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의 토지공유제에 대한 이해 (1)
2021-02-10
월드뷰 FEBRUAR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
글/ 곽태원(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 글은 다음의 순서로 3회에 걸쳐 연재된다.
1. 토지제도와 자유 그리고 토지공유제의 비효율성
2. 토지 공유제와 공평
3. 헨리 조지의 토지 공유제는 성경적인가?
여러 경제 문제 중 토지문제의 우선순위는 그렇게 높지 않다. 그러나 매우 근본적인 문제인 데다가 신실한 기독교인 중에도 토지문제에 대한 오해가 많아 1879년에 미국에서 헨리 조지가 저술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에서 주장한 소위 “토지 공유제”를 다루고자 한다.
토지제도와 자유
토지는 자연이 인류에게 준 공동의 선물이기 때문에 사유화하는 것이 불의하다는 것이 헨리 조지의 주장이다. 사유화가 안 된다면 공유화해야 한다는 것인데 토지의 사유 또는 공유가 옳다는 양쪽의 주장에 모두 자유의 문제가 깊이 얽혀있다.
사유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론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유재산권의 인정과 이에 근거를 둔 거래의 자유가 시장경제체제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재산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의 하나인 토지도 사유화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토지의 재산권도 소유자에 의해서 자유롭게 행사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당연히 토지는 사유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만 토지의 효율적 사용이 보장되며 토지뿐 아니라 다른 다양한 자원들도 자유롭게 거래되는 가운데서 최적의 배분이 이루어지고 따라서 효율이 극대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헨리 조지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그는 토지의 사유화는 결국 모든 토지가 소수에 의해서 독점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그것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며, 특히 토지가 없는 대다수는 결국 토지를 독점한 소수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토지의 공유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토지가 공유된 상황을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토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참된 공유화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도 자유의 개념이 등장한다.
헨리 조지의 주장은 아주 그럴듯하다. 모든 사람이 인류에게 주어진 공동의 선물인 토지의 공동소유자라면 공동소유자로서 마땅히 자신의 선물에 접근하고 그것을 누릴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헨리 조지의 이런 주장은 근본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어떤 것을 아무 때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려면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조건이 반드시 성립되어야 한다. 첫째는 대상물의 공급이 무한히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오염이 없던 시대의 공기가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게 한다. 신선한 공기가 지구를 두껍게 덮고 있다면 누구든지 자기의 폐활량만큼 아무 때라도 그 신선한 공기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소위 자유재(free good)라고 말하는데, 진정한 자유재는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해도 시장가치는 영(zero)이 되어 경제적 재화가 될 수 없다.
그런데 토지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아무나 자유롭게 텐트 칠 수 있는 땅이 있다고 해도 토지가 자유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공유 여부의 논쟁이 되는 토지는 불모지가 아니라 경제적 가치가 있는 토지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가 있다면 벌써 자유재의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며, 그렇다면 그것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좋은 땅이 있고 그것을 누구든지 대가 없이 차지할 권한이 있다면 바로 그 땅을 놓고 충돌과 다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이용은 불가능해진다.
둘째 조건은 토지가 공공재(public good)의 성격을 갖는 경우이다. 공공재란 재화의 특성상 그 재화의 소비가 비경합적(non-rival)인 경우이다. 보통의 재화를 소비할 때는 모두 경합성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우유 한 컵이 있을 때 그것을 누가 마시면 다른 사람은 마실 수 없다. 의자에 한 사람이 앉으면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없다. 토지도 마찬가지이다. 양지바르고 기름진 땅이 100평이 있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차지하면 다른 사람이 차지하지 못한다. 공공재라서 소비가 비경합적인 경우는 햇볕 같은 것인데 일정한 지역에서 어떤 시간대에 내려지는 따뜻한 햇볕을 한 사람이 많이 누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햇볕의 양이 줄지 않는다면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기름진 땅이 한 필지 있는데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만일 토지가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면 내가 바로 그 필지에 가서 그 땅에 고구마 농사를 지어도 앞사람의 고추 농사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불가능하다.
