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보수주의 영화,

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보수주의 영화, <인터스텔라>

2020-06-23 0 By worldview

월드뷰 06 JUNE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글/ 김수인(서울대 대학원, 고교 영어교사)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이 동생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과 함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인터스텔라>(2014)는 천재 물리학자 킵 손(Kip S. Thorne)에게 자문하며 4년간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여 만든 작품이다. 교과서만큼이나 과학적인 근거에 충실한 영화로 현대 물리학의 꽃이라고 하는 상대성 이론을 대중적으로 잘 풀어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은 복잡한 현대 물리학 이론과 우주적인 배경을 스크린 속에 담은 영화의 철학적인 주제들 때문이다. 영화는 기독교의 핵심인 삼위일체와 구원의 복음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스크린의 철학자’라고 하는 별명을 가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배트맨 <다크나이트>(2007)에서 배트맨의 희생을 통해 지켜지는 진정한 정의의 의미를, 그리고 <덩게르크>(2016)에서는 전쟁에서 마주하는 ‘보이는 적’과 내면의 ‘보이지 않는 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이 철학적 질문 속에 관객들로부터 끌어내는 영화적 답변은 가족, 애국심, 희생정신, 절대적 진리 등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보수주의적 가치임을 눈치챌 수 있다. 낡고 고리타분한 옷을 입은 보수주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손에서 세련된 리얼리티로 아름답게 윤색되어 신선하고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인터스텔라 속, 전해지는 대사와 메타포는 놀란 감독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정치관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SF이지만 오늘날의 사회, 더 좁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보주의의 물결 속에 시름하는 보수주의적 가치를 명확하게 투영하고 있다.


문명의 위기와 무기력한 정부


영화 속에서 언제나 풍요로움을 준 지구는 급속한 기후변화와 병충해로 황폐해지고, 인류는 전 세계적인 식량난을 겪는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현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인류는 이제 더 이상 미래의 꿈을 꾸지 않는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지구에서 어떻게든 먹고 사는 현실 문제에 몰두한다.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과 문명이 생존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절망에 직면한다. 지구적 재앙과 맞서 싸우기에 급급한 정부는 대학의 정원도 줄이고, 미래를 위한 연구와 투자를 줄인다.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하기에 대학 교육과 연구는 이미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쿠퍼는 한때 미지의 우주를 바라보고 무궁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제 땅만 보고 한숨짓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신념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쿠퍼. 그의 딸 머피는 그런 아버지를 쏙 빼닮은 톰보이다. 머피는 아이들에게 NASA의 달 탐사는 진짜였다고 주장하다가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미국이 이루어낸 영광스런 인류사적 업적이 단순히 체제 선전용 거짓으로 치부되는 오늘날의 학교는 먼지바람보다 막막한 곳이 되어버렸다.

지구적 재난 앞에서 정부는 너무나 정치적으로 변한다. 정부라는 조직은 온전한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항상 가짜 평화를 위해 선의의 거짓(Noble Lie)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기대와 이상과 달리, 현실의 정부는 진리, 윤리, 정신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충실한 정부와 같은 무미건조한 조직이 인류에게 내일을 위한 꿈을 심어주기는 어렵다. 철저히 현실적 필요에 따라서 그들의 프로파간다는 매번 달라질 수 있다.

