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과 탈원전
2020-05-19
월드뷰 05 MA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3 |
글/ 정범진(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서론
천동설과 지동설은 종교가 과학적 세계관에 개입했다가 실패한 유명한 사례이다. 당시 교회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사회의 혼란을 막아야 할 필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시험관 아기’ 사례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개입이 잘못된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회 지도자가 지닌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라는 구절을 근거로 탈원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인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현실의 삶이 아니라 영생이다. 앞으로는 종교인이 자기의 주장을 펼 때, 성경 구절을 올바로 적용했으면 좋겠다. 또 원자력을 하지 않는 것이 생명의 길도 아니다.
탈원전 정책의 적절성을 논하기에 앞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어떤 주장을 과학이 아니라, 감각적 판단에 기초하여 주장하면 위험하다. 또 이분법적인 생각도 이념적 주장으로 흘러가 객관성을 잃을 수 있으므로, 역시 위험하다. 철기시대에도 여전히 석기와 청동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특정 에너지만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원자력이 무엇인가?
원자력은 핵반응에서 얻어지는 에너지이다. 물질을 잘게 나누다 보면, 원자가 나오는데, 과거에는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원자가 합쳐지거나 나뉘면서,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핵반응의 발견은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충격인 소식이었다. 연소 과정을 거치지 않는 에너지원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이산화탄소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 에너지를 훌쩍 뛰어넘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나온다. 우라늄 1g은 석탄 3톤, 석유 9드럼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들어간 것이 적으니 당연히 나오는 폐기물도 적다.
지난 200년간 인류는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면서, 에너지의 사용도 늘어났다. 인구도 늘어났다. 문명 발상지가 폐허가 된 이유는, 주변의 숲을 모두 에너지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나무를 연소하여 에너지를 얻다가 한계에 이르자, 석탄, 석유, 가스로 옮아가는 과정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이는 혁신의 과정이었다. 우라늄이라는 금속이 에너지를 발생하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에너지는 점점 고밀도, 기술집약적인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자원고갈과 지구온난화라는 새로운 환경적 도전 때문에, 개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에너지발전사와는 궤를 달리한다[그림1].
우리나라의 원전 현황
2020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리, 한빛(영광), 월성, 한울(울진)의 4개 부지 그리고 이들과 인접한 새울(신고리), 신월성, 신한울의 3개 원전부지가 있으며, 여기에 24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운전 중이다.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중이므로, 4기의 원전이 추가될 예정이다. 더 쓸 수 있는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는 정부 정책에 따라 영구정지가 결정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서, 신한울 3·4호기는 공정률 약 30%에서 공사가 중지된 상태이고, 천지 1·2호기는 부지매입단계에서, 대진 1·2호기는 계획단계에서 건설이 백지화되었다[그림 2].
우리나라 전력의 발전원별 비중은, 원자력발전 30%, 석탄발전 40%, 천연가스(LNG)발전 20%, 수력발전 및 신재생발전 등이 나머지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수치는 매년 설비이용률, 발전 연료의 가격 등의 변동에 따라서 가감된다. 발전원별 단가는, 비공개자료이나 2015년 경제협력기구(OECD)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공동조사보고서에서, 평준화 발전단가(LCOE: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가 공개된 바 있다[표 1].
[표 1]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원자력 발전단가는 방사성폐기물 비용을 포함하며, 석탄발전의 절반, LNG 천연가스발전의 1/3,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에너지발전의 1/4 수준이다. 현재에도 이 수준인데, 원자력 이외 에너지 부문의 기술발전 속도가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이 격차는 유지될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이 값싼 전기요금을 유지하는 데, 크게 이바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환경적으로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원 대부분을 수입해와야만 하는 나라에서는 우라늄을 30개월 치 이상 비축하고 있으므로, 에너지 안보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참고로 석유는 110여 일, LNG는 45일, 석탄은 2주분 정도만 비축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에서 하고자 하는 것
탈원전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얻겠다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원전과 석탄에서 탈출하고, 반대로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언뜻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러나 과연 원전 30%, 석탄 40%를 빼고 5%도 되지 않는 재생에너지를 늘려서 채우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할까? 땅은 충분히 있는가? 전기료가 얼마나 오를까? 태양광을 가동하지 못하는, 야간의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LNG 발전소를 또 얼마나 지어야만 하는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한지, 친환경 급식을 먹는 것이 더 중요한지, 헷갈리는 시대가 된 것처럼, 에너지 정책이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정책이 아니라, 환경이 가장 우선시 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리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친환경적이지도 않은 재생에너지를 보급하기 위해서 말이다.
