식과 전문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한국할랄산업연구원은 2014년 발족한 이후 국내외 할랄 산업 분야 조사사업 수행, 무슬림관광전문가, 할랄 지도사 등 전문가 양성 교육 실시, 국내 식품 및 화장품 기업들을 위한 할랄인증 자문 업무 제공, 국내 유일의 할랄 전시회인 ‘할랄산업엑스포코리아’ 주관 등 국내 할랄 산업 생태계 조성에 큰 기여를 해왔다. 한국할랄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도에 한국을 방문한 무슬림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이들 중 60% 이상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방한한 관광객들이라고 한다. 할랄산업연구원은 말레이시아 할랄개발공사와 이번 협약을 계기로 국내 관광업계를 대상으로 무슬림 친화 관광시설 평가사업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제정한 무슬림친화관광표준(MFHS 2610:2016)을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할랄개발공사의 자문을 받아 한국 실정에 맞는 등급평가제도를 도입해 숙박 시설, 여행사, 관광지, 관광패키지 등 다양한 관광시설과 서비스에 적용함으로써 국내 무슬림 친화 관광산업 생태계를 크게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할랄”이라 하면 대다수가 이슬람식 음식만을 생각하는데 국내 할랄 산업은 음식을 통한 관광산업육성뿐만 아니라 소위 “K뷰티”라는 화장품 산업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K뷰티” 산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 제품생산과 시장개척 등 미국이나 유럽제품보다도 한국제품을 선호하고 있는 무슬림 여성들의 여심을 공략하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여러 중동국가에서 만나는 무슬림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에 많은 관심을 표하기도 하고, 직접 물어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방문했던 중동국가 대형 쇼핑몰에서 발견한 국내기업들은 점점 다양해질 전망이다.
식물 성분을 주로 사용하는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은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진출을 시작으로 현재 아랍권 7개국에 매장을 80여 개 이상 운영하고 있고, 후발주자인 아모레퍼시픽도 할랄인증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16년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중동지역에서 할랄인증을 받으면서 제품 3종을 출시했고, 해당 제품생산을 위해 공장 일부 라인의 할랄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를 기반으로 향후 다른 브랜드까지 할랄인증 제품을 확장하려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코스맥스 역시 제품뿐만 아니라 현재 뷰티 트렌드에도 신경 쓰고 있다. 해당 공장은 2016년 세계 3대 할랄 인증기관인 무이(MUI)에서 업계 최초 할랄인증을 받았으며, 최근 현지 자생식물 소재를 활용해 할랄 화장품 개발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또한, 화장품 브랜드인 토니모리 역시 최근 들어 동유럽, 중동 등으로 수출국을 확대하고 있는데,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상업도시인 제다에 토니모리 사우디아라비아 1호점을 열면서 중동 시장에 첫발을 들였다. 이어 2018년 요르단 2대 쇼핑몰로 꼽히는 암만 시티몰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했다.
무슬림이라해도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알아야
2015년 1월 정부의 할랄 산업 육성계획발표와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 시 이루어진 UAE와의 MOU 체결 이후 지난 5년간 한국은 “할랄” 이슈로 몸살을 앓았다. 흡사 ‘할랄 팬데믹’ 현상이 관광업, 축산업, 유통업 등 국내기업들 사이에서 나타났고, 무엇보다 정부의 할랄단지 육성계획은 기독교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영구적으로 무산시키지 않고 익산을 필두로 강원도, 제주도 등이 현재까지도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할랄 팬데믹’ 현상을 지탱하고, 건전한 대한민국 산업을 육성할 만한 할랄 전문가가 없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슬람교의 입장에서 포장·선전하는 전문가가 아닌 한국인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선도하는 전문가가 절실한 시점이다.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할랄 산업은 대다수 한국이슬람교와 관련된 기관과 밀접한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초기에는 느슨하게 적용되는 조항들로 인해 경제적 이익만을 내세우며 진행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할랄인증제도의 유동성으로 인해 야기될 혼란은 누구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샤리아의 해석적 측면에서 각각의 무프티들이 각기 다른 국가별·지역별 파트와1)를 선포하고, 이를 식품 할랄에 적용하고 실행하여 다양한 기준이 할랄 시장에 있는 현실에서 한국 정부가 과연 어느 국가 어느 종파의 기준에 맞출 수 있을 것인지 정부의 대책을 지켜보는 바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경제 체제의 한국 사회에서 정부가 하나의 통일된 기준만을 적용한다면, 나머지 다른 기준을 적용한 상품을 수출하는 기업과 유통기업 제품의 판매는 불가능해진다. 그로 인한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기업이 감수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한국이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슬람 국가에는 엄연히 이슬람법 샤리아가 존재하고, 이에 따라 국가의 샤리아법 해석의 최종 권위를 가지는 ‘그랜드 무프티’가 있어 논쟁 시 법적인 해석을 통해 해답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한국은 ‘무프티’가 없으며 샤리아 법정도 없고, 샤리아는 더군다나 한국에서 국가법 준수에 있어서 우선권을 선점할 수조차도 없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구조가 이슬람 사회와 다른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통일된 기준을 제시하고 관리 감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무의미해 보인다.
