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달러 지폐에는 왜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을까?
2020-08-17
월드뷰 AUGUST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4 |
글/ 조평세(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지난 <월드뷰> 1월호 지면에 “미국의 상징 독수리 국장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미국의 독수리 국장이 성경의 출애굽 사건을 상징한다는 내용이었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을 발표한 직후 프랭클린(Franklin), 아담스(Adams), 제퍼슨(Jefferson)으로 꾸려진 ‘3인 국장위원회’는,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탈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는 모습을 미국 국장의 문양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세 차례의 ‘국장위원회’를 거쳐 6년 후인 1782년, 성경에 능통했던 찰스 톰슨(Charles Thompson) 대륙회의 서기는 성경에서 출애굽을 상징하는 독수리(출 19:4, 신 32:11)를 최종안으로 제출하고 채택했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다.
그런데 해당 칼럼에서 다루지 못했던 또 다른 중요한 미스터리가 있다. 바로 국장 뒷면에 그려진 피라미드와 전시안(all-seeing eye)이다. 미국은 왜 ‘탈애굽’의 상징인 홍해 도하 장면을 국장 앞면에 두면서, 그 뒷면에는 애굽의 대표적인 상징인 피라미드와 심지어 ‘호루스의 눈’을 연상시키는 전시안을 그려 넣었을까? 미국 1달러 지폐 뒷면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나란히 그려져 있기도 한 이 미국 국장의 양면은 사실 상당히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극심한 노역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홍해를 건넌 히브리인들에게 그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린 피라미드는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았을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피라미드 하단에 적힌 라틴어 문구 “Novus Ordo Seclorum”은 프리메이슨(Freemason)이나 일루미나티(Illuminati) 등의 “신세계 질서”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숱한 음모론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때문에 미국을 건국한 것은 프리메이슨이 아니냐는 음모론적 시각마저 만연하다. 이러한 시각은 특히 한국 크리스천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데, 정작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 여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 국장 뒷면에 그려진 그림의 진짜 의미를 따져보고 몇 가지 흔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미완의 피라미드와 삼각 ‘섭리안’
먼저 1782년 당시 기록에 따르면 미 대륙회의가 채택한 국장 뒷면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미완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 꼭대기에는 영광(빛)에 둘러싸인 삼각형 안의 눈이 있다.” 찰스 톰슨(Charles Thomson)은 이 최종안을 제출하면서 또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라미드는 힘과 지속성을 상징한다. 그 위의 눈과 모토는 우리 미국(건국)의 명분에 많은 은혜를 주신 섭리의 간섭들을 암시한다. 피라미드 하단의 년도는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해이고 그 밑의 문구는 그해 시작된 새로운 미국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첫째로 주목할 것은 미국 국장에 그려진 피라미드가 그냥 피라미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국장에 그려진 피라미드는 분명 그 꼭대기가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피라미드다. 이것은 미국의 독립과 건국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의 독립은 영국 왕 조지 3세와 미합중국이 파리조약을 체결한 1783년, 즉 국장 채택 1년 후에 이루어졌고, 미국 건국은 미 헌법의 효력이 발생된 1789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미완의 피라미드에는 당시 13개 미국 주를 상징하는 13개의 계단이 그려졌는데, 건국 이후 1791년 버몬트를 시작으로 1812년 루이지애나 매입 그리고 서부개척시대와 1959년 알라스카와 하와이의 편입으로 현재의 50개 주까지 확대되었으니 미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의 유대-기독교적 가치관과 정치철학을 고려한다면, 완성되지 않은 채로 그려진 피라미드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바로 인간이 지은 정부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보수주의적 철학이다. 그 위에 떠있는 “삼각형 안의 눈”의 의미를 알면 이러한 의미가 더 뚜렷하다. 흔히 ‘전시안’이라고 알려진 눈모양은 사실 ‘섭리안(Eye of Providence)’이다. 당시 기독교 도상학 혹은 문장학(heraldry)에서 섭리안은 다름 아닌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 혹은 신의 은총을 뜻했다(시 33:18, 34:15, 잠 5:21, 잠 15:3 등 참조). 또한 이 눈을 담고 있는 삼각형은 이 ‘신’이 헬라철학의 어떤 ‘알지 못하는 신’이거나 막연한 자연신이 아닌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럽의 르네상스 시절부터 통용된 기호였다.
피라미드와 섭리안 위에 쓰여 있는 “Annuit Coeptis”가 바로 이 뜻을 설명하고 있다. 라틴어의 “Annuit”은 “인정한다” 혹은 “승인한다”라는 뜻의 3인칭 단수형이고, “Coeptis”는 “과업” 혹은 “행사”라는 뜻의 1인칭 복수형이다. 따라서 “Annuit Coeptis”는 직역하면 “그가 우리의 행사를 인정하신다”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그”는 부정할 여지없이 하나님이다. 실제로 이 문구에 대한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의 공식 번역이 “He(God) has approved our undertakings”라고 되어 있어, 괄호를 통해 “그”가 곧 “하나님”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또한 찰스 톰슨은 이 피라미드와 섭리안의 문양을 3차 국장위원회의 문장학 자문인이었던 윌리엄 바톤(William Barton)의 제안에서 가져온 것인데, 바톤의 원래 도안에는 아예 ‘신의 은총’을 뜻하는 “Deo Favente”라고 적혀있기도 했다.
