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출산
2021-02-15
월드뷰 FEBRUAR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1 |
글/ 이상원(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그 법의 인간학적이고 규범적인 토대의 건강성, 국민의 인식, 사회에 가져올 파장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 후에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래에 우리나라의 법 제정기관들로부터는 이런 신중한 태도를 발견하기 어렵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재발을 막는다는 것을 빌미로, 그리고 특정한 계층의 압력과 요구가 있으면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사전논의 과정을 건너뛴 채 졸속으로 법안을 급조하여 발의한다. 한마디로 현금의 한국 사회는 환원적 입법 만능주의의 블랙홀에 빠져 있다. 종교, 도덕, 학문, 예술의 영역까지도 법안에 구겨 넣고 법으로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환원적 입법 만능주의는 한국 사회를 황폐화하고 있다.
S 양이 비혼 출산을 결심하기까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남자친구와의 연애 실패로 인한 마음의 상처,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지만,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 뜻대로 잘되지 않는 데 따르는 안타까움 등의 문제는 청년 남녀들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생명윤리와 성 윤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S 양이 선택한 비배우자 간 시험관 수정에는 윤리적인 함정들이 숨어 있다. 시험관 수정에는 생명윤리와 관련된 문제가, 비배우자 간 수정에는 성 윤리 문제가 뒤따른다.
시험관 수정에 뒤따르는 생명 윤리상의 문제점들
인공수정 방식에는 남자의 정자를 자궁 속 난자가 있는 곳에 집어넣어 수정을 유도하는 체내수정 방식과 정자와 난자를 채취하여 페트리 접시 안에서 인위적으로 수정을 시킨 다음 자궁에 착상시키는 체외수정(시험관 수정, IVF)-배아 이식(ET) 방식이 있다. S 양이 사용한 기술은 후자다. 체내수정은 인위적으로 배아를 파괴하는 일이 없고, 특히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신비로운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체외수정-배아 이식(IVF-ET) 방식은 시술 과정 전체가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점들을 드러낸다.
첫째로, 우선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에서부터 윤리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난자의 채취 과정에 사용되는 기술은 생체의 자연적인 운동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생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무리하게 변형시킴으로써 생체에 무리를 가져온다. 이 기술은 난자와 난자를 지지하고 있는 세포 간의 중요한 화학적 상호작용을 방해할 수 있다. 정자와 난자를 인위적으로 다루는 과정은 정자와 난자 그 자체, 그리고 수정된 배아와 출산한 아이에게도 상해를 입힐 수 있으며, 정자와 난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성별이 인위적으로 조작될 가능성도 있다.
둘째로, 정자와 난자를 추출하여 페트리 접시 안에 넣고 수정을 시도하는 순간부터 시험관 수정이 안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의 핵심이 드러난다. 자연적인 성교 시 사정된 정자는 자궁을 통과할 때 질에서 분비되는 액체에 의해 일정한 수가 죽게 되고, 또 난자에 도달하기까지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장 건강한 정자가 난자에 도달함으로써 이상이 있는 정자가 걸러지는 “여과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시험관 수정 시에는 이 과정을 시행할 수 없으므로 이상이 있는 정자가 난자와 결합할 개연성이 있다. 이와 같은 위험은 차치하더라도 시험관 수정은 그 실패율이 80% 내외에 달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수정이 이루어진 후 착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실패한다는 말은 곧 한 개의 배아의 착상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여러 개의 배아를 죽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시험관 수정은 여분의 배아를 만들어 냉동시켰다가 착상에 실패하는 경우에 사용하기 마련인데, 남은 잉여 배아가 배아복제와 배아 실험의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배아 살해로 귀결된다.
네 번째, 시험관에서 수정되어 만들어진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기까지 배아가 시험관에 노출되는 시기를 이용해 산전 진단이 시행된다. 산전 진단을 통해 결함이 발견되는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배아를 착상시키지 않고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다섯 번째, 시험관 배아의 착상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3개 이상의 배아를 만들어 동시에 자궁에 착상시킨다. 이 과정에서 선별 낙태가 뒤따른다.
여섯 번째, 시험관 시술을 할 때 배아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는 시술임에도 불구하고 배아 자신으로부터 고지된 동의를 얻어낼 방법이 없다. 자율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대의료에서 고지된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시술은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렵다. 시험관 수정은 인격체로서의 배아의 자율적 결정권을 침해하고 배아를 불임부부의 대상적 소유물로 전락시키는 비윤리적 행위가 된다.