무슬림 친화 관광서비스와 관련해서도 지속적으로 무슬림관광객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할랄’식품 개발과 인증, 그리고 할랄 식당의 확충을 제안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슬림관광객 수의 증가는 ‘할랄’식품 개발과 인증, 그리고 할랄단지개발의 원동력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관광객이 증가한다 해도 관광객의 특성상 무슬림 관광객은 방문객일 뿐 한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아니고, 관광객이 회전되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관광객들이 집중되는 상황이 아니므로 현재 인증받고 수출되고 있는 할랄식품 활용과 수입 ‘할랄’육을 이용해도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을 찾아온 무슬림들이 한국문화를 접하면서 한식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문화적 입장에서 ‘할랄’ 음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한국을 찾아오는 관광객으로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이는 세계 관광길에 나선 한국인이 관광지에서 김치와 된장을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자문화 중심주의적 발상이다. 한국의 문화를 접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의 음식을 접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나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문화적 입장에서 한국을 방문한 무슬림들이 한식을 자유롭게 대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적 이유가 분명하고 종교적인 신념으로 ‘할랄’ 음식을 고집하는바, 한국 정부가 특정 종교 편향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더욱 용납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문화적인 다양성 포용 차원에서 중동지역이나 이슬람권을 방문하면서 ‘할랄’ 음식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할랄’이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문화를 존중하는 인격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이다.
할랄 시장, 무조건 블루오션이 아니다
2016년 2월 22일 방송된 CTS 특집 르포 ‘할랄푸드, 이슬람이 온다’에서 명지대학교 경영대학 국제통상학과 김태황 교수는 할랄식품은 생산성 측면에서 생산기술과 생산시설 설비구축을 통한 생산비 초과로 인해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는 할랄 제품과 비교해도 절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할랄 시장이 크다고 해서 한국경제 성장에 있어서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하고, 경제적 수익도 클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성급한 판단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0.4%에 불과한 무슬림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여 할랄식품 단지를 조성하고 인증기관 및 기준 등을 확립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2) 뿐만 아니라 가변적인 할랄 기준과 1년 혹은 2년마다 갱신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할랄 산업 육성을 위해 무역개발과 수출증진을 목적으로 중소기업들의 할랄인증에 정부의 예산을 투자하는 것은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그간 정부가 정책적으로 할랄 산업을 육성하지 않아도 이미 한국기업들은 다양한 품목을 이슬람 국가에 수출하면서 수출대상 국가의 기준에 부합한 할랄인증을 취득하여 수출무역을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러므로 각 기업이 한국식품의 수출이 요구될 때 해당 국가와 지역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자율정책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해당 국가의 급격한 할랄인증 기준의 변화로 인해 수출무역 손해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액이 해당 기업에 국한되고 한국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무역수익이 확실치 않고 도리어 불확실한 할랄 산업에 전 국민의 동의 없이 그리고 충분한 연구와 토론 없이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부의 월권적 정책이다.
대한민국 상품을 중동지역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나그네에게 큰 기쁨이다. 무엇보다 한국 여성으로서 “K뷰티” 산업의 발전과 중동지역 진출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슬람국가의 기준에 부합한 상품개발과 생산, 수출이 결코 한국인의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이슬람법 샤리아가 다스리는 국가에 수출해 국내 경제발전에 기여 하는 기업인들에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 대한민국이 샤리아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대한민국은 이슬람국가가 아니므로.
<marthaso@daum.net>
글 | 소윤정
한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국제대학원(AIGS)에서 목회학 석사 (M.Div, 영어과정)를 마치고 선교학 전공으로 Th.M, Ph.D. 학위를 받았다. 서울기독대학교 선교학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2005년부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한세대학교, 세계사이버대학교와 백석대학교에서 외래교수로 강의했으며 현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부교수이다. 9년간<복음과 선교> 편집장으로 섬겼으며, 현재 <ACTS 신학저널」>편집팀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꾸란과 성령 >, <무슬림의 아내들>, <기독교와 이슬람>, <21세기 이슬람 선교 : 무슬림 난민과 디아스포라> 등이 있으며 이외 “시리아 난민교회 개척을 위한 선교적 함의(含意): 터키, 레바논, 요르단을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