결국 미국의 국장에는 인간의 정부가 죄의 한계 때문에 결코 완벽할 수 없지만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아래 온전할 수 있다는 깊은 기독교적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프리메이슨 음모론과 미국의 건국
문제는 피라미드 하단에 적힌 “Novus Ordo Seclorum”이라는 라틴어 문구다. 흔히 “신세계 질서”라고 오역되어, “하나의 세계정부”를 만들려는 프리메이슨의 전체주의적 음모가 암시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 문구의 정확한 번역은 신세계 질서가 아니라 “시대의 새로운 질서(new order of the ages)”이다. 찰스 톰슨이 1782년 당시 대륙회의에서 설명했듯이,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으로 영국과 유럽의 전제 정체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미국의 공화정 시대가 시작한다는 뜻이지, 어떤 하나의 세계정부나 질서를 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피라미드 하단에 적힌 MDCCLXXVI가 바로 그 1776년을 의미한다.
또 한편으론 피라미드와 전시안은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라는 이유 때문에 미국을 건국한 것은 프리메이슨이라는 음모론자들의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관계의 왜곡이다. 왜냐하면 프리메이슨이 피라미드와 전시안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국장이 채택되고 최소 14년이 지난 1797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메이슨의 피라미드는 ‘완성된’ 피라미드이고 전시안에는 삼각형이 없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이나 국장을 채택한 1782년 그리고 헌법을 비준한 1789년 당시 피라미드와 전시안은 프리메이슨과 전혀 무관한 상징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세 차례의 국장위원회에서 국장 도안을 제안한 여러 인물 중 프리메이슨은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한 사람뿐이었고, 피라미드와 전시안 등을 제안한 윌리엄 바톤이나 프랜시스 홉킨슨(Francis Hopkinson) 그리고 국장의 최종안을 기안한 찰스 톰슨 등은 프리메이슨이 아니었다.
음모론자들은 또 1776이 미국의 독립선언 연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해 5월 1일 창설된 일루미나티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일루미나티는 당시 유럽 바바리아 지역에서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라는 인물이 만든 비밀조직이다. 하지만 바이스하우프트나 그가 만든 일루미나티의 사상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독립 및 건국정신과 완전 배치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하나님을 부정하며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는 인본주의자들이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인간의 이성과 교육을 통해 인간 본성을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게 해 완벽한 인간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간을 정부와 종교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혁명 당시 광범위한 기독교청산(de-Christianization)이 일어났을 때 일루미나티가 사상적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 완벽할 수 있음을 믿었고 이를 추구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원래 그의 조직의 이름을 일루미나티(“광명”)가 아닌 Covenant of Perfectibility(완전성의 언약)라고 정하기도 했다. 이는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불완전성(imperfectibility)을 전제로 한 미국의 건국정신과 전면 배치되며, 미완의 피라미드나 섭리안과도 전혀 맞지 않는 조합인 것이다.
또한 1776년 5월 1일 바이스하우프트가 프리메이슨으로부터 독립된 비밀조직을 창설했을 때 회원은 자신의 학생들 4명에 불과했고 1782년 미국의 국장이 최종 채택되었을 때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국한된 3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미약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아마 그 존재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바이스하우프트의 일루미나티는 불과 9년 동안 회원모집에만 힘쓰다가, 1785년 찰스 테오도르(Charles Theodore) 바바리아 공작(Duke)에 의해 내부 문건들이 대외에 공개된다. (비밀조직에게 내부 규율과 조직구성의 공개는 곧 해산을 뜻한다.)
프리메이슨과 같은 사교비밀조직의 자본력과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은 끊임없이 견제되고 경계해야 한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포함한 14명(약 3분의 1)의 미 대통령이 프리메이슨이었을 정도로 그들의 네트워크는 막대하다. 게다가 프리메이슨의 비밀주의와 엘리트 의식 그리고 그들의 이신론적 인본주의는 유대-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건국된 미국 공화국의 정신에 위배된다. 그래서 19세기 초에는 미 의회 최초의 제3당이라고 할 수 있는 반(反)메이슨당(Anti-Mason Party)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2대 대통령 존 아담스(John Adams)의 아들이자 6대 대통령을 역임한 존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s)가 반-메이슨당 출신이다.
하지만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분별없이 받아들여 역사적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해 공화국을 건국한 미국 국부들을 부정하거나 그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상당 부분 비밀주의에 그 브랜드 가치를 기초하고 있는 프리메이슨에게 있어, 오히려 그런 역사 수정주의적인 접근은 그들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고 그들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pyungse.cho@gmail.com>
참고자료
David Barton(2005), The Question of Freemasonry and the Founding Fathers, Wallbuilder Press.
Gaillard Hunt(1909), The History of the Seal of the United States, US Department of State.
글 | 조평세
영국 킹스컬리지런던(KCL)에서 종교학과 전쟁학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트루스포럼 연구위원으로 미국에 거주하며 보수주의 블로그 <사미즈닷코리아>(SamizdatKorea.org)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