일곱 번째, 시험관 수정에서는 인간의 개입이 불가능했던 생식 과정이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으로 대체되고, 자녀 출산은 부부간의 성교행위로부터 단절된다. “하나님에 의하여 주도된 인간의 출산”이 “과학 기술적 출산”으로 변모되어 비인간화가 초래되는 것이다.
비배우자 간 수정에 뒤따르는 성 윤리상의 문제점들
S 양은 비혼 수정 곧, 비배우자 간 수정 방식을 이용했다. 비배우자 간 수정은 배우자가 아닌 제3자의 정자나 난자를 이용하여 출산을 시도하는 방식으로서 이 방식에는 성 윤리적인 관계상의 문제들이 뒤따른다.
첫째로,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아내가 임신하는 경우 아내는 본의 아니게 제3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결과가 나타나며, 난자를 제공받아 남편의 정자와 수정시켜 임신하는 경우에는 남편이 본의 아니게 제3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결과가 나타난다. 또한, 미혼 여성이 정자은행에서 익명의 남자로부터 정자를 받아서 임신하는 경우에는 혼외정사를 한 것과 같은 결과를 맞이한다. 이 미혼 여성은 어떤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나 생물학적인 성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자녀를 출산하게 되므로 자신과 자녀 사이의 부모 관계가 해소될 수 없는 결함을 안게 된다. 자녀가 태어나면 자녀는 아빠와 엄마의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라는 풍부한 인격적 환경 안에서 호흡하며 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부모와 증조부모 등으로 길게 연결되는 풍부한 가족의 족보에까지 연결되는 출생의 기원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익명의 남자 정자로 태어난 자녀는 이 풍요로운 출생의 터전의 절반 이상을 잃게 된다.
둘째로, 부부가 정자를 제공받는 경우에 정자 제공자가 아이의 아버지인가, 아니면 법적인 양육자가 아이의 아버지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난자를 제공받는 경우에는 역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며, 정자와 난자를 모두 제공받는 경우에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한 사람의 정자나 난자를 여러 사람에게 제공하여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에는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이스라엘에서 어떤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다가 같은 사람의 정자를 받아 태어났음이 확인되어 결혼식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셋째로, 비배우자 간 수정이 한 번 허용되면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왜곡된 출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 낙태된 태아에게서 난소를 채취하여 나이 든 여성에게 이식한다든지, 난자를 이용하여 아이의 출산을 시도한다든지, 죽은 남자의 정자를 채취하여 살아있는 여성의 난자와 수정시켜 아이를 출산하게 한다든지, 난자와 난자를 결합해 레즈비언들에게 자신들의 아이를 갖게 하는 일 등이 가능하다.
넷째로, 비배우자 간 수정은 정자와 난자를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돈으로 환산되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에 심각한 손상을 가한다. 정자와 난자의 매매는 정자은행이나 난자은행에 냉동된 정자나 난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정자와 난자 제공자는 돈이 없는 가난한 학생들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자나 난자 매매는 가난한 계층의 착취라는 또 하나의 사회문제를 초래하게 되며, 이들은 또한 정자와 난자를 익명으로 판매함으로써 자신의 생물학적 자손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며, 태어나는 아이가 자신의 출생에 관하여 알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아이의 유기적인 인간관계의 단절을 초래한다.
또한, 정자와 난자를 판매하는 과정에는 자연스럽게 우생학이 개입된다. 구매자는 냉동된 정자나 난자에 관한 정보 중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최적의 대상을 찾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비배우자 간 수정은 동물에게 적용되었던 동물 사육 기술을 인간에게 응용한 것이다.
여섯째로, 자녀 출산이 불가능한 부부, 독신 남성이나 여성, 동성 부부는 대리모 방식을 이용하여 자녀 갖기를 시도할 수 있다. 대리모의 역할을 하는 여성에게는 고가의 대가가 지불되는 것이 통상적이므로 대리모 제도는 사실상 “어린이 매매”행위다. 어린이 매매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엄하고 고귀한 인격체로서 판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사실과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칸트의 격률 등에 의하여 비판된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기독 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