원전이 위험한가?
원자력은 많은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으니, 당연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원의 위험성은 사자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가 아니라, 철창이 얼마나 두껍고 몇 겹으로 설치되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이 결코 완벽할 수는 없지만, 이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 지난 50년간 고심해온 결과를 믿어야 한다. 또 이러한 시설의 위해를 단속하기 위하여, 얼마나 철저한 규제 제도를 만들었는지 알아야 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대형 원전 사고를 경험했다. 1979년 TMI-2호기, 1986년 체르노빌 4호기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먼저 1979년 TMI-2호기는 원자로 내부의 절반이 녹을 만큼 심각한 사고였지만, 격납용기가 있어서 외부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지 않았다. 당연히 피해는 원전에만 국한되었을 뿐이다. 반면에 체르노빌 4호기 사고는 격납용기가 없어서 대규모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다. 현장에서 사고에 대처하던 대원 등 28명이 사망했다. 이후 30년간 방사선 후유증으로 15명이 더 사망하여, 총 43명이 사망하였다. 마지막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쓰나미로 인하여 원전에 사고가 난 것이다. 일부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다.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은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이것이 지난 50년간 500여 기의 원전을 가동하면서 발생한 피해 전부이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데, 사실 이는 공황일 뿐, 통계는 원전 사고의 피해가 그렇게 크다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체르노빌 1~3호기는 사고 이후에도 운전되었다. 운영인력과 보수인력이 왕래했다. 바로 옆의 TMI-1호기도 수명까지 운전되었다. 알려진 것보다 피해가 크지 않다. UN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UNSCEAR)를 믿어야 한다. [그림 3]은 전력 1조 kWh를 생산할 때 사망자를 전 주기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석탄이 원자력보다 훨씬 위험하다. 이런 공식 자료를 믿어야 한다.
선동가들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드물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끝장’이라고 한다. 미국, 러시아, 일본에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결과 이 나라들이 모두 끝장이 났는가? 이들 국가가 사고를 경험하고 원전을 포기했는가? 우리나라의 관리시스템을 믿지 못하겠다면, 시스템을 고쳐야 하지, 탈원전은 해답이 아니다.
원자력발전의 청정성
원전이 있는 게 좋은지, 없는 게 좋은지를 묻는 것은 옳은 질문이 아니다. 원전과 석탄발전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또는 원전과 태양광발전 중 어느 쪽이 좋은지를 물어야 옳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질문은 전기를 써야 한다는 전제가 빠져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원전에서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가 나오지 않는다. 방사성폐기물은 발생한다. 그러나 연료의 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으므로, 폐기물의 양도 적다. 1g의 우라늄에서 석탄 3톤의 에너지가 나오는데 폐기물은 아주 적다. 핸드폰 하나의 무게가 약 200g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적은 양인지 알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지난 40년간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발전을 하고 나온 사용 후 핵연료는 1만 5천 톤이다. 금속이기 때문에 부피도 그리 크지 않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쌓아놓을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같은 양의 전력을 석탄발전으로 생산했다면 석탄회는 2억 톤이 발생했을 것이고 수십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폐기물은 침출수를 방출하고, 썩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물이 되는데, 방사성폐기물은 가두어둔 후, 시간이 지나면 방사성은 없어진다. 양도 적고, 환경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자연물이 된다는 측면에서 더 친환경적이다.
