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관련 법률의 변화와 흐름
2021-05-13
월드뷰 MA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
글/ 전국입양가족연대
공개입양이라는 낯선 개념
2021년 대한민국 사회는 과학기술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고, 물질적 풍요와 구성원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 유교적 세계관이 더이상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 저변에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로 인해 ‘정의로움’의 기준을 신앙과 양심 또는 창조질서를 존중하는 자연법에 기초를 두지 않고, 특정 집단이 주장하는 사회공학적 이데올로기에 두는 시대가 되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무시하는 이들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은 온갖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워서 입을 막아버리는 모습은 위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례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는 전통적인 가정의 개념이 유교적 가부장제의 산물이자,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차별적인 제도라고 비판하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교적인 혈연중심주의에 근거를 둔 ‘원 가정(Family of origin)’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면서, 입양을 죄악시하는 것이 ‘아동의 이익 최우선’ 원칙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스스로 다양한 가족 형태의 한 종류인 입양가정을 부정하면서, 과연 다양한 가족 형태를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지켜보면 대한민국 사회는 오히려 더 왜곡되어가는 것 같다.
‘공개입양’이라는 개념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90년대 말이었다. 대부분의 입양 가족들은 이웃의 시선이 두려워서, 혹은 아이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공개적으로 ‘입양’은 언급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외로 입양되는 아동의 숫자가 여전히 많다는 반성으로 인해 국내입양의 필요성이 제기되게 되었고,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서 ‘입양’을 공개적인 영역으로 끌어냈다.
관용과 표용의 정신, 1976년 ‘입양특례법’
입양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입양가정에 다양한 지원을 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몇몇 단체의 여론몰이로 인해 ‘입양’ 자체를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다. 이런 시각은 입양을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입양을 ‘원 가정에서 아이와 엄마를 분리하는 잔인한 행위’라고 호도하는 극단적 이념주의자들이 제기했다. 이것은 제도와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의 흐름이 대한민국의 입양 관련 법률 (입양특례법)과 제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입양 관련 법률이 어떠한 의도와 철학을 바탕으로 변화됐는지를 살펴보면서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1976년 최초로 제정된 ‘입양특례법’은 국내외 입양의 법적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아동의 입양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국가의 입장이 긍정적인 관점이었다. 동시에 아동의 건강한 양육을 위해 입양가정과 입양 부모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법률에 녹아 있었다.
이후 개정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가정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가정에서 건강하게 양육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입양이라는 문화 자체를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즉 입양아동이 건강하게 양육되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가 입양가정과 입양 부모를 보호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까지의 입양 관련 법률은 비록 혈연중심의 가족 구성원이 아니지만, 법적인 보호와 사랑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맺어진 엄연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기존 질서와 제도를 존중하는 가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는데 그 역할이 있었다. 또한, 아동이 ‘원 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긴급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가정을 찾아주는 진정한 ‘아동 이익 최우선’ 원칙에 부합하는 법과 제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된 원인이 입양 부모에게 있는지 생부모에게 있는지 책임을 묻거나 처벌하지 않는 관용과 표용의 정신이 녹아들어 있었다.
입양 부모를 믿지 못하는 2011년 ‘입양특례법’
그런데 2011년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최영희 전(前) 의원이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안을 발의하며 개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최선의 아동 보호는 출신 가정과 출신 국가 내에서 양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패러다임으로 국가 입양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음. 이를 위해 이 법률의 제명을 ‘입양특례법’으로 변경하고, 국내외 입양 모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며, 친생부모에게 양육에 관한 충분한 상담 및 양육정보를 제공하는 등 부모의 직접 양육을 지원하고, 아동이 출생일부터 1주일이 지나고 나서 입양 동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한편, 양자가 된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입양정보 접근권을 부여하고, 국내입양의 우선 추진 의무화”를 명시하면서 입양절차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입양아동의 복리 증진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입양 부모를 잠재적 아동학대 가능성이 있는 자로 여기며, 아동을 국가가 보호하겠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개인은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국가 또는 공권력이 이를 감시·감독해야 한다는 위험한 철학을 대한민국 법 제도에 그대로 녹여 입양특례법을 전면 개정한 것이다. 이후 2015년, 2017년 2차례에 걸쳐서 일부 개정된 내용 역시 개인을 잠재적 위험군으로 여기면서 국가의 공권력이 이를 개선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입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
가정에서 분리된 위기 아동은 항상 존재해 왔고 이런 아동을 가정에서 양육하려는 수고가 존중되었다. 성경에서도 입양을 통한 가정의 탄생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 있고, 매우 긍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도 ‘입양의 진실’이라는 거창한 문구를 내걸고 ‘입양은 전통적인 성과 관련된 관습을 거스른 여성 즉, 성적인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혼을 벗어나 성관계를 가진 용서할 수 없는 행위를 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정치적인 공격이며 폭력이다. 기존 성과 관련된 관습(결혼 등)을 거스르는 여성의 행위는 사회의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매우 중대한 범죄로 취급된다. 따라서 입양은 교묘한 방식으로 또는 대담한 방식으로 여성에게서 아이를 빼앗은 후 여성을 잔인하게 버리는 행위이다. <입양에 의한 죽음, Joss Shawyer, Cicada Press, 1979>과 같이 입양을 ‘악’으로 규정하는 자들이 입양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우려 된다. 한편으로는 ‘가족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관용의 자세를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유교적 혈연주의의 편견을 갖고, 입양을 죄악시하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는 단순히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다른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입양에 우호적인 전통적 가치관과 입양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하는 진보적 가치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입양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법과 제도를 마련함에 있어서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인권’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 혹은 ‘소수자 보호’ 등과 같은 듣기 좋은 구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구호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거짓된 자들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인 태도로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간적인 의로움을 기초해서 만들어낸 법과 제도는 결국 악한 열매만 만들어 낼 뿐임을 절대로 간과해서도 안 된다.
인간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진화론적 사관으로 법과 제도를 구성해서는 안 된다. 법과 제도는 그 자체로 사회를 안정시키는 반석의 역할을 해야 하므로 ‘자연법’과 같은 절대 진리가 법과 제도의 기초가 될 때 안정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계속 진보한다는 역사관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기준으로 삼은 법과 제도 역시 발전과정에 있는 것이므로 결코 진리가 아니라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다수의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법과 제도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매우 불안정한 사회가 될 것이다. 따라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실정법 위에 반드시 ‘자연법’이 존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자연법을 만드신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법과 제도를 다루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이 스스로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오만함에 취해서 무분별하게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순간, 그 법이 우리를 죽이는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으로 법을 다루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입양과 관련된 법을 다룸에 있어서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입양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성경은 입양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구도(求道)의 자세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입양을 지나치게 우상화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대입해 입양을 적대시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이 들려주시는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법과 제도를 다룰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다.
*전국입양가족연대에 관한 문의: 김지영 국장 (010-2473-7441)
<gugull@naver,com>
글 | 전국입양가족연대
전국입양가족연대는 전국에 있는 육백여 명의 입양 가족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전국입양가족연대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입양인식 개선과 올바른 입양법 제·개정을 위해, 가정 보호 중심의 아동 정책 실현을 위해, 보호 아동의 가정 보호 최우선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전국입양가족연대의 목적은 모든 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권리를 찾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