요컨대 헨리 조지의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토지이용이라는 관점에서의 공유화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토지와 관련해서 그와 같은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지의 공유화를 주장하면서 실제로 그가 제시한 대안은 토지의 국유화였다. 헨리 조지도 공유제를 말하면서 사실은 국유화를 전제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토지 공유제와 효율
토지의 사유제를 공유(사실상 국유)제로 전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공평의 문제를 다루는 다음에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몇 가지 방법만 간단하게 소개한다. 첫째, 제일 온건한 방법은 토지를 정부가 합당한 가격으로 매수(강제 또는 자발적)하는 것이다. 둘째, 이보다 좀 더 과격한 방법은 모든 사유토지를 국가가 무상으로 몰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헨리 조지가 제안하는 방법은 토지의 명목적인 소유는 변함없이 유지하면서 토지의 수익권을 국가가 몰수하는 제3의 방법이다. 모든 토지의 임대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을 토지보유세로 징수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토지의 무상몰수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토지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수익권을 세법을 통해서 국가가 토지의 소유자들로부터 강제로 빼앗는 것이다. 아무리 확실한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있더라도 수익권이 완전하게 국가로 귀속되면 그 토지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고 만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토지의 사실상 국유화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하고 토지의 이용과 관련한 효율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사회(공산)주의 국가들의 협동농장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공산혁명에 의해서 도입된 대표적인 제도가 토지의 국유화 또는 국가통제강화였다. 그런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생산성의 현저한 저하였다. 북한 농촌이 황폐해져 주민들 굶주리게 된 원인은 토지의 국유화와 협동농장 제도의 도입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소출을 사유화해 준 ‘개인 텃밭’과 그 소출의 상업적 유통을 허용한 ‘농민 시장’의 성공은 협동농장 제도의 실패를 분명하게 증명해준다. 지주 토지를 빼앗아 협동농장을 만들어 주자, 처음에는 환호했지만, 토지 소산의 수탈과 수고를 보상해 주지 않는 보상시스템 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농민들의 행태가 생산성의 저하로 나타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사한 경험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한 나라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제 모든 토지가 명실상부하게 국유화되어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정부가 할 일은 국가의 모든 땅을 필지별로 어떤 용도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리고 누가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서 그대로 시행되도록 강제(enforce)하는 것이다. 개략적으로만 봐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로 극도로 세밀하고 효율적인 전 국토의 이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전 국토가 완전히 공지라면 좀 쉬울 수 있겠으나 기왕에 다양한 건물이나 구축물이 들어차 있고, 지형과 토질이 다르며 지하의 매장자원도 다양한 토지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계획(사용 용도와 이용 기간을 포함)을 세운다는 것은 엄청난 정보를 요구한다. 토지 사유제하에서의 시장은 이 문제를 완전하지는 않지만, 훨씬 더 쉽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준다. 토지의 이용계획이 완성되면 누가 그 이용계획의 시행자가 되는가를 정하고 정해진 시행자가 차질 없이 그 계획을 시행하게 하는 방법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시행의 결과로 나온 산출물(생산된 물건이나 생산된 서비스 등)의 분배도 커다란 숙제로 남는다. 자유 경쟁 시장을 외면한 계획경제의 전형적인 문제가 바로 이런 것이다. 토지 또는 부동산 시장은 이런 문제들을 매우 효율적으로 해결해 준다. 만일 시장에 의한 해결이 분배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주장을 하려면, 국유화에 의한 배분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국유화된 토지의 배분에 시장원리를 도입할 방법의 하나는 모든 토지의 이용에 관한 결정을 공개경쟁입찰에 부치는 것이다. 앞의 방법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지만 엄청난 행정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공개입찰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실제로 헨리 조지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더 시장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매입이나 몰수 방식 대신, 토지 보유세율을 충분히 높여서 임대료의 거의 전부를 정부가 가져가는 방법 즉 토지를 국유화하는 대신 토지의 수익권을 국유화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이 방법은 토지 기존의 소유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고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는, 사실상 매우 과격한 국유화 방법이다. 헨리 조지나 그의 제자들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어서 이 경우에 시장의 역할에 기대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토지의 임대료의 일부를 토지 소유자에게 남겨두어 여전히 토지가 매매 또는 임대차시장에서 거래되도록 남겨두면 국유화에 따른 토지자원 배분의 골치 아픈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방안이다. 그러나 토지의 순수한 이론적 임대료, 즉 개량이나 건축, 도시계획 등에 의한 입지효과 등을 배제한 임대료를 실제 정책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토지 국유화의 중요한 이유로 주장했던 토지투기나 토지의 독점이 토지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맞는다면, 새로운 시스템하에서도 투기나 독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twkwack@sogang.ac.kr>
글 | 곽태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을 거쳐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에서 2년, 그리고 서강대학교에서 20년간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한국조세연구원 이사,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친 조세 관련 전문가로 부동산 등에 대한 자본소득 과세 연구에 몰두했으며, 2006년에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