재생에너지 과도한 보급의 문제
재생에너지는 자원의 고갈과 지구온난화라는 환경적 도전에 대한 대응으로 개발되고 있다. 연료의 공급이 어려운 도서나 산악지방에서 유용하다. 특히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나라에 적절할 에너지일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재생에너지는 환경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햇볕이 있어야 태양광발전을 할 수 있고, 바람이 있어야 풍력발전을 할 수 있다. 산이 있어야 수력발전소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환경친화적이기에 앞서 환경 의존적이다. 따라서 조건이 맞는 곳에 설치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태양광과 풍력발전소를 설치하여 에너지를 얻기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다. 그리고 태양광과 풍력의 이용률은 잘 해봐야 15%와 20%에 불과하다. 시설을 설치해놓고, 8할은 놀리고 2할만 일하는데, 경제성이 좋을 수 없다. 하물며, 환경여건도 고려하지 않고, 아파트 베란다와 외벽에, 태양 빛을 수직으로 받을 수도 없게 설치된 태양광은, 그야말로 생산하는 전력보다 제작하고 설치하는 데 비용이 더 들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가동되지 않는 기간을 위해서는, 동등한 양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LNG 발전소가 건설되어야 한다. 이들은 가동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가 재생에너지가 가동되지 않을 때만 가동된다. 또한,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은 구름이 지나가고 풍향이 바뀌면, 또 출렁거린다. 220V와 60㎐로 일정하게 전력을 공급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메우려고 일종의 배터리인 전력저장장치(ESS)를 두어서 전력생산이 낮을 때는, 저장장치가 공급하고, 또 그 반대에는 저장하는 방식의 운전을 대안으로 내놓았는데, 전력저장장치의 가격이 너무 비싸고, 화재도 잦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3년간 150여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애초에 잘못 꿴 첫 단추를 유지하려니, 문제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LNG 수입이 사상 최대가 되고, 전력계통은 불안정해진다.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2019년에 약 3조 원이 지급되었다. 5천억 원은 전기료에 포함되어 징수되는 전력기금에서 부담하였고, 2조 5천억 원은 한수원 등 발전사가 부담하였다. 그런데 탈원전/탈석탄을 하게 되면, 이들 회사가 더는 부담할 수 없게 된다.
맺음말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교역국이다. 이 좁은 땅에서 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그것도 잘 먹여 살리고 있다. 최근 불경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것은 분야별로, 세계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석구석에 우리는 대단한 전문가가 있다. 그런데 이들을 묶어내는 정치 분야는 매우 아쉬운 구석이 있다.
원자력발전은 지난 40년간 우리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국토는 좁은데 전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고, 게다가 에너지원은 전량 수입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잘 만들어진 수출상품으로써의 원전의 가능성도, 2009년 UAE 원전 수출로 확인되었다. 미국이나 프랑스 원전의 절반 가격에 수주하여 적기에 준공시켰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서 시민 대표에게 탈원전 정책이 강행되면, 에너지 수입이 증가하고 전기요금이 오르며, 국제사회에 약속한 37%의 이산화탄소 감축이 불가능하며, 재생에너지의 과도한 보급이 도리어 환경을 파괴하고,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산 저가 패널을 수입해오는 데 사용되고, 원전생태계가 붕괴하면서, 수출도 되지 않을 것을 역설했는데, 지금 대부분이 실현되고 있다.
에너지원의 선택은 각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기술에 의해 달라진다. 즉, 나라마다 고유한 정책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를 위해 자원을 예비해 두셨는데, 과학자는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자원을 찾는 사람이다.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예비한 자원이다. 원자력도 그렇다. 미래에 필요가 생긴다면 과학자는 그때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자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bjchung@khu.ac.kr>
글 | 정범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과학기술부에서 5년간 행정 경험을 쌓았다. 영국 Manchester 대학에서 수학한 후, 제주대 에너지공학과에서 11년간 재직하였고, 한국연구재단의 원자력단장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2013년 경희대로 옮겼다. 원자력안전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대중과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