브랜드 박사로 대표되는 정부는 사람들에게 인류를 새로운 행성에 정착시킨다는 플랜 A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서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데리고 새로운 인류의 배아를 정착시킬 플랜 B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정부는 어둠의 시대에 결코 최종의 소망이 되어주지 못한다.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주는 정부는 무기력하며, 그들의 대안이 대의로 포장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불가피하게 대중들을 기만하게 된다. 합리성을 따르는 듯해도, 사실은 합리화된 선의의 거짓말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군집이 만들어 낸 소위 정부라는 얼굴 없는 이름의 한계임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딸 그리고 유령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모티프는 아버지 쿠퍼와 딸 머피의 애틋한 사랑이다. 쿠퍼에게 머피는 자신의 분신이다.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우주 탐사를 감행하게 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 흐르는 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딸의 기다림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왠지 낯설지 않다. 쿠퍼는 하나님 아버지를, 딸은 이 땅에 남겨진 예수님 내지는 우리들을, 그리고 쿠퍼와 머피가 불현듯 조우하는 ‘유령’이라는 존재는 성령님을 연상시킨다. 쿠퍼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미래 세대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머피와의 헤어짐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유령이라고 불리는 ‘그들(they)’이라는 존재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인도를 받아간다. 영화 속에 계속 ‘그들’로 지칭되는 존재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웜홀을 만든 존재로 묘사되고, 우리(쿠퍼와 머피)를 선택했으며, 주인공들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 전지적인 능력으로 탐사대를 도와준다. 그리고 그들을 미지의 블랙홀 속에서 조우하게도 한다.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인 곳에서 1차 행성 탐사를 마치고 쿠퍼는 지금까지 송신된 머피의 메시지를 듣는다. 극중 머피의 나이는 10살로 나오는데 쿠퍼가 성인 머피의 메시지를 우주에서 청취하게 되는 시간은 23년 4개월 8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다. 10년과 23년 4개월 8일이라는 시간을 더하면 33년 4개월 8일이라는 시간이 된다. 쿠퍼와 성인이 된 머피가 영상을 통해서 만나는 시점은, (우연인지 몰라도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생애를 크리스마스에서 부터 AD 33년의 유월절인 4월 3일로 가정했을 때, 예수님이 지상에서 보낸 33년 4개월 8일이라는 시간) 예수님이 이 땅에 머물렀던 시간에 상당히 근접하다.

미국 정부는 플랜 A와 플랜 B를 상정했다고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총책임지고 있는 브랜든 박사는 애초부터 플랜 A는 없었음을 시인하며 숨을 거두고 만다. 이에 머피는 혹여나 아버지가 플랜 B였음을 알고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과 싸운다. 버림받았음을 의심하는 머피의 눈물은 마치 십자가를 지셨던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성인 머피는 유령이 남겨준 힌트를 따라서 계속해서 인류의 새로운 거처를 준비하는 미션들을 이어나간다. 쿠퍼는 결국 행성이 인류에 적합한 행성이 아님을 알고 웜홀을 관통하여 또 다른 후보 행성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웜홀 속에서 과거의 머피에게 신호를 보내고 ‘그들’을 통해서 구조된다.

그들은 웜홀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머피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게 된다.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잇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 땅을 구원할 열쇠가 되게 하신 것처럼 결국 인류를 구원할 열쇠가 쿠퍼(하나님)가 아닌 머피(예수님)였음을 쿠퍼는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을 웜홀로 이끌었던 것은 외계의 어떤 존재가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건 바로 우리였어!”라는 쿠퍼의 대사는 결국 쿠퍼, 머피, 그들이 하나였음을 밝힌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를 이끌듯이, 이 영화 속에서도 쿠퍼와 머피는 ‘그들’을 매개로 시공간을 초월한 영향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긴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편재하시는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소통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끌어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또 우리를 그 보좌 앞으로 이끌어 주듯이 말이다.

그리고 영화 속 반복되는 중력은 사랑의 또 다른 말이다. “중력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중력은 시간은 물론 차원을 넘을 수 있다.”라는 영화 중반에 쿠퍼의 대사는 마치 과학의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는 듯하다. 쿠퍼는 웜홀에서 창조된 3차원의 공간을 통해 어린 시절의 머피와 접속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책장 속 공간에서 머피를 지켜보며 새로운 행성으로 갈 수 있는 채널에 대한 모든 데이터들을 머피에게 전송한다.


멈추어진 시계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두 개념의 시간이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앞으로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음을 믿는 복음적 세계관에서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시간(크로노스)과 신적 시간(카이로스)이 복선으로 흐른다.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두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과 하나님은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평행을 유지하기도 하고 또 멈추어 있기도 한다. <인터스텔라> 속 두 주인공들의 시간은 이런 복선 구조를 이룬다. 이천년 전의 십자가의 사건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뚫고 우리의 크로노스의 시간에 역사할 때 우리에게도 생생한 현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직선 위를 오가는 1차원의 공간, 평면 위를 오가는 2차원의 공간 그리고 시공간 위의 3차원의 공간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오가는 4차원의 공간, 시간의 속도가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오가는 상대성 이론이 밝혀낸 5차원적 공간이동으로 안내하며 우리에게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 되묻는다.

지구 자전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 수만 광년 떨어진 곳에 마치 시간이 공간 속에 박제되어버린 것 같은 영원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시간을 견디어 내는 불변의 가치가 무엇인지 반문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벧후 3:8)” 시공간의 존재를 바라보게 한다. 영화 속 우주는 단순히 어둠으로 가득 찬, 미지의 지구 밖 공간이라기보다는 덧없는 시간이 흐르는 이 땅에 대비되어 영원의 시간이 흐르는 상징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쿠퍼는 머피에게 시계를 매개로 지금껏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던, 블랙홀에 감추어진 깊고 은밀한 진리를 전송한다. 시계는 흔히 시간을 상징하는 물건이지만, 시간을 통해 진리가 전송된다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쿠퍼가 남겨준 시계는 멈추어져 있다. 이것은 흐르는 시간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진리는 우리에게 현재에도 전송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관객은 머피처럼 멈추어 섬을 통해 영원한 시간에서 들려오는 ‘S.T.A.Y.’라는 외침을 듣게 된다. 기독교 보수주의는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진리가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음을 믿는다. “머물러라”는 말은 흐르는 시간에 떠내려가지 말고, 영원한 시간 속에 머물러 있으라는 은유처럼 들린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사랑


머피를 사랑하는 쿠퍼와 에드먼드를 사랑하는 아멜리아 박사의 서로 다른 사랑이 갈등한다.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 가운데 있지만 그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간직한 그 사랑이야 말로 그들의 위험한 여정을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아멜리아는 사랑하는 애인 에드먼드 박사를 구하기 위해서 그가 착륙한 행성으로 가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대원들은 나사로 미션의 12대원 중 가장 뛰어났던 만 박사가 보내온 데이터들을 더 신뢰하고 결국 이성에 따라 결정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만 박사가 보내온 데이터들은 모두 거짓이었고, 탐사선을 자신에게로 보내게 하려는 이기적인 술책이었다. 만 박사는 인간에게 주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머리로 잘 알고 설명할 수 있었지만, 이기심밖에 없는 안타까운 인물이다. 제자들 중 전대(돈지갑)를 맡았던 유다처럼 만 박사는 대원들 중 가장 탁월하고 신뢰받았던 대원이었지만, 결국 배신의 길을 걷게 된다.

쿠퍼가 과감히 블랙홀 속으로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은 머피를 향한 강렬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이 쿠퍼로 머피에게 접속되게 했고, 결국 ‘그들’의 도움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지만, 사랑은 수 억 광년 떨어진 웜홀을 뚫을 만큼 위대한 구원의 힘이다.

영원한 시간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주보다 더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 오직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크로노스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예수의 형상으로 인류에게 나타나 주셨다. 그분이 떠나신 자리에는 여전히 사랑의 흔적은 남아있어 우리로 그 사랑의 길을 따르도록 이끌어 가신다.

이 영화는 우리의 눈과 귀를 설득하는 이성과 데이터보다는 당장에 보이지 않아도 더 근원적인 사랑을 따르라고 한다. 자신을 버리고 생명을 선택하는 길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절대적 로고스로 이끌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변에 흔들리는 시계 바늘, 먼지바람, 나뭇잎의 움직임과 같은 미묘한 것들을 통해서도 말씀하고 계시다.

노인 머피가 젊은 아버지 쿠퍼를 만나는 장면은 생경한 감동을 자아낸다. 새로운 행성으로 이동하는 데에 기여한 머피는 인류 구원의 위대한 업적들이 사실은 자기가 이룬 것이 아닌 아버지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한다. 노인 머피의 고백처럼 진리란 우리 스스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지는 것뿐이라는 언급은 러셀 커크(Russell Kirk)가 말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겸손한 보수주의적 관점과 상통한다.

크리스토퍼 감독이 기독교 세계관을 얼마나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이성의 정점이라고 신봉하는 현대 물리학적 이론을 통해 역설적으로 기독교 교리의 정수를 담고 있다. 영혼을 울리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복음 밖에 없다는 우리들의 전제로 볼 때, 인터스텔라가 그려낸 우주적 감동은 너무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담겨진 기독교의 진리로부터 오고 있을 것이다.

<kim2shine@gmail.com>


글 | 김수인

현직 영어교사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글로벌교육협력 석사과정에서 시민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9차 개정교육과정 영어 능률교과서 집필위원과 바른교육학부모연합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데릭프린스의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복의근원